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이와타야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이와타야는 1754년 후쿠오카에서 의류점으로 시작하여,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를 거쳐 백화점으로 확장했다. 1936년 규슈 최초의 터미널 백화점을 개점하며 텐진 지역 발전에 기여했으나, 1970년대 이후 경영 위기를 겪었다. 이세탄의 지원을 받아 재건에 성공, 2008년 이세탄과 미쓰코시의 경영 통합으로 미쓰코시 이세탄 홀딩스에 편입되었고, 2010년 후쿠오카 미쓰코시를 흡수 합병하여 '주식회사 이와타야 미쓰코시'가 되었다. 현재 이와타야 본점과 구루메점을 운영하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덴진 (후쿠오카시) - 후쿠오카 현립 미술관
    후쿠오카 현립 미술관은 사토 타케오가 설계한 쇼와 중기 모더니즘 양식 건물로, 후쿠오카현과 인연있는 작가들의 작품, 오가타가 그림 자료, 구루메 가스리, 규슈 고도자기 컬렉션 등을 소장하고 있으며, 다양한 특별전을 개최해 온 텐진역 근처의 미술관이다.
  • 덴진 (후쿠오카시) - 덴진역
    덴진역은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주오구 덴진에 위치한 후쿠오카시 지하철 공항선의 역으로, 덴진 지하상가를 통해 덴진미나미역과 환승이 가능했으나 현재는 환승 제도가 폐지되었고, 덴진 교차로 아래 규슈 최대 번화가인 덴진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 후쿠오카시의 상업시설 - 캐널시티 하카타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하카타구에 있는 캐널시티 하카타는 쇼핑, 문화, 숙박,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갖춘 대형 복합 상업 시설로, 지역 경제 활성화와 관광객 유치에 기여했으나 일부 시설은 변화를 겪고 있다.
  • 후쿠오카시의 상업시설 - JR 하카타 시티
    JR 하카타 시티는 후쿠오카현 하카타역에 위치한 복합 상업 시설로, 규슈 신칸센 개통에 맞춰 개장하여 백화점, 영화관, 레스토랑 등의 시설을 갖추고 텐진 지역 상권과 경쟁하며, 옥상 광장과 친환경 디자인, 타일 그림 아트가 특징이다.
  • 일본의 백화점 - 미쓰코시
    미쓰코시는 1673년 기모노 판매점 에치고야로 시작하여 현금 판매와 정찰제를 도입, 일본 최초 백화점으로 성장했으며 현재는 이세탄 미쓰코시홀딩스의 일부로 일본 및 해외에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가진 백화점이다.
  • 일본의 백화점 - 세이부 백화점
    세이부 백화점은 1928년 다루마야 창업으로 시작하여 1949년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된 일본의 대표적인 백화점으로, 이케부쿠로 본점 중심 성장, 혁신적인 경영, 경영 위기, 재건, 해외 진출 등을 거치며 일본 유통업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독자적인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이와타야 - [회사]에 관한 문서
회사 개요
회사명 (구)주식회사 이와타야
영문 회사명 (구)Iwataya Company Limited
회사 종류주식회사
전신(구) 주식회사 이와타야
국적일본
본사 위치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주오구 덴진 2丁目5-35
업종소매업
사업 내용백화점업
대표자하야미 도시오 (대표이사 사장)
외부 링크이와타야 공식 웹사이트
재무 정보 (2009년 3월 31일 기준, (구) 주식회사 이와타야)
자본금34억 5100만 엔
발행 주식 총수4624만 6500주
매출액 (연결)993억 1500만 엔
매출액 (단독)990억 7900만 엔
영업 이익 (연결)2억 0500만 엔
영업 이익 (단독)2억 3000만 엔
경상 이익 (연결)△13억 4800만 엔
경상 이익 (단독)100만 엔
순이익 (연결)△17억 0300만 엔
순이익 (단독)△3억 3400만 엔
순자산 (연결)106억 7800만 엔
순자산 (단독)101억 8100만 엔
총자산 (연결)491억 5900만 엔
총자산 (단독)493억 9600만 엔
고용 (2009년 3월 31일 기준, (구) 주식회사 이와타야)
종업원 수 (연결)949명
종업원 수 (단독)903명
주식 정보 (구)
증권 거래소후쿠오카 증권거래소 (1949년 6월 ~ 2009년 10월 7일)
종목 코드8246
주요 주주 (2009년 3월 31일 기준, (구) 주식회사 이와타야)
주요 주주이세탄 (51.58%)
이와타야 공영회 (4.76%)
니시큐다이 운수 창고 (4.55%)
미즈호 은행 (4.07%)
후쿠오카 은행 (4.07%)
공영흥산 (2.35%)
규슈 전력 (1.60%)
제네럴 아사히 (1.60%)
니시니혼 철도 (1.24%)
이와타야 사원 지주회 (1.10%)
자회사 (2009년 3월 31일 기준, (구) 주식회사 이와타야)
자회사이와타야 토모노카이 (100%)
에이지 클럽 (100%)
역사
설립1935년 5월 8일
합병2010년 10월 1일, 주식회사 후쿠오카 미쓰코시 (2대)를 흡수 합병하여 "주식회사 이와타야 미쓰코시"로 개칭

