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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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제 시드는 포르투갈의 작곡가이자 가수로, 1942년 샤무스카에서 태어났다. 1956년 Os Babies라는 커버 밴드를 결성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으며, 코임브라 대학교 재학 중에는 Conjunto Orfeão, Trio Los Dos, Os Claves 등의 밴드에서 활동했다. 이후 국립체육연구소(INEF)를 중퇴하고 포르투갈 공군 장교로 복무하며 Quarteto 1111 밴드에서 활동, 심포닉 록을 시도했다. 1970년대에는 솔로 활동과 함께 그린 윈도우즈라는 팝 밴드를 결성하여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참가했으며, OTI 페스티벌에서도 수상했다. 2015년 앨범 "Menino Prodígio"로 페드루 오소리우 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에는 라틴 그래미 평생 공로상을 받았다. 자유주의적 군주주의자로 포르투갈 군주주의를 옹호하며, 2013년 동티모르 출신 언론인 가브리엘라 카라스칼랑과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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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시드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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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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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조제 알바누 시드 드 페레이라 타바레스 |
출생일 | 1942년 2월 4일 |
출생지 | 샤무스카, 포르투갈 |
직업 | 가수, 작곡가 |
악기 | 피아노, 키보드 |
활동 시기 | 1956년–현재 |
레이블 | |
관련 활동 |
2. 초기 생애 및 음악 활동 시작
조제 시드는 샤무스카에서 태어나 6세 때 가족과 함께 아나디아 자치시로 이사했다.[2][3] 그의 음악 경력은 1956년, 14세의 나이에 커버 밴드인 ''Os Babies''("아기들")를 결성하면서 시작되었다.[2]
1960년 코임브라 대학교 법학대학에 입학한 시드는 학업 중에도 음악 활동을 계속하여 ''Conjunto Orfeão'', ''Trio Los Dos'', ''Os Claves'' 등의 밴드에 참여했다.[4] 1965년 법학대학 첫 해를 마치지 못하고 중퇴한 뒤 리스본으로 이주하여 국립체육연구소(INEF)에 다녔으며, 이 시기에 밴드 ''Conjunto Mistério''에 합류했다. 이 밴드는 이후 Quarteto 1111로 이름을 바꾸고 활동을 이어갔다.[4] 시드는 INEF 역시 졸업하지 못하고 포르투갈 공군에서 복무했으며,[3] 군 복무와 학업 중단 시기에도 음악 활동을 병행했다.[3]
2. 1. 출생 및 가족
조제 시드는 1942년 샤무스카에서 프란시스쿠 알바노 쿠티뉴 페레이라와 페르난다 타바레스 살터 시드 페레이라 가메이루의 아들로 태어났다.[2][3] 6세 때 가족과 함께 아나디아 자치시로 이사했다.[2][3] 그의 음악 경력은 1956년, 커버 밴드인 ''Os Babies''("아기들")를 결성하면서 시작되었다.[2]1960년, 시드는 코임브라 대학교 법학대학에 입학했다.[4] 코임브라에 있는 동안 그는 조제 니자, 프로엔사 데 카르발류, 루이 헤수헤이산과 함께 음악 그룹 ''Conjunto Orfeão''을 결성했으며,[4] 이후 밴드 ''Trio Los Dos''와 ''Os Claves''에도 합류했다.[4] 1963년에 결혼하여 다음 해에 딸을 낳았고, 가족은 카스카이스에서 살았다. 그의 딸은 성장하여 아버지의 작사가로 활동했다.
1965년, 시드는 법대 1학년을 마치지 못하고 중퇴한 뒤 리스본으로 가서 국립체육연구소(INEF)에 다녔다.[4] INEF 재학 중 동료의 소개로 밴드 ''Conjunto Mistério''에 합류했는데, 이 밴드는 이후 Quarteto 1111로 이름을 바꾸었다.[4]
시드는 INEF를 졸업하지 못하고 포르투갈 공군 장교로 복무하게 되었다.[3] 1968년부터 1972년까지 오타 공군 기지에서 체육 교사로 근무했으며,[3] 오전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오후에는 음악 리허설을 하는 생활을 했다. 주말에는 Quarteto 1111과 함께 공연했다.[3]
2. 2. 초기 음악 활동
조제 시드는 1942년 샤무스카에서 태어났으며, 6세 때 가족과 함께 아나디아 자치시로 이사했다.[2][3] 그의 음악 경력은 1956년, 커버 밴드인 ''Os Babies''("아기들")를 결성하면서 시작되었다.1960년, 시드는 코임브라 대학교 법학대학에 입학했다. 코임브라에서 그는 조제 니자, 프로엔사 데 카르발류, 루이 헤수헤이산과 함께 음악 그룹 ''Conjunto Orfeão''을 결성했다. 이후 밴드 ''Trio Los Dos''와 ''Os Claves''에도 참여했다.[4]
1965년, 시드는 법학대학 첫 해를 마치지 못하고 중퇴한 뒤 리스본으로 이주하여 국립체육연구소(INEF)에 입학했다. INEF 재학 중, 그는 밴드 ''Conjunto Mistério''에 합류하게 되었고, 이 밴드는 나중에 Quarteto 1111로 이름을 바꾸었다.
