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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크 고르디옙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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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올레크 고르디옙스키는 1938년생으로, 소련의 첩보기관 KGB에서 근무하며 이중 스파이로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모스크바 국제 관계 대학교에서 수학한 후 KGB에 입사하여, 덴마크와 영국 주재 소련 대사관에서 근무했다. 1974년부터 영국 정보국 MI6에 기밀을 제공하며, 1985년에는 런던 주재 소련 대사관의 KGB 지부장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같은 해, 소련으로 소환된 그는 MI6의 도움을 받아 소련에서 탈출했다. 그는 MI6에 제공한 정보로 냉전 시대 핵 대결을 막는 데 기여했으며, 여러 저서를 집필하고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는 등, 영국에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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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크 고르디옙스키
기본 정보
2007년의 올레크 고르디옙스키
2007년의 고르디옙스키
본명올레크 안토노비치 고르디옙스키
출생일1938년 10월 10일
출생지소비에트 연방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모스크바
국적영국
러시아
직업스파이 (은퇴)
경력
소속KGB (1974년부터 영국 비밀 요원)
SIS/MI6
복무 기간알 수 없음
계급KGB 대령
작전명SUNBEAM
PIMLICO
NOCTON
OVATION
TICKLE
훈장
훈장CMG
학위명예 문학 박사

2. 초기 생애와 교육

올레크 고르디옙스키는 1938년 NKVD 장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학교에서 뛰어난 학생이었고 독일어를 구사했다.[3] 모스크바 국제 관계 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이후 NKVD 훈련을 받았다. 그곳에서 첩보 기술 외에도 독일어, 덴마크어, 스웨덴어, 노르웨이어를 구사하게 되었다.[30]

2. 1. 학업

올레크 고르디옙스키는 1938년 NKVD(소련 비밀 경찰이자 KGB의 전신) 장교의 아들로 태어났다.[3] 그는 학교에서 뛰어난 학생이었으며, 독일어를 구사했다.[30]

모스크바 국제 관계 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이후 NKVD 훈련을 받았다. 그곳에서 첩보 기술 외에도 독일어를 익혔고, 덴마크어, 스웨덴어, 노르웨이어를 구사하게 되었다.[30]

3. KGB 경력

올레크 고르디옙스키는 1963년 KGB에 입사하여 1966년 코펜하겐 주재 소련 대사관에 파견되었다. 1978년 덴마크 근무를 마치고 모스크바로 돌아왔으나,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여성과 결혼하면서 KGB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 때문에 모스크바에 머무는 동안에는 MI6에 정보를 제공하기 어려웠다.[30]

이후 영어를 배우고 노력한 끝에 1982년 6월 런던으로 파견되었다. MI6의 도움으로 빠르게 승진하며, MI6에 비밀 문서와 정보를 계속 제공했다.[30] 1985년 4월 말, 런던 주재 소련 대사관의 KGB 지부장(주재원)으로 승진했다.[30]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스크바로 소환되었고, 알드리치 에임스의 배신으로 인해 약물 투여와 심문을 받는 등 위기를 겪었다.[5][30][6] 이후 감시와 압박이 심해지자, 1985년 7월 MI6에 구출을 요청하여 탈출에 성공했다.[7]

3. 1. 동베를린 파견과 체제 환멸

고르디옙스키는 학업을 마친 후 외무부에 들어가 1961년 8월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직전 동베를린으로 파견되었다.[3] 그는 베를린 장벽 건설에 큰 충격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소련 체제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30] 베를린에서 1년간 근무한 후 모스크바로 복귀했다.[3]

3. 2. 코펜하겐 근무와 MI6 접촉

고르디옙스키는 1963년 KGB에 입사하여 1966년 코펜하겐 주재 소련 대사관에 파견되었다. 그는 1968년 8월 소련이 프라하의 봄 개혁 운동을 잔혹하게 진압하는 것을 보고, 덴마크 및 영국 정보 요원과 기관에 협력할 의향이 있다는 비밀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30] 1974년 MI6에 기밀을 넘기기로 합의했는데, 그는 이 행위를 "소련 체제를 훼손하는 것 이상"으로 보았다.[4] MI6는 그에게 암호명 SUNBEAM을 부여했다.[4]