2. 역사

1754년(보력 4년) 나카무타 고에몬이 후쿠오카에서 '''이와타야 의류점'''을 연 것이 이와타야의 시작이다.[4] 나카무타 고에몬은 하카타의 의류상에서 봉사한 후, 후쿠오카의 약종상 "다다미야"를 운영하던 고에몬의 양자가 되어 가업을 물려받았다. 그 후, 후쿠오카 혼마치에 있던 의류상 이와타야 헤이시치로부터 이와타야의 가게 이름과 의류상 감찰을 양도받아 약종상에서 전업했다.[4]

== 메이지 유신과 근대화 ==

메이지 유신 후 무가의 몰락으로 후쿠오카의 수요가 감소하여 상점가가 쇠퇴하자, 1877년에 하카타 코지마치에 지점을 내고 진출했다.[4] 1893년에는 일본 전통 장부 대신 서양식 부기를 도입하고, 1903년에는 외상을 중단하고 정찰 판매로 전환하는 등 근대화를 추진했다.[4] 그 결과 1906년에는 하카타 지역 최대 의류점으로 성장했다.[4]

== 백화점 개업과 확장 ==

초대 나카무타 키헤이는 대중 사업 진출을 위해 1931년 하카타부 코지야초에 의류 및 일용 잡화를 취급하는 이와타야 마트를 열었으나[5], 규모가 작아 실패했다.[5][6] 이를 통해 대규모 백화점 영업의 필요성을 느껴 부지를 물색했다.[5]

도호 생명 보험 사장 오타 세이조 소유의 고후쿠마치, 규슈 철도 텐진 후쿠오카역(현재 니시테쓰 후쿠오카(텐진)역) 주변[8] 등이 후보지로 거론되었다. 고바야시 이치조가 한큐 백화점의 성공 사례를 들며 터미널 백화점 개설을 권유하여[5] 텐진 지역을 결정했다.[5]

1935년 규슈 최초의 터미널 백화점이자 후쿠오카에서 4번째 백화점 개설 구상을 발표하고, 같은 해 5월 '''주식회사 이와타야'''를 설립했다. 지역 소매상의 반대를 극복하고 1936년 10월 7일 후쿠오카역에 인접한 터미널 백화점 '''이와타야'''를 개점했다.[6][5] 개점 첫날 10만 명이 넘는 쇼핑객을 모았지만,[6][9] 매출은 예상을 밑돌았다.[10][11] 후쿠오카 마쓰야와 가격 경쟁, 폐점 시간 연장 경쟁을 벌였다.[10][12]

1948년 8월 니시테츠 거리, 텐진 시장 등의 대표와 '''도심 연맹(현: 도심회)'''을 결성하여 텐진 발전을 위해 협력했다.[5] 1949년 '''도심회'''로 개칭하고 연말 공동 판매를 시작했다.[5] '''도심회'''는 공동 판촉, 1952년부터 '''토카에비스''' 유치, 1954년부터 보육원 설치 등을 통해 텐진 상점가 발전에 기여하여, 텐진이 규슈 최대의 번화가가 되는 데 크게 공헌했다.[5]

1947년 4월 나카무타 키헤이가 회장에 취임하고, 장남 나카무타 키이치로가 사장에 취임했다.[10]

== 다점포화와 사업 다각화 ==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47년 5월에 오이타현 히타시에 '''히타 이와타야'''를 개점[13]한 것을 시작으로, 1963년 2월에는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의 하마야 백화점과 업무 제휴를 맺었으며[13], 1965년에는 기타큐슈시 도바타구에 '''도바타 이와타야'''[14], 1972년 5월에는 후쿠오카현 구루메시의 니시테쓰 구루메역 앞에 '''구루메 이와타야'''[13], 1973년 10월에는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에 규슈 산업 교통 등이 개설한 버스터미널의 구마모토 교통 센터 한 구역에 '''이와타야 이세탄 쇼핑 센터''' (이세탄, 구마모토 교통 센터와의 합병)[15], 1981년 6월에 '''니시진 이와타야'''[13]를 잇따라 출점하여 급속도로 다점포화를 이루어 규슈 최대의 백화점 체인으로 성장했다[16].

또한, 1963년 8월에는 이토추 상사와의 공동 출자로 서니를 설립하여 슈퍼마켓 경영에 진출하여, 후에 상장 직전까지 성장시켰으며[17], 1987년 4월 1일에는 패밀리마트와 합병하여 동사의 지역 프랜차이즈인 "아이・패밀리마트"를 설립, 편의점 사업에도 진출하여 300점 이상(1999년 8월 말 303개 점포)으로 성장시키는 등, 다른 업태로의 체인 전개에도 성공하여 규슈의 소매업을 대표하는 존재로 성장했다.

