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제프 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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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요제프 로트는 189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령 갈리치아에서 태어난 유대계 작가이다.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후 언론인과 작가로 활동하며, 전쟁과 제국 붕괴, 유대인 정체성 등을 다룬 소설을 발표했다. 대표작으로는 《라데츠키 행진곡》, 《욥》 등이 있으며, 아내의 정신 질환과 망명 생활,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받다 1939년 파리에서 사망했다. 그는 20세기 독일 문학의 주요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작품은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되고 연구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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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로트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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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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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모제스 요제프 로트 |
출생일 | 1894년 9월 2일 |
출생지 | [[파일:Flag_of_Austria-Hungary_(1869-1918).svg|border|22x20px]]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갈리치아 브로디 (현재의 우크라이나) |
사망일 | 1939년 5월 27일 (44세) |
사망지 | 프랑스 파리 |
묻힌 곳 | 티에 묘지 (파리) |
국적 | 오스트리아 |
민족 | 유대인 |
시민권 | 오스트리아 국적 |
사용 언어 | 독일어 |
교육 | 빈 대학교 |
직업 | |
직업 | 저널리스트, 소설가, 수필가, 기행 작가, 르포 작가 |
활동 기간 | 1916년-1939년 |
장르 | 소설, 수필, 기행문, 르포르타주 |
작품 활동 | |
대표작 | 『라데츠키 행진곡』(소설) |
사생활 | |
배우자 | 프리데리케 라이히러 |
파트너 | 이르가르트 쿤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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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요제프 로트는 1894년 브로디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했다. 1913년 렘베르크 대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1914년 빈 대학교로 옮겨 철학과 독일 문학을 공부했다.
1916년, 로트는 제1차 세계 대전의 동부 전선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군에 자원하여 복무했다.[3] 군대 저널리스트나 검열관으로 복무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경험과 1918년 합스부르크 제국의 붕괴는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그의 작품에서 "고향 상실감"이라는 주제로 자주 나타난다. 그는 "나의 가장 강력한 경험은 전쟁과 내가 유일하게 가졌던 조국, 즉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군주국의 파괴였다."라고 썼다.[4]
전후 빈에서 평화주의 신문인 ≪새로운 날(Der neue Tag)≫의 지방 통신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베를린에서 여러 신문의 인기 기자로 성장하면서 하층민과 전쟁 희생자의 고통, 일상생활, 영화 및 연극 평에 대한 기사를 썼다. 1924년에는 ≪전진(Vorwärts)≫과 ≪용(Der Drache)≫을 통해 극우 정치와 문화를 비판하는 시와 시사 해설을 발표하며 사회참여의 절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힌덴부르크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자 자포자기하여 문예 오락 담당 기자로 변모, ≪프랑크푸르트 신문 (Frankfurter Zeitung)≫에서 유럽 각지의 소식을 전하며 소설가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1922년 프리데리케(프리들) 라이히러와 결혼했으나, 1920년대 후반 아내가 정신분열증을 앓게 되면서 정신적,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아내는 이후 나치의 T4 작전에 의해 살해당했다.[5]
아돌프 히틀러가 1933년 1월 30일 독일 총리가 되자 독일을 떠나 파리로 망명했다. 이후 빈, 잘츠부르크, 암스테르담 등지를 전전하며 기자로 활동하며 국가사회주의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페시미즘에 젖어 1934년 소설 ≪타라바스(Tarabas)≫의 부제처럼 자신을 "이 땅의 손님"이라고 여겼다.
가톨릭교에서 은신처를 찾고자 했던 그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복원을 오스트리아를 파시즘으로부터 구할 유일한 방법으로 보았다. ≪황제의 흉상(Die Büste des Kaisers)≫(1935), ≪카푸친의 무덤(Die Kapuzinergruft)≫(1938)은 옛 합스부르크 제정에 대한 찬미와 이상화를 드러냈다.
말년에는 호텔을 전전하며 술에 의지했지만, 휴머니즘을 고수하며 시대의 희생자들을 위해 노력했다. 망명자원조기금을 후원하고 파리의 자유 도서관 건립을 도왔으며, 반파시즘 회의에서 연설했다.