시드는 INEF 역시 졸업하지 못했는데, 포르투갈 공군 장교로 복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1968년부터 1972년까지 오타 공군 기지에서 체육 교사로 근무했다. 이 시기 그의 일과는 오전에 체육을 가르치고, 오후에는 차고에서 음악을 연습하는 것이었다. 주말에는 Quarteto 1111과 함께 공연 활동을 이어갔다.[3]
2. 3. 군 복무와 학업 중단
1965년, 시드는 코임브라 대학교 법학대학 첫 해를 마치지 못한 채 학교를 중퇴하고 리스본으로 가서 국립체육연구소(INEF)에 다녔다.[4] INEF에서 그는 밴드 ''Conjunto Mistério''에 합류했는데, 이 밴드는 이후 Quarteto 1111로 이름을 변경했다.시드는 국립체육연구소(INEF) 역시 졸업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포르투갈 공군 장교로 복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1968년부터 1972년까지 오타 공군 기지에서 체육 교사로 근무했다. 그의 일과는 오전에 학생들을 가르치고, 오후에는 차고에서 음악을 연주하며 리허설을 하는 것이었다. 주말에는 Quarteto 1111과 함께 공연을 이어갔다.[3]
3. 쿠아르테투 1111 (Quarteto 1111)
조제 시드는 현대적인 라인업과 악기 구성을 갖춘 포르투갈 최초의 팝 록 밴드이자, 심포닉 록 및 프로그레시브 록을 처음 시도한 '''Quarteto 1111'''의 공동 설립자이다. 그는 밴드의 실질적인 리더, 작곡가, 키보드 연주자, 리드 싱어로서 포르투갈 록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밴드는 1967년부터 싱글을 발매하며 활동했으며, 특히 "El Rei D. Sebastião" 싱글로 주목받았다. 이 곡은 세바스티앙 1세 왕과 관련된 신화를 다루었으며, 포르투갈 록 최초로 하프시코드(쳄발로)를 사용하고 영국에서도 발매되었다. 초기에는 비틀즈의 영향을 받았으나, 이후 무디 블루스 풍의 사운드와 멜로트론 등을 도입하며 프로그레시브 록을 시도했다가 점차 팝 사운드로 변화했다.
밴드의 주요 정규 앨범은 다음과 같다.
발매 연도 | 앨범 제목 | 비고 |
---|---|---|
1970년 | Quarteto 1111 | |
1973년 | Bruma Azul do Desejado | |
1974년 | Onde, Quando, Como, Porquê, Cantamos Pessoas Vivas | 프로그레시브 록 스타일 |
3. 1. 결성과 초기 활동
조제 시드는 포르투갈 최초의 심포닉 록 밴드이자 현대적인 라인업과 악기 구성을 갖춘 팝 록 밴드인 '''Quarteto 1111'''를 공동 결성했다. 이 밴드는 포르투갈 록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1968년과 1969년 사이, Quarteto 1111는 "El Rei D. Sebastião"라는 싱글을 발표하며 주목받았다. 이 곡은 알카세르키비르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세바스티앙 1세 왕과 관련된 신화를 다루었다. 세바스티앙 1세의 죽음은 포르투갈이 스페인에 의해 독립을 상실하는 결과로 이어졌기에, 그의 귀환을 바라는 신화는 포르투갈 민중에게 깊이 뿌리내린 주제였다. 이 곡은 포르투갈 록 음악 최초로 쳄발로를 사용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영어 버전으로 번안되어 영국에서 발매되기도 했다.
조제 시드는 밴드의 실질적인 리더이자 작곡가, 키보드 연주자, 리드 싱어로서 활동했다. 초기 밴드 구성은 비틀즈의 영향을 받았으나, 이후 무디 블루스를 연상시키는 사운드와 곡 구조를 선보이며 프로그레시브 록적인 시도를 했다. 특히 다음 앨범에서는 멜로트론과 같은 새로운 악기를 도입하며 혁신적인 사운드를 추구했다. 하지만 이후 밴드는 점차 대중적인 팝 사운드로 변화해갔다.