== 경영 위기와 재건 ==

1977년 폐점한 토바타 이와타야[14][19]를 시작으로, 구마모토 이와타야, 니시진 이와타야 등 일부 지점들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13][15][21][22] 특히 니시진 이와타야는 1997년 132.3억 엔이었던 매출이 2000년 76.3억 엔으로 급감하며 심각한 경영난을 겪었다.[22]

1996년, 후쿠오카 미쓰코시 개점에 대항하기 위해 신설한 'Z 사이드'는[23] 초기 투자로 약 350억 엔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27] 매출 부진을 겪으며[24] 과도한 투자의 부담을 안게 되었다.[25][27] 당시 사장 나카무타 겐이치가 추진한 매입 매입 방식의 자율 편집 매장 확대 시도 역시 실패로 돌아가 대량의 불량 재고 발생과 매출 부진을 초래했다.[25]

1999년 2월, 이와타야는 연결 채무 초과액이 309억 엔에 달하는[26] 심각한 경영 위기에 직면했다. 이에 본점 건물(본관 및 신관)을 츠즈키 학원 그룹에 약 205억 엔에 매각하고[26], 2004년 본점 기능을 Z 사이드와 인접한 NHK 후쿠오카 방송국 부지 빌딩으로 이전하는 계획을 발표했다.[27] 1999년 10월에는 편의점 아이・패밀리마트의 보유 주식을 패밀리마트에 매각하고[18], 2001년 8월에는 슈퍼마켓 써니의 보유 주식을 세이유에 매각하는[26] 등 자율 재건 노력을 기울였지만, 2001년 2월 기준 이와타야 자체의 채무 초과액은 약 57억 엔에 달했다.[17]

2002년, 채권단과 이세탄의 지원을 받아 재건 계획을 수립했다. 이 과정에서 전국은행협회 등이 정리한 "사적 정리에 관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금융기관은 약 280억 엔의 채권을 포기하고[28], 창업 가문인 나카무타 가문은 경영에서 물러났다.[27][28] 이후 이세탄 출신 사장이 취임하면서 이와타야는 이세탄 산하로 들어갔다.[28]

같은 해 8월, 50% 감자와 함께 후쿠오카 은행과 이세탄 등이 약 22억 엔의 제3자 할당 증자를 인수했고[27][29], 9월에는 니시진 이와타야, 히타 이와타야 등 20개 부동산을 도쿄 건물에 119억 엔에 매각했다.[30] 2003년에는 구루메점을 제외한 모든 지점(히타·구마모토·니시진)을 폐쇄하고[13], 2004년에는 구 본점 본관을 폐쇄하고 구 Z 사이드를 본관, NHK 부지에 건설된 빌딩을 신관으로 하는 점포로 본점을 이전했다.[27] 2006년 2월, 이세탄은 주식 공개 매수(TOB)를 통해 이와타야를 자회사로 편입했다.[13]

== 이와타야 미쓰코시 시대 ==

2008년 4월 1일, 모회사인 이세탄미쓰코시가 경영 통합하여 지주 회사 미쓰코시 이세탄 홀딩스가 설립되었다.[8] 이와타야는 이세탄 그룹의 일원으로서 미쓰코시 후쿠오카점과 차별화를 두면서 공존 공영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보였다.

2009년 10월, 미쓰코시 이세탄 홀딩스는 전국 단위의 지역 재편 방침에 따라 산하에 있고 인접한 후쿠오카 미쓰코시와의 경영 통합을 결정하고[8], 주식 교환을 통해 이와타야를 완전 자회사화했다.[31] 이에 따라 10월 7일 후쿠오카 증권거래소 상장이 폐지되었다.[31] 2009년 10월 1일, 흡수 분할에 의해 미쓰코시 이세탄 HD가 이세탄으로부터 이와타야의 주식을 취득했다(동시에 이와타야 관련 경영 관리・영업 지원 부문도 승계). 2009년 10월 15일, 미쓰코시 이세탄 홀딩스가 이와타야와의 사이에 주식 교환을 실시하여 이와타야를 완전 자회사화 하였다. 주식 교환 비율은 이와타야 주식 1주에 대해 미쓰코시 이세탄 홀딩스 주식 0.3주 였다.

2010년 10월 1일, 이와타야가 존속 회사가 되어 후쿠오카 미쓰코시를 흡수하여 '주식회사 이와타야 미쓰코시'가 발족했다.[32] 이 재편에서는 후쿠오카에서 인지도가 높은 이와타야의 브랜드명을 전면에 내세웠다.