만성 알코올 중독에도 불구, 1939년 파리에서 사망할 때까지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 소설 ''성스러운 술꾼의 전설''(1939)은 알코올 중독 노숙자가 존엄성을 되찾고 빚을 갚으려는 시도를 연대기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로트는 극작가 에른스트 톨러가 뉴욕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1939년 5월 27일 이중 폐렴과 진전 섬망으로 사망, 파리 남쪽 티에 묘지에 묻혔다.
2. 1. 초기 생애
요제프 로트는 189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령 갈리치아 동부, 러시아 국경 근처의 도시 브로디(현재 우크라이나)에서 유대인 부모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14][15]。당시 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 유대인, 오스트리아인, 독일인 등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던 이 도시에서 성장했다. 유대교 문화는 이 마을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유대인 인구가 많았다. 로트는 어머니와 친척들과 함께 자랐으며, 태어나기 전에 사라진 아버지와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3]7세부터 유대인 교구 학교에 다녔지만, 1905년부터는 독일계 김나지움 "황태자 루돌프 인문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독일어를 익히고, 독일계 작가를 지망했다.[14] 문과 계열의 여러 과목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인 로트는 1913년에 수석으로 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같은 해, 현지 렘베르크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당시 폴란드 독립 운동의 거점이 되어 강의도 폴란드어로 진행되었던 이 대학에 적응하지 못하고, 같은 해 빈으로 가서 빈 대학교에서 독일 문학을 배웠다. 시와 산문을 쓰기 시작했다.[14] 1914년에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친구이자 후에 시인이 되는 폴란드 출신 Józef Wittlin|요제프 비틀린de과 함께 병역에 지원하여, 1916년 저격 대대에 입대했다.[14] 같은 해 11월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붕어 시에는 국장 경비대의 일원이 되었다. 그 후 동부 전선에 배치되었고, 로트 자신은 오스트리아 육군 중위로 전선에서 싸웠다고 말했지만[16], 실제로는 보도반원으로 근무했던 것으로 보인다.
2. 2.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1916년, 로트는 대학교 공부를 중단하고 제1차 세계 대전의 동부 전선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군에 자원하여 복무했다. "아마도 군대 저널리스트나 검열관으로서였을 것이다".[3] 이 경험은 그의 삶에 크고 오래 지속되는 영향을 미쳤다. 1918년 합스부르크 제국의 붕괴 또한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그의 작품에서 자주 나타나는 "고향 상실감"의 시작을 알렸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나의 가장 강력한 경험은 전쟁과 내가 유일하게 가졌던 조국, 즉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군주국의 파괴였다."[4]2. 3. 언론인 및 작가 활동
1918년, 로트는 빈으로 돌아와 좌익 신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포르베르츠''에 게재된 기사에 "Der rote Joseph" (''붉은 요제프'', 독일어 "rot"가 "빨간색"과 동음이의어인 그의 성을 이용한 말장난으로, 이는 유럽 공산당의 상징색이기도 하다)라는 필명으로 서명했다.[9] 1920년 그는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에서 성공적인 저널리스트로 일했으며, 1921년부터는 ''베를리너 뵈르젠-쿠리어''에서 일했다.[9] 1923년에는 진보적인 ''프랑크푸르터 차이퉁''과 관계를 맺고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남프랑스, 소련, 알바니아, 폴란드, 이탈리아, 독일에서 기사를 썼다.[9] 마이클 호프만에 따르면, "그는 당시 가장 뛰어났고 가장 많은 급여를 받는 저널리스트 중 한 명이었으며, 한 줄에 1 독일 마르크라는 꿈의 대우를 받았다."[9] 1925년에는 프랑스에서 한동안 일했다. 그는 다시는 베를린에 영구적으로 거주하지 않았다.1923년, 로트의 첫 번째 소설(미완성)인 ''거미줄''이 오스트리아 신문에 연재되었다. 그는 전후 유럽의 삶을 탐구하는 일련의 책들을 통해 소설가로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지만, ''욥''과 ''라데츠키 행진곡''이 출판된 후에야 저널리즘이 아닌 소설로 명성을 얻었다.
