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A. T. 로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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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존 A. T. 로빈슨은 1919년에 태어나 1983년에 사망한 영국의 성공회 사제이자 신학자였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했고, 울위치 보좌 주교를 역임했으며, 1963년 저서 《신에게 솔직히》를 통해 전통적인 신 개념을 비판하고 "사랑"으로서의 하나님을 제시하여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로빈슨은 신약성서의 연대를 재조정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등 사회적 활동에도 참여했다. 그의 저술은 진보적 신학에 영향을 미쳤으며, 주요 저서로는 《결국, 신》, 《예수와 그의 오심》, 《신약성서 재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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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A. T. 로빈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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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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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함 | 울리치 주교 |
임기 | 1959년 ~ 1969년 |
이전 | 로버트 스태너드 |
이후 | 데이비드 셰퍼드 |
다른 직책 | 트리니티 칼리지 예배당의 딘 (1969년 ~ 1983년) |
개인 정보 | |
출생명 | 존 아서 토머스 로빈슨 |
출생일 | 1919년 5월 16일 |
출생지 | 캔터베리, 켄트 주, 잉글랜드 |
사망일 | 1983년 12월 5일 |
사망지 | 안클리프, 노스 요크셔, 잉글랜드 |
종교 | 성공회 |
경력 | |
서품 | 1945년 (부제) 1946년 (사제) |
축성 | 1959년 |
축성자 | 제프리 피셔 |
직업 | 성직자 및 학자 |
출신 학교 | 웨스트콧 하우스, 케임브리지 |
2. 초기 생애와 교육
로빈슨은 1919년 5월 16일 잉글랜드 캔터베리 대성당 구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참사회원이었다. 그는 말버러, 윌트셔에 있는 남자 사립학교인 말버러 칼리지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후 케임브리지 대학교 예수 칼리지와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공부했으며, 웨스트코트 하우스에서 서품을 받기 위한 훈련을 받았다.
로빈슨은 1945년 성공회에서 부제로, 1946년에는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6] 1945년부터 1948년까지 그는 브리스톨 교구의 무어필즈 성 마태 교회에서 부제 보좌 신부로 봉사했으며,[5] 당시 교구 목사는 머빈 스톡우드였다.
존 A. T. 로빈슨은 20세기 성공회 신학자로,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에 대한 현대적이고 때로는 급진적인 해석을 시도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신학 사상은 당대의 주요 신학자들, 특히 파울 틸리히와 디트리히 본회퍼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들의 사상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종합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3. 사목 활동
1948년, 로빈슨은 웰스 신학 대학의 채플린이 되어 첫 번째 저서인 ''결국, 신''을 집필했다. 1951년에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클레어 칼리지 펠로우이자 학장으로 임명되었고, 신학 강사로도 활동했다.[7]
1959년, 당시 사우스워크 성공회 주교였던 스톡우드의 초청으로 로빈슨은 울위치의 주교가 되었다.[8] 로빈슨을 보좌 주교로 임명하는 것은 스톡우드의 권한이었지만, 당시 캔터베리 대주교 제프리 피셔는 로빈슨이 신학자로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아 임명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피셔 대주교는 조언 후 로빈슨의 주교 서임을 받아들였다. 1960년, 로빈슨은 D. H. 로렌스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 출판으로 펭귄 북스가 기소된 외설 재판에서 변호인 측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울위치에서 10년간 봉사한 후, 로빈슨은 1969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트리니티 칼리지 펠로우이자 채플 학장으로 돌아와 강연과 저술 활동을 이어갔다.
4. 신학 사상과 주요 저서
로빈슨의 저술 활동은 그의 신학적 여정을 잘 보여준다. 초기 저서인 《결국, 신》(In the End, Godeng, 1950)에서는 모든 영혼의 구원을 주장하는 기독교 보편주의적 관점을 드러냈으며, 《예수와 그의 오심》(Jesus and His Comingeng, 1957)에서는 재림 교리에 대한 전통적 해석에 의문을 제기하며 초기 교회가 예수의 본래 가르침을 미래 사건에 대한 예언으로 변형시켰다고 주장했다.