2. 1. 메이지 유신과 근대화

메이지 유신 후 무가의 몰락으로 후쿠오카의 수요가 감소하여 상점가가 쇠퇴하자, 1877년에 하카타 코지마치에 지점을 내고 진출했다.[4] 1893년에는 일본 전통 장부 대신 서양식 부기를 도입하고, 1903년에는 외상을 중단하고 정찰 판매로 전환하는 등 근대화를 추진했다.[4] 그 결과 1906년에는 하카타 지역 최대 의류점으로 성장했다.[4]

2. 2. 백화점 개업과 확장

초대 나카무타 키헤이는 대중 사업 진출을 위해 1931년 하카타부 코지야초에 의류 및 일용 잡화를 취급하는 이와타야 마트를 열었으나[5], 규모가 작아 실패했다.[5][6] 이를 통해 대규모 백화점 영업의 필요성을 느껴 부지를 물색했다.[5]

도호 생명 보험 사장 오타 세이조 소유의 고후쿠마치, 규슈 철도 텐진 후쿠오카역(현재 니시테쓰 후쿠오카(텐진)역) 주변[8] 등이 후보지로 거론되었다. 고바야시 이치조가 한큐 백화점의 성공 사례를 들며 터미널 백화점 개설을 권유하여[5] 텐진 지역을 결정했다.[5]

1935년 규슈 최초의 터미널 백화점이자 후쿠오카에서 4번째 백화점 개설 구상을 발표하고, 같은 해 5월 '''주식회사 이와타야'''를 설립했다. 지역 소매상의 반대를 극복하고 1936년 10월 7일 후쿠오카역에 인접한 터미널 백화점 '''이와타야'''를 개점했다.[6][5] 개점 첫날 10만 명이 넘는 쇼핑객을 모았지만,[6][9] 매출은 예상을 밑돌았다.[10][11] 후쿠오카 마쓰야와 가격 경쟁, 폐점 시간 연장 경쟁을 벌였다.[10][12]

1948년 8월 니시테츠 거리, 텐진 시장 등의 대표와 '''도심 연맹(현: 도심회)'''을 결성하여 텐진 발전을 위해 협력했다.[5] 1949년 '''도심회'''로 개칭하고 연말 공동 판매를 시작했다.[5] '''도심회'''는 공동 판촉, 1952년부터 '''토카에비스''' 유치, 1954년부터 보육원 설치 등을 통해 텐진 상점가 발전에 기여하여, 텐진이 규슈 최대의 번화가가 되는 데 크게 공헌했다.[5]

1947년 4월 나카무타 키헤이가 회장에 취임하고, 장남 나카무타 키이치로가 사장에 취임했다.[10]

2. 3. 다점포화와 사업 다각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47년 5월에 오이타현 히타시에 '''히타 이와타야'''를 개점[13]한 것을 시작으로, 1963년 2월에는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의 하마야 백화점과 업무 제휴를 맺었으며[13], 1965년에는 기타큐슈시 도바타구에 '''도바타 이와타야'''[14], 1972년 5월에는 후쿠오카현 구루메시의 니시테쓰 구루메역 앞에 '''구루메 이와타야'''[13], 1973년 10월에는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에 규슈 산업 교통 등이 개설한 버스터미널의 구마모토 교통 센터 한 구역에 '''이와타야 이세탄 쇼핑 센터''' (이세탄, 구마모토 교통 센터와의 합병)[15], 1981년 6월에 '''니시진 이와타야'''[13]를 잇따라 출점하여 급속도로 다점포화를 이루어 규슈 최대의 백화점 체인으로 성장했다[16].

또한, 1963년 8월에는 이토추 상사와의 공동 출자로 서니를 설립하여 슈퍼마켓 경영에 진출하여, 후에 상장 직전까지 성장시켰으며[17], 1987년 4월 1일에는 패밀리마트와 합병하여 동사의 지역 프랜차이즈인 "아이・패밀리마트"를 설립, 편의점 사업에도 진출하여 300점 이상(1999년 8월 말 303개 점포)으로 성장시키는 등, 다른 업태로의 체인 전개에도 성공하여 규슈의 소매업을 대표하는 존재로 성장했다.

2. 4. 경영 위기와 재건

1977년 폐점한 토바타 이와타야[14][19]를 시작으로, 구마모토 이와타야, 니시진 이와타야 등 일부 지점들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13][15][21][22] 특히 니시진 이와타야는 1997년 132.3억 엔이었던 매출이 2000년 76.3억 엔으로 급감하며 심각한 경영난을 겪었다.[22]

1996년, 후쿠오카 미쓰코시 개점에 대항하기 위해 신설한 'Z 사이드'는[23] 초기 투자로 약 350억 엔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27] 매출 부진을 겪으며[24] 과도한 투자의 부담을 안게 되었다.[25][27] 당시 사장 나카무타 겐이치가 추진한 매입 매입 방식의 자율 편집 매장 확대 시도 역시 실패로 돌아가 대량의 불량 재고 발생과 매출 부진을 초래했다.[25]

1999년 2월, 이와타야는 연결 채무 초과액이 309억 엔에 달하는[26] 심각한 경영 위기에 직면했다. 이에 본점 건물(본관 및 신관)을 츠즈키 학원 그룹에 약 205억 엔에 매각하고[26], 2004년 본점 기능을 Z 사이드와 인접한 NHK 후쿠오카 방송국 부지 빌딩으로 이전하는 계획을 발표했다.[27] 1999년 10월에는 편의점 아이・패밀리마트의 보유 주식을 패밀리마트에 매각하고[18], 2001년 8월에는 슈퍼마켓 써니의 보유 주식을 세이유에 매각하는[26] 등 자율 재건 노력을 기울였지만, 2001년 2월 기준 이와타야 자체의 채무 초과액은 약 57억 엔에 달했다.[17]

