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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뉴 파울리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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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주니뉴 파울리스타는 브라질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그는 이투아누 FC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상파울루 FC, 미들즈브러 FC,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CR 바스쿠 다 가마, 셀틱 FC, SE 파우메이라스, CR 플라멩구, 시드니 FC 등 여러 클럽에서 뛰었다. 주니뉴는 미들즈브러에서 2003-04 풋볼 리그컵 우승을 차지했으며, 브라질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1997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과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개인적으로는 1997년 3월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선수, 1996-97 시즌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 1997년 북동부 FW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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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뉴 파울리스타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출생일1973년 2월 22일 (51세)
출생지상파울루, 브라질
1.65m
포지션공격형 미드필더
현재 소속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스태프)
클럽 경력
유소년 클럽1989–1992: 이투아누
클럽1993–1995: 상파울루 (44경기 2골)
1995–1997: 미들즈브러 (57경기 12골)
1997–2002: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55경기 14골)
1999–2000: → 미들즈브러 (임대) (28경기 4골)
2000–2001: → 바스쿠 다 가마 (임대) (47경기 13골)
2002: → 플라멩구 (임대) (0경기 0골)
2002–2004: 미들즈브러 (35경기 11골)
2004–2005: 셀틱 (14경기 1골)
2005–2006: 파우메이라스 (63경기 20골)
2007: 플라멩구 (0경기 0골)
2007–2008: 시드니 FC (14경기 0골)
2010: 이투아누 (2경기 2골)
총 클럽 출장 및 득점359경기 79골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팀1995–2003: 브라질 (49경기 5골)
수상
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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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클럽 경력

상파울루에서 태어난 주니뉴는 상파울루에 있는 지역 클럽인 FC 쿠르바두스 이 오르굴호수와 상 베르나르두 두 캄푸(상파울루주)에 기반을 둔 아마추어 팀인 에스포르테 클루베 DER에서 유소년 축구를 했으며, 2년 연속 유소년 시립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고, 클루베 아틀레치쿠 유벤투스에서는 풋살도 했다.

1990년 상파울루주 이투에 위치한 이투아누 FC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93년, 당시 우승팀이었던 상파울루 FC와의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경기에서 주니뉴는 득점을 기록하며 경기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고, 이투아누는 예상치 못한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 활약으로 상파울루 감독 텔레 산타나의 눈에 띄어 영입 제의를 받았다. 주니뉴는 그 시즌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중산층 출신으로, 아버지는 공무원이었다. 소년 시절에는 축구 학교에서 풋살을 했으며, 10대 시절부터 상파울루주에서 주목을 받았다. 체격이 작았기 때문인지 프로 데뷔는 19세로 늦었고, 유소년 대표팀에는 뽑히지 않았다.

1992년 상파울루주 중견 클럽 이투아누 FC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93년 당시 텔레 산타나 감독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전년 도요타컵 우승팀 상파울루 FC로 이적했다.[29] 초창기에는 레오나르두, 뮬렐 등 전방 선수층이 두터웠기 때문에 주로 후보로 머무는 경우가 많았지만, 산타나 감독의 지도 아래 슈퍼 서브 역할을 수행했다.

같은 해 도요타컵에서는 AC 밀란과 대결했다. 교체 출전하여 20세의 나이에 클럽 세계 챔피언의 경기에 나서는 경험을 했다.

1994년에는 주전으로 자리 잡아 공격형 미드필더 또는 FW로 활약하며 10번 레오나르두와 함께 상파울루의 공격을 이끌었다. 레오나르두가 가시마 앤틀러스로 이적하자 이후 상파울루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같은 해 코파 CONMEBOL레코파 수다메리카나 우승을 차지했다. 1995년에는 등번호를 10번으로 변경하고, 카이우와 환상적인 콤비 플레이를 선보이며 브라질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1993년, 주니뉴는 상파울루 FC로 이적하여 1993년 인터컨티넨털컵Intercontinental Cup영어, 1960~2004)에서 이탈리아의 AC 밀란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 등 여러 트로피를 획득했고, 1994년 코파 CONMEBOL에서도 우승을 거머쥐었다.[29] 유럽 무대에 진출하기 전인 1995년 2월 브라질 국가대표팀("Seleção") 데뷔전을 치렀다.

