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피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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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치피오나는 스페인 카디스 지방에 위치한 도시로, 고대 로마 시대부터 역사가 시작되었다. 과달키비르강 하구에 등대가 건설되었고, 로마 집정관 카에피온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이 유래되었다. 중세 시대에는 성모 레글라의 이미지가 전해져 성당이 세워졌으며, 1251년 페르난도 3세에 의해 정복되었다. 1755년 리스본 지진으로 쓰나미 피해를 입었으며, 현재 치피오나 등대, 레글라의 성모 성지, 치피오나 성 등의 명소가 있다. 카니발, 부활절, 성모 축일 등 다양한 축제가 열리며, 1842년부터 2021년까지 인구 변동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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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피오나 - 치피오나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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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피오나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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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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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명칭 | 치피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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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 | 위도 36° 44' N, 경도 6° 26' W |
해발 고도 | 4m |
면적 | 32.92 km2 |
인구 (2021년) | 19386명 |
인구 밀도 | 자동 계산 |
시간대 | CET (+1) |
서머 타임 | CEST (+2) |
우편 번호 | 11550 |
행정 구역 | |
국가 | 스페인 |
자치 지방 | 안달루시아 |
도 | 카디스 |
코마르카 | 코스타 노로에스테 데 카디스 |
자치 연합 | Municipios del Bajo Guadalquivir |
정치 | |
시장 | Antonio Peña Izquierdo |
2. 역사
2. 1. 고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지리학자 스트라보(Strabo)와 폼포니우스 멜라(Pomponius Mela)에 따르면, 과달키비르강 하구에는 투리스 카에피오니스(Turris Caepionis)라고 불리는 등대가 있었다. 이 등대는 로마 집정관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에피온(Quintus Servilius Caepion) 또는 그의 후계자의 명령에 의해 건설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등대는 선박에게 위험한 장소와 과달키비르강의 항해 가능한 입구를 표시했다. 치피오나(Chipiona)는 로마 집정관 카에피온(Caepion)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이 지역은 전설적인 게리온의 무덤인 아르스 게리오니스(Ars Gerionis)의 자리로 확인되었는데, 이 무덤은 바다로 튀어나온 좁은 곶 끝에 위치해 있었으며, 아마도 현재 살메디나(Salmedina) 근처, 또는 단순히 살메디나의 돌(Stone of Salmedina)로 알려진 암초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주장은 문헌과 기원전 2세기 로마 고고학적 발견에만 근거한다.
2. 2. 중세
전설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제자들이 반달족의 침략을 피해 바다를 건너 치피오나에 성모 레글라의 이미지를 가지고 도착했다고 한다. 성모 레글라 성당 근처에서 서고트 시대의 묘비가 발견되었다. 711년 이베리아 반도가 이슬람화된 후, 전설에 따르면 은둔자들이 수도원인 요새에서 약 30걸음 떨어진 물탱크에 이미지를 숨겼다고 한다. 이 그림은 14세기에 성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한 멤버가 하늘의 계시를 받고 발견할 때까지 숨겨져 있었다고 전해진다. 성모 레글라 성당은 물탱크 주변에 세워졌다.1251년 치피오나는 페르난도 3세 국왕에게 정복되었으며, 1264년에는 그의 아들 알폰소 10세 현왕에 의해 더욱 확실하게 정복되었다. 1297년, 페르난도 4세 국왕은 메디나 시도니아 가문의 창시자인 구즈만 엘 부에노에게 치피오나가 속한 산루카르 영지를 하사했다.
1303년 구즈만 엘 부에노와 마리아 알론소 코로넬의 장녀 이사벨 페레즈 데 구즈만은 페르난 폰세 데 레온과 결혼하여 로타와 치피오나 마을을 지참금으로 받아 산루카르 영지에서 독립하고 아르코스 가문의 후손인 폰세 데 레온 가문의 소유에 합류했다.
2. 3. 근대
1755년, 치피오나는 리스본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쓰나미로 큰 피해를 입었다. 쓰나미는 지진 발생 약 1시간 후에 도시를 덮쳐 4명이 사망하고 거리가 침수되었으며 해변이 피해를 입었다. 실제 피해액은 238,815로 추정된다.자비의 그리스도상은 물의 후퇴를 요청하기 위해 행렬로 옮겨졌으며, 이 행렬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딴 예배당에서 이른바 바다의 십자가(Cruz del Mar)까지 매년 11월에 반복된다.
1755년 12월 6일, 누에스트라 세뇨라 산타 마리아 데 레글라 성 수도원 공동체의 지진 기록은 다음과 같다.
''11월 1일, 해가 뜰 때부터 오전 10시까지 어떤 소식도 없었고, 잔잔하고 평화로운 날이었으며, 바다는 고요했고 잔잔했으며, 약간의 북풍이 불었다. 그러나 오전 10시가 되자, 이 공동체는 높은 합창단으로 테르체를 엄숙하게 불렀는데, 합창단과 교회에 이상한 흔들림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눈에 띄게 보면, 강단, 교회 램프, 제단의 촛대, 그리고 사원 전체가 요람처럼 이쪽에서 저쪽으로 흔들리고 움직였다.''
''우리는 이것이 끔찍한 지진임을 알았고,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었고, [돌로] 된 건물 전체가 우리 위로 무너질 것이라는 의심이 들었지만, 우리 모두는 같은 우월한 충동에 묶여 있었고, 그녀의 웅장한 왕좌에서 눈에 띄는 우리의 성스러운 형상의 후원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합창단을 떠날 자유가 없었다. 그때 우리는 무릎을 꿇고 헌신을 다하며, 더욱 일관성 있게 정규 시간을 계속했다.''