2002년, 채권단과 이세탄의 지원을 받아 재건 계획을 수립했다. 이 과정에서 전국은행협회 등이 정리한 "사적 정리에 관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금융기관은 약 280억 엔의 채권을 포기하고[28], 창업 가문인 나카무타 가문은 경영에서 물러났다.[27][28] 이후 이세탄 출신 사장이 취임하면서 이와타야는 이세탄 산하로 들어갔다.[28]

같은 해 8월, 50% 감자와 함께 후쿠오카 은행과 이세탄 등이 약 22억 엔의 제3자 할당 증자를 인수했고[27][29], 9월에는 니시진 이와타야, 히타 이와타야 등 20개 부동산을 도쿄 건물에 119억 엔에 매각했다.[30] 2003년에는 구루메점을 제외한 모든 지점(히타·구마모토·니시진)을 폐쇄하고[13], 2004년에는 구 본점 본관을 폐쇄하고 구 Z 사이드를 본관, NHK 부지에 건설된 빌딩을 신관으로 하는 점포로 본점을 이전했다.[27] 2006년 2월, 이세탄은 주식 공개 매수(TOB)를 통해 이와타야를 자회사로 편입했다.[13]

2. 5. 이와타야 미쓰코시 시대

2008년 4월 1일, 모회사인 이세탄미쓰코시가 경영 통합하여 지주 회사 미쓰코시 이세탄 홀딩스가 설립되었다.[8] 이와타야는 이세탄 그룹의 일원으로서 미쓰코시 후쿠오카점과 차별화를 두면서 공존 공영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보였다.

2009년 10월, 미쓰코시 이세탄 홀딩스는 전국 단위의 지역 재편 방침에 따라 산하에 있고 인접한 후쿠오카 미쓰코시와의 경영 통합을 결정하고[8], 주식 교환을 통해 이와타야를 완전 자회사화했다.[31] 이에 따라 10월 7일 후쿠오카 증권거래소 상장이 폐지되었다.[31] 2009년 10월 1일, 흡수 분할에 의해 미쓰코시 이세탄 HD가 이세탄으로부터 이와타야의 주식을 취득했다(동시에 이와타야 관련 경영 관리・영업 지원 부문도 승계). 2009년 10월 15일, 미쓰코시 이세탄 홀딩스가 이와타야와의 사이에 주식 교환을 실시하여 이와타야를 완전 자회사화 하였다. 주식 교환 비율은 이와타야 주식 1주에 대해 미쓰코시 이세탄 홀딩스 주식 0.3주 였다.

2010년 10월 1일, 이와타야가 존속 회사가 되어 후쿠오카 미쓰코시를 흡수하여 '주식회사 이와타야 미쓰코시'가 발족했다.[32] 이 재편에서는 후쿠오카에서 인지도가 높은 이와타야의 브랜드명을 전면에 내세웠다.

3. 점포

3. 1. 현존 점포

이와타야는 1936년10월 7일 후쿠오카역(현재의 니시테츠 후쿠오카(텐진)역)에 인접한 규슈 최초의 터미널 백화점으로 개업하여[5] 텐진을 후쿠오카시 상업의 중심지로 변모시키는 데 기여한 규슈 최대의 백화점이다.[42]

'''이와타야 본점'''은 니시테츠 후쿠오카(텐진)역 북쪽에 본관을 두고 있었지만 2004년에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 이전 전에는 현재보다 더 넓어져 A-SIDE(구 본관, 2010년에 후쿠오카 파르코가 개업)・A-LIVE(구 신관, 2014년에 후쿠오카 파르코 신관으로 개축·개업)・Z-SIDE의 3개 관을 합쳐 약 69,000제곱미터의 매장 면적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 본관은 1996년 9월에 개점한 Z-SIDE이다.[23] 본관은 NTT 도시 개발 주식회사가 소유하고 있으며,[13] 정식 명칭은 NTT-T 빌딩이다.[39] 신관은 후쿠오카 신도심 개발 주식회사가 소유하고 있으며,[13] 정식 명칭은 텐진 키라메키 거리 빌딩이다.[40] 2008년에는 규슈에서 최고 매출액인 약 870억 엔을 기록했다.[42]

과거에는 큐슈 국제 FM (Love FM)이 본관 7층에 본사 및 연주소를 두고 있었다. CROSS FM도 FM 큐슈 시대인 2004년부터 신관 1층에 위성 스튜디오 "텐진 키라메키 거리 스튜디오"를 두고 있었지만, 2010년 2월 18일에 폐쇄되었다. 2011년 3월 30일, 이와타야 본점 본관 3층에 "이와타야 사진관"이 오픈하였다.