2. 4. 결혼과 아내의 정신 질환
로트는 1922년 프리데리케(프리들) 라이히러와 결혼했다.[5] 1920년대 후반, 아내 프리데리케가 정신분열증을 앓게 되면서 로트는 정신적, 재정적으로 깊은 위기에 빠졌다. 프리데리케는 수년간 요양원에서 지냈으며, 이후 나치의 T4 작전에 의해 살해당했다.[5]

2. 5. 망명과 반나치즘 운동
Nationalsozialismus|나치즘de에 맞선 강력한 정신의 전사로 변신한 로트는,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의 총리가 되자 독일을 떠나 파리로 망명했다.[7] 그는 파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반나치즘 운동을 펼쳤고, 망명 작가들을 지원했다. 그는 프랑스에서 쓴 에세이들을 통해 파리와 프랑스 문화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1933년 2월, 로트는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에게 "우리가 큰 재앙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지옥이 지배합니다."[7]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나치의 지배를 경고했다.
로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복원을 파시즘으로부터 오스트리아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 신문 기사와 강연을 통해 가톨릭 정통주의 이념을 대변했다.[4] 그의 후기 소설인 ≪황제의 흉상(Die Büste des Kaisers)≫(1935), ≪카푸친의 무덤(Die Kapuzinergruft)≫(1938)은 옛 합스부르크 제정에 대한 찬미와 이상화를 드러냈다. 그러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러한 입장은 로트의 말년에 반시온주의적이고 반공산주의적인 논쟁을 낳기도 했다.
한편, 로트는 휴머니즘적인 입장을 고수하며 시대의 희생자들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망명자원조기금을 후원하고 파리의 자유 도서관 건립을 도왔으며, 반파시즘 회의에서 연설을 주저하지 않았다.
2. 6. 가톨릭으로의 경도와 죽음
요제프 로트는 자신의 유대인 기원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가톨릭교와의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말년에는 개종했을 수도 있다. 마이클 호프만은 에세이집 ''The White Cities''(또는 ''Report from a Parisian Paradise''로도 출판됨)의 서문에서 로트가 "유대교식 장례와 가톨릭식 장례, 두 번의 장례식을 치렀다"고 언급했다.[8]말년에 그는 호텔을 전전하며 술을 많이 마셨고, 돈과 미래에 대해 점점 더 불안해했다. 만성적인 알코올 중독에도 불구하고, 1939년 파리에서 사망할 때까지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8] 그의 소설 ''성스러운 술꾼의 전설''(1939)은 알코올 중독 노숙자가 자신의 존엄성을 되찾고 빚을 갚으려는 시도를 연대기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로트의 마지막 붕괴는 극작가 에른스트 톨러가 5월 22일 뉴욕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촉발된 것으로 보인다.[9] 로트는 5월 27일, 갑작스러운 금주로 악화된 이중 폐렴과 진전 섬망으로 사망했으며, 5월 30일 파리 남쪽의 티에 묘지에 묻혔다.
3. 작품 세계
요제프 로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붕괴와 제1차 세계 대전이라는 시대적 격변을 겪으며 작품 활동을 펼친 작가이다. 그의 작품 세계는 개인적인 경험과 시대적 배경이 복합적으로 얽혀 독특한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다.
로트는 1916년 대학 공부를 중단하고 제1차 세계 대전의 동부 전선에 참전했다. 이 경험은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나의 가장 강력한 경험은 전쟁과 내가 유일하게 가졌던 조국, 즉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군주국의 파괴였다."[4]라고 회고할 정도로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의 총리가 되자, 유대인이었던 로트는 독일을 떠나 파리에서 주로 생활했다. 그는 슈테판 츠바이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가 큰 재앙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지옥이 지배합니다."[7]라며 나치즘의 발흥을 예견했다.
