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구 (192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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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윤영구는 1928년 경성부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음악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하여 사회학을 전공했다. 6.25 전쟁 당시에는 미군 군목의 통역관으로 활동했으며, 이후 미국에서 인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이화여자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1963년 하와이로 이주하여 하와이대학교 여성학 교수로 재직하며 여성학 신설을 추진했다. 또한 아시아계 미국 이주 여성 연구, 한국인 위안부 문제 공론화, 결혼 이주 여성 인권 개선 운동 등 사회 활동에 참여했다. 2011년 하와이에서 사망했다.
1928년 7월 10일 경성부에서 태어난 윤영구는 경기여자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음대를 졸업했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미군 군목 통역관으로 참전했다.[1] 전쟁 후 미국으로 유학, 오하이오 웨슬리언대학교에서 사회학과 인류학을 전공하고, 1955년 최희창과 결혼했다. 1959년 귀국하여 이화여자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하다 1962년 미국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계조모 윤고려는 본래 성이 김씨였는데, 서양식대로 남편을 따라 윤씨로 성을 바꾸었다.[1] 윤영구는 그의 8촌 오빠가 되며,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 교육자 윤치호는 재종조부가 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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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서
최희창의 아버지는 6.25 전쟁 때 납북되었다.
2. 생애
1963년 하와이로 이주하여 하와이대학교에서 여성학 교수로 재직하며 여성학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아시아계 미국 이주 여성과 한국인 위안부 문제를 연구했다. 2011년 5월 9일 하와이에서 사망했다.[2]
2. 1. 초기 생애와 교육 (1928년 ~ 1950년)
1928년 7월 10일 경성부 장충동 감리 교회에서 병리학자 겸 해부학자인 윤일선과 그의 부인 조마구례(다른 이름은 조영숙)의 딸로 태어났다. 집은 서울시 서대문구 냉천동에 있었다. 형제로는 윤석구, 윤탁구 등이 있다. 대한민국의 제2대 서울시장과 4대 대통령을 지낸 윤보선은 아버지 윤일선의 사촌 동생이었다.
1942년 경기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945년 졸업하였다. 이후 서울대학교 음악학과에 입학, 1950년 2월 서울대학교 음대를 졸업하였다.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항공사에 취직했다가 1950년 6월 6.25 전쟁이 발생하고 미군이 한국에 파견되자 그는 미국 공군 군종장교 군목의 통역관으로 한국으로 들어왔다.[1]
2. 2. 미국 유학과 6.25 전쟁 참전 (1950년 ~ 1952년)
1950년 2월 서울대학교 음대를 졸업하고,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항공사에 취직했다.[1] 6.25 전쟁이 발생하고 미군이 한국에 파견되자, 그는 미국 공군 군종장교 군목의 통역관으로 한국에 들어와 1952년 휴전 때까지 활동했으며, 미 공군 군목의 한국 전쟁 고아 구호사업을 지원하였다.[1]
2. 3. 다시 미국 유학과 귀국 (1952년 ~ 1963년)
1952년 1월 윌리엄 쇼(William Show) 박사의 추천을 받아 미국으로 유학, 오하이오 웨슬리언대학교에 입학하여 사회학을 전공하고, 1953년 같은 웨슬리언대학교 대학원으로 진학하였다. 1955년 웨슬리언 대학교 대학원 재학 중, 서대문구 출신이자 성결교회 목사의 아들이었던 최희창을 만나 서울에서 결혼하였고[1], 1957년 웨슬리언대학교에서 인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59년 남편 최희창이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할 때 같이 귀국하여 이화여자대학교와 서울대학교의 인류학 강사로 채용되어 1963년까지 강의하였다. 그 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같은 웨슬리언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과정을 전공하여 1962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이름은 앨리스 윤이었으며, 결혼 후 남편의 성을 따라 앨리스 최로 이름을 바꾸었다.
2. 4. 하와이 정착과 여성학 연구 (1963년 ~ 2011년)
1963년 하와이로 이주하여 마노아에 정착하였다. 하와이대학교 여성학 강사로 임명되어 하와이대 동서 문화 센터(East West Center)와 여성학 프로그램을 맡아보았다. 1975년 미국 하와이대학교 여성학 교수가 되었다.[1] 하와이대학교에 재직하면서 결혼제도의 변천사를 연구하는 한편, 하와이대학교에 처음으로 여성학과 신설을 추진하여 성사시켰다. 강의 활동 외에도 아시아계 미국 이주 여성을 연구하였으며, 미국 내에 한국인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시켰고, 미국으로 오는 한국인 결혼이주여성의 인권, 처우 개선 문제 해결운동에 참여하였다. 또한 불법체류로 낙인찍히는 미국 내 아시아계 결혼이주여성의 권익 보호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하와이 결혼이주여성옹호회 자문역으로도 위촉되었다. 그 밖의 활동으로는 하와이 그리스도연합교회의 권사로 활동하였다.
2011년 5월 9일 하와이주 Manoa Cottage care home 양로원에서 사망하였다.[2] 장례 예배는 5월 11일 오전 10시~11시, 하와이주 호놀룰루의 성 키아모쿠 거리 1639번지에 있는 크리스트 유나이티드 감리교회에서 거행되었다.
2. 5. 사망
앨리스 최(Alice Choe영어)는 2011년 5월 9일 하와이주 Manoa Cottage care home 양로원에서 병으로 사망하였다.[2] 장례 예배는 5월 11일 오전 10시~11시, 하와이주 호놀룰루의 성 키아모쿠 거리 1639번지에 있는 크리스트 유나이티드 감리교회에서 거행되었다.
3. 가족 관계
관계 이름 비고 증조부 윤영렬 1854년 ~ 1939년 조부 윤치오 1869년 ~ 1950년 조모 이숙경(李淑卿) 1869년 ~ 1906년, 이경숙(李敬淑)으로도 불림 고모 윤시선 삼촌 윤승선 1904년 ~ 1966년 계조모 윤고려 1891년 ~ 1913년, 윤고라로도 불림 계조모 현송자 1899년 ~ 1978년, 현영운과 배정자의 딸, 윤치오와 이혼 이복 삼촌 윤영선 1922년 ~ ? 부 윤일선 1896년 ~ 1987년 모 조마구례(趙瑪玖禮) 1901년 ~ 2003년, 조영숙(趙榮淑) 또는 Margaret Young Sook Cho로도 불림 동생 윤석구 1929년 -, 미국 사지노 대학 물리학과 교수 동생 윤탁구 1932년 -, 의사, 원자력 병원장 역임 동생 윤종구 1933년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소아과학교실 교수 동생 윤용구 1937년 - 여동생 윤용구 1929년 - 남편 최희창(崔熙暢) Hichang Chai, 공학박사, 연세대학교 교수, 하와이 대학교 교수, 2001년 사망 아들 최문기(崔文基) 1960년 -, 변호사 며느리 메리 루(Mary Loo) 손자 최선일 영문명 리키(Ricky) 손녀 최선윤 영문명 줄리에(Julie) 아들 최승기(崔勝基) 1961년 -, 사회학자, 아리조나 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며느리 이혜련 손자 최선영 영문명 알렉산더(Alexander) 손녀 최선우 영문명 마들레네(Madeleine) 딸 최윤기(崔潤基) 1966년 - 사위 코지 타니야마 외손자 레오나르도 신이치(Leonardo Shinichi) 시아버지 최성모(崔聖模)
4. 기타
5. 학문적 업적 및 사회 활동
참조
[2]
뉴스
"[부고]앨리스 윤 최 교수"
http://koreatimeshaw[...]
한국일보
2011-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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