그의 가장 유명하고 논쟁적인 저서는 《신에게 솔직히》(Honest to Godeng, 1963)이다. 이 책에서 로빈슨은 하나님을 '저 너머'에 존재하는 초자연적 존재로 이해하는 전통적 신 관념을 비판하고, 대신 하나님을 '존재의 근원'이자 '사랑'으로 이해할 것을 제안했다. 이 책은 출간 즉시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로빈슨을 대중에게 급진적인 신학자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캔터베리 대주교였던 마이클 램지를 비롯한 보수적인 교계 인사들의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으나, 이 책은 이후 자유주의 기독교 신학 논의에 중요한 출발점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 로빈슨은 성경 해석 분야에서는 다소 보수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신약성서 재고》(Redating the New Testamenteng, 1976)와 사후 출간된 《요한 복음의 우선순위》(The Priority of Johneng, 1985)에서는 신약 성경의 여러 책, 특히 요한 복음이 전통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이른 시기(서기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전)에 기록되었다고 주장하며, 요한 복음의 독자적인 역사적 가치를 강조했다. 이러한 주장은 당시 주류 성서 비평학계의 입장과는 다른 것이었으나, 일부 학자들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로빈슨의 신학은 전통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현대 사회와의 대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의 저서들은 당대는 물론 현재까지도 기독교 신앙의 본질과 표현 방식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며 읽히고 있다.
4. 1. 《결국, 신》(In the End, God) (1950)
현대 기독교 보편주의 작가 브라이언 헤블스웨이트[11]는 로빈슨의 저서 《결국, 신: 마지막 일에 대한 기독교 교리 연구》(In the End, God: A Study of the Christian Doctrine of the Last Things)를 인용하며, 이 책이 모든 불멸의 영혼의 보편적 화해를 주장한다고 설명한다. 켄 R. 빈센트는 그의 저서 《황금 실》(The Golden Thread)[12]에서 로빈슨의 관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로빈슨은 그리스도가 오리게네스의 오래된 말처럼, 한 명의 죄인이 지옥에 남아 있는 한 십자가에 남아 있다고 언급한다. 이것은 추측이 아니라 신의 본질의 바로 그 필요성에 근거한 진술이다." 또한, 《파괴적인 은총: 칼 바르트 신학 연구》(Disruptive Grace: Studies in the Theology of Karl Barth)[13]의 저자인 조지 훈싱어는 로빈슨을 "[만약] 누군가 거리낌 없는 보편적 구원론자를 찾는다면, 로빈슨은 더 바랄 나위가 없다"고 평가하며 그의 보편주의적 입장을 강조했다.
4. 2. 《예수와 그의 오심》(Jesus and His Coming) (1957)
이 책에서 로빈슨은 재림 교리의 초기 역사를 분석한다. 그는 "이제 기독교 희망의 핵심은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아들을 기다리는 것', 즉 첫 번째 오심을 완성하고 높이는 두 번째이자 최종적인 오심을 기다리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예수 자신이 한 말에서 이에 대한 확고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말한다.[14] 로빈슨은 또한 초기 교회가 예수의 말씀 의미를 바꾸는 경향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원래 예수의 말씀은 그의 죽음과 승천을 의미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사건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의미 변화가 예수에게 재림에 대한 관심을 귀속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고 보았다. 로빈슨에 따르면, 초기 교회의 전파 과정에서 예수의 가르침은 그가 선포했던 '현재 사건의 긴급함'보다는 그가 예언했다고 여겨진 '미래 사건의 임박함'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그는 예수의 본래 관심사는 "현재의 순간, 그의 사역에서 앞당겨 일하고 곧 그의 죽음과 정당성(부활)을 통해 '성취'될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에 의해 역사에 도입된 위기"와 관련 있었다고 설명한다.[14]