3. 2. 프로그레시브 록 시도
조제 시드는 현대적인 라인업과 악기 구성을 갖춘 포르투갈 최초의 팝 록 밴드인 '''Quarteto 1111'''를 공동 결성했다. 이 밴드는 포르투갈에서 심포닉 록을 시도한 첫 번째 그룹으로 평가받으며, 조제 시드는 밴드의 공동 설립자로서 포르투갈 록 역사에서 새로운 팝 록을 시도한 중요한 밴드로 자리매김하게 했다.[1]Quarteto 1111는 1968년과 1969년 사이에 발표한 싱글 "El Rei D. Sebastião"로 큰 주목을 받았다. 이 곡은 알카세르키비르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세바스티앙 1세의 죽음과 그로 인한 포르투갈의 독립 상실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다루었다.[2] 노래는 세바스티앙 왕의 귀환에 대한 신화적 믿음을 담고 있으며, 포르투갈 록 음악 역사상 처음으로 하프시코드(쳄발로)를 사용한 곡이기도 하다.[1][2] 이 곡의 영어 버전 싱글은 영국에서도 발매되었다.[2]
조제 시드는 밴드의 실질적인 리더이자 작곡가, 키보드 연주자, 리드 싱어였다.[1][2] 밴드의 초기 구성은 비틀즈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후에는 무디 블루스를 연상시키는 사운드와 곡 구조를 보여주었다.[1][2] 다음 앨범에서는 멜로트론과 같은 새로운 악기를 도입하며 프로그레시브 록 시도를 이어갔으나, 이후 밴드는 1970년대 후반의 팝 사운드로 방향을 전환했다.[1][2]

밴드 활동 외에도 시드는 솔로 활동을 통해 심포닉 록을 꾸준히 탐구했다. 그는 Cantamos Pessoas Vivas(1974), Vida – Sons do Quotidiano(1976), 그리고 10,000 Anos Depois Entre Venus E Marte(1978)와 같은 앨범들을 발표했다.[3] 이 앨범들의 곡들은 대부분 시드가 직접 작곡했으며, 무디 블루스와 핑크 플로이드의 사이키델리아 음악에서 영향을 받은 복합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일부 곡 작업에는 기타리스트 마이크 서전트(Mike Sergeant)와 드러머 라몬 갈라르사(Ramon Galarza)가 참여했다.[3]
또한, "사후 세계"와 "환생"을 주제로 한 미완성 프로젝트 Vozes do Além도 진행했다. 이 음반에는 나탈리아 코레아(Natália Correia)의 시 "Creio"와 소피아 드 멜루 브레이너 안드레센(Sophia de Mello Breyner Andresen)의 시 "Quando", "Um Dia"가 수록될 예정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최근 원래 라인업 멤버들과 젊은 음악가들의 참여로 작업이 재개되었다.[3]
3. 3. 밴드 음악 스타일 변화
조제 시드는 현대적인 라인업과 악기 구성을 갖춘 포르투갈 최초의 팝 록 밴드로 평가받는 '''Quarteto 1111'''를 공동 결성했다. 이 밴드는 포르투갈 최초로 심포닉 록과 프로그레시브 록을 시도한 그룹이기도 하다. 조제 시드는 밴드의 실질적인 리더이자 작곡가, 키보드 연주자, 그리고 리드 싱어 역할을 맡았다.1968년과 1969년 사이에 '''Quarteto 1111'''는 "El Rei D. Sebastião"라는 곡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이 노래는 알카세르키비르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세바스티앙 왕의 이야기와 그의 귀환에 대한 신화를 다루었다. 세바스티앙 왕의 죽음은 포르투갈이 스페인에게 독립을 잃는 계기가 된 사건이기도 하다. 이 곡은 포르투갈 록 역사상 처음으로 하프시코드(쳄발로)를 사용한 곡으로 기록되었으며, 영어 버전으로 번안되어 영국에서 싱글로 발매되기도 했다.
밴드의 초기 음악 스타일은 비틀즈의 영향을 받은 구성을 보였으나, 점차 무디 블루스를 연상시키는 사운드와 곡 구조로 변화해갔다. 특히 다음 앨범에서는 멜로트론과 같은 당시로서는 새로운 악기를 도입하며 프로그레시브 록적인 시도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후 밴드의 음악은 1970년대 후반의 일반적인 팝 사운드로 점차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4. 솔로 활동
조제 시드는 1970년대부터 솔로 활동을 시작하며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보여주었다. 특히 1974년부터 1978년 사이에는 프로그레시브 록을 실험했으며, 이 시기에 발표된 콘셉트 음반 《10,000 Anos Depois Entre Venus E Marte》(1978)는 후대에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이 시기 그의 음악은 무디 블루스나 핑크 플로이드와 같은 밴드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ABBA 스타일의 팝 밴드인 그린 윈도우(Green Windows)와 함께 활동하며 1974년 페스티벌 다 칸상에 참가하기도 했으며, 1980년에는 솔로 자격으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참가하여 Um grande, grande amorpor를 불렀다.
그의 주요 솔로 앨범 및 EP는 다음과 같다.
연도 | 앨범 제목 | 비고 |
---|---|---|
1971년 | José Cid | |
1974년 | No Dia Em Que O Rei Fez Anos | 그린 윈도우(Green Windows)와 함께 작업 (1973년-1975년 사이 싱글/EP 4매 발매) |
1977년 | Vida (Sons do Quotidiano) | EP, 프로그레시브 록 스타일 |
1978년 | 10,000 Anos Depois Entre Venus E Marte | 프로그레시브 록 스타일 |
1979년 | Coisas Suas | |
1980년 | My Music | |
1980년 | Os Grandes Exitos De... | 베스트 앨범 |
1981년 | Antologia Portuguesa 6 | |
1981년 | Grandes Êxitos Nº 2 | 베스트 앨범 |
1982년 | Magia | |
1987년 | Fado de Sempre | |
1989년 | José Cid | |
1990년 | O Melhor de | 베스트 앨범 |
1991년 | De Par Em Par | |
1992년 | Camões, As Descobertas... E Nós | |
1994년 | Vendedor de Sonhos | |
1994년 | O Melhor Dos Melhores- Vol. 34 - | 베스트 앨범 |
1996년 | Nunca Mais É Sexta Feira !... | |
1996년 | Pelos Direitos do Homem | |
1998년 | Ode a Federico Garcia Lorca | |
1999년 | Cais Sodré | 원 테이크 재즈 앨범 |
1999년 | Entre Margens |
4. 1. 프로그레시브 록 실험
조제 시드는 1974년부터 1978년 사이에 프로그레시브 록을 실험했다. 이 시기 그는 심포닉 록을 탐구하며 《Cantamos Pessoas Vivaspor》(1974), 《Vida – Sons do Quotidianopor》(1976), 그리고 《10,000 Anos Depois Entre Venus E Marte》(1978)를 발표했다. 특히 1978년의 콘셉트 음반 《10,000 Anos Depois Entre Venus E Marte》는 후대에 걸작으로 평가받았다. 이 시기의 많은 곡들은 무디 블루스(The Moody Blues)와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사이키델리아가 결합된 듯한 영향을 보여주며, 대부분 시드가 직접 작곡했으나 일부는 기타리스트 마이크 서전트(Mike Sergeant)와 드러머 라몬 갈라르사(Ramon Galarza)의 도움을 받았다.같은 시기, 시드는 그린 윈도우(Green Windows)라는 ABBA 스타일의 팝 밴드와 함께 1974년 페스티발 다 칸상(Festival da Canção)에 "Imagenspor"와 "No Dia Em Que O Rei Fez Anospor"라는 곡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이후 1980년에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Um grande, grande amorpor"라는 곡으로 포르투갈 대표로 참가했다.