1995년 10월, 주니뉴는 475만 파운드에 잉글랜드 클럽 미들즈브러에 입단했다.[4] 이는 FA 프리미어리그로 승격된 지 불과 몇 달 후였다.[5] 당시 22세였던 주니뉴는 여러 유럽 최고 클럽들의 주목을 받았고, "티사이더스(Teessiders)"로 불리는 미들즈브러에 입단한 것은 큰 놀라움이었다.[6] 주니뉴는 지역 라디오 방송인 데이브 로버츠가 그의 축구 토크쇼에서 그에게 붙인 별명 때문에 보로 팬들에게 "TLF"(The Little Fella, 작은 친구)로 알려졌다.[6]

1995년 11월 4일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얀 아게 쇠르토프의 데뷔골을 어시스트하며 1대1 무승부를 기록했다.[7] 주니뉴는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1997년 FA컵과 리그컵 결승 진출을 이끌었지만, 두 대회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1996-97 시즌, 미들즈브러는 승점 3점 감점으로 인해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8] 시즌 마지막 날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1대1 무승부로 강등이 확정된 후, 주니뉴는 눈물을 흘렸다.[8] 강등에도 불구하고 주니뉴는 잔프랑코 졸라에 이어 FWA 올해의 선수상 2위를 차지했다.[9]

주니뉴는 파브리치오 라바넬리와 뛰어난 호흡을 보여주었다.

결국 주니뉴는 1998년 월드컵 브라질 대표팀에 합류할 기회를 잡기 위해 미들즈브러를 떠났다.[9] 주니뉴는 미들즈브러에서 첫 번째 시절 동안 74경기에 출전하여 17골을 넣었다.[10]

2002년 여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떠나 600만 파운드에 미들즈브러에 영구 이적하며 세 번째 미들즈브러 생활을 시작했다.[15] 그는 리버사이드 스타디움에서 2년을 보냈고, 팀의 첫 번째이자 지금까지 유일한 메이저 우승인 2003-04 EFL컵 우승을 이끌었다. 2007년 12월, PFA 팬 투표에서 미들즈브러 팬들이 뽑은 역대 최고 선수로 선정되었다.[16] 주니뉴는 테스사이드 지역의 많은 미들즈브러 팬들에게 여전히 영웅으로 여겨진다.[17]

주니뉴는 1300만 파운드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하여 처음에는 좋은 활약을 보였다. 레알 마드리드와의 개막전에서 리가 데뷔골을 터뜨리며 팀의 에이스로 자리잡았고, 크리스티안 비에리, 키코 등과 함께 공격진을 구성하여 전반기 3위에 오르는 원동력이 되었다.[11][12] 이 기간 동안 브라질 대표팀에도 복귀하여 1997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결승전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주전 자리를 되찾아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의 그의 활동은 부상으로 크게 방해받았고,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1998년 2월 1일, 셀타 비고와의 리그 경기에서 상대팀 수비수 미첼 살가도의 태클로 비골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13] 이 부상으로 6개월 동안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고, 1998년 FIFA 월드컵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6개월 만에 복귀했지만, 이후 감독으로 부임한 알레고 사키와 클라우디오 라니에리가 판타지스타를 필요로 하지 않는 전술을 구사하면서 전력 외로 분류되었다.

1999-2000 시즌 미들즈브러 임대 복귀 후, 주니뉴는 브라질로 돌아와 바스쿠 다 가마로 이적했다. 로마리우, 에우렐, 주니뉴 페르남부카누, 조르지뉴 등이 있던 바스쿠 다 가마에서 등번호 10번을 받은 주니뉴는 점차 본래의 페이스를 되찾으며 부활했다. 코파 메르쿠소르 결승전에서는 0-3으로 뒤처진 상황에서 주니뉴와 로마리우의 활약으로 4-3 역전승을 거두며 우승을 차지했다. 로마리우는 이 해 남미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고, 주니뉴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며 브라질 대표팀에 복귀했다.