3. 3. 런던 근무와 승진

고르디옙스키는 영어를 배우고 런던에서 일하기 위해 노력한 후, 1982년 6월 KGB에 의해 런던으로 파견되었다.[30] 그는 MI6의 지원을 받으며 승진했는데, MI6는 그에게 유용한 정보와 인맥을 제공하고, 그의 상사들을 모스크바로 추방시켜 고르디옙스키가 그 자리를 차지하도록 도왔다.[30] 그는 계속해서 MI6에 비밀 문서와 정보를 제공했다. 런던에서 그의 MI6 암호명은 NOCTON이었다.[4] MI6의 고위 정보원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이름이나 직책은 몰랐던 CIA는 그에게 암호명 TICKLE을 부여했다.[4]

1985년 4월 말, 그는 런던 주재 소련 대사관의 KGB 지부장(주재원)으로 승진했다.[30]

3. 4. 모스크바 소환과 탈출

1985년 4월 말, 고르디옙스키는 런던 주재 소련 대사관의 KGB 지부장(주재원)으로 승진했다.[30] 그러나 1985년 5월 16일, 그는 갑작스럽게 모스크바로 소환되라는 전보를 받았다.[30] MI6는 그에게 영국으로 즉시 망명할 것인지, 아니면 KGB가 그의 배신을 의심할 경우 심문, 고문, 또는 살해될 가능성을 안고 모스크바로 돌아갈 것인지 선택하라고 했다.[30] 고르디옙스키는 MI6가 그에게 모스크바로 돌아가도록 권유한다고 느꼈고, 결국 모스크바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30] MI6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그를 탈출시킬 계획을 재개했다.[30]

고르디옙스키는 자신이 1985년 5월 초 (늦어도 1985년 6월 초) CIA 요원 알드리치 에임스에 의해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5][30] 1985년 5월 19일 모스크바로 돌아온 고르디옙스키는 약물을 투여받고 심문을 받았지만, 기소되지는 않았다.[6][30] 대신 그는 KGB의 비운영 부서에 배치되었다.[6] 모스크바에서 감시와 압박이 심해지고 이중 스파이 혐의를 강하게 받자, 1985년 7월 그는 미리 준비된 비밀 신호를 MI6에 보내 구출을 요청했다.[7]

1985년 소련에서 영국으로 탈출한 후, 그는 서방에 더욱 유용하게 되었다.[30] MI6는 고르디옙스키에게 망명하여 보호를 받으며 런던에 남을 수 있는 선택권을 제공했지만, 그는 1985년 5월 19일 모스크바로 떠났다.[30] 도착 후, 그는 모스크바 외곽의 KGB 안전가옥으로 끌려가 약물을 투여받고 약 5시간 동안 심문을 받았다.[6] 그 후 그는 풀려났고, 다시는 해외에서 근무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6] 그는 외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혐의를 받았지만, 그의 상사는 그에 대한 명백한 추가 조치를 취하는 것을 보류했다.[6]

MI6가 고르디옙스키가 제공한 정보를 미국 CIA에 전달했지만, 영국은 그 출처를 밝히지 않았고, CIA는 그 출처가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한 비밀 작전을 수행했다. 약 1년 후, 그들은 그것이 고르디옙스키일 것이라고 깨달았다. 곧 미국 CIA의 고위 간부인 올드리치 에임스가 KGB에 기밀을 팔기 시작했고, 고르디옙스키의 배신 행위를 소련 대외 정보부에 보고했다. 에임스는 1985년 5월 15일 워싱턴 D.C.에서 KGB 요원과 처음 만나 기밀 정보를 팔았고, 다음날 고르디옙스키는 KGB 지도부로부터 모스크바 소환 전보를 받았다.[30] 1994년 ''워싱턴 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FBI와 CIA는 에임스가 고르디옙스키에 대해 소련에 처음 경고했는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그랬는지에 대해 여전히 당황해하고 있다고 한다.[11] 이후 FBI 보고서에 따르면 에임스는 1985년 6월 13일까지 소련에 고르디옙스키에 대해 알리지 않았으며, 당시 고르디옙스키는 KGB의 감시를 받고 있었지만, 1985년 7월 19일 MI6 요원들이 그의 탈출 과정을 시작할 때까지 아직 반역죄로 기소되지 않았다.[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 작가 벤 매킨타이어와 고르디옙스키 사건에 관련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1985년 5월 초 워싱턴에서 KGB와 처음 만났을 때 에임스가 KGB의 최고 수사관인 빅토르 부다노프 대령의 조사를 촉발하고 고르디옙스키의 소환을 유발할 충분한 정보를 제공했다고 믿고 있다.[12]