4. 3. 《신에게 솔직히》(Honest to God) (1963)
로빈슨은 여러 권의 호평받는 책을 저술했으며,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1963년에 출판된 《신에게 솔직히》(Honest to God)이다.[4][14] 로빈슨 자신은 1967년 저서 《신에 대한 탐구》(Exploration into God)에서 이 책의 주요 기여는 신학자 파울 틸리히와 디트리히 본회퍼의 사상을 종합하려 한 점이라고 밝혔다. 이들의 사상은 신학계에서는 잘 알려져 있었지만 일반 신자들에게는 생소한 것이었다. 이 책은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을 초자연적인 존재, 즉 '저 너머'(out there)에 계신 분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ground of being)으로 인식하도록 촉구하며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로빈슨이 제시한 수정된 신의 이미지는 그의 동료 케임브리지 신학자 해리 윌리엄스가 1962년 알렉 비들러가 편집한 심포지엄 "Soundings"에서 제시했던 신 개념의 심리적 해체와 유사한 측면이 있었다.[15] 흥미롭게도 로빈슨은 당시 너무 보수적인 신약학자로 여겨져 "Soundings"에 기고를 요청받지 못했다.[16] 이러한 보수적 성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로빈슨은 후기 저작에서 복음서의 초기 연대와 사도적 저술을 주장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신에게 솔직히》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뜨거웠고, 이 과정에서 로빈슨은 대중에게 급진적인 인물로 각인되었다.[17] 이러한 논란은 캔터베리 대주교 마이클 램지가 잉글랜드 성공회 총회의 전신인 교회 회의(Church Assembly)에서 로빈슨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상황으로 이어졌으며, 여러 곳에서 로빈슨의 사임 또는 면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램지 대주교는 로빈슨의 견해에 문제를 제기하며 "이미지, 옛 것과 새 것"(Image Old and New)이라는 소책자를 급히 출간하여 대응했지만, 로빈슨의 주장을 완전히 묵살하지는 않았다.[18] 실제로 램지는 훗날 머빈 스톡우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시 자신이 이 문제를 다룬 방식에 대해 후회한다고 인정하기도 했다.[19]
거의 끊임없이 재판되고 있는 이 책은, 우리가 이미 '저 위에'(up there) 계신 신, 즉 '하늘에 계신 노인'(the old man in the sky)과 같은 개념을 버렸듯이, '저 너머'(out there)에 존재하며 '우주적 최고 존재'(cosmic supremo)로서의 신 개념 역시 폐기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대신 로빈슨은 하나님을 '사랑'으로 재해석할 것을 주장했다.[4] 그는 파울 틸리히가 하나님을 '모든 존재의 근원'이라고 본 견해를 지지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예수]가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들고, 사랑 안에서 다른 이들에게 완전히 헌신함으로써, 그는 인간 존재의 근원이 사랑임을 드러내고 나타낸다."[4] 또한 "하나님에 대한 주장은 궁극적으로 사랑에 대한 주장이다"라고 강조했다.[4] 이 책의 일부 아이디어는 더 자유주의적인 기독교 사상가들에게 받아들여졌지만, 가톨릭교회와 개신교를 포함한 전통적인 기독교 해석을 지지하는 이들은 로빈슨의 주장을 현대주의에 대한 불필요한 타협으로 보고 거부했다.[20]
이러한 평가가 어느 정도 타당한지는 독자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신에게 솔직히》는 돈 쿠피트나 존 셸비 스퐁과 같은 급진적 신학자들의 작업과 1977년 존 힉이 편집한 심포지엄 《신화 속의 하나님》(The Myth of God Incarnate)으로 이어지는 논의의 출발점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로빈슨이 쿠피트처럼 신에 대한 관념이 전적으로 인간의 창조물이라고까지 주장했을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임종 시 "나는 기독교의 본질적인 진리를 결코 의심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13] 로빈슨은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을 투영하는 인물이 되었으며, 1963년 로빈슨과 데이비드 L. 에드워드가 편집한 《정직하게 하느님 논쟁》(The Honest to God Debate)에는 그의 접근법을 칭찬하는 글과 그를 무신론으로 비난하는 글이 혼재되어 실렸다.[21]