''땅이 다시 조용해지고 자연스러운 고요함으로 돌아가는 것을 알고, 지진은 10분에서 12분 동안 지속되었고, 공동체는 자리에 앉기 시작하여 각자 신의 자비와 룰의 성모 마리아, 우리 성모님의 후원을 인식했으며, 우리는 그러한 행복으로 위협적인 파괴에서 벗어났으며 수도원 모든 지역에서 조금의 피해도 경험하지 않았다.''
''수도원 미사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칸토세 되었고, 그것이 끝나자 6시가 불려졌는데, 그것은 11시 4분과 같았고, 바다에서 끔찍한 포효가 들렸으며, 두 파도가 솟아올라 거세게 물을 언급된 요새와 수도원의 절벽에 던졌고, 그 안에 있던 포수(우리의 성스러운 형상의 후원을 외쳐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가 압도되었고, 수도원의 벽에 떨어졌고, 침수된 참호를 향해 달려가 교회를 둘러싸고 동쪽을 바라보며 농장의 정문을 통해 들어가기 위해 2면을 둘러쌌다.''
''예상치 못한 바다의 쇄도에 놀라 밖과 합창단 안에 있던 몇몇 수도자들은 들판으로 도망쳤고, 다른 사람들은 같은 합창단에 머물렀다.''
3. 지리
3. 1. 주요 명소
치피오나 등대는 이 도시의 가장 상징적인 기념물이다. 스페인에서 가장 크고, 유럽에서 3번째, 세계에서 5번째로 큰 등대이다. 기저부에서 높이는 약 69미터이며, 1867년에 건설되었고, 푼타 델 페로에 위치해 있다. 과달키비르강으로 접근하는 선박이 살메디나 암초와 충돌하는 것을 막기 위해 건설되었다.1990년대 초 과달키비르강 어귀 근처에 마리나가 건설되었고, 2008년에 확장 공사를 거쳤다.
레글라의 성모 성지는 현재의 성지 건물은 20세기 초에 프란체스코 선교 공동체가 몽팡시에 공작의 도움을 받아 지었다. 원래는 14세기 폰세 데 레온 가문의 고대 성 요새였으며, 1399년 성 아우구스티노 은둔자회에 기증되어 교회로 개조되었다.
치피오나 성은 카디스 박물관과 신세계를 소장하고 있다.
머스캣 박물관은 2012년에 개관했다. 가톨릭 농업 협동조합에 위치해 있다.
4. 문화
4. 1. 축제
치피오나는 다양한 축제로 유명하다.- 카니발: 1896년 시의회 칙령으로 절차가 규정된 오랜 전통을 가진 축제이다. 프랑코 시대에 금지되었다가 1984년에 부활하여 매년 2월과 3월에 열리며, 말 퍼레이드로 마무리된다.
- 부활절: 두 개의 참회 형제단이 있다. 1960년부터 시작된 예수 갇힌 아버지의 형제단과 나사렛 형제단은 성 목요일에, 선고의 성 크리스트 형제단은 성 금요일에 참회를 수행한다.
- 피나르 순례: 6월 첫째 일요일에 빌라의 피나르에서 열리며, 레글라 델 피나르의 성모가 기마병, 마차, 일반 대중과 함께 소나무 숲으로 돌아간다.
- 카르멜 산의 성모: 항해자들의 수호성인 축일인 7월 16일에 행진하며, 바다 십자가(Cruz del Mar) 해변에서 불꽃놀이로 마무리된다.
- 저녁 규칙: 레글라의 성모에게 헌정되며 9월 8일에 레글라 해변에서 불꽃놀이로 마무리된다.
- 할로윈과 모든 성인의 축제: 10월 31일에는 아이들이 분장하여 사탕을 구걸하고, 11월 1일에는 리스본 쓰나미에서 수행된 기적을 기리는 자비의 성 크리스트 감사 행렬이 열린다.
- 크리스마스: 도시가 크리스마스 조명으로 장식되고, 베들레헴 협회 "Caepionis"가 다양한 활동을 조직한다. 잠봄바스(드럼 밴드)가 조직되고, 1월 5일에는 동방 박사 행렬이 열린다.
4. 2. 인구
1842년부터 2021년까지 치피오나의 인구 변동은 다음과 같다.[2]연도 | 인구 |
---|---|
1842 | 1,731 |
1857 | 2,133 |
1860 | 2,115 |
1877 | 2,706 |
1887 | 3,067 |
1897 | 3,962 |
1900 | 4,083 |
1910 | 4,615 |
1920 | 4,725 |
1930 | 5,023 |
1940 | 5,916 |
1950 | 6,607 |
1960 | 8,207 |
1970 | 10,038 |
1981 | 12,484 |
1991 | 14,297 |
2001 | 16,852 |
2011 | 18,815 |
2021 | 19,386 |
위 표는 스페인 국립 통계 연구소(INE)에 따른 ''법적'' 인구 조사 인구와 ''사실상'' 인구 조사 인구를 나타낸다.
참조
[1]
간행물
Census population at 1 January 2021
National Statistics Institute (Spain)
[2]
웹사이트
Alterations to the municipalities in the Population Censuses since 1842
https://www.ine.es/i[...]
20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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