4. 영국 비밀정보부 요원 활동

올레크 고르디옙스키는 1968년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이후 KGB에서의 업무에 환멸을 느꼈다.[8] 1972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MI6와 접촉하여 1974년부터 이중 스파이로 활동했다.[8][30]

1982년 KGB가 고르디옙스키를 런던으로 파견하면서 MI6는 고위 정보 자산을 확보, 가치가 극적으로 증가했다. 그는 런던에서 승진하여 점점 더 높은 수준의 소련 기밀에 접근할 수 있었고, 이를 런던의 안전 가옥을 통해 MI6에 전달했다.[30]

4. 1. 주요 공헌

고르디옙스키는 1968년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이후 KGB에서의 업무에 환멸을 느꼈다.[8] 1974년부터 MI6와 협력하여 이중 스파이로 활동하기 시작했다.[30]

1982년 KGB가 고르디옙스키를 런던으로 파견하면서 MI6는 그의 가치가 극적으로 증가했다. 그는 런던에서 승진하여 점점 더 높은 수준의 소련 기밀에 접근할 수 있었고, 이를 MI6에 전달했다.[30]

고르디옙스키의 가장 중요한 공헌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 소련이 NATO 훈련인 에이블 아처 83을 잠재적인 선제 핵 공격으로 오해하여 발생할 수 있었던 핵 대결을 막은 것.[9]
  •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련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지목한 것.[10]


고르디옙스키가 전달한 정보는 소련 지도부가 NATO의 핵 선제 공격 가능성에 대해 얼마나 우려했는지를 보여주는 최초의 증거였다.[10]

5. 소련으로부터의 탈출 (작전명 핌리코)

1978년, MI6는 올레크 고르디옙스키를 소련에서 탈출시키기 위한 정교한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은 "작전 핌리코"라는 암호명으로 불렸으며, 발레리 페티트라는 MI6 요원이 고안했다.[13][30] 1985년, 고르디옙스키는 이 계획을 통해 영국으로 망명했고, 소련 당국은 그에게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했다.[15] 고르디옙스키의 탈출은 KGB와 소련을 매우 당황하게 만들었고, KGB 내 관련자들의 경력에 혼란을 야기했다.

5. 1. 탈출 과정

1978년, MI6는 올레크 고르디옙스키가 코펜하겐에서 두 번째 3년 임기를 마치고 모스크바로 소환되었을 때, 그를 소련에서 탈출시키기 위한 정교한 계획을 세웠다.[30] 이 탈출 계획은 "작전 핌리코"라는 암호명으로 불렸으며, 발레리 페티트라는 MI6 요원이 고안했다.[13]

고르디옙스키는 KGB의 감시를 받았지만, MI6에 비밀 신호를 보내 수년 동안 준비해 둔 핌리코 탈출 계획을 발동시켰다.[6] 그는 특정 요일에 오후 7시 30분에 특정 길모퉁이에서 세이프웨이 가방을 들고 기다렸다. MI6 요원이 해로즈 가방을 들고 마스 바를 먹으며 지나갔고, 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다. 이 신호로 탈출 계획이 즉시 발동되었다.

