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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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 하비는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었다. 선수 시절에는 울버햄튼 원더러스, 본머스 앤 보스콤 애슬레틱, 브래드포드 시티, 뉴캐슬 유나이티드 등에서 활약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애버딘과 던디 유나이티드에서 게스트 선수로 뛰었다.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는 주장으로 FA컵 2회 우승을 이끌었다. 감독으로서는 배로, 워킹턴을 거쳐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지휘하며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우승을 달성했다. 2014년에는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 기념 명판이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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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하비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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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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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조지프 하비 |
출생일 | 1918년 6월 11일 |
출생지 | 잉글랜드 동커스터 에들링턴 |
사망일 | 1989년 2월 24일 (70세) |
포지션 | 미드필더 (하프백) |
선수 경력 | |
유소년 클럽 | 에들링턴 레인저스 |
프로 클럽 | 1936: 울버햄프턴 원더러스 1936–1938: 본머스 & 보스컴 애슬레틱 1939–1945: 브래드퍼드 시티 1945–1953: 뉴캐슬 유나이티드 |
클럽 출장 (골) | 울버햄프턴 원더러스: 0 (0) 본머스 & 보스컴 애슬레틱: 37 (0) 브래드퍼드 시티: 53 (0) 뉴캐슬 유나이티드: 224 (12) |
총 출장 (골) | 314 (12) |
국가대표 경력 | 해당 없음 |
감독 경력 | |
감독 클럽 | 1954–1955: 크룩 타운 1955–1956: 배로우 1956–1958: 워킹턴 1962–1975: 뉴캐슬 유나이티드 |
2. 선수 경력
하비는 1936년 11월 울버햄튼 원더러스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했지만, 출전 기록은 없었다. 이후 본머스로 이적하여 1937-38 시즌에 37경기에 출전했다.[1] 1938년 브래드포드 시티와 계약한 후, 제2차 세계 대전 발발로 영국 왕립 포병대에 입대하여 영국 육군 체력 훈련대에서 상사로 복무했다.[1] 전쟁 중에는 애버딘과 던디 유나이티드에서 게스트 선수로 뛰기도 했다.[1]
전쟁이 끝난 후, 1945년 10월 20일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브래드포드에 4500GBP를 지불하고 하비를 영입했다.[1] 뉴캐슬에서 하비는 반즐리와의 데뷔전 이후 주장을 맡았고, 포워드에서 하프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제대 후, 그는 중사 복무 경력 덕분에 선수들 사이에서 권위 있는 인물로 존경받았다. 1946-47 시즌에는 팀 숙소 문제로 동료 렌 섀클턴과 파업을 벌여 징계를 받기도 했고, 1952 FA컵 결승전 불법 티켓 판매에 연루되기도 했지만 기소되지는 않았다.[1]
1947-48 시즌 1부 리그 승격에 기여했고, 1951년과 1952년에는 팀을 이끌고 FA컵 2연패를 달성했다.[1] 1953년 5월 1일, 애스턴 빌라전 승리를 마지막으로 34세에 은퇴했다.[1] 은퇴 후에는 월터 윈터보텀의 코칭 세션에 참석했고, 2년 동안 뉴캐슬 트레이너로 일하며 팀의 세 번째 FA컵 우승을 지켜보았다.[1]
2. 1. 초기 경력
