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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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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원용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순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영의정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암행어사 제도를 정비하고 삼정의 총재관을 역임하며 국가 재정 안정에 기여했다. 정조에서 고종까지 5명의 임금을 거치며 관료 생활을 했으며, 말년에는 흥선대원군과 함께 경복궁 중건에 참여했다. 1802년부터 1873년까지의 일기를 기록한 경산일록을 남겼으며, 그의 묘는 경기도 광명시에 위치해 있다. 중요민속문화재 제13호인 경산 정원용 의대가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 생애

정원용은 조선 후기 영의정을 지냈으며, 암행어사 제도를 바로잡고 삼정의 총재관이 되어 국가 재정을 바로잡는 데 노력했다.

2. 1. 관직 생활

순조 때 문과에 급제해 가주서, 부교리, 시독관, 문례관, 직각, 부응교, 검교 직각, 성균관대사성, 이조참의, 사간원 대사간, 좌부승지, 호서외유사, 우승지, 영변부사, 관서외유사, 전라도관찰사, 대사간, 강원도관찰사, 이조참판, 좌부빈객, 내각직제학, 회령부사, 대사헌, 형조판서, 공조판서, 수원유수, 평안도관찰사, 병조판서, 원임제학, 예조판서, 이조판서, 판부사,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을 지냈다. 영의정 재직 말년 시절 그는 흥선대원군과 야합하여 경복궁 중건에 앞장을 서기도 하였다.

2. 2. 경산일록

1802년 과거에 급제한 해부터 1873년 죽는 날까지 경산일록(經山日綠)이라는 일기를 남겼다. 햇수로 약 71년 동안이며, 일기를 쓰기 이전 어린 시절 일도 회상을 통해 기록해 두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생애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정원용의 삶 동안 조선의 임금은 정조에서 고종까지 5명에 이르렀으며, 본인이 관료이기 때문에 조선 정치사에 대한 기록도 볼 수 있다. 원문은 한문으로 쓰여 있으며 모두 17권에 달한다.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인 허경진에 의해 현대 한국어로 번역되어 현재 전 6권으로 출간되어 있다.

2. 3. 흥선대원군과의 관계

영의정 재직 말년 시절 흥선대원군과 야합하여 경복궁 중건에 앞장을 섰다.

3. 묘소

정원용의 묘는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다. 부인 강릉 김씨와 합장했으며, 묘비의 비문은 이조판서를 지낸 맏아들 기세가 짓고 글씨는 우의정을 지낸 손자 범조가 썼다. 봉분 앞에는 상석, 향로석, 망주석, 묘갈 등이 갖추어져 있으며, 호석은 최근에 재단장하였다.

4. 가족 관계

관계이름
할아버지정계순(鄭啓淳)
아버지정동만(鄭東晩)
어머니용인 이씨, 이숭우의 딸
부인강릉 김씨, 김계락의 딸
장남정기세(鄭基世)
자부경주 김씨
장남의 아들정범조(鄭範朝)
장남의 며느리풍양 조씨
차남정기년(鄭基年)
차남의 아들정은조(鄭誾朝)
삼남정기명(鄭基命)


5. 관련 문화재

경산 정원용 의대는 중요민속문화재 제13호로,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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