1985년 7월 19일, 고르디옙스키는 평소처럼 조깅을 나갔지만, KGB의 미행을 따돌리고 레닌그라드행 기차에 올라 핀란드 국경 근처 비보르크 남쪽의 만남 장소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영국 대사관 차량과 만났는데, 그들은 세 대의 KGB 감시 차량을 따돌리는 데 성공했다. 그는 포드 시에라 세단의 트렁크에 숨어 핀란드 국경을 넘어 밀입국했다.[30] 두 명의 영국 외교관과 그들의 아내가 고르디옙스키의 운반책이었는데, 핀란드 국경에서 탐지견의 경계를 피하기 위해 아내 중 한 명이 아기의 더러운 기저귀를 땅에 떨어뜨려 개들이 달아나게 했다.[14] 고르디옙스키는 노르웨이를 경유하여 영국으로 비행했으며, 영국에서 그의 MI6 암호명은 OVATION으로 변경되었다.[30]

소련 당국은 이후 고르디옙스키에게 반역죄로 "부재 재판"으로 사형을 선고했다.[15] 이 판결은 소련 붕괴 이후의 러시아 당국에 의해 번복되지 않았지만, 러시아가 당시 유럽 평의회의 회원국이었기 때문에 법적으로 집행될 수 없었다. 그의 아내 레이라(아제르바이잔인)는 KGB 장교의 딸이었으며, 남편의 망명 사실을 몰랐다.[16] 그녀와 그들의 아이들은 그가 탈출할 당시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심문을 받고 약 6년 동안 구금되었는데, 소련은 그녀가 고르디옙스키의 활동에 공모했다고 (잘못) 추정했다. 그러나 그때쯤에는 결혼 생활이 사실상 끝났고, 결국 완전히 파탄되었다.

고르디옙스키의 탈출은 KGB와 소련을 매우 당황하게 만들었다.

고르디옙스키는 1995년에 출판된 회고록 "다음 정류장은 처형"에 자신의 탈출에 대한 논의를 포함시켰다.[2]

5. 2. 소련의 반응

1985년 7월 19일, 고르디옙스키는 평소처럼 조깅을 나갔지만, KGB의 미행을 따돌리고 레닌그라드행 기차를 탔다. 그는 핀란드 국경 근처 비보르크 남쪽에서 영국 대사관 차량을 만나 포드 시에라 세단의 트렁크에 숨어 핀란드 국경을 넘었다.[30] 고르디옙스키의 운반책은 영국 외교관 부부 두 쌍이었는데, 핀란드 국경에서 탐지견의 경계를 피하기 위해 한 외교관의 아내가 아기의 더러운 기저귀를 땅에 떨어뜨려 개들이 달아나게 했다.[14]

소련 당국은 고르디옙스키에게 반역죄로 "부재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했다.[15] 이 판결은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당국에 의해 번복되지 않았지만, 러시아가 당시 유럽 평의회의 회원국이었기 때문에 법적으로 집행될 수 없었다.

고르디옙스키의 탈출은 KGB와 소련을 매우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KGB 내 대간첩 책임자인 빅토르 바부노프, KGB 레지던트였던 세르게이 이바노프를 포함하여, 영국인을 감시하는 책임을 맡았던 레닌그라드 KGB의 수많은 구성원과 블라디미르 푸틴과 가까운 많은 사람들이 경력에 혼란을 겪었다.

6. 영국에서의 삶

고르디옙스키(오른쪽)와 1987년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고르디옙스키는 수년 동안 런던의 "안전 가옥"에서 살았으며, 솔즈베리 독살 사건 이후 보안이 강화되었다.[30] 2018년 9월 기사에 따르면, 그는 잉글랜드 홈 카운티의 공개되지 않은 장소에 살고 있다.[2]

6. 1. 저술 활동

고르디옙스키는 KGB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으며, 이 주제에 대해 언론에서 자주 인용되는 전문가이다. 1990년에는 저널 ''정보 및 국가 안보''의 컨설턴트 편집자로 활동했으며, 1990년대에는 영국의 텔레비전에서 게임 쇼 ''Wanted''를 포함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18]