하비는 1936년 11월 울버햄튼 원더러스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울브스에서는 출전 기록이 없었고, 본머스 앤 보스콤 애슬레틱으로 이적하여 1937-38 시즌에 37경기에 출전했다.[1] 이후 본머스에서 방출되어 1938년 브래드포드 시티와 계약했다.[1]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하비는 영국 왕립 포병대에 입대하여 영국 육군 체력 훈련대에서 상사로 복무했다.[1] 전쟁 중에는 애버딘과 던디 유나이티드에서 게스트 선수로 출전했다.[1] 1943-44 시즌에 브래드포드 시티에서 28경기에 출전했고, 다음 시즌에는 25경기에 출전했다.[1] 브래드포드에서의 마지막 시즌 활약은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눈에 띄었고, 1945년 10월 20일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브래드포드에 그의 영입을 위해 4500GBP를 지불했다.[1]
2. 2.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하비는 영국 왕립 포병대에 입대하여 영국 육군 체력 훈련대에서 상사로 복무했다.[1] 전쟁 중에는 애버딘과 던디 유나이티드에서 게스트 선수로 출전했다.[1] 1943-44 시즌에 하비는 브래드포드 시티에서 28경기에 출전했고, 다음 시즌에는 25경기에 출전했다.[1]2. 3. 뉴캐슬 유나이티드
그는 뉴캐슬의 젊은 선수단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았고, 반즐리와의 인상적인 데뷔전 이후 팀의 주장을 맡게 되었다. 뉴캐슬에서 뛰기 전, 하비는 포워드로 뛰었지만, 뉴캐슬에서는 하프백 위치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클럽에서의 첫 시즌이 끝나갈 무렵, 그는 제대했다. 그는 중사로 복무한 덕분에 뉴캐슬 선수들 사이에서 권위 있는 인물이었으며, 선수들은 그를 존경했다. 그러나 클럽에서의 그의 시간은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946-47 시즌에는 팀이 제공한 숙소의 질에 반대하여 동료 렌 섀클턴과 함께 파업을 벌인 후 클럽 이사들로부터 징계를 받았다.[1] 두 선수 모두 그들의 행동에 대해 공개 사과를 해야 했다. 하비는 또한 1952 FA컵 결승전의 불법적인 티켓 판매에 관여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로 인해 기소되지는 않았다.[1]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는 경기장에서의 태도와 활약으로 인해 팬들 사이에서 여전히 인기 있는 선수였다. 1947-48 시즌에는 1부 리그 승격을 이끈 팀의 중요한 일원이었으며, 시즌 전체에서 단 5경기에만 결장했다.[1]
선수로서 그는 날씬하고 강인했으며, 경합이 가장 치열할 때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거칠고 타협하지 않는 윙 하프였다... 왕립 포병대에서 중사로 복무한 조 하비는 그 후 유나이티드의 경기장에서 지휘하며,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경기장 전체에 지시를 내리는 원동력이 되었다.|선수로서 그는 날씬하고 강인했으며, 경합이 가장 치열할 때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거칠고 타협하지 않는 윙 하프였다... 왕립 포병대에서 중사로 복무한 조 하비는 그 후 유나이티드의 경기장에서 지휘하며,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경기장 전체에 지시를 내리는 원동력이 되었다.영어[1]
그는 1951년과 1952년에 팀을 이끌고 두 번의 연속적인 FA컵 우승을 차지했다.[1] 1953년 5월 1일, 34세의 나이로 선수 생활에서 은퇴했지만, 여전히 1군 선수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의 마지막 경기는 애스턴 빌라를 상대로 1-0으로 승리한 경기였다.[1] 선수 은퇴 직후 월터 윈터보텀이 주최한 코칭 세션에 참석하기 시작했다.[1] 이 세션들은 그가 2년 동안 뉴캐슬에서 트레이너로 계속 일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클럽이 5년 만에 세 번째 FA컵 우승을 하는 것을 경기장 밖에서 지켜보았다.[1]
3. 감독 경력
조 하비는 선수 은퇴 후 코칭 스태프에 합류하여, 1954-55 시즌 FA컵 우승에 기여했다.[2] 이후 감독으로서 배로와 워킹턴을 맡았다. 1962년 뉴캐슬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부임하여 1968-69 시즌 페어스컵 우승을 이끌었다.[3] 1973-74 시즌에는 FA컵 결승에 진출했으나, 리버풀에 패배하여 준우승에 머물렀다.
존 튜더, 테리 맥더모트, 미키 번스, 토미 크레이그 등을 영입하고, 앨런 케네디, 어빙 내트래스 등 유소년 팀 선수들을 발굴하는 등 선수 영입 및 육성에 능했다. 1974-75 시즌 후 팬들의 압력으로 사임했으나, 1980년 잠시 감독 대행을 맡기도 했다. 이후 아서 콕스를 감독으로 추천했고, 콕스는 케빈 키건을 영입하여 뉴캐슬을 1부 리그로 복귀시켰다.