프로그레시브 록 시기에는 미완성 프로젝트인 《Vozes do Alémpor》도 있었다. 이 앨범은 "사후 세계 / 환생"이라는 주제를 탐구했으며, 나탈리아 코레아(Natália Correia)의 시 "Creiopor"와 소피아 드 멜루 브레이너 안드레센(Sophia de Mello Breyner Andresen)의 시 두 편("Quandopor"와 "Um Diapor")을 가사로 사용했다. 현재 이 앨범 작업은 원년 멤버들과 젊은 음악가들이 참여하여 재개되었다.
4. 2. 그린 윈도우즈 (Green Windows)
조제 시드는 ABBA 스타일의 팝 밴드인 그린 윈도우즈(Green Windows)와 함께 활동했다. 1974년에는 페스티벌 다 칸상에 "Imagens"와 "No Dia Em Que O Rei Fez Anos"라는 노래로 참가했으며, 1980년에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Um grande, grande amor"라는 노래로 참가했다.4. 3.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참가
조제 시드는 1970년대 전반기에 팝 성향을 띠면서 4인조 보컬 팝 그룹인 그린 윈도우즈를 결성했다. 이 그룹과 함께 1974년 페스티벌 다 칸상에 "Imagens"[5]와 "No Dia Em Que O Rei Fez Anos"[6]라는 곡으로 참가했다. 이후 1980년에는 솔로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1980에 참가하여 "Um grande, grande amor"라는 곡을 선보였다.[7]4. 4. OTI 페스티벌 참가
1979년, 조제 시드는 포르투갈 공영 방송 RTP에 의해 카라카스, 베네수엘라에서 개최된 제8회 OTI 페스티벌의 포르투갈 대표로 선정되었다. 그는 Na cabana junto à praiapt (해변 옆 작은 집에서)라는 곡으로 참가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고, 32점을 받아 3위를 차지했다.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참가 1년 후인 1981년, 그는 포르투갈 방송국에 의해 다시 한번 OTI 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되었다. 멕시코 시티에서 열린 제10회 대회였으나, 이번에는 이전만큼 성공적이지 못하여 14점을 얻어 10위를 기록했다.
5. 현재
조제 시드는 작곡가이자 가수로 활동하며 포르투갈에서 여전히 인기 있는 활동적인 음악가로 남아 있다.
그의 최신 앨범 "Menino Prodígio"는 2015년에 발매되었으며, 포르투갈 작가 협회(Sociedade Portuguesa de Autores, SPA)로부터 올해의 최고 앨범으로 ''페드루 오소리우 상''(Pedro Osório Award)을 수상했다.
2016년에 시드는 스페인에서 첫 앨범을 발매했다.[8][9] 그는 2019년에 라틴 그래미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다.[10]
6. 개인사
조제 시드는 1942년 포르투갈 샤무스카에서 프란시스쿠 알바노 쿠티뉴 페레이라와 페르난다 타바레스 살터 시드 페레이라 가메이루의 아들로 태어났다. 6세 때 가족과 함께 아나디아로 이사했다.[2][3] 그의 음악 경력은 1956년, 14세에 커버 밴드인 Os Babies|오스 베이비스por("아기들")를 결성하면서 시작되었다.
1960년, 시드는 코임브라 대학교 (FDUC) 법학대학에 입학했다. 코임브라에서 그는 조제 니자, 프로엔사 데 카르발류, 루이 헤수헤이산과 함께 음악 그룹 Conjunto Orfeão|콘준투 오르페앙por을 결성했다. 이후 밴드 Trio Los Dos|트리우 로스 도스por와 Os Claves|오스 클라브스por에도 합류했다.[4]
1965년, 시드는 법대 1학년을 마치지 못하고 중퇴한 뒤 리스본으로 가서 국립체육연구소(INEF, 현 리스본 대학교 체육 학부)에 다녔다. INEF 재학 중 동료의 소개로 밴드 Conjunto Mistério|콘준투 미스테리우por 오디션을 보았고, 그룹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 밴드는 이후 Quarteto 1111로 이름을 변경했다.