1995년, 전 영국 노동당 대표 마이클 풋은 ''더 선데이 타임스''로부터 소송 외 합의( "상당한" 것으로 알려짐)를 받았다. 신문은 고르디옙스키의 저서 ''Next Stop Execution''(1995) 초고의 주장을 바탕으로 한 기사에서 풋이 '부트'라는 암호명을 가진 KGB "영향력 있는 요원"이라고 주장했다.[19] 2010년 ''데일리 텔레그래프''에서 찰스 무어는 풋의 사망 직후 고르디옙스키로부터 제공받은 풋의 KGB 연루 정도에 대한 "전체 설명"을 제공했다. 무어는 또한 MI6와 KGB 파일 없이는 주장을 입증하기 어렵지만, 고르디옙스키가 과거에 영국 내 KGB 접촉을 폭로한 기록은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썼다.[24]

2005년 2월 26일, 그는 영국의 안보와 안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버킹엄 대학교로부터 명예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20] 2007년 여왕 생일 명예 (외교 목록)에서 "영국의 안보에 기여한 공로"로 가장 훌륭한 성 마이클 및 성 조지 훈장 (CMG)의 컴패니언으로 임명되었다.[21] ''가디언'' 신문은 이것이 "그의 허구의 냉전 동료 제임스 본드에게 주어진 훈장과 동일하다"고 언급했다.[22]

고르디옙스키는 KGB가 MI5 국장 로저 홀리스가 소련 요원이라는 주장에 대해 당황해하며 부인했다고 말했다. 2009년 ITV 프로그램 ''Inside MI5: The Real Spooks''에서 그는 KGB의 영국 부서장이 로저 홀리스가 KGB 요원이라는 영국 신문 기사를 읽고 놀라움을 표하는 것을 회상했다. 홀리스의 충성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인 역사적 문제로 남아 있다. MI5 공식 웹사이트는 홀리스를 옹호하는 고르디옙스키의 폭로를 인용했다.[23]

고르디옙스키는 PBS 다큐멘터리 ''지배의 정점: 세계 경제를 위한 싸움''에 출연했다. 최근 몇 년간의 작업으로는 저널 ''국가 안보''의 컨설턴트 편집자, '90년대에 Wanted'라는 TV 쇼 공동 진행, ''문학 평론''의 콘텐츠 작성 등이 있다.[25]
저서

출판 연도제목공동 저자출판사ISBN
1990KGB: 내부 이야기크리스토퍼 앤드류호더 앤 스토튼
1990KGB크리스토퍼 앤드류하퍼콜린스
1991중앙으로부터의 지시: KGB 해외 작전에 관한 최비밀 파일, 1975–85크리스토퍼 앤드류호더 앤 스토튼
1992중앙으로부터의 추가 지시: KGB 해외 작전에 관한 최비밀 파일, 1975–85크리스토퍼 앤드류프랭크 캐스 출판사
1995다음 정거장은 처형 (자서전)맥밀란
2002데 뢰데 스피오너 - 스탈린에서 옐친까지, 스타우닝에서 뉘루프까지의 덴마크 KGB 작전야콥 안데르센호스트 & 쇤 (코펜하겐)


6. 2. 마이클 풋 사건

1995년, 전 영국 노동당 대표 마이클 풋은 ''더 선데이 타임스''로부터 소송 외 합의("상당한" 것으로 알려짐)를 받았다. ''더 선데이 타임스''는 고르디옙스키의 저서 ''Next Stop Execution''(1995) 초고의 주장을 바탕으로 한 기사에서 풋이 '부트'라는 암호명을 가진 KGB "영향력 있는 요원"이라고 주장했다.[19]

2010년 ''데일리 텔레그래프''에서 찰스 무어는 풋의 사망 직후 고르디옙스키로부터 제공받은 풋의 KGB 연루 정도에 대한 "전체 설명"을 제공했다. 무어는 MI6와 KGB 파일 없이는 주장을 입증하기 어렵지만, 고르디옙스키가 과거에 영국 내 KGB 접촉을 폭로한 기록은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썼다.[24]

