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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랑포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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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임랑포왜성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임랑리에 위치한 포왜성이다. 방모산 동남쪽 산정에 본성이 있으며, 남쪽 임랑천 쪽으로 돌출한 구릉에 외곽부가 있다. 2001년 부산광역시립박물관이 외곽부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건물지, 수혈 유구 등 유구를 확인했다. 산성인 중심부 성과 평지성인 거관부로 구성되며, 중심부에는 천수대와 노대가 남아 있다. 철도 및 도로 건설 등으로 인해 대부분 파괴되었으며, 외곽부 일부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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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랑포왜성
기본 정보
임랑포왜성 터
임랑포왜성 터
위치대한민국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임랑리 산101
좌표35°15′34″N 129°15′55″E
역사
축성 시기임진왜란 중
축성 주체왜군
관련 인물모리 히데모토(毛利秀元)
상세 정보
지정 종류부산광역시 기념물 제26호
면적30,271㎡
일본어 명칭
일본어せいぐわん城 (세이구완죠)

2. 위치

임랑포왜성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임랑리에 있는 방모산 동남쪽 말단의 산정 해발 약 70m 산상에 본성이 위치한다. 남쪽 동해 남부선 철길 건너 임랑천 쪽으로 돌출한 구릉에 외곽부의 성이 있다.

3. 역사

임랑포왜성은 동해선 철도 서북쪽의 방모산(해발 70m)에 있어 고도는 높지 않지만, 임랑포 앞바다는 물론 멀리 쓰시마섬까지 조망된다. 성의 규모는 다른 왜성에 비하여 비교적 작은 편이며, 일본에는 '''세이관성'''(せいぐわん城)으로 알려져 있다. 모리 요시나리(毛利吉成), 시마즈 타다토요(島津忠豊), 이토 스케타카(伊東祐兵), 다카하시 모토타네(高橋元種), 아키즈키 다네나가(秋月種長) 등 5명이 성을 구축하고 수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헌비고(文獻備考)』[1]에는 “동쪽 45리 해변에 임랑포성과 왜성이 있는데 두 성은 일본인이 쌓은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임랑포성과 왜성은 중심부와 외곽부의 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4. 발굴 조사 경위

2001년 기장군 장안읍 효암리 주민의 이주 단지 조성[2]과 관련하여 부산광역시립박물관이 중심부의 남쪽 동해선 철길 건너 임랑천 쪽으로 돌출한 외곽부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이때 3개의 곡륜(曲輪)내 소규모의 일정한 공간이 확인되었으며, 굴립주 건물지(掘立柱建物址)[3] 3동과 수혈 유구(竪穴遺構)[4] 4기, 구상 유구(溝狀遺構) 고랑 상의 구조물 2기, 용도 미상의 주혈군(柱穴群) 기둥을 꽂았던 여러 개의 구멍 3개소 등이 확인되었다.

5. 형태

중심부의 산성과 외곽부의 평지성인 거관부(居館部)가 별개로 독립되어 있다.

6. 현황

중심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본환(本丸)에는 북동쪽에 천수대라 불리는, 본성 지휘소로 추정되는 노대(櫓臺)[5]가 남아 있다. 이 노대는 높이 5m, 가로 세로 10m 크기이며, 남서쪽에 입구가 있고 성 내부는 평평한 대지를 이루고 있다. 중심부 남쪽의 낮은 구릉에는 외곽부가 있는데, 정상부는 평탄면을 이루며 외곽에 1~2단의 석축열이 확인된다. 구릉 끝과 서쪽의 낮은 지역은 모두 암반 지대로, 강과 함께 자연적인 방어선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철도, 도로 건설, 장안어린이집 신축,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효암리 이주 단지 조성 등으로 인해 대부분 파괴되었고, 외곽부 일부만 남아 있다.

7. 관련 인물

모리 요시나리(毛利吉成), 시마즈 다다토요(島津忠豊), 이토 스케타카(伊東祐兵), 다카하시 모토타네(高橋元種), 아키즈키 다네나가(秋月種長) 등 5명이 임랑포왜성을 구축하고 수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

참조

[1] 서적 倭城の硏究 3 城郭談話會 1999
[2] 간행물 기장 효암 이주 단지 조성 사업 구역 내 기장 임랑리 유적 중앙문화재연구원 2001
[3] 문서 땅을 판 뒤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가구(架構)를 얹은 건물
[4] 문서 구덩이를 파내어 만든 구조물
[5] 문서 평시에는 무기 등을 보관하고 전시(戰時)에는 조총이나 화살을 발사하는 장소
[6] 문서 원래는 갈마봉성이였으나 임진왜란에 석축을 헐어낸 후 일본식으로 재구축 되었기 때문에 현재는 성북왜성 영토로 변했다.
[7] 웹사이트 당감동 성지 2차 발굴조사 https://museum.busan[...] 부산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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