2002년, 미들즈브러로 이적하여 풋볼 리그컵 우승에 공헌했다.

2004 시즌이 끝나갈 무렵, 주니뉴는 자유 계약으로 스코틀랜드 클럽 셀틱으로 이적하여, 셀틱의 라이벌 레인저스와의 올드 펌 더비에서 데뷔전을 치렀는데, 셀틱이 1-0으로 승리했다.[18] 셀틱에서 활동하는 동안 주니뉴는 주전 자리를 꿰차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마틴 오닐 감독이 자신을 충분히 기용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19] 주니뉴는 평소 미드필더 중앙에서 뛰던 것과 달리, 이미 자리를 잡은 셀틱 미드필더 스틸리안 페트로프와 닐 레넌의 존재로 인해 오닐 감독에 의해 종종 오른쪽 측면에 배치되었다.[19] 주니뉴는 셀틱에서 2004년 10월 하츠와의 경기에서 3-0 승리에 1골을 기록한 것이 그의 셀틱 시절 유일한 득점이었다.[20][21]

2004년에는 출전 기회를 찾아 다시 조국으로 돌아와 상파울루주파우메이라스로 이적하여 에지미우두와 함께 에이스로 활약했다. 2005년 파우메이라스에 입단하며 브라질로 복귀했다.[20] 브라질 대표팀에는 발탁되지 않았지만, 득점왕 순위와 베스트 일레븐 순위에서도 상위권을 유지했다.

2007년에는 파우메이라스 구단 경영진을 비판한 것을 계기로 팀을 떠났다. 다시 플라멩구로 이적하여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 도전했지만, 팀은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같은 해 5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8강전에서 우루과이 팀 데펜소르 스포르팅에 0-3으로 패배한 경기에서 전반전 교체를 거부하고 네이 프랑코 감독과 언쟁을 벌이며 모욕적인 발언을 한 후 해고당했다.

출전 기회를 찾아 이번에는 오스트레일리아시드니로 이적했다. 브라질, 카타르, 홍콩의 클럽들이 주니뉴와 계약하려는 의향을 보였지만, 그는 A-리그의 시드니 FC에 마케팅 선수로 합류하기로 결정했다.[22] 2007년 8월 1일에 계약을 체결했으며,[23] 클럽이 그에게 보여준 관심이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그러나 부상 등으로 고전하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2008년 3월 팀을 떠났다. 시즌 초 어깨 부상으로 인해 주니뉴는 오랫동안 벤치를 지켰고, 만성적인 통증, 거친 플레이, 2차 부상으로 인해 경기력이 저하되어 매 경기 전에 진통제와 코르티손을 복용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드니의 LA 갤럭시와의 5-3 승리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는 등 몇몇 인상적인 경기를 보여주었다.

이후 복귀를 목표로 파우메이라스의 시설을 빌려 훈련을 거듭했다. 2010년, 처음으로 프로 계약을 맺었던 구단인 친정팀 이투아누에서 다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1월, 주니뉴는 브라질 클럽 이투아누의 선수 겸 회장으로 현역에 복귀했고, 시즌 마지막 날 은퇴를 앞두고 팀의 강등을 막는 결승골을 넣었다. 또한 미들즈브러로 돌아와 자신의 은퇴 기념 경기에 출전했는데, 이 경기에서는 PSV 아인트호벤이 미들즈브러를 3-2로 이겼다.

2. 1. 초기 경력 (브라질)

주니뉴는 상파울루주(상파울루/São Paulopt) 중견 클럽 이투아누 FC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93년 당시 텔레 산타나 감독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전년 도요타컵 우승팀 상파울루 FC로 이적했다. 초창기에는 레오나르두, 뮬레르 등 전방 선수층이 두터웠기 때문에 주로 후보로 머무는 경우가 많았지만, 산타나 감독의 지도 아래 슈퍼 서브 역할을 수행했다.

