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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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태좌는 조선 숙종, 경종, 영조 시대의 문신이다. 1699년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 어사, 이조정랑 등을 거쳐 강원도관찰사, 대사성, 우의정, 좌의정을 역임했다. 이인좌의 난 진압 후 분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으며, 시호는 충정이다.
1699년(숙종 25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며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숙종, 경종, 영조의 치세 동안 어사, 강원도관찰사, 강화유수, 경기도관찰사 등 내외직을 거쳤으며, 이후 형조판서, 예조판서, 호조판서, 병조판서, 이조판서, 공조판서 등 6조의 판서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2. 생애
1728년에는 우의정으로 승진하였고, 같은 해 이인좌의 난 진압에 기여한 공으로 분무원종공신 1등(奮武原從功臣一等)에 책록되었다. 이듬해인 1729년 좌의정으로 승차하였으며, 이후 판중추부사를 거쳐 1736년 봉조하가 되었다. 사후 충정(忠定)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2. 1. 관직 생활
1699년 (숙종 25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며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초기 관직을 거쳐 어사로 활동하며 탐관오리를 처벌하기도 하였고, 이후 숙종의 신임을 얻어 이조정랑, 대사성, 강원도관찰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경종 대에는 강화유수, 대사헌, 경기도관찰사 등을 지냈으며, 이후 형조판서, 예조판서, 호조판서 등 판서직에 올랐다.
영조 대에 이르러서는 여러 판서직을 두루 거친 뒤 1728년 우의정으로 승진하였고, 이듬해 좌의정에 올랐다. 1728년 이인좌의 난 진압에 기여한 공으로 분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이후 판중추부사를 거쳐 1736년 봉조하가 되어 관직에서 물러났다. 시호는 충정(忠定)이다.
2. 1. 1. 숙종 시대
1699년 (숙종 25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검열, 사서, 지평, 정언, 문학 등의 초기 관직을 거쳤다. 어사로 파견되어 탐관오리들을 적발하고 처벌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이후 숙종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여러 중요한 직책을 역임하였다. 사서, 부교리, 이조정랑, 검토관, 부수찬, 교리, 겸문학, 부응교, 수찬 등을 거쳐 이조정랑을 다시 맡았고, 부수찬, 사인, 부응교, 겸필선, 집의, 응교를 차례로 지냈다.
그 뒤 강원도관찰사로 임명되어 지방 행정을 살폈으며, 다시 중앙 정계로 복귀하여 이조참의, 대사성, 대사간, 승지 등을 거치며 왕을 보좌하는 대독관의 임무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숙종 말년에는 다시 대사성과 이조참의를 역임하였다.
2. 1. 2. 경종 시대
경종이 즉위한 후에는 강화유수를 지냈다. 이후 대사헌과 공조참판을 거쳤으며, 경기도관찰사로 임명되어 지방의 민정을 살폈다. 중앙으로 돌아와서는 동지의금부사와 병조참판을 역임한 뒤 형조판서로 승진하였다. 이어서 예조판서를 지내면서 세자를 보좌하는 좌빈객을 겸하였고, 이후 호조판서로 자리를 옮겨 약방제조의 역할도 함께 맡았다.
2. 1. 3. 영조 시대
영조 즉위 후 예조판서와 호조판서를 지내며 지경연사, 동지경연사, 도감제조 등을 겸임하였다. 이후 병조판서, 호조판서, 이조판서, 수어사, 공조판서 등 주요 판서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728년에는 우의정으로 승진하였다. 같은 해 이인좌의 난 진압 직후 분무원종공신 1등(奮武原從功臣一等)에 책록되었다. 이듬해인 1729년에는 좌의정으로 승차하였고, 이후 판중추부사를 거쳐 1736년 봉조하가 되어 관직에서 물러났다. 시호는 충정(忠定)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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