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 윌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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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케이트 윌헬름(1928-2018)은 미국의 SF, 미스터리, 호러 작가이다. 1956년 단편 "The Pint-Size Genie"로 데뷔하여, 1976년 소설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로 휴고상과 로커스상을 수상했다. SF 작가 데이먼 나이트와 결혼하여 클라리온 워크숍을 설립하는 등 작가 양성에도 기여했으며,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고 SF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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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윌헬름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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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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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케이티 거트루드 메러디스 |
출생일 | 1928년 6월 8일 |
출생지 | 미국 오하이오주 톨레도 |
사망일 | 2018년 3월 8일 |
사망지 | 미국 오리건주 유진 |
직업 | 소설가 |
국적 | 미국 |
활동 기간 | 1956년–2018년 |
장르 | 사이언스 픽션, 미스터리, 판타지 |
배우자 | 조지프 윌헬름 (1947년–1962년, 이혼) 데이먼 나이트 (1963년–2002년, 사별) |
자녀 | 2명 |
웹사이트 | 케이트 윌헬름 공식 웹사이트 |
수상 | |
수상 내역 |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 |
주요 작품 | |
주요 작품 |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
2. 생애
케이트 윌헬름(결혼 전 이름은 케이티 거트루드 메레디스)은 오하이오 주 톨레도에서 태어나 켄터키 주 루이빌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여러 직업을 거친 후, 1947년에 조셉 윌헬름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으나 1962년에 이혼했다. 1963년에는 데이먼 나이트와 재혼하여 2002년 남편이 사망할 때까지 오리건 주 유진에서 함께 살았다.[2] 윌헬름은 2018년 사망할 때까지 유진에 거주했다.[3]
윌헬름은 데이먼 나이트와 함께 밀포드 워크숍과 클라리온 워크숍 설립에 기여하는 등 많은 작가를 도왔으며, 그녀의 작품은 여러 매체에 발표되었다. 2018년 3월 8일, 페이스북을 통해 아들 리처드가 그녀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향년 89세였다.[14]
2. 1. 유년 시절과 초기 경력
케이트 거트루드 메레디스[13]는 1928년 오하이오 주 톨레도에서 제시 메레디스와 앤 메레디스의 딸로 태어났다. 켄터키 주 루이빌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모델, 전화 교환원, 판매원, 교환대 운영자, 보험 회사 언더라이터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다.2. 2. 결혼과 가정 생활
윌헬름은 1947년에 조셉 윌헬름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으나, 1962년에 이혼했다. 1963년에는 데이먼 나이트와 재혼했다. 윌헬름과 나이트는 2002년 나이트가 사망할 때까지 오리건 주 유진에서 함께 살았으며,[2] 윌헬름은 2018년 사망할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3]2. 3. 작가로서의 삶과 죽음
케이트 윌헬름은 1956년 단편 소설 "The Pint-Size Genie"를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그녀의 작품은 ''Quark'', ''Orbit'', ''Magazine of Fantasy and Science Fiction'', ''로커스'', ''어메이징 스토리즈'', ''애시모프의 SF 매거진'', ''엘러리 퀸의 미스터리 매거진'', ''Fantastic'', ''OMNI'', ''Alfred Hitchcock's Mystery Magazine'' 그리고 ''코스모폴리탄'' 등 많은 매체에서 발표되었다.두 번째 남편인 데이먼 나이트와 함께 많은 작가를 도왔으며, 밀포드 워크숍과 클라리온 워크숍의 설립에도 기여했다.[2] 데이먼 나이트가 2002년에 사망한 후에도 워크숍을 계속했으며, 다른 행사에서도 마찬가지로 지도를 계속했다.
만년에는 오리건주유진에 거주했다.[3] 2018년 3월 8일, 페이스북에서 아들 리처드에 의해 사망 사실이 공지되었다. 향년 89세였다.[14]
3. 경력
케이트 윌헬름은 ''Quark/'', ''Orbit'', ''The Magazine of Fantasy and Science Fiction'', ''Locus'', ''Amazing Stories'', ''Asimov's Science Fiction'', ''Ellery Queen's Mystery Magazine'', ''Fantastic'', ''Omni'', ''Alfred Hitchcock's Mystery Magazine'', ''Redbook'' 및 ''Cosmopolitan'' 등 다양한 잡지에 작품을 발표했다.
