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가키 시게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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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나가키 시게토미는 미카와 카리야 번의 제2대 번주 이나가키 시게아키의 장남이다. 1688년 아버지의 은퇴로 번주가 되었으며, 1699년부터 1709년까지 와카도시요리를 역임했다. 1702년 가리야 번에서 오타키 번으로 이봉되었으나, 21일 만에 카라스야마 번으로 옮겨졌다. 1710년 38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장남 이나가키 아키카타가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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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10년 사망 - 히가시야마 천황
히가시야마 천황은 레이겐 천황의 아들로 1687년부터 1709년까지 재위하며 겐로쿠 문화의 전성기와 조정과 막부의 원만한 관계, 황실 재정 안정 등 안정적인 시기를 보낸 후 천연두로 사망했다. - 1710년 사망 - 올레 뢰머
올레 뢰머는 빛의 속도가 유한함을 입증한 덴마크의 천문학자이자 코펜하겐 시장으로, 도량형 시스템 도입, 그레고리력 도입 건의, 온도계 개발, 도시 환경 개선 등 사회 다양한 분야에 기여했다. - 오타키번주 - 오코치 마사타다
오코치 마사타다는 에도 시대 말기부터 메이지 시대에 걸쳐 활동하며, 사바에 번주의 아들로 태어나 오타키 번 번주를 계승, 보신 전쟁에서 구 막부군을 지휘했으나 패배 후 메이지 유신 이후 신정부 관료, 자작, 귀족원 의원을 역임하며 일본 근대사의 굴곡을 반영한 인물이다. - 오타키번주 - 혼다 마사토모 (1599년)
혼다 마사토모는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 다이묘로 혼다 타다카츠의 손자이며 가즈사 오오타키 번, 하리마 타츠노 번을 거쳐 히메지 번의 번주를 지냈고 혼다 가문의 종가가 되었다. - 이나가키씨 - 산조번
에치고국 산조에 위치했던 산조번은 호리 나오마사 입성 후 여러 다이묘 가문이 다스렸으나, 이나가키 가문의 이봉 이후 막부 직할령이 되며 폐지되었다. - 이나가키씨 - 오타키번
오타키번은 에도 시대 가즈사국 오타키(현재 지바현 이스미군 오타키정)에 있던 번으로, 오타키성을 중심으로 혼다 다다카쓰가 초대 번주를 맡아 시작되었으며 여러 가문이 번주를 역임 후 폐번치현을 거쳐 지바현에 편입되었다.
이나가키 시게토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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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야 번 번주 (이나가키가) | |
대수 | 3대 |
임기 | 1688년 ~ 1702년 |
전임자 | 이나가키 시게아키 |
후임자 | 아베 마사하루 |
오타키 번 번주 (이나가키가) | |
전임자 | 아베 마사하루 |
후임자 | 마쓰다이라 마사히사 |
임기 | 1702년 |
가라스야마 번 번주 (이나가키가) | |
대수 | 1대 |
임기 | 1702년 ~ 1710년 |
전임자 | 나가이 나오히로 |
후임자 | 이나가키 데루카타 |
2. 경력
조쿄 5년 (1688년), 아버지 이나가키 시게아키가 은거하자 미카와 카리야 번의 번주 자리를 계승했다. 도쿠가와 쓰나요시 정권 시기인 겐로쿠 12년 (1699년)부터 호에이 6년 (1709년)까지 막부의 요직 중 하나인 와카도시요리를 역임했다. 겐로쿠 15년 (1702년), 기존의 카리야 번에서 카즈사 오타키 번으로 영지가 옮겨졌으나, 불과 21일 만에 성의 터가 너무 좁다는 이유로 다시 시모츠케 카라스야마 번으로 이봉되었다. 호에이 7년 (1710년) 38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으며, 장남인 아키카타가 그 뒤를 이었다.
이나가키 시게토미의 가계는 아버지 이나가키 시게아키라로부터 이어지는 에도 시대 다이묘 가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정실부인으로는 기노시타 도시나가의 딸을 맞이하였으며, 장남 이나가키 아키카타를 비롯한 자녀를 두어 가문을 세습적으로 계승하였다. 이러한 혈통 중심의 가계 구조는 당시 봉건 사회의 특징을 반영한다.
3. 가계
3. 1. 부모
3. 2. 정실
3. 3. 자녀
4. 역대 번주
이나가키 시게토미는 미카와 가리야 번, 가즈사 오타키 번, 시모츠케 가라스야마 번의 번주를 차례로 역임했다.
4. 1. 가리야 번
미카와 카리야 번의 제2대 번주 이나가키 시게아키의 장남이다. 조쿄 5년 (1688년), 아버지 시게아키가 은거하자 그 뒤를 이어 가리야 번의 3대 번주가 되었다. 도쿠가와 쓰나요시가 쇼군으로 있던 시기인 겐로쿠 12년(1699년)부터는 와카도시요리 직책을 맡기도 했다. 겐로쿠 15년(1702년), 카즈사의 오타키 번으로 영지가 옮겨지면서 가리야 번을 떠나게 되었다.4. 2. 오타키 번
겐로쿠 15년(1702년), 카리야 번에서 카즈사 오타키 번으로 이봉되었다. 하지만 성의 규모가 너무 작다는 이유로 불과 21일 만에 시모츠케 카라스야마 번으로 다시 옮겨가게 되었다.4. 3. 가라스야마 번
겐로쿠 15년(1702년), 미카와 카리야 번에서 카즈사 오타키 번으로 영지가 변경되었다. 하지만 불과 21일 만에 성의 부지가 너무 좁다는 이유로 시모츠케 카라스야마 번으로 다시 옮겨가 초대 번주가 되었다.호에이 7년(1710년) 38세의 나이로 사망하였고, 장남인 아키카타가 그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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