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규장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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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외규장각(外奎章閣)은 조선 정조 때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하기 위해 강화도에 설치한 규장각의 분소입니다. 1782년(정조 6년)에 설치되었으며, '규장외각(奎章外閣)'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설치 배경 및 목적:
- 정조는 1776년 즉위하면서 창덕궁 후원에 규장각을 설립하여 왕립 도서관이자 학술 연구 기관으로 활용했습니다.
- 규장각에 보관하던 왕실 관련 자료와 도서가 많아지자, 이를 보다 체계적이고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강화도에 외규장각을 설치했습니다.
- 강화도는 국방상 요충지이자 방어 거점으로, 중요 기록물을 보관하기에 적합한 장소로 여겨졌습니다. 이미 강화도에는 정족산사고가 설치되어 실록과 왕실 족보 등을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주요 기능 및 소장 자료:
- 규장각의 분소, 즉 외부 서고(書庫)와 같은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 왕실 물품 (어보, 교명, 어제, 어필 등)과 왕의 열람용으로 제작된 어람용 의궤를 비롯한 1,000여 권의 서적을 보관했습니다.
- 특히 외규장각 의궤는 대부분 어람용으로 제작되었고, 국내외에 한 점밖에 없는 유일본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어 연구 자료로서 가치가 높습니다.
병인양요와 외규장각 도서:
-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가 강화도를 침략하면서 외규장각 건물이 불타고, 5,000여 권 이상의 책이 소실되었으며, 의궤를 비롯한 340여 권의 도서가 약탈되었습니다.
- 약탈된 외규장각 의궤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가 재불 학자 박병선 박사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외규장각 도서 환수:
- 1993년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이 방한하여 《휘경원원소도감의궤》 상 1권을 반환하며 외규장각 도서 전체 반환을 약속했지만, 양국 간 합의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 2010년 서울 G20 정상회담에서 프랑스와의 정상 회담 이후 5년마다 갱신되는 대여 형식으로 합의되어, 2011년 5월에 외규장각 도서 297책이 환수되었습니다.
- 현재 강화도에 있는 외규장각 건물은 2003년에 복원된 것이며,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의의:
- 외규장각은 조선시대 왕실의 기록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입니다.
- 외규장각 의궤는 조선시대 국가 행사의 전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한 책으로, 조선의 예법과 통치 철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 외규장각 도서 환수는 약탈 문화재 환수의 중요한 사례로 꼽힙니다.
2023년 1월 17일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외규장각과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전시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외규장각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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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건물 명칭 | 외규장각 |
그림 | Oegyujanggak 20181013 01.jpg |
그림 설명 | 2003년에 복원된 외규장각 |
완공 | 1782년 2월 |
파괴 | 1866년 |
용도 | 왕실 기록관 |
재건 정보 | |
완공 (재건) | 2003년 |
용도 (재건) | 전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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