6. 3. 독살 시도 의혹

2008년 4월, 언론은 2007년 11월 2일에 고르디옙스키가 서리주 자택에서 구급차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어 34시간 동안 의식을 잃었다고 보도했다.[26] 그는 "모스크바의 불량배"에 의해 탈륨으로 독살당했다고 주장했다.[26] 그는 MI6가 특별 경찰대에게 그의 주장에 대한 초기 조사를 중단하도록 강요했다고 비난했다.[26] 그에 따르면, 조사는 전 MI5 국장 엘리자 매닝햄-불러의 개입으로 인해 재개되었다.[27]

고르디옙스키는 범인이 그에게 불면증 치료제라고 주장하며 약을 제공한 영국에 거주하는 러시아인 사업 파트너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 파트너의 신원을 밝히기를 거부했는데, 영국 당국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말했다.[28] 고르디옙스키는 MI6가 이 사건이 알려지는 것을 막으려 했다고 비난했다. "나는 그들이 범죄를 은폐하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고소와 반고소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내가 독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왜 내가 2주 동안 병원에 있었겠습니까?"[29]

7.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벤 매킨타이어는 고르디옙스키의 전기인 『스파이와 배신자: 냉전 시대의 가장 위대한 첩보 이야기』를 출판했고, 데미안 루이스와 함께하는 ''스파이 전쟁'',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스파이 작전''에서도 고르디옙스키의 이야기가 다루어졌다. 2024년 5월에는 BBC에서 4부작 첩보 다큐멘터리 시리즈 ''비밀과 스파이: 핵 게임''을 방영했는데, 이 시리즈는 고르디옙스키가 영국 정보국을 위해 수행한 중요한 업무, 에이블 트레이서 작전 중단, 미하일 고르바초프와의 평화로운 관계 구축을 위한 NATO 지원, 그리고 그의 러시아/핀란드 국경 탈출을 다룬다.

7. 1. 벤 매킨타이어의 저서

벤 매킨타이어는 2018년에 고르디옙스키의 전기인 『스파이와 배신자: 냉전 시대의 가장 위대한 첩보 이야기』를 출판했다.[30] 2019년판에는 고르디옙스키와 관련된 사건에 관여했던 MI6, KGB, CIA 요원들의 출판 후 반응에 대한 후기가 포함되어 있다.[31]

7. 2. 스파이 전쟁

2020년 3월, 고르디옙스키의 이야기는 미국 스미소니언 채널에서 방영되고 다양한 케이블 서비스에서 스트리밍되는 ''데미안 루이스와 함께하는 스파이 전쟁''의 한 에피소드에서 다루어졌다. "세계를 구한 남자"라는 제목의 이 에피소드는 고르디옙스키가 수년간 소련 정보를 영국에 전달하여 소련과 서방 간의 핵 아마겟돈을 거의 막았다고 설명한다.[32]

7. 3. 스파이 작전

벤 맥킨타이어는 2018년에 고르디옙스키의 전기인 『스파이와 배신자: 냉전 시대의 가장 위대한 첩보 이야기』를 출판했다.[30] 2019년판에는 고르디옙스키와 관련된 사건에 관여했던 MI6, KGB, CIA 요원들의 출판 후 반응에 대한 후기가 포함되어 있다.[31]

2020년 3월, 고르디옙스키의 이야기는 미국 스미소니언 채널에서 방영되고 다양한 케이블 서비스에서 스트리밍되는 ''데미안 루이스와 함께하는 스파이 전쟁''의 한 에피소드에서 다루어졌다. "세계를 구한 남자"라는 제목의 이 에피소드는 "소련 정보를 영국에 전달하기 위한 고르디옙스키의 수년간의 노력을 보여주며, 소련과 서방 간의 핵 아마겟돈을 거의 막았다"고 설명한다.[32]

2023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스파이 작전''의 세 번째 에피소드인 "핌리코 작전"은 MI6가 조율한 고르디옙스키의 모스크바 탈출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다.

2024년 5월, BBC는 4부작 첩보 다큐멘터리 시리즈 ''비밀과 스파이: 핵 게임''을 방영했다. 이 시리즈는 고르디옙스키가 영국 정보국을 위해 수행한 중요한 업무, 에이블 트레이서 작전 중단, 미하일 고르바초프와의 평화로운 관계 구축을 위한 NATO 지원, 그리고 고르디옙스키의 러시아/핀란드 국경 탈출을 다룬다.