4. 4. 《신약성서 재고》(Redating the New Testament) (1976)
자유주의 신학자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존 A. T. 로빈슨은 성경 해석 분야에서 활동하던 동료 학자들의 연구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특히 신약 성경의 신뢰성을 다시 검토하면서, 20세기 동안 이 분야에서 독창적인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았다. 로빈슨은 과거의 학문이 "검증되지 않은 가정의 횡포"와 "거의 고의적인 맹목"에 의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22]
로빈슨은 그의 저서 《신약성서 재고》(Redating the New Testament, 1976)에서 신약 성경의 상당 부분이 서기 64년 이전에 기록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의 주요 근거 중 하나는 신약 성경 본문에서 서기 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 성전(헤롯 성전) 파괴 사건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보여주는 증거가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그는 네 복음서의 저작 시기를 다음과 같이 추정했다.[22]
복음서 | 추정 저작 시기 |
---|---|
마태복음 | 서기 40년 ~ 60년대 사이 |
마가복음 | 서기 45년 ~ 60년 사이 |
누가복음 | 서기 50년대 ~ 60년대 사이 |
요한복음 | 서기 40년 ~ 65년 또는 그 이후 |
또한 로빈슨은 야고보서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인 야고보에 의해 예수 사망 후 20년 이내에 쓰였으며, 바울에게 귀속된 모든 서신을 바울이 직접 저술했고, 네 번째 복음서인 요한복음을 쓴 "요한"은 사도 요한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연구 결과가 신약 성경에 대한 기존의 많은 신학적 이해를 재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고 보았다.[23][24][25]
로빈슨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신약학자 C. H. 도드는 로빈슨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후대의 연대 측정이 매우 임의적이고, 심지어 무모하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것은 제시할 수 있는 어떤 논쟁의 결과가 아니라, 초기 교회의 전통적인 입장에 동의하는 것처럼 보이면 고루한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라는 비평가의 편견의 결과입니다."라고 쓰며 로빈슨의 견해에 동조했다.[26] 로빈슨의 신약 성경 재연대 측정 요구는 이후 존 웬함, 클로드 트레몽탕, 귄터 춘츠, 카르스텐 페터 타이드, 에타 린네만, 해롤드 라일리, 장 카르미냑, 버나드 오차드 등 다른 학자들의 연구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바트 어먼과 같은 학자는 로빈슨이 제시한 복음서, 특히 요한복음의 이른 연대 추정은 대부분의 역사적 비평을 따르는 자유주의 성향 학자들 사이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27] 반면, 일부 보수적이거나 전통적인 입장의 학자들은 그의 공관 복음서 연대 측정에는 동의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28]
4. 5. 《요한 복음의 우선순위》(The Priority of John) (1984)
《요한 복음의 우선순위》(The Priority of Johneng)는 로빈슨이 사후에 출판된 저서이다. 이 책에서 로빈슨은 《신약성서 재고》(Redating the New Testamenteng)에서 제시했던 모든 신약성서 책이 서기 70년 이전에 쓰여졌다는 주장을 더욱 발전시켰다. 특히 전통적으로 가장 늦게 기록되었다고 여겨지는 요한 복음에 초점을 맞추었다.로빈슨은 이 책을 통해 요한 복음이 공관 복음서와는 독립적인 전승에 기반하며, 예수의 사역 기간, 연대, 팔레스타인 지역의 지리적 배경, 그리고 1세기 초반의 문화적 상황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공관 복음서보다 더 정확하고 우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했다.
이 저서는 로빈슨이 뱀프턴 강연을 위해 준비했던 원고를 바탕으로 하며, 그가 완성하지 못한 메모들을 J. F. Coakleyeng가 편집하여 출판한 것이다.