'''이와타야 구루메점'''은 1972년 5월에 니시테츠 구루메역 앞에 '''구루메 이와타야'''로 개업하였으며,[13] 2004년까지는 주식회사 구루메 이와타야로 영업했지만, 현재는 본체로 이관되어 이와타야 구루메점이 되었다. 2019년 3월 21일에 신관이 폐점했다.[45] 2024년 7월 현재, 지하 1층 ~ 5층에 이와타야, 6 ~ 8층에 구루메 BJ GARDEN이 입점해 있다. 옥상은 미니 유원지・푸드 코트(SORA-IRO 광장)가 되어 있다.[46]

최근에는 2010년 11월 17일에 히타시의 버스 센터 발착・특제 도시락이 포함된 쇼핑 버스 투어를 처음 실시하는등 과거의 점포망을 활용한 매출 확보에도 힘쓰고 있다[44]

3. 2. 과거 존재했던 점포

기타큐슈 도바타에는 1965년(쇼와 40년)에 '''토바타 이와타야'''가 개업했지만[14], 백화점 공백지를 노린 입지가 실패하여 1977년 (쇼와 52년)에 폐점했다[14]. 같은 해, 폐점 후 건물에 마루쇼쿠 토바타점이 출점했지만[14], 선리브 토바타 패션관으로 업태 변경을 거쳐 철수했다. 건물은 그 후 해체되었고, 부지에는 맨션이 건설되었다.

야메에도 한때 점포를 열었었다. 현재는 인근의 지쿠고시에 살롱(소형 점포)이 있다.

후쿠오카시 사와라 니시진에는 1981년(쇼와 56년) 6월[13] 후쿠오카시 지하철 니시진역에 직결된[55] "니시진 엘 몰"의 핵심 점포 '''니시진 이와타야'''로 개업하여 1997년(헤이세이 9년)에는 매출액 132.3억 엔을 기록했다[22]. 그러나 2003년(헤이세이 15년)2월에 폐점했다. 부지는 히타 이와타야 등과 함께 도쿄 건물에 매각되었고[30], 도쿄 건물이 운영하는 전문점가 "플라리바"로 2003년(헤이세이 15년)4월 25일에 개업했다[56].

히타에는 1947년(쇼와 22년) 5월에 이와타야 최초의 백화점으로서의 지점인 '''히타 이와타야'''로 히타시 중심 시가지의 한쪽에 있던 경편 철도 역 터에 개업[14]。 후에 JR히타역 앞으로 이전하여 히타 시내뿐만 아니라 쿠스군·히타군을 포함한 오이타현 서부 전역에서 집객했지만, 1993년(헤이세이 5년)9월에 '''구루메 이와타야'''에 흡수 합병되어 '''구루메 이와타야 히타점'''이 되었다. 2002년(헤이세이 14년)8월에 폐점후 분양 아파트가 되었다.

구마모토에는 1973년(쇼와 48년)10월[15]에 '''이와타야 이세탄 쇼핑센터'''로서 개업[15]1993년(헤이세이 5년)3월에는 이세탄이 철수하여 단독 운영의 '''구마모토 이와타야'''가 된[15] 후에도 손실이 커져 2000년(헤이세이 12년)2월까지 누적 적자는 100억 엔에 달했다[21]2003년(헤이세이 15년)2월 11일에 폐점했다。

이외에도 가라쓰, 시메, 쓰야자키, 고가, 도이, 숲의 도시에 살롱(소형 점포)이 있었으나, 일부는 폐점되었다.

3. 3. 위성 매장

4. 로고 및 포장지

이와타야 오복점 시대부터 직사각형 안에 "岩(바위 암)" 자를 넣은 "각암인(角岩印)" 문장을 사용했다. 오랫동안 쇼핑객들에게 사랑받아 온 마크였지만, 1981년에 이와타야는 CI를 실시했다. "I"를 모티브로 하여, 중앙에서 세 방향으로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이미지한 "샘 마크"로 변경했다. 특수 촬영 괴수 영화 하늘의 대괴수 라돈의 작중에서는, 괴수 라돈에 의해 이와타야가 파괴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샘 마크"가 마치 라돈을 의장으로 한 것처럼 보여 "자사를 파괴한 괴수를 마크로 사용하고 있는 백화점"이라는 평판을 얻었다.

"각암인(角岩印)"은 텐진 이와타야의 외벽이나 사령, 주권 등 공적인 입장에서의 취급으로 축소되었다. 또한 "IWaTaYa"로 A만 소문자로 표기한 알파벳 로고의 사용도 시작했다.

그러나 2004년, 현재의 본관과 신관의 개업에 맞춰 "각암인(角岩印)"을 부활시킨다. 알파벳 로고는 이세탄과 같은 서체로 변경되었으며, 현재도 포장지나 종이 봉투 등에 표기되어 있다.

포장지는 1959년에 제작된 것을 현재도 사용하고 있다. 오카다 켄조에 의해 디자인된 포장지는 흰색 바탕에 다양한 청색 무늬가 새겨져 있다. 언뜻 보면 어떤 무늬인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이 평소에 사용하는 일용품이나 의류, 건물 등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한때, "Iwataya"의 로고를 표시하지 않은 적이 있어 화제가 되었다.