하비는 전술적인 면에서는 약점이 있었지만, 알렉스 퍼거슨과 같은 수준의 뛰어난 선수 관리 능력을 갖춘 감독으로 묘사된다.[4] 2014년 4월,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 조 하비 기념 명판이 설치되었다.[4]
3. 1. 초기 감독 경력
조 하비는 최고 수준의 감독으로 발돋움하기를 바라며, 어려움을 겪고 있던 배로의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선수단이 단 5명으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팀을 리그에 잔류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과적으로 하비는 1955-56 시즌에 골득실차로 재선거를 신청해야 했다. 그는 곧 배로를 떠나 1956년 워킹턴의 감독으로 임명되었으며, 초반에는 고전했지만 하비의 영향력으로 워킹턴은 승격에 근접하게 되었다. 1958년,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공석이 된 감독 자리에 지원했지만 찰리 미튼에게 밀려 탈락했다. 1962년에 다시 자리가 나오자 하비는 지원하여 성공적으로 감독 자리에 올랐다.3. 2. 배로 AFC
조 하비는 최고 수준의 경영에 진출하기를 바라며, 어려움을 겪고 있던 배로의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선수단이 단 5명으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팀을 리그에 잔류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과적으로 하비는 1955-56 시즌에 골득실차로 재선거를 신청해야 했다.3. 3. 워킹턴 AFC
하비는 1956년 워킹턴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초반에는 고전했지만 하비의 영향력으로 워킹턴은 승격에 근접하게 되었다.[4] 1958년, 그는 자신이 응원하는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공석이 된 감독 자리에 지원했지만 찰리 미튼에게 밀려 탈락했다.[4]3. 4. 뉴캐슬 유나이티드 감독
조 하비는 1962년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 부임했다.[3] 이전에는 배로와 워킹턴 감독을 역임했으며, 1958년 뉴캐슬 감독직에 지원했으나 찰리 미튼에게 밀려 탈락한 경험이 있다.
하비는 부임 후 팀을 재건하여 1968-69 시즌 페어스컵 우승을 이끌었다.[3] 1973-74 시즌에는 FA컵 결승에 진출했으나 리버풀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4]
그는 존 튜더, 테리 맥더모트, 미키 번스, 토미 크레이그 등을 영입하고, 앨런 케네디, 어빙 내트래스 등 유소년 팀 선수들을 발굴하는 등 선수 영입 및 육성에 능력을 보였다.
1974-75 시즌이 끝난 후 팬들의 압력으로 사임했으나, 1980년 잠시 감독 대행을 맡아 팀을 이끌기도 했다. 이후 아서 콕스를 감독으로 추천했고, 콕스는 케빈 키건을 영입하여 뉴캐슬을 1부 리그로 복귀시켰다.
하비는 전술적인 면에서는 약점이 있었지만, 알렉스 퍼거슨과 같은 수준의 뛰어난 선수 관리 능력을 갖춘 감독으로 묘사된다.
2014년 4월,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 조 하비 기념 명판이 설치되었다.[4]
3. 4. 1.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우승
하비는 1968-69 시즌에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이끌고 페어스컵에서 우승했다.[3]3. 4. 2. FA컵 결승 진출
조 하비는 1973-74 시즌에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이끌고 FA컵 결승에 진출했다. 비록 리그에서는 15위로 부진했지만, FA컵에서는 헨든, 스컨소프 유나이티드, 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 노팅엄 포레스트, 번리를 차례로 꺾고 결승에 올랐다.[4] 특히 6라운드 노팅엄 포레스트와의 경기에서는 팬 난입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재경기 끝에 승리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4] 준결승에서는 번리를 상대로 말콤 맥도날드가 두 골을 넣어 2-0 승리를 이끌었다.[4]그러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리버풀에 0-3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4] 이 경기에서 뉴캐슬은 선수단 트랙수트 상의가 도착하지 않아 보라색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서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4] 리버풀의 케빈 키건은 이 경기에서 두 골을 기록했다.[4]
3. 4. 3. 선수 영입 및 육성
하비는 선수 은퇴 후 코칭 스태프에 합류하여, 1954-55 시즌 FA컵 우승에 기여했다.[2] 1972-1973 시즌 뉴캐슬의 유소년 시스템을 활용하여 앨런 케네디, 어빙 내트래스를 기용했다. 뉴캐슬은 리그 8위로 UEFA컵 진출에는 실패했다. 토니 그린의 은퇴 보상금으로 테리 맥더모트를 영입했다.1973-74 시즌, 뉴캐슬은 리그 15위, 리그컵 3라운드에서 탈락했지만, FA컵 결승에 진출했다. 6라운드 노팅엄 포레스트전에서는 팬 난입으로 경기 중단 후 재개되는 우여곡절 끝에 4-3으로 승리했다. 결승전에서는 리버풀에게 3-0으로 패배했다.[4] 하비는 이 경기에서 인상적이었던 번리 수비수 제프 널티를 다음 시즌 영입했다.