1990년 상파울루주 이투에 위치한 이투아누 FC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93년, 당시 우승팀이었던 상파울루 FC와의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경기에서 주니뉴는 득점을 기록하며 경기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고, 이투아누는 예상치 못한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 활약으로 상파울루 감독 텔레 산타나의 눈에 띄어 영입 제의를 받았다. 주니뉴는 그 시즌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중산층 출신으로, 아버지는 공무원이었다. 소년 시절에는 축구 학교에서 풋살을 했으며, 10대 시절부터 상파울루주에서 주목을 받았다. 체격이 작았기 때문인지 프로 데뷔는 19세로 늦었고, 유소년 대표팀에는 뽑히지 않았다.

같은 해 도요타컵에서는 AC 밀란과 대결했다. 교체 출전하여 20세의 나이에 클럽 세계 챔피언의 경기에 나서는 경험을 했다.

1994년에는 주전으로 자리 잡아 공격형 미드필더 또는 FW로 활약하며 10번 레오나르두와 함께 상파울루 FC의 공격을 이끌었다. 레오나르두가 가시마 앤틀러스로 이적하자 이후 상파울루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같은 해 코파 코네볼과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우승을 차지했다. 1995년에는 등번호를 10번으로 변경하고, 카이우와 환상적인 콤비 플레이를 선보이며 브라질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2. 2. 상파울루 FC (브라질)

1993년, 주니뉴는 상파울루 FC로 이적하여 1993년 인터컨티넨털컵Intercontinental Cup영어, 1960~2004)에서 이탈리아의 AC 밀란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 등 여러 트로피를 획득했고, 1994년 코파 CONMEBOL에서도 우승을 거머쥐었다.[29] 유럽 무대에 진출하기 전인 1995년 2월 브라질 국가대표팀("Seleção") 데뷔전을 치렀다.

1992년 상파울루주 중견 클럽 이투아누 FC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93년 당시 텔레 산타나 감독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전년 도요타컵 우승팀 상파울루 FC로 이적했다.[29] 초창기에는 레오나르두, 뮬렐 등 전방 선수층이 두터웠기 때문에 주로 후보로 머무는 경우가 많았지만, 산타나 감독의 지도 아래 슈퍼 서브 역할을 수행했다.

같은 해 도요타컵에서는 AC 밀란과 대결했다. 교체 출전하여 20세의 나이에 클럽 세계 챔피언의 경기에 나서는 경험을 했다.

1994년에는 주전으로 자리 잡아 공격형 미드필더 또는 FW로 활약하며 10번 레오나르두와 함께 상파울루 FC의 공격을 이끌었다. 레오나르두가 가시마 앤틀러스로 이적하자 이후 상파울루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같은 해 코파 CONMEBOL레코파 수다메리카나 우승을 차지했다. 1995년에는 등번호를 10번으로 변경하고, 카이우와 환상적인 콤비 플레이를 선보이며 브라질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2. 3. 미들즈브러 FC (잉글랜드)

1995년 10월, 주니뉴는 475만 파운드에 잉글랜드 클럽 미들즈브러에 입단했다.[4] 이는 FA 프리미어리그로 승격된 지 불과 몇 달 후였다.[5] 당시 22세였던 주니뉴는 여러 유럽 최고 클럽들의 주목을 받았고, "티사이더스(Teessiders)"로 불리는 미들즈브러에 입단한 것은 큰 놀라움이었다.[6] 주니뉴는 지역 라디오 방송인 데이브 로버츠가 그의 축구 토크쇼에서 그에게 붙인 별명 때문에 보로 팬들에게 "TLF"(The Little Fella, 작은 친구)로 알려졌다.[6]

1995년 11월 4일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얀 아게 쇠르토프의 데뷔골을 어시스트하며 1대1 무승부를 기록했다.[7] 주니뉴는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1997년 FA컵과 리그컵 결승 진출을 이끌었지만, 두 대회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1996-97 시즌, 미들즈브러는 승점 3점 감점으로 인해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8] 시즌 마지막 날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1대1 무승부로 강등이 확정된 후, 주니뉴는 눈물을 흘렸다.[8] 강등에도 불구하고 주니뉴는 잔프랑코 졸라에 이어 FWA 올해의 선수상 2위를 차지했다.[9]

주니뉴는 파브리치오 라바넬리와 뛰어난 호흡을 보여주었다.