5. 기타

1956년 특촬 영화 『공중 괴수 라돈』의 클라이맥스에는 후쿠오카시에 습격한 라돈이 텐진의 본점 옥상에 내려앉아, 라돈을 포위한 자위대(작중에서는 "방위대")와의 전투로 인해 텐진 지역이 파괴되는 장면이 있다. 이 일련의 장면을 위해, 1956년 당시 니시테쓰 후쿠오카(텐진)역 주변의 정밀한 미니어처 세트가 제작되었으며, 이와타야 본점도 정교한 미니어처가 제작되었다. 이 『공중 괴수 라돈』에 등장한 것으로, 이와타야는 규슈 지역 이외에서의 인지도를 높이게 되었다.

사자에상의 등장인물 사자에와 마스오는 이와타야의 지하 식당에서 맞선을 본 것으로 되어 있다.

고질라 vs 킹기도라 극 중에서 킹기도라에게 파괴된다.

ROCKERS 극중 "이와타야 같은 엄청 큰 집을 지어줄게"라는 대사가 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영화) 초반과 중반에 이와타야를 모델로 한 것으로 보이는 백화점 (이와이 백화점)이 등장한다.

데뷔 전의 미야자키 요시코가 검은색 비키니 차림으로 포스터 모델을 한 적도 있다.

6. 관련 회사

하마야 백화점은 발행 주식의 27.2%를 보유했던 지분법 연결 자회사였다.[13] 2012년 3월 30일, 이와타야 미쓰코시가 보유 주식 일부를 매각하면서 지분법 적용 회사에서 제외되었다.[57] 현재도 나카무타 일족이 경영하고 있으며, 점포는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에 있다.

주식회사 아이・패밀리마트는 패밀리마트의 지역 프랜차이즈로, 후쿠오카현, 구마모토현, 오이타현, 사가현(일부 제외)에서 전개되었다. 2000년에 주식 교환으로 패밀리마트 본사의 완전 자회사가 된 후, 흡수 합병되었다.

사니는 후쿠오카현 내에 점포를 전개하는 슈퍼마켓으로, 원래 이와타야의 자회사였다. 2001년 세이유에 주식을 양도한 후 흡수 합병되었다. 2024년 8월에 이즈미의 자회사인 유메 마트 구마모토가 사업을 승계하였다.

그랜드 스토어 사이토는 1961년에 설립되어 식품 및 의류 판매를 하였으나 1995년 니시테쓰에 인수되었다. 그 후 타미와 합병하여 니시테쓰 타미로 사명을 변경하였고, 2005년 니시테쓰 스토어에 흡수되었다.

