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임광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임광은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1609년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계축옥사 진행을 보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인조반정 이후 관직에 나아가 중앙과 지방의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1636년 조선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다. 1643년 소현세자를 수행하여 청나라에 갔다가 1644년 그곳에서 사망했으며, 사후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579년 출생 - 모리 히데모토
    모리 히데모토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와 에도 시대의 다이묘이자 조후번 초대 번주로, 세키가하라 전투 후 막부에 귀순하여 조슈번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도쿠가와 막부의 신임을 얻었으나, 모리 히데나리와의 갈등을 겪었고 에도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평가는 다양하다.
  • 1579년 출생 - 존 플레처
    존 플레처는 엘리자베스 1세와 제임스 1세 시대에 활동한 잉글랜드 극작가로, 프랜시스 보먼트와의 협업, 킹스 맨 극단에서의 활동, 그리고 셰익스피어와의 공동 집필 등으로 풍속극과 희비극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644년 사망 - 숭정제
    숭정제는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로, 내우외환 속에서 명나라 멸망의 책임을 지고 자결했으며, 그의 죽음은 명나라 멸망을 상징하고 청나라의 중국 지배의 계기가 되었다.
  • 1644년 사망 - 도이 도시카쓰
    도이 도시카쓰는 에도 막부 초기에 도쿠가와 이에야스, 히데타다, 이에미쓰 3대 쇼군을 섬기며 막부의 정치, 행정, 재정 등 여러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막번 체제 확립과 외교, 통화 제도 개혁에 기여했으나, 후반에는 정치적 영향력이 약화된 인물이다.
  • 풍천 임씨 - 임휘윤
    임휘윤은 1944년 전라북도 김제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검사, 검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변호사로 활동하다 2021년에 사망했다.
  • 풍천 임씨 - 임태희
    임태희는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후 국회의원, 고용노동부 장관, 대통령실장, 한경대학교 총장을 거쳐 현재 경기도교육감으로 재직 중인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교육자이다.
임광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한글 이름임광
한자 이름任珖
로마자 표기Im Gwang
자정
시호충간
생애
출생일1579년
사망일1644년
사망 원인병사
학력
과거 급제1624년 별시 문과
가족
부친익신 (사헌부 감찰)
경력
직업문신
주요 활동조선 시대 문신

2. 생애

1609년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계축옥사의 진행 과정을 보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인조반정(1623년) 후 순릉 참봉을 거쳐 1624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중앙과 지방의 주요 관직을 두루 거치면서 각지의 행정을 바로잡았다. 1636년 통신사가 되어 일본에 다녀왔으며 이후 다시 중앙과 지방의 요직을 두루 지냈다. 1643년 좌부빈객(左副賓客)이 되어 우부빈객(右副賓客) 김육과 함께 선양에 볼모로 억류되었다가 돌아오게 된 소현세자를 수행하기 위하여 청나라에 갔다가 1644년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2. 1. 초기 생애

1609년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계축옥사의 진행 과정을 보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인조반정(1623년) 후 순릉 참봉을 거쳐 1624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중앙과 지방의 주요 관직을 두루 거치면서 각지의 행정을 바로잡았다. 1636년 통신사가 되어 일본에 다녀왔으며 이후 다시 중앙과 지방의 요직을 두루 지냈다.

2. 2. 관직 생활

1609년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계축옥사의 진행 과정을 보고 고향으로 내려갔다.[1]

인조반정(1623년) 후 순릉 참봉을 거쳐 1624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중앙과 지방의 주요 관직을 두루 거치면서 각지의 행정을 바로잡았다.[1] 1636년 조선 통신사가 되어 일본에 다녀왔으며[1] 이후 다시 중앙과 지방의 요직을 두루 지냈다.[1] 1643년 좌부빈객(左副賓客)이 되어 우부빈객(右副賓客) 김육과 함께 선양에 볼모로 억류되었다가 돌아오게 된 소현세자를 수행하기 위하여 청나라에 갔다가 1644년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1] 좌의정에 추증되었다.[1]

2. 3. 조선 통신사 정사

1636년 통신사 정사(正使)가 되어 일본에 다녀왔다.[2]

2. 3. 1. 일본에서의 활동

1636년, 인조는 임광을 수장으로 하는 사절단을 일본에 파견했다.[2] 이 외교 사절단은 무역을 위한 정치적 기반을 마련하는 통로로서 일본과 조선 양측에 이익이 되었다.[3] 이 사절단은 조선 조정에 의해 명확히 "통신사"로 규정되었으며, 사절단의 파견은 관계가 "정상화"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4]

일본 역법에 따르면, 이 사절단은 간에이 13년(1636년) 12월에 일본에 도착했다.[2] 에도의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 조정에 파견된 이 사절단은 닛코에 있는 초대 쇼군의 능묘를 방문하는 순례도 포함했다.[5] 쇼군과 수행원들의 성대한 행렬은 일본 역법에 따라 간에이 14년(1637년) 4월에 있었으며, 여기에는 조선 사신과 그 수행원도 포함되었다고 기록되었다.[2]

2. 4. 소현세자 봉영

1643년 좌부빈객(左副賓客)이 되어 우부빈객(右副賓客) 김육과 함께 선양에 볼모로 억류되었다가 돌아오게 된 소현세자를 수행하기 위하여 청나라에 갔다가 1644년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2. 5. 사망과 추증

1643년 좌부빈객(左副賓客)이 되어 우부빈객(右副賓客) 김육과 함께 선양에 볼모로 억류되었다가 돌아오게 된 소현세자(昭顯世子)를 수행하기 위하여 청나라에 갔다가 1644년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후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3. 서양에서의 인식

서양에서는 조선에 대한 초기의 출판물이 광범위하지는 않았지만, 『삼국통람도설』(1832년 파리 출판)[6]과 『일본왕대일람(Nihon ōdai ichiran)』(1834년 파리 출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선의 외교 관계는 1834년의 저서에서 명시적으로 언급되었다.[2]

3. 1. 관련 서적

임광의 역사적 중요성은 1834년 동방번역기금(Oriental Translation Fund)에서 발행한 널리 배포된 역사서에 그의 임무와 이름이 구체적으로 언급되면서 확인되었다.[2]

서양에서, 조선에 대한 초기의 출판물은 광범위하지 않지만, 『삼국통람도설』(1832년 파리 출판)[6]과 『일본왕대일람(Nihon ōdai ichiran)』(1834년 파리 출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선의 외교 관계는 1834년의 저서에서 명시적으로 언급되었다.

참조

[1] 서적 State and Diplomacy in Early Modern Japan: Asia in the Development of the Tokugawa Bakufu 1991
[2] 서적 Annales des empereurs du japon 1834
[3] 간행물 Foreign Affairs and Frontiers in Early Modern Japan: A Historiographical Essay Early Modern Japan 2002
[4] 서적 Frontier contact between Chosŏn Korea and Tokugawa Japan https://books.google[...] 2003
[5] 간행물
[6] 웹사이트 Accidental acquisitions: The nineteenth-century Korean collections in the National Museum of Ethnology, Part 1 http://www.rmv.nl/pu[...] 2012-06-22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