결국 주니뉴는 1998년 월드컵 브라질 대표팀에 합류할 기회를 잡기 위해 미들즈브러를 떠났다.[9] 주니뉴는 미들즈브러에서 첫 번째 시절 동안 74경기에 출전하여 17골을 넣었다.[10]

2002년 여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떠나 600만 파운드에 미들즈브러에 영구 이적하며 세 번째 미들즈브러 생활을 시작했다.[15] 그는 리버사이드 스타디움에서 2년을 보냈고, 팀의 첫 번째이자 지금까지 유일한 메이저 우승인 2003-04 EFL컵 우승을 이끌었다. 2007년 12월, PFA 팬 투표에서 미들즈브러 팬들이 뽑은 역대 최고 선수로 선정되었다.[16] 주니뉴는 테스사이드 지역의 많은 미들즈브러 팬들에게 여전히 영웅으로 여겨진다.[17]

2. 4.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스페인)

주니뉴는 1300만 파운드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하여 처음에는 좋은 활약을 보였다. 레알 마드리드와의 개막전에서 리가 데뷔골을 터뜨리며 팀의 에이스로 자리잡았고, 크리스티안 비에리, 키코 등과 함께 공격진을 구성하여 전반기 3위에 오르는 원동력이 되었다.[11][12] 이 기간 동안 브라질 대표팀에도 복귀하여 1997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결승전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주전 자리를 되찾아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의 그의 활동은 부상으로 크게 방해받았고,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1998년 2월 1일, 셀타 비고와의 리그 경기에서 상대팀 수비수 미첼 살가도의 태클로 비골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13] 이 부상으로 6개월 동안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고, 1998년 FIFA 월드컵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6개월 만에 복귀했지만, 이후 감독으로 부임한 알레고 사키와 클라우디오 라니에리가 판타지스타를 필요로 하지 않는 전술을 구사하면서 전력 외로 분류되었다.

2. 5. 브라질 복귀 및 기타 클럽

1999-2000 시즌 미들즈브러 임대 복귀 후, 주니뉴는 브라질로 돌아와 바스쿠 다 가마로 이적했다. 로마리우, 에우렐, 주니뉴 페르남부카누, 조르지뉴 등이 있던 바스쿠 다 가마에서 등번호 10번을 받은 주니뉴는 점차 본래의 페이스를 되찾으며 부활했다. 코파 메르쿠소르 결승전에서는 0-3으로 뒤처진 상황에서 주니뉴와 로마리우의 활약으로 4-3 역전승을 거두며 우승을 차지했다. 로마리우는 이 해 남미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고, 주니뉴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며 브라질 대표팀에 복귀했다.

2002년, 미들즈브러로 이적하여 풋볼 리그컵 우승에 공헌했다.

2004 시즌이 끝나갈 무렵, 주니뉴는 자유 계약으로 스코틀랜드 클럽 셀틱으로 이적하여, 셀틱의 라이벌 레인저스와의 올드 펌 더비에서 데뷔전을 치렀는데, 셀틱이 1-0으로 승리했다.[18] 셀틱에서 활동하는 동안 주니뉴는 주전 자리를 꿰차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마틴 오닐 감독이 자신을 충분히 기용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19] 주니뉴는 평소 미드필더 중앙에서 뛰던 것과 달리, 이미 자리를 잡은 셀틱 미드필더 스틸리안 페트로프와 닐 레넌의 존재로 인해 오닐 감독에 의해 종종 오른쪽 측면에 배치되었다.[19] 주니뉴는 셀틱에서 2004년 10월 하츠와의 경기에서 3-0 승리에 1골을 기록한 것이 그의 셀틱 시절 유일한 득점이었다.[20][21]

2004년에는 출전 기회를 찾아 다시 조국으로 돌아와 상파울루주파우메이라스로 이적하여 에지미우두와 함께 에이스로 활약했다. 2005년 파우메이라스에 입단하며 브라질로 복귀했다.[20] 브라질 대표팀에는 발탁되지 않았지만, 득점왕 순위와 베스트 일레븐 순위에서도 상위권을 유지했다.