참조

[1] episode Heroes and Villains http://www.bbc.co.uk[...] 2009-08-03
[2] 웹사이트 The Spy and the Traitor review – a gripping tale of escape from the USSR https://www.theguard[...] 2018-10-07
[3] 서적 Encyclopedia of Intelligence and Counterintelligence https://books.google[...] Routledge 2015-03-26
[4] 뉴스 In 'The Spy and the Traitor,' a tale of Cold War espionage that's both thrilling and true https://www.washingt[...] 2018-09-17
[5] 서적 Spy Handler: Memoir of a KGB Officer: the True Story of the Man Who Recruited Robert Hanssen and Aldrich Ames https://archive.org/[...] Basic Books
[6] 뉴스 Thirty years later, we still don't know who betrayed these Cold War spies" http://www.smithsoni[...] 2015-11-00
[7] 웹사이트 Review: "The Spy and the Traitor" https://www.emissour[...] EMissourian 2020-07-09
[8] 뉴스 The truth about Oleg Gordievsky, the KGB spy who changed the course of the Cold War https://www.thetimes[...] 2018-09-15
[9] 웹사이트 The Able Archer 83 Sourcebook http://nsarchive.gwu[...]
[10] 뉴스 How vital were Cold War spies? http://news.bbc.co.u[...] BBC News 2009-08-05
[11] 뉴스 KGB Man Turned British Spy Can't Pinpoint His Betrayer https://www.washingt[...] 1994-06-16
[12] 서적 The Spy and the Traitor: The Greatest Espionage Story of the Cold War Broadway Books 2019
[13] 뉴스 Valerie Pettit obituary https://www.thetimes[...] 2020-03-24
[14] 뉴스 The secret lives of MI6's top female spies https://www.ft.com/c[...] 2022-12-08
[15] 웹사이트 Buckingham honours Oleg Gordievsky http://www.buckingha[...]
[16] 서적 The Spy and the Traitor: The Greatest Espionage Story of the Cold War https://www.penguin.[...] Penguin 2019
[17] 웹사이트 Gordievsky: Russia has as many spies in Britain now as the USSR ever did https://www.theguard[...] 2013-03-11
[18] 서적 UK Eyes Alpha: The Inside Story of British Intelligence Faber and Faber
[19] 뉴스 'Sunday Times' pays Foot damages over KGB claim https://www.independ[...] 1995-07-08
[20] 웹사이트 Buckingham Honours Oleg Gordievsky http://www.buckingha[...] University of Buckingham 2005-02-28
[21] 간행물 2007-06-16
[22] 뉴스 Literary world applauds Rushdie knighthood http://books.guardia[...] 2007-06-16
[23] AV media Inside MI5: The Real Spooks https://www.youtube.[...] ITV
[24] 뉴스 Was Foot a national treasure or the KGB's useful idiot? https://www.telegrap[...] 2010-03-05
[25] 웹사이트 How Britain's best Cold War spy was smuggled out of the Soviet Union https://expressdiges[...] 2020-03-01
[26] 뉴스 Double agent Gordievsky claims he was poisoned by the Kremlin https://www.independ[...] 2010-04-06
[27] 뉴스 'Russian spy poisoned me' says former double agent Gordievsky http://news.scotsman[...] 2008-04-06
[28] 뉴스 Ex-Russian Spy Claims He Was Poisoned https://www.usatoday[...] 2008-04-07
[29] 웹사이트 Former KGB defector claims he was poisoned by Russians http://www.theguardi[...] 2008-04-06
[30] 서적 The Spy and the Traitor: The Greatest Espionage Story of the Cold War Viking 2018
[31] 서적 The Spy and the Traitor: The Greatest Espionage Story of the Cold War Broadway Books 2019
[32] 웹사이트 SMITHSONIAN CHANNEL ENTERS THE WORLD OF GLOBAL ESPIONAGE IN SPY WARS WITH DAMIAN LEWIS https://www.damian-l[...] Damian Lewis 20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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