시드는 INEF 역시 졸업하지 못했는데, 포르투갈 공군 장교로 복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타 공군 기지에서 그는 1968년부터 1972년까지 체육 교사로 근무했다. 그의 일과는 오전에 학생들을 가르치고, 오후에는 차고에서 음악을 연주하며 리허설을 하는 것이었다. 주말에는 Quarteto 1111과 함께 공연했다.[3]
시드는 1963년 첫 결혼하여 이듬해 딸 아나 소피아를 낳았으며[12], 2013년 동티모르 출신의 언론인이자 예술가인 가브리엘라 카라스칼랑과 재혼하여 현재 아나디아에 거주하고 있다.[11] 그는 자신을 자유주의적 군주주의자라고 밝히며 포르투갈 군주주의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바 있다.[13]
6. 1. 결혼
조제 시드는 1963년에 첫 결혼을 했으며, 이듬해인 1964년에 딸을 낳았다.[12] 첫 번째 부인은 Emília Infante Pedrosopor였으며, 딸의 이름은 Ana Sofia Infante Pedrosopor이다. 가족은 카스카이스에서 살았고, 딸 아나 소피아는 성장하여 잠시 아버지의 작사가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사이가 좋지 않다.[12]이후 조제 시드는 2013년 Gabriela Carrascalãopor과 재혼했다. 카라스칼랑은 동티모르 출신의 언론인이자 예술가 겸 화가이다.[11] 시드와 가브리엘라는 아나디아 시의 Mogoforespor에 있는 농장에서 거주하고 있다.
6. 2. 자녀
1963년에 결혼했으며, 1964년에 딸을 낳았다. 가족은 카스카이스에서 거주했으며, 그의 딸은 성장하여 아버지의 작사가로 활동했다.6. 3. 정치적 성향
조제 시드는 자신을 자유주의적 군주주의자라고 밝히며, 포르투갈 군주주의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해왔다. 그는 2022년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치적 견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상세히 설명했다.[13]나는 군주주의자이지만, 인민 군주당(PPM)의 군주주의자는 아니다. 진보적인 군주주의자가 되는 것은 간단하다. 이는 사 카르네이루가 용기 있게 실행하지 못한 일이다. 그는 스웨덴 여성과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부패가 적고 문화 수준이 높으며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들인 북유럽 국가들을 따라야 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쯤 눈이 가득 쌓여 지루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세계 최고의 사람들이 있고, 최고의 기후, 최고의 미식 문화가 있다. 또한 왕실 살해 사건, 두 번의 독재 정권(살라자르 정권과 마르셀리스타 정권), 그리고 절대 다수로 승리하여 에리세이라를 활보하는 신사(조제 소크라테스 전 포르투갈 총리를 지칭)와 매우 가까웠던 또 다른 정권 같은 어려운 시기를 견뎌냈기에, 우리는 세계 최고가 될 자질을 갖추고 있다.[14]
7. 음반 목록
(내용 없음)
7. 1. 쿠아르테투 1111 (Quarteto 1111)
조제 시드는 현대적인 라인업과 악기 구성을 갖춘 포르투갈 최초의 팝 록 밴드인 '''Quarteto 1111'''를 공동 결성했다.'''Quarteto 1111'''는 포르투갈 최초의 심포닉 록 밴드였으며, 조제 시드는 실질적인 밴드 리더이자 작곡가, 키보드 연주자, 리드 싱어였다. 1968년과 1969년 사이, 밴드는 세바스티앙 왕의 죽음을 다룬 싱글 "El Rei D. Sebastião"로 큰 주목을 받았다. 세바스티앙 왕은 모로코의 알카세르키비르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 사건은 포르투갈이 스페인에게 독립을 잃는 계기가 되었다. 이 노래는 세바스티앙 왕의 귀환에 대한 신화를 다루었으며, 포르투갈 신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 곡은 쳄발로가 사용된 최초의 포르투갈 록 음악이기도 했다. 영어 버전 싱글이 영국에서 발매되기도 했다.
밴드의 초기 구성은 비틀즈의 영향을 받았으나, 이후 무디 블루스를 연상시키는 사운드와 곡 구조로 변화했다. 다음 앨범에서는 멜로트론과 같은 새로운 프로그레시브 록 악기를 도입하며 혁신적인 시도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후 밴드는 1970년대 후반의 팝 사운드로 다시 변화했다.