2007년에는 파우메이라스 구단 경영진을 비판한 것을 계기로 팀을 떠났다. 다시 플라멩구로 이적하여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 도전했지만, 팀은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같은 해 5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8강전에서 우루과이 팀 데펜소르 스포르팅에 0-3으로 패배한 경기에서 전반전 교체를 거부하고 네이 프랑코 감독과 언쟁을 벌이며 모욕적인 발언을 한 후 해고당했다.

출전 기회를 찾아 이번에는 오스트레일리아시드니로 이적했다. 브라질, 카타르, 홍콩의 클럽들이 주니뉴와 계약하려는 의향을 보였지만, 그는 A-리그의 시드니 FC에 마케팅 선수로 합류하기로 결정했다.[22] 2007년 8월 1일에 계약을 체결했으며,[23] 클럽이 그에게 보여준 관심이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그러나 부상 등으로 고전하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2008년 3월 팀을 떠났다. 시즌 초 어깨 부상으로 인해 주니뉴는 오랫동안 벤치를 지켰고, 만성적인 통증, 거친 플레이, 2차 부상으로 인해 경기력이 저하되어 매 경기 전에 진통제와 코르티손을 복용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드니의 LA 갤럭시와의 5-3 승리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는 등 몇몇 인상적인 경기를 보여주었다.

이후 복귀를 목표로 파우메이라스의 시설을 빌려 훈련을 거듭했다. 2010년, 처음으로 프로 계약을 맺었던 구단인 친정팀 이투아누에서 다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1월, 주니뉴는 브라질 클럽 이투아누의 선수 겸 회장으로 현역에 복귀했고, 시즌 마지막 날 은퇴를 앞두고 팀의 강등을 막는 결승골을 넣었다. 또한 미들즈브러로 돌아와 자신의 은퇴 기념 경기에 출전했는데, 이 경기에서는 PSV 아인트호벤이 미들즈브러를 3-2로 이겼다.

3. 국가대표 경력

주니뉴 파울리스타는 1995년 브라질 국가대표팀에 데뷔하여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30] 1997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에 기여했다.[24]

2002년 FIFA 월드컵에서는 브라질 대표팀으로 발탁되었으나, 소속 클럽에서의 부진으로 호나우지뉴에게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를 내주고 수비적인 미드필더로 출전했다.[30] 조별 리그에서는 선발 출전했지만, 토너먼트 단계 이후에는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의 수비 중시 전술로 인해 호제 클레베르송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출전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다. 그러나 결승전 독일과의 경기에서 후반에 교체 투입되어 브라질의 우승에 기여했다.[30]

국가대표팀별 출전 및 득점 기록은 다음과 같다.[24]

국가대표팀년도출전득점
브라질1995151
199600
199790
199800
199910
200031
2001112
200291
200310
합계495


4. 플레이 스타일

5. 수상 내역

'''상파울루'''[25]



'''바스쿠 다 가마'''[25]

  • 브라질 세리에 A: 2000년
  • 코파 메르코술: 2000년


'''미들즈브러'''[25]

  • 풋볼 리그컵: 2003-04


'''플라멩구'''[25]

'''브라질'''[25]

'''개인'''

  •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선수: 1997년 3월[26]
  •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 1996-97[26]
  • 미들즈브러 올해의 선수: 1996-97
  • 북동부 FWA 올해의 선수: 1997[27]
  • 볼라 지 프라타: 2000년, 2005년[25]
  • 남미 올해의 팀: 2000년, 2001년[28]

5. 1. 클럽

주니뉴는 상파울루 FC에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1993, 1993년 수페르코파 리베르타도레스, 1993년 인터컨티넨털컵, 1993년, 1994년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1994년 코파 코네볼 우승을 차지했다.[25] CR 바스쿠 다 가마에서는 2000년 브라질 세리에 A와 2000년 코파 메르코술에서 우승했다.[25] 미들즈브러 FC 소속으로 2003-04 풋볼 리그컵 우승을 경험했고,[25] CR 플라멩구에서는 2007년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을 달성했다.[25]