로트는 자신의 유대교적 배경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가톨릭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말년에는 가톨릭으로 개종했을 가능성도 제기되며, "유대교식 장례와 가톨릭식 장례, 두 번의 장례식을 치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9]
만년의 로트는 호텔을 전전하며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받는 불안정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1939년 사망할 때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8] 그의 마지막 소설 중 하나인 ''성스러운 술꾼의 전설''(1939)은 알코올 중독 노숙자가 자신의 존엄성을 되찾으려는 시도를 다룬 자전적 이야기이다.
그의 작품들은 소설과 논픽션을 아우르며 다양한 주제와 형식을 보여준다.
'''소설'''
제목 | 출판 연도 | 비고 |
---|---|---|
거미줄 (Das Spinnennetzde) | 1923 | 1989년 영화로 각색됨 |
사보이 호텔 (Hotel Savoyde) | 1924 | |
반란 (Die Rebellion) | 1924 | 일부 영어 번역판에서는 Rebellion |
"4월: 사랑 이야기" (April. Die Geschichte einer Liebe) | 1925 | The Collected Stories에 수록 |
"눈먼 거울" (Der blinde Spiegelde) | 1925 | The Collected Stories에 수록 |
끝없는 도주 (Die Flucht ohne Ende) | 1927 | |
지퍼와 그의 아버지 (Zipper und sein Vaterde) | 1928 | |
우와 좌 (Rechts und linksde) | 1929 | |
침묵의 예언자 (Der stumme Prophetde) | 1929 | |
욥 (Hiob) | 1930 | |
라데츠키 행진곡 (Radetzkymarsch) | 1932 | 일부 영어 번역판에서는 The Radetzky March |
"역장 팔머이어" (Stationschef Fallmerayerde) | 1933 | The Collected Stories에 수록 |
Tarabasde | 1934 | |
"황제의 흉상" (Die Büste des Kaisersde) | 1934 | The Collected Stories에 수록 |
살인자의 고백 (Beichte eines Mörders) | 1936 | |
백일 (Die hundert Tagede) | 1936 | |
저울과 척도 (Das falsche Gewichtde) | 1937 | |
황제의 무덤 (Die Kapuzinergruft) | 1938 | |
진주 목걸이 (Die Geschichte von der 1002. Nachtde) | 1939 | |
성스러운 술꾼의 전설 (Die Legende vom heiligen Trinkerde) | 1939 | |
"리바이어던" (Der Leviathande) | 1940 | The Collected Stories에 수록 |
요제프 로트의 단편집 | 2003 | 마이클 호프만 번역 |
'''논픽션'''
- ''방랑하는 유대인들'' (''Juden auf Wanderschaft'') (1927)
- ''적그리스도'' (''Der Antichrist'') (1934)
- ''내가 본 것: 1920–1933년 베를린 보고서'' (2002)
- ''하얀 도시들: 1925–39년 프랑스 보고서'' (2004)
- ''요제프 로트: 편지로 쓴 삶'' (2012)
- ''호텔 시대'' (2015)
3. 1. 주요 주제와 특징
요제프 로트의 작품은 전쟁과 합스부르크 제국의 붕괴, 그리고 그로 인한 상실감과 소외를 주요 주제로 다룬다. 특히, 그는 "나의 가장 강력한 경험은 전쟁과 내가 유일하게 가졌던 조국, 즉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군주국의 파괴였다."라고 쓸 정도로 제국 붕괴는 그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4]로트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동유럽 유대인 사회에 대한 묘사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의 초기 작품은 좌익적 관점에서 사회를 비판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는 ''포르베르츠''에 "Der rote Joseph" (붉은 요제프)라는 필명으로 기고하기도 했다.[9]
그러나 후기 작품으로 갈수록 로트는 국가 사회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1914년 이전의 제국 중앙유럽에 대한 우울함과 향수를 표현하며, 심지어 군주제의 복원을 바라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경향은 소설 ''라데츠키 행진곡''(1932), 단편 "황제의 흉상"(1935), 그리고 ''황제의 무덤''(1938)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10]
또한 로트는 신즉물주의(Neue Sachlichkeit)에서 벗어나 신화적, 전설적 서사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3. 2. 대표작
- 《거미줄》(1923): 나치즘 대두의 이면을 그린 초기 소설.[25] 1989년에 동명의 영화로 각색되었다.