데이먼 나이트와 함께 클라리온 작가 워크숍과 밀포드 작가 워크숍을 설립하여 많은 작가들을 지도했다.[9] 2002년 나이트가 사망한 후에도 윌헬름은 매달 워크숍을 주최하고 다른 행사에서 강의를 하며 작가 양성에 힘썼다.[9]
3. 1. 초기 작품 활동
1956년 10월, 폴 W. 페어먼이 편집하고 셀레 골드스미스가 보조한 Fantastic에 "The Pint-Size Genie"를 발표하며 데뷔했다.[9] 이듬해 존 W. 캠벨의 ''Astounding Science Fiction''에 "The Mile-Long Spaceship"이 게재되었고, 1958년과 1959년 동안에는 10편의 과학 소설을 발표했다.[9]3. 2. 장르 소설 집필
1963년, 케이트 윌헬름은 첫 장편 소설이자 추리 소설인 ''More Bitter Than Death''를 발표했다. 1965년에는 시어도어 L. 토머스와 함께 쓴 SF 소설 ''The Clone''이 네뷸러 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9]3. 3. 작품 활동 및 주요 작품
케이트 윌헬름은 ''Quark/'', ''Orbit'', ''The Magazine of Fantasy and Science Fiction'', ''Locus'', ''Amazing Stories'', ''Asimov's Science Fiction'', ''Ellery Queen's Mystery Magazine'', ''Fantastic'', ''Omni'', ''Alfred Hitchcock's Mystery Magazine'', ''Redbook'' 및 ''Cosmopolitan'' 등 다양한 잡지에 작품을 발표했다.[9]1956년 10월 폴 W. 페어먼이 편집하고 셀레 골드스미스가 보조한(잡지에 투고된 원고를 검토하는 역할을 담당) ''Fantastic''에 단편 소설 "The Pint-Size Genie"가 실렸다. 1957년, 존 W. 캠벨의 ''Astounding Science Fiction''에 단편 소설 "The Mile-Long Spaceship"이 게재되었고, 1958년과 1959년 동안 그녀의 과학 소설 10편이 출판되었다.[9] 1963년, 데뷔 소설인 추리 소설 ''More Bitter Than Death''(Simon & Schuster)가 출판되었으며, 시어도어 L. 토머스와 공동 집필한 SF 데뷔 소설 ''The Clone''(1965)은 연례 네뷸러 상의 최종 후보에 올랐다.[9]
대표작으로는 1977년 휴고상과 로커스상을 수상한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1976) 외에 《주니퍼 타임》(1979), 《바람의 아이들》(1989), 《꽃에 이름 짓기》(1992) 등이 있다.
연도 | 제목 | 원제 | 비고 |
---|---|---|---|
1975 | 무한의 상자 | The Infinity Box | 단편집 |
1976 |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 Where Late the Sweet Birds Sang | 1977년 휴고상 수상 1977년 로커스상 수상 1977년 네뷸러상 후보 |
1978 | 서머싯의 꿈 | Somerset Dreams and Other Fiction | 중단편집 |
1979 | 주니퍼 타임 | Juniper Time | |
1981 | 겨울 해안가 | The Winter Beach | |
1989 | 바람의 아이들 | Children of the Wind | 중편집 |
1992 | 꽃에 이름 짓기 | Naming the Flowers |
바바라 홀로웨이 시리즈, 콘스탄스 레이들과 찰리 메이클존 시리즈 등 인기 시리즈물을 집필하기도 했다. 바바라 홀로웨이는 오리건주 유진에 거주하는 변호사로, 총명하고 용감하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아버지인 은퇴 직전의 판사 프랭크 할로웨이 등의 도움을 받아 정의를 위해 진실을 파헤친다.
3. 4. 작가 양성 활동
그녀와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인 데이먼 나이트는 많은 작가들을 지도했으며, 클라리온 작가 워크숍과 밀포드 작가 워크숍을 설립하는 데 기여했다.[9] 2002년 데이먼 나이트가 사망한 후에도 윌헬름은 매달 워크숍을 계속 주최하고 다른 행사에서 강의를 하며 작가 양성에 힘썼다.[9]4. 수상 및 영예
케이트 윌헬름은 여러 차례 권위 있는 상을 받았으며, SF 및 판타지 문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주요 수상 및 영예는 다음과 같다.
연도 | 상 | 부문 | 작품명 | |
---|---|---|---|---|
1968 | 네뷸러상 | 단편 | "기획자들" [6] | |
1977 | 휴고상 및 로커스상 | 장편 | 노래하던 늦은 새들은 어디로 갔는가 [10] | |
1986 | 네뷸러상 | 중편 | "하늘로 떨어진 소녀" [6] | |
1987 | 네뷸러상 | 단편 | "영원히 당신의 것, 안나" [6] | |
2003 | SF 및 판타지 명예의 전당 | (헌액) [11] | ||
2006 | 휴고상 (최우수 관련 도서) 및 로커스상 (최우수 논픽션) | 스토리텔러: 27년간의 클라리온 작가 워크숍의 글쓰기 수업 등 [10] | ||
2009 | SFWA(미국 SF 및 판타지 작가 협회) | 솔스티스 상 | "SF 또는 판타지 분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공로 [10][4] | |
2016 | SFWA | 케이트 윌헬름 솔스티스 상 | 솔스티스 상이 케이트 윌헬름 솔스티스 상으로 변경 [7] |
- ''노래하던 늦은 새들은 어디로 갔는가''는 네뷸러상 최종 후보였으며, SF 강사들이 수여하는 단명했던 주피터 상을 수상했고, 학술적인 존 W. 캠벨 기념 최우수 SF 소설상에서 3위를 차지했다.[10]
- 네뷸러 상 트로피는 윌헬름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J. A. 로렌스에 의해 첫 번째 시상식에 맞춰 디자인되었다.[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