앨범/싱글 | 발매 연도 | 형식 & 트랙 |
---|---|---|
A Lenda de El-Rei D.Sebastião | 1967 | EP (A Lenda De El-Rei D. Sebastião, Os Faunos, Fantasma «POP», Gente) |
Balada para D. Inês | 1967 | EP (Balada para D. Inês, Partindo-se, Vale da Ilusão, Dragão) |
Meu Irmão / Ababilah | 1968 | 싱글 |
Dona Vitória | 1968 | EP (Guarda Nocturno, Perspectiva, Tempo de Inocência, Dona Vitória) |
Nas Terras do Fim do Mundo / Bissaide | 1969 | 싱글 |
Génese / Os Monstros Sagrados | 1969 | 싱글 |
Todo o Mundo e Ninguém / É Tempo de Pensar em Termos de Futuro | 1970 | 싱글 |
Back to the Country / Everybody Needs Love, Peace and Food | 1970 | 싱글 |
Domingo em Bidonville | 1970 | EP (João Nada, Estrada Para A Minha Aldeia, Domingo Em Bidonville, Epílogo) |
Quarteto 1111 | 1970 | LP (Prólogo, João Nada, Domingo em Bidonville, Estrada Para A Minha Aldeia, A Fuga dos Grilos, As Trovas do Vento Que Passa, Pigmentaçäo, Maria Negra, Lenda de Nambuangongo, Escravatura, Epílogo) |
Ode to the Beatles / 1111 | 1971 | 싱글 |
Sabor a Povo / Uma Nova Maneira de Encarar o Mundo | 1972 | 싱글 |
Bruma Azul do Desejado (with Frei Hermano da Câmara) | 1973 | LP (Vem Senhor Jesus, Graças Ao Senhor, O Sonho, Hino da Esperança, Bruma Azul do Desejado, Estrela do Mar, Saudai o Senhor, Hino de Natal, Paz na terra, Um Presépio Em Belém) |
Onde, Quando, Como, Porquê, Cantamos Pessoas Vivas | 1974 | LP (Onde, Quando, Como, Porquê, Cantamos Pessoas Vivas (parts 1 & 2)) - 프로그레시브 록 |
Antologia da Música Popular Portuguesa | 1981 | 컴필레이션 (A Lenda de El-Rei D. Sebastião, Os Faunos, Balada para D. Inês, Partindo-se, Dona Vitória, Nas Terras do Fim do Mundo, Meu Irmão, Domingo Em Bidonville, João Nada, As Trovas do Vento Que Passa, Back to The Country, Ode to The Beatles, Uma Nova Maneira de Encarar o Mundo) |
Memo / Os Rios Nasceram Nossos | 1987 | 싱글 |
A Lenda Do Quarteto 1111 | 1993 | 컴필레이션 (Os Faunos, A Lenda de El-Rei D. Sebastião, Balada para D. Inês, Partindo-se, Dona Vitória, Meu Irmão, Dragão, Os Monstros Sagrados, Génese, Bissaide, Nas Terras do Fim do Mundo, Domingo Em Bidonville, João Nada, As Trovas do Vento Que Passa, Maria Negra, Todo O Mundo E Ninguém, É Tempo de Pensar Em Termos de Futuro, Back to The Country, Ode to The Beatles, Uma Nova Maneira de Encarar O Mundo) |
A Lenda De El-Rei D. Sebastião - Colecção Caravela | 1996 | 컴필레이션 (A Lenda de El-Rei D. Sebastião, Meu Irmão, Ode to The Beatles, As Trovas do Vento Que Passa, Domingo Em Bidonville, Balada para D. Inês, Dona Vitória, João Nada, Dragão, Nas Terras do Fim do Mundo, Pigmentação, Fantasma Pop) |
Singles e EPs | 2005 | 컴필레이션 (A Lenda De El-Rei D. Sebastião, Os Faunos, Gente, Balada Para D. Inês, Partindo-Se, Dona Vitória, Nas Terras Do Fim Do Mundo, Meu Irmão, Domingo Em Bidonville, João Nada, As Trovas Do Vento Que Passa, Epílogo, Back To The Country, Ode To The Beatles, Uma Nova Maneira De Encarar O Mundo) |
7. 2. 그린 윈도우즈 (Green Windows)
앨범 | 발매 날짜 | 형식 및 트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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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한 남자의 이야기(Twenty Years/The Story Of A Man) | 1973 | 싱글 |
이미지/블라블라의 달콤하고 쉬운 왕국(Imagens/Doce E Fácil Reino Do Blá, Blá, Blá) | 1974 | 싱글 |
왕이 생일을 맞이한 날(No dia em que o rei fez anos) | 1974 | EP ( 왕이 생일을 맞이한 날, 블라블라의 달콤하고 쉬운 왕국, Count James, 크리스탈 볼, 당신에게 준 장미, 이미지, 또 다른 삶의 시간, 또 다른 죽음의 시간, 포르투갈 노래,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 20년) |
대중 사절/안나 카렌(Quadras Populares/Ana Karen) | 1975 | 싱글 |
그린 윈도우의 위대한 히트곡(Os Grandes Êxitos dos Green Windows) | 1977 | 컴필레이션 ( 20년, 리타 리타 리망, 나만 알아요, 내 사랑,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 구두 수선공 당신을 보내는 사람, 이미지, 추억, 왕이 생일을 맞이한 날, 유쾌한 이야기, 크리스탈 볼, 어떤 비용이 들더라도, 달콤하고 쉬운, 블라블라의 왕국) |
7. 3. 솔로
조제는 1974년부터 1978년 사이에 프로그레시브 록을 실험했다. 이 시기에 발표한 1978년 작품인 콘셉트 음반 《10,000 Anos Depois Entre Venus E Marte》는 이후 걸작으로 평가받았다. 이 시기의 많은 곡들은 무디 블루스나 핑크 플로이드 같은 밴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그는 그린 윈도우(Green Windows)라는 ABBA 스타일의 팝 밴드와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1974년에는 페스티발 다 칸상(Festival da Canção)에 "Imagens"와 "No Dia Em Que O Rei Fez Anos"라는 곡으로 참가했고, 1980년에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Um grande, grande amor"라는 곡으로 참가했다.
