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마나의 바실리스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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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코마나의 바실리스쿠스는 폰토스 아마시아 출신으로, 순교자 에우트로피오스와 클레오니스와 관련되어 다양한 기적을 행했다고 전해진다. 바실리스쿠스는 막시미누스 다자 황제 치하에서 니코메디아에서 참수되거나, 막시미아누스 황제 치세에 순교했다는 기록이 있다.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모스가 죽기 전 꿈에 나타나 그의 죽음을 예고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며, 5월 22일에 기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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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나의 바실리스쿠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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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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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보 | |
존칭 접두사 | 성인 |
이름 | 코마나의 바실리스쿠스 |
사망일 | 기원후 310년 경 |
사망지 | 코마나, 폰투스 (오늘날 터키, 토카트 주, 토카트, 귀메네크) |
공경하는 교회 | 로마 가톨릭 교회, 동방 정교회 |
축일 | 5월 22일 또는 7월 30일 (그리스 달력) |
2. 생애
바실리스쿠스는 폰토스의 아마시아 출신 성인으로, 순회 순교의 삶을 살았다. 아마시아에서 체포된 후, 가족을 만나기 위해 추미알라 마을 방문이 허용되었고, 이후 다코자라 마을을 거쳐 코마나 외곽에서 순교하였다. 이 과정에서 순교자 유트로피우스, 클레오니쿠스와 연관되었으며 여러 기적을 행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순교 시기와 관련 황제(막시미누스 다자 혹은 막시미아누스), 그리고 요한 크리소스토모스와의 관계(꿈에 나타나 죽음을 예고했다는 이야기 등)에 대해서는 여러 기록이 존재한다.[1]
2. 1. 순교
바실리스쿠스의 순교 이야기는 순회 순교의 한 예로 전해진다. 그는 폰토스의 아마시아에서 체포되었으나, 재판을 받기 위해 아마