- 《사보이 호텔》(1924): 전후 유럽 사회의 불안과 소외를 그린 소설.
- 《욥》(1930): 성경적 소재를 차용, 유대인 가족의 운명을 그린 소설.
- 《라데츠키 행진곡》(1932):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몰락을 그린 대표작.
- 《Tarabas|타라바스de》(1934): "이 땅의 손님"으로서의 작가 의식을 드러낸 소설.
- "황제의 흉상" (Die Büste des Kaisers|디 뷔스테 데스 카이저스de)(1934)
- 《황제의 무덤》(1938): 합스부르크 제국에 대한 향수를 그린 소설.
- 《성스러운 술꾼의 전설》(1939): 자전적 소설, 알코올 중독 노숙자의 삶을 그림.
4. 한국과의 관계
요제프 로트의 작품은 1930년 고마쓰 타로(小松太郎)가 《탈주자 프란츠, 끝없는 도주(逃亡者フランツ、果てしない逃走)를 번역하면서 한국에 처음 소개되었다.[1]
4. 1. 한국 내 번역 및 소개
요제프 로트의 작품은 1930년 고마쓰 타로(小松太郎)가 《탈주자 프란츠, 끝없는 도주》(逃亡者フランツ、果てしない逃走)를 번역하면서 한국에 처음 소개되었다.[1] 이후 여러 작품이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는데, 1974년 도호출판사에서 《요제프 로트 작품집》 전 3권을 간행하였고, 조에이샤에서 《요제프 로트 소설집》 전 5권을 간행하였다.[1]5. 평가 및 영향
요제프 로트는 20세기 독일 문학의 주요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전쟁, 제국 붕괴, 유대인 정체성과 같이 20세기 초 유럽의 주요 문제들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작가로 꼽힌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라데츠키 행진곡》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몰락을 다룬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4] 로트는 슈테판 츠바이크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7]
참조
[1]
웹사이트
Joseph Roth
https://web.archive.[...]
Kuusankoski Public Library
[2]
서적
Radetzky March
Penguin Modern Classics
1984
[3]
서적
The Wandering Jews
Granta Books
[4]
백과사전
Roth, Joseph
Freie Universität Berlin
2014-10-08
[5]
잡지
European Dreams: Rediscovering Joseph Roth
https://www.newyorke[...]
2004-01-19
[6]
서적
Black Germany: The Making and Unmaking of a Diaspora Community, 1884–1960
Cambridge
[7]
서적
Hitlers Machtergreifung
Deutscher Taschenbuch-Verlag
1992
[8]
뉴스
A Timely Biography Traces Joseph Roth’s Accounts of Fascism
https://www.nytimes.[...]
The New York Times
2022-11-26
[9]
서적
The Wandering Jews
Granta Books
[10]
서적
Europe's Malaise: The Long View
https://www.reposito[...]
Emerald Group Publishing
[11]
웹사이트
Weights and Measures
https://pushkinpress[...]
Pushkin Press
2024-06-26
[12]
서적
Joseph Roth
Reinbek, Hamburg
1981
[13]
문서
池内(1995)pp.198-199
[14]
문서
池内紀訳『聖なる酔っぱらいの伝説』(1995)解説 pp.165-171
[15]
문서
『ウィーン世紀末文学選』(1989)p.298
[16]
문서
P.ホフマン(2014)p.214
[17]
문서
P.ホフマン(2014)pp.220-221
[18]
문서
森本(1992)p.88
[19]
문서
P.ホフマン(2014)p.71
[20]
문서
野村(1988)p.254
[21]
문서
F.ブライ『同時代人の肖像』(1981)p.171
[22]
문서
倉田(2006)p.154
[23]
문서
P.ホフマン(2014)pp.338-339
[24]
문서
丸谷(2012)p.347
[25]
문서
丸谷(2012)pp.348-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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