4. 6. 기타 저술 활동
로빈슨은 신학, 성서 연구, 기독교 신앙의 현대적 적용 등 다양한 주제에 걸쳐 폭넓은 저술 활동을 펼쳤다. 그의 주요 저서 외에도 다음과 같은 책들을 출판하였다.원본 연도 | 제목 | 출판사 (출판 정보) |
---|---|---|
1952 | The Body: A Study in Pauline Theology | Bimillennial Press (2002년 재출판) |
1959 | Jesus and His Coming | SCM Press (1979년 재출판) |
1960 | On Being the Church in the World | Mowbrays (1977년 재출판) |
1963 | Honest to God |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2년 재출판) |
1965 | The new Reformation? | SCM Press |
1967 | Exploration into God | Stanford University Press |
1967 | 'But that I Cant Believe!'' | New American Library |
1968 | In the End, God: A Study of the Christian Doctrine of the Last Things | James Clarke & Co (2011년 재출판) |
1971 | The difference in being a Christian today | Collins (1972년판 정보) |
1973 | The Human Face of God | Hymns Ancient & Modern (2012년 재출판) |
1976 | Redating the New Testament | Wipf & Stock (2000년 재출판) |
1979 | Truth is two-eyed | SCM Press |
1979 | Wrestling with Romans | Hymns Ancient & Modern |
1981 | The Roots of a Radical | Crossroad |
1983 | Where Three Ways Meet | SCM Press (1987년판 정보) |
1985 | The Priority of John (J. F. Coakley 편집) | Wipf & Stock (2011년 재출판) |
이 저서들은 로빈슨의 신학적 사유의 폭과 깊이를 보여주며, 특히 성공회 내에서의 그의 영향력과 현대 신학 논쟁에 대한 그의 기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5. 사회적 활동과 논란
로빈슨의 영향력은 후대 신학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고인이 된 미국 성공회 주교 존 셸비 스퐁은 로빈슨을 평생의 멘토로 여겼다. 스퐁은 2013년 인터뷰에서 로빈슨의 1963년 저서 ''정직하게 하느님께''를 읽었던 경험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마치 어제 읽은 것처럼 그의 첫 번째 책을 기억합니다. 책이 나왔을 때 저는 다소 거만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읽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다 읽기 시작했을 때는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세 번이나 읽었습니다! 제 신학은 이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주일학교에서 배운 문자주의를 어떻게 이 새로운 범주에 넣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했습니다."[30] 이는 로빈슨의 사상이 다음 세대 신학자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또한, 로빈슨이 울위치 주교로서 관할했던 지역인 런던 남동부 템즈미드에는 그의 이름을 딴 '주교 존 로빈슨 학교'(Bishop John Robinson School)가 세워져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31]
5. 1. 채털리 부인의 사랑 재판 증언 (1960)
로빈슨은 1960년 법정 증언에서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모든 기독교인이 읽어야 할 책"이라고 주장하며, 이 책에 대한 검열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29]5. 2. 진보적 신학 논쟁
로빈슨은 여러 권의 책을 썼는데,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1963년에 출판된 ''정직하게 하느님께''(Honest to God)이다.[15][16] 로빈슨 자신은 이 책이 신학자 파울 틸리히와 디트리히 본회퍼의 사상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종합하려는 시도였다고 밝혔다. 당시 이들의 신학은 학계에서는 중요하게 다루어졌지만, 일반 신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이 책은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을 초자연적인 존재, 즉 '저 너머'에 계신 분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으로 이해하도록 촉구하며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신 이해는 동료 케임브리지 신학자 해리 윌리엄스가 1962년 심포지엄 "Soundings"(알렉 비들러 편집)에서 제시한 심리적 접근과도 유사한 면이 있었다.[15] 흥미롭게도 로빈슨은 이 심포지엄에 기고를 요청받지 못했는데, 당시에는 그가 너무 보수적인 신약학자로 여겨졌기 때문이다.[16] 실제로 로빈슨은 이후 저서들에서 복음서의 초기 연대와 사도 저작설을 옹호하기도 했으나, 널리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정직하게 하느님께''가 출간되자 언론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고, 이 과정에서 로빈슨은 대중에게 급진적인 인물로 각인되었다.[17] 당시 캔터베리 대주교였던 마이클 램지는 잉글랜드 성공회 교회 회의(Church Assembly, 총회의 전신)에서 로빈슨을 공개적으로 비판했으며, 로빈슨의 사임이나 면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램지 대주교는 로빈슨의 견해에 반박하는 "이미지, 옛 것과 새 것"(Image Old and New)이라는 소책자를 급히 출간하기도 했지만, 로빈슨의 주장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았다.[18] 램지는 훗날 머빈 스톡우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시 자신이 이 문제를 다룬 방식에 대해 후회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19]