5. 2. 국가대표

주니뉴 파울리스타는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활약하며 1997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2002년 FIFA 월드컵 우승에 기여했다.[25]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1995년에 준우승을 차지했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5. 3. 개인

주니뉴 파울리스타는 여러 개인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25] 1996-97 시즌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26], 1997년 3월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선수[26], 미들즈브러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1997년에는 북동부 FW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27] 볼라 지 프라타는 2000년과 2005년에 수상했으며,[25] 2000년과 2001년에는 남미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28] 그 외에도 1995년 코파 아메리카 최우수 선수, 1995년 브라질 최우수 선수, CARLING PREMIERSHIP PLAYER OF THE YEAR 1996-97, 2000년 CONMEBOL 베스트 일레븐 등에 선정된 기록이 있다.

참조

[1] 웹사이트 Juninho Paulista Midfielder, Profile & Stats {{!}} Premier League https://www.premierl[...] 2023-06-03
[2] 웹사이트 Caboclo takes over at CBF promising Brazilian reform and an end to corruption http://www.insidewor[...] 2019-06-17
[3] 뉴스 Juninho Paulista: 'Brazil Will Fight For The World Cup' https://www.forbes.c[...] 2021-12-24
[4] 뉴스 The man to lead romantic revival https://www.independ[...] 1995-06-10
[5] 웹사이트 How Middlesbrough's mid-1990s transfers changed English football https://www.theguard[...] 2014-07-31
[6] 뉴스 Middlesbrough sign Juninho https://www.independ[...] 1995-10-08
[7] 웹사이트 Middlesbrough 1 Leeds 1 http://www.11v11.com[...]
[8] 뉴스 Universally popular footballers: piecing together a team of likable players https://www.theguard[...] 2013-02-26
[9] 뉴스 The thrill from Brazil https://www.thetimes[...] 2004-08-29
[10] 뉴스 Juninho's taste for Teesside http://news.bbc.co.u[...] BBC 2002-07-03
[11] 뉴스 Juninho, roto – Una fractura de peroné le aparta del Atlético y casi seguro del Mundial http://www.elmundo.e[...] 1998-02-02
[12] 뉴스 El Celta exige para Míchel Salgado el beneficio de la duda http://www.elmundo.e[...] 1998-02-19
[13] 뉴스 Guardiola renuncia a acudir a Francia'98 https://www.elmundo.[...] 1998-05-06
[14] 뉴스 Juninho's rise and fall from Boro's finest to nearly man https://www.theguard[...] 2000-05-09
[15] 뉴스 Juninho heads back to Boro http://news.bbc.co.u[...] 2002-07-26
[16] 웹사이트 Juninho Paulista: Ending the Fairy Tale https://bleacherrepo[...] 2008-10-28
[17] 뉴스 I would love to play one last Boro game – Juninho http://www.gazetteli[...] 2008-10-25
[18] 뉴스 Celtic 1-0 Rangers http://news.bbc.co.u[...] BBC 2004-08-29
[19] 웹사이트 Juninho a samba ace who failed to hit beat http://www.eveningti[...]
[20] 뉴스 Juninho signs deal with Palmeiras http://news.bbc.co.u[...] BBC 2005-04-06
[21] 뉴스 Celtic 3–0 Hearts http://news.bbc.co.u[...] BBC 2004-10-16
[22] 웹사이트 The Australian A-League – an introduction to the Marquee player system http://soccerlens.co[...] 2008-03-16
[23] 뉴스 Sydney FC end marquee mess with Juninho swoop https://www.smh.com.[...] 2007-08-01
[24] 선수
[25] 웹사이트 Juninho Paulista – Trophies http://www.sambafoot[...]
[26] 웹사이트 Juninho: Overview https://www.premierl[...] Premier League
[27] 웹사이트 Saint-Maximin voted North-East FWA Player of the Year https://footballwrit[...] 2022-01-13
[28] 뉴스 South American Team of the Year https://www.rsssf.or[...] 2009-01-16
[29] 간행물 サンスパーク カップ1995(日本代表xブラジル代表) 大会公式パンフレット p10-11
[30] 웹사이트 {{PAGENAMEBASE}} https://www.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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