다음은 조제 시드의 주요 솔로 음반 목록이다.
앨범 | 발매 연도 | 형식 및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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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시드 | 1971 | 첫 솔로 앨범 (LP). 호르헤 아마두와 나탈리아 코헤이아의 시 수록; 길베르투 질의 테마곡 1곡 포함. |
돔 풀라노 | 1971 | 첫 솔로 싱글 |
리스보아 페르투 에 론제 | 1972 | EP |
진실한 크리스마스 이야기 | 1972 | EP |
카마라다 | 1972 | EP. 수록곡: Camarada, Retrospectiva, Viagem, Corpo Derrubado |
올라 뱀피루 봄 | 1973 | 싱글 |
왕이 즉위한 날 (No Dia Em Que O Rei Fez Anos) | 1974 | 그린 윈도우와 함께 발매 (싱글/EP 추정) |
당신에게 준 장미 (A Rosa Que Te Dei) | 1974 | 싱글 |
포르투갈, 에!... (Portugal, É!... ) | 1975 | 싱글 |
제 축제 (A Festa do Zé) | 1975 | 싱글 |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Ontem, Hoje e Amanhã) | 1976 | 싱글 |
비다 (일상의 소리) (Vida (Sons do Quotidiano)) | 1977 | 프로그레시브 록 스타일의 EP |
티아 아니타 (Tia Anita) | 1977 | 싱글 |
아니타는 예쁘지 않아 (Anita Não É Bonita) | 1977 | 싱글 |
낭만적이지만 어색하지 않음 (Romântico Mas Não Trôpego) | 1977 | 싱글 |
10,000년 후 금성과 화성 사이 (10,000 Anos Depois Entre Vénus e Marte) | 1978 | 프로그레시브 록 앨범 (LP) |
내 피아노/여기에 노래가 있다/코레투 광장/왜, 내 사랑, 왜? (O Meu Piano / Há Uma Canção / Largo do Coreto / Porque, Meu Amor, Porque?) | 1978 | EP |
내 음악 (A Minha Música) | 1978 | 싱글 |
왜 (Porque) | 1978 | 싱글 |
코레투 광장 (Largo do Coreto) | 1978 | 싱글 |
여기에 노래가 있다 (Há Uma Canção) | 1978 | 싱글 |
내 피아노 (O Meu Piano) | 1978 | 싱글 |
당신의 것들 (Coisas Suas) | 1979 | LP |
꽃 피는 녹색 밀밭 (Verdes Trigais Em Flor) | 1979 | 싱글 |
My Music | 1980 | LP |
크고, 아주 큰 사랑 (Um Grande, Grande Amor) | 1980 | EP |
크고, 아주 큰 사랑 (Um Grande, Grande Amor) | 1980 | 싱글 (유로비전 참가곡) |
사랑해, 사랑하지 않아, 아주, 조금, 전혀 (Amo-te, Não Te Amo, Muito, Pouco, Nada) | 1980 | 싱글 |
...의 위대한 히트곡 (Os Grandes Êxitos De...) | 1980 | LP (컴필레이션) |
좋은 옛 시절의 록 (O Rock Da Velha Loba) | 1981 | 싱글 |
포르투갈 선집 6 (Antologia Portuguesa 6) | 1981 | LP (컴필레이션) |
당신을 위해 죽도록 사랑한다 (Morrer De Amor Por Ti) | 1981 | 싱글 |
위대한 히트곡 2번 (Grandes Êxitos Nº 2) | 1981 | LP (컴필레이션) |
원숭이가 바나나를 좋아하는 것처럼 (Como o Macaco Gosta de Banana) | 1982 | 싱글 |
마기아 (Magia) | 1982 | LP. 수록곡: Se Fosse Contigo, Desencontro, Magia, Depois da Meia Noite, Manhã da Minha Vida, Se Me Amasses Um Poquinho, Uma Lágrima, Cantor da TV, Senão..., Depois de Ti |
예수님이 사랑하셨던 것처럼 사랑하라 (Amar Como Jesus Amou) | 1983 | 싱글 |
예쁜 포르투갈 여인 (Portuguesa Bonita) | 1983 | 싱글 |
매혹적인 무라 (Moura Encantada) | 1984 | 싱글 |
달빛 밤 (Noite de Luar) | 1985 | 싱글 |
그리워요 (Saudade) | 1985 | 싱글 |
시-코라상 (Xi-Coração) | 1986 | LP. 수록곡: Chove Em Paris, Velho Moinho, Balalaika, Tudo Bem, Tudo Bem, Voar Como o Condor, Errante Nocturno das Estrelas, O Teu Segredo, Há |
발랄라이카 (Balalaika) | 1986 | 싱글 |
언제나의 파두 (Fado de Sempre) | 1987 | LP |
우! 아우! 나쁜 늑대 (Uh! Au! Lobo Mau) | 1987 | 싱글 |
뉴욕에 눈이 내리네 (Cai Neve Em Nova York) | 1988 | 싱글 |
조제 시드 | 1989 | LP |
최고의 노래 (O Melhor de) | 1990 | LP (컴필레이션) |
짝을 이루어 (De Par Em Par) | 1991 | LP |
카몽이스, 발견... 그리고 우리 (Camões, As Descobertas... E Nós) | 1992 | LP |
꿈의 판매자 (Vendedor de Sonhos) | 1994 | LP |
최고 중의 최고- 34권 (O Melhor Dos Melhores- Vol. 34) | 1994 | LP (컴필레이션) |
인간의 권리를 위해 (Pelos Direitos do Homem) | 1996 | 동티모르 독립을 기념하는 앨범 (LP) |
더 이상 금요일은 없어! (Nunca Mais É Sexta Feira !...) | 1996 | LP |
당신에게 준 장미 (컬렉션: 카라벨라) (A Rosa Que Te Dei (Col. Caravela)) | 1996 | LP (컴필레이션) |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에게 바치는 송시 (Ode a Federico Garcia Lorca) | 1998 | LP |
카이스 소드레 (Cais Sodré) | 1999 | 재즈 앨범 (LP). 1999년 4월 한 번의 테이크로 녹음. |
사이의 가장자리 (Entre Margens) | 1999 | LP |
르네상스의 고전 - 52권 (O Melhor De 2 (José Cid / Adelaide Ferreira) (Col. Clássicos da Renascença - Vol. 52)) | 2000 | LP (컴필레이션, 아델라이드 페레이라와 함께) |
조제 시드 / 아델라이드 페레이라 (컬렉션: 최고의 2) (José Cid / Adelaide Ferreira (Col. O Melhor De 2)) | 2001 | LP (컴필레이션, 아델라이드 페레이라와 함께) |
놀랍게도 (De Surpresa) | 2002 | 듀엣 앨범. 파울루 드 카르발류, 퀸타 도 빌, 비토리누, 발데마르 바스토스 참여. |
선집 - 나는 음악을 위해 태어났다 (Antologia - Nasci p'ra Música) | 2003 | LP (컴필레이션) |
베스트 (Best Of) | 2003 | LP (컴필레이션) |
예술과 음악 (Arte E Música) | 2004 | "베스트 오브" 앨범, 더블 플래티넘 기록. |