''정직하게 하느님께''는 '저 위에' 계신 신, 즉 '하늘에 있는 늙은이'와 같은 전통적인 신 관념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빈슨은 하나님을 '사랑'으로 재해석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파울 틸리히의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라는 주장을 지지하며, 예수가 자신을 비우고 사랑으로 타인에게 헌신함으로써 인간 존재의 근원이 사랑임을 드러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주장은 궁극적으로 사랑에 대한 주장"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생각은 자유주의 기독교 성향의 신학자들에게 일부 수용되었으나, 가톨릭교회나 개신교 내 전통적 입장을 지지하는 이들은 이를 현대 사조에 대한 불필요한 타협이라며 비판했다.[20]
''정직하게 하느님께''는 이후 돈 쿠피트나 존 셸비 스퐁과 같은 급진적인 신학자들의 작업과 1977년 존 힉이 편집한 심포지엄 ''신화 속의 하나님''(The Myth of God Incarnate) 등으로 이어지는 논의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로빈슨이 쿠피트처럼 신 관념이 전적으로 인간의 창조물이라고까지 주장했을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임종 직전 "나는 기독교의 본질적인 진실을 결코 의심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로빈슨은 그의 사상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과 논쟁의 중심인물이 되었으며, 1963년 로빈슨과 데이비드 L. 에드워즈가 함께 편집한 ''정직하게 하느님 논쟁''(The Honest to God Debate)에는 그의 접근을 옹호하는 글과 그를 무신론으로 비판하는 글들이 함께 실렸다.[21]
6. 죽음
로빈슨은 1983년에 말기 암 진단을 받았고, 같은 해 12월 5일 노스요크셔주 아른클리프에서 사망했다.
7. 유산
로빈슨은 1960년 펭귄 북스 재판에서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모든 기독교인이 읽어야 할 책"이라고 증언하며 검열에 반대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29]
그의 신학적 유산은 후대 신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미국 성공회 주교였던 존 셸비 스퐁은 로빈슨을 평생의 멘토로 여겼다. 스퐁은 2013년 인터뷰에서 로빈슨의 1963년 저서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마치 어제 읽은 것처럼 그의 첫 번째 책을 기억합니다. 책이 나왔을 때 저는 다소 거만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읽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다 읽기 시작했을 때는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세 번이나 읽었습니다! 제 신학은 이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주일학교에서 배운 문자주의를 어떻게 이 새로운 범주에 넣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했습니다."라고 말하며, 로빈슨의 책이 자신의 신학적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꾸었음을 밝혔다.[30]
또한 로빈슨이 울위치 주교로 봉직했던 지역인 런던 남동부 템즈미드에는 그의 이름을 딴 '주교 존 로빈슨 학교'가 세워져 있다.[31]
8. 작품 목록
원본 출판 연도 | 원제 | 한국어판 제목 |
---|---|---|
1952 | The Body: A Study in Pauline Theology | 몸: 바울 신학 연구 |
1959 | Jesus and His Coming | 예수와 그의 오심 |
1960 | On Being the Church in the World | 세상 속의 교회됨에 관하여 |
1962 | Twelve New Testament Studies | 열두 개의 신약 연구 |
1963 | Honest to God | 신께 정직하게 |
1965 | The new Reformation? | 새로운 종교 개혁? |
1967 | Exploration into God | 신으로의 탐험 |
1967 | 'But that I Cant Believe!'' | 하지만 그걸 믿을 수 없어! |
1968 | In the End, God: A Study of the Christian Doctrine of the Last Things | 결국, 신: 마지막 것에 대한 기독교 교리 연구 |
1971 | The difference in being a Christian today |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차이 |
1973 | The Human Face of God | 하나님의 인간적인 모습 |
1976 | Redating the New Testament | 신약 재해석 |
1979 | Truth is two-eyed | 진실은 두 눈을 가지고 있다 |
1979 | Wrestling with Romans | 로마서와 씨름하다 |
1981 | The Roots of a Radical | 급진주의자의 뿌리 |
1983 | Where Three Ways Meet | 세 길이 만나는 곳 |
1984 | Twelve More New Testament Studies | 신약 연구 12개 더 |
1985 | The Priority of John | 요한의 우선 순위 |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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