하비는 선수 영입에 뛰어난 안목을 보였다. 1971년 셰필드 유나이티드에서 존 튜더를 헐값에 영입, 말콤 맥도날드의 공격 파트너로 성공시켰다. 1974-75 시즌에는 미키 번스와 클럽 최고 이적료로 토미 크레이그를 영입했다. 전술적인 면에서는 약점이 있었지만, 알렉스 퍼거슨과 같은 수준의 선수 관리 능력을 갖춘 감독으로 묘사되었다.
3. 4. 4. 사임과 복귀
하비는 선수 은퇴 후 코칭 스태프에 합류했다. 그는 ''매그파이즈''가 1954-55년에 다시 FA컵에서 우승했을 때도 백룸 스태프였다.[2]1975년 시즌이 끝난 후 팬들의 압력으로 인해 하비는 사임했다. 1980년 8월,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2부 리그에 3년째 머물고 빌 맥게리가 해고된 후 며칠 동안 감독으로 복귀하여 팀을 도왔다. 하비는 팀을 이끌었고, 두 번의 승리와 한 번의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후 그는 케빈 키건을 영입하여 뉴캐슬을 다시 상위 리그로 복귀시키는 데 성공한 그의 친구 아서 콕스를 감독으로 임명했다. 하비는 전술적인 면에서는 약점이 있었지만, 알렉스 퍼거슨과 같은 수준의 뛰어난 선수 관리 능력을 갖춘 감독으로 묘사되었다.
4. 업적
조 하비는 선수와 감독으로서 여러 대회에서 우승하는 업적을 남겼다. 선수 시절에는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에서 FA컵 우승(1950-51, 1951-52[5])과 풋볼 리그 2부 리그 승격(1947-48[2])을 경험했다. 감독으로서는 크룩 타운의 FA 아마추어컵 우승(1953-54[6])을 이끌었고,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 풋볼 리그 2부 (1964-65[7]),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1968-69[2]), 텍사코 컵 (1973-74, 1974-75[2]), 앵글로-이탈리안 컵 (1973[2]) 우승을 이끌었다.
4. 1. 선수
- FA컵: 1950-51, 1951-52[5]
- 풋볼 리그 2부 리그 승격: 1947-48[2]
4. 2. 감독
구단 | 대회 | 우승 |
---|---|---|
크룩 타운 | FA 아마추어컵 | 1953-54[6] |
뉴캐슬 유나이티드 | 풋볼 리그 2부 | 1964-65[7] |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 1968-69[2] | |
텍사코 컵 | 1973-74, 1974-75[2] | |
앵글로-이탈리안 컵 | 1973[2] |
참조
[1]
웹사이트
Joe Harvey : Biography
http://www.spartacus[...]
Spartacus Educational
2014-03-29
[2]
뉴스
Joe Harvey
https://www.nufc.co.[...]
Newcastle United FC
2023-05-24
[3]
웹사이트
Joe Harvey (1962-75)
http://www.nufc.prem[...]
Newcastle United FC
2013-01-04
[4]
웹사이트
Joe Harvey
http://geocities.com[...]
Newcastle United Hall of Fame
2013-01-04
[5]
뉴스
Joe Harvey (1945/46 to 1953/44)
https://nufc-history[...]
NUFC History
2023-05-24
[6]
뉴스
Three Matches, 330 minutes, and Only One Goal To Separate Them: The Mammoth Amateur Cup Final of 1954 That Saw Almost 200,000 Through the Turnstiles
https://www.inlovewi[...]
2020-09-12
[7]
뉴스
Newcastle United's most memorable managers: Joe Harvey was Magpies' best leader of men
https://www.chronicl[...]
2015-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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