내 인생의 발라드 (Baladas da Minha Vida) | 2006 | 더블 플래티넘 기록. 수록곡: Cabana Junto À Praia, Lenda de El-Rei D. Sebastião, 20 Anos, Os Melhores Anos da Nossa Vida (Original), Ontem, Hoje e Amanhã, A Rosa Que Te Dei, Verdes Trigais Em Flor, Poeta, Pintor, Músico, Velho Moinho, Nossa Senhora do Tejo (Tema Inédito da Telenovela Filha do Mar), Junto À Lareira, Mulher, Café Contigo (Original), Cai Neve Em Nova York, Sem Lágrimas, Sonhador, Balada Para D. Inês, S. Salvador do Mundo, Há |
선집 II (Antologia II) | 2006 | 컴필레이션 |
팝 록 & 그 반대 (Pop Rock & Etc.) | 2007 | 더블 앨범. CD 1: Como o Macaco Gosta de Banana, Topo de Gama, Pouco a Pouco (“Favas Com Chouriço!”), Amanhã de Manhã, Deus Inventou o Rock, Meninos Prodígio, A Minha Música, Um Grande, Grande Amor, Beatlemania, Strawberry Fields Forever, Ego, Jardim à Beira Mar, O Pintor Não Morreu (Dueto com Paulo de Carvalho), Magia, Doce Veneno, Bola de Cristal, O Doce e Fácil Reino do Blá, Blá, Blá, Ontem, Hoje e Amanhã. CD 2: «Topo de Gama», «No Tempo Em Que o Toninho Ia Almoçar à Pastelaria S. Bento Com os Amigos», «Chove Em Paris», «Coração de Papelão», «Amizade Colorida», «Uh! Au! Lobo Mau!», «Voar Como o Condor», «De Surpresa», «No Teu Refúgio», «No Meu Piano», «Na Rota de Cássia», «Se Me Amasses Um Poquinho», «Dou-te Este Amor», «Rendez Vous», «Senão...», «O Rock da Velha Loba», «Na Rádio», «Epitáfio» |
사랑과 바다의 것들 (Coisas do Amor e do Mar) | 2009 | 앨범 |
발라드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Quem Tem Medo de Baladas) | 2011 | 앨범 (2007년 발매 예정이었으나 연기됨) |
저 너머의 목소리 (Vozes do Além) | 2021 | 프로그레시브 록 앨범. 1970년대 시작된 작업을 기반으로 하며, 환생과 사후 세계를 주제로 함. (2016년 발매 예정이었으나 연기됨) |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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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José Cid ajuda crianças em risco com concerto solidário na Altice Ar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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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Aula Magistral de José C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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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José C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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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José Cid ⋆ Caminhos do Cinema Portuguê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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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stival RTP 1974 - Green Windows - Imag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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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 grande, grande amor @ José Cid - Festival Eurovisão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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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é Cid lança álbum em castelh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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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José Cid tem um novo ''single''... em espanh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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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El Puma, Joan Baez, Omara Portuondo & Others to Receive Latin Recording Academy Lifetime Achievement Awa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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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metheus Global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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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é Cid partilha fotos do casamento com Gabriela Carrascalã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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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é Cid não fala com a fil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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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é Cid: "Não pertenço a guetos, nem a parti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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