참조

[1] 웹사이트 Iwataya Department Store https://yokanavi.com[...]
[2] 서적 流通会社年鑑 1978年版 日本経済新聞社 1977-10-25
[3] 간행물 第80期(自 平成20年4月1日 - 至 平成21年3月31日)有価証券報告書 2009-06-22
[4] 논문 九州の商人 中牟田家の人々(中) 財界九州社
[5] 논문 商業集積による中心市街地の誕生 第二次世界大戦後復興期における福岡市天神 地区の事例 福岡大学
[6] 논문 九州の商人 中牟田家の人々(下) 財界九州社
[7] 문서 エレデ博多寿屋を経て現在は「呉服町ビジネスセンタービル」が立地。
[8] 뉴스 体質強化で生き残り 西日本新聞社 2009-06-07
[9] 뉴스 新時代を駆ける 速水俊夫氏/足立憲弘氏 新天町創業60周年 岩田屋開業70周年 記念対談 魅力あふれる空間 競争と共生で活力 西日本新聞社 2006-11-15
[10] 서적 福岡天神・都心界50年の歩み 都心界 1999-03
[11] 문서 創業者:中牟田喜兵衛も晩年まで初日の売上額を聞かれると「はーい、5万2525円49銭でしたよ」とつぶやいていたという。
[12] 문서 当初は午後6時まで。その後段階的に延長し午後10時まで営業していた時期もあったが、最終的には午後6時に戻っている。
[13] 간행물 株式会社岩田屋 有価証券報告書 第80期 岩田屋 2009-06-22
[14] 논문 市街地空間の形成過程における中小百貨店の役割 業態店としての百貨店の空間構造を中心として 萩国際大学 論集委員会
[15] 뉴스 ワードBOX 熊本岩田屋 西日本新聞社 2003-02-11
[16] 뉴스 中牟田喜一郎氏 死去 元岩田屋会長、元日本テニス協会長 93歳 西日本新聞社 2008-10-20
[17] 논문 NEWS SCRAMBLE “弟会社”サニー株売却で債務超過解消ねらう岩田屋の決意 財界九州社
[18] 간행물 国内AFC株式交換予定の件 ファミリーマートニュースリリース ファミリーマート 1999-10-15
[19] 간행물 平成22年度 北九州市商圏調査報告書 北九州市
[20] 논문 小売商業調整問題に関する一考察 早稲田大学
[21] 논문 NEWS SCRAMBLE熊本岩田屋撤退!!に 怒りと“恐怖”の九州産交 財界九州社
[22] 간행물 未上場百貨店の売上高、3年前に比べ8割がダウン {{~}}57社中、48社の売上高が減収{{~}} 帝国データバンク
[23] 논문 消費者回遊行動から見た大規模再開発による都心の構造変化に関する実証的研究 日本地域学会
[24] 논문 新博多駅開業と九州新幹線全面開業-福岡市をめぐる小売集積の変遷と消費者の変化を踏まえての展望 ふくおかフィナンシャルグループ
[25] 논문 されど「岩田屋」(2)「あの時歴史は動いた」 BPRとは何だったのか 裏目に出た?先駆的な「買い取り・自主販売」制 財界九州社
[26] 뉴스 岩田屋が280億円の債権放棄要請へ=伊勢丹傘下で再建 朝日新聞社 2002-02-26
[27] 논문 自力再建を断念!創業から250年 岩田屋=中牟田家 ついに力尽きる 会長・社長とも退任し、伊勢丹の傘下入り 財界九州社
[28] 논문 されど「岩田屋」(3)(最終回)「商売の基本に戻る」と訴える佐久間新社長に期待 財界九州社
[29] 논문 NEWS SCRAMBLE 債務超過解消の岩田屋 約60億円投資で攻めに転換 財界九州社
[30] 논문 WEEKLY DIGEST 岩田屋 西新店など不動産件を一括売却 財界九州社
[31] 간행물 株式会社伊勢丹との吸収分割契約締結並びに株式交換契約締結による株式会社岩田屋の完全子会社化に関するお知らせ 三越伊勢丹ホールディングス 2009-06-16
[32] 웹사이트 岩田屋 合併公告 http://www.iwataya.c[...]
[33] 뉴스 福岡・新博多駅ビル:阪急出店正式決定 「新鮮」だけど「なじみ薄い」 毎日新聞社 2006-04-06
[34] 웹사이트 そごう・西武の労組、ストライキ検討へ 大規模百貨店では異例 https://mainichi.jp/[...] 2023-07-03
[35] 웹사이트 岩田屋のあゆみ https://www.imhds.co[...]
[36] 서적 中牟田喜兵衛 https://jahis.law.na[...] 人事興信録 1928
[37] 뉴스 岩田屋三越編(3)栄枯盛衰 https://www.sankei.c[...] 産経新聞 2015-10-28
[38] 간행물 速水俊夫 https://www.fukuoka-[...] ふくおか経済 2006-11
[39] 웹사이트 商業施設物件一覧 NTT都市開発 http://www.nttud.co.[...] 2012-04-28
[40] 웹사이트 産業・経済>大規模小売店舗 福岡市中央区 http://www.city.fuku[...] 2012-08-12
[41] 문서
[42] 뉴스 百貨店店舗別売上ランキング 日本経済新聞社 2008-08-13
[43] 웹사이트 延床面積1万m2以上の大型店(大規模店舗)届出状況 http://www.city.kuru[...] 2012-04-28
[44] 뉴스 久留米岩田屋へバスツアー 17日・日田発着 特製弁当付き 西日本新聞社 2010-11-10
[45] 뉴스 岩田屋久留米の新館閉館 買い物客「駅前が寂しくなる」 https://www.nishinip[...] 西日本新聞me 2019-02-22
[46] 웹사이트 フロアガイド https://www.bj-garde[...] 久留米BJ GARDEN 2024-07-27
[47] 뉴스 福岡に葉っぱの形のモール本格オープン 2千人が行列 朝日新聞社 2011-04-17
[48] 간행물 NEWS SCRAMBLE 日田市が岩田屋跡を購入 トキハインダストリーに賃貸へ 財界九州社
[49] 간행물 WEEKLY DIGEST 岩田屋日田店跡国の補助出ずトキハ誘致困難 財界九州社
[50] 뉴스 ユニーク商業人列伝 第91回(株)県民百貨店(くまもと阪神) 代表取締役社長 丸本文紀氏 産業タイムズ社 2006-05-02
[51] 간행물 中心再開発ビル完成で浮かび上がる明と暗 財界九州社
[52] 간행물 NEWS SCRAMBLE MBOでの再生には本体がNO!! 窮地の熊本岩田屋と九州産交 財界九州社
[53] 웹사이트 県民百貨店閉店のお知らせ http://kenmin-dept.c[...] 県民百貨店 2015-07-18
[54] 뉴스 熊本の「県民百貨店」が閉店へ 40年以上の歴史に幕 https://www.fashions[...] 2015-07-18
[55] 뉴스 福岡・西新エルモールプラリバ:閉店へ 複合施設に建て替え計画 毎日新聞社 2012-03-18
[56] 간행물 WEEKLY DIGEST 西新エルモール「プラリバ」名で新装開業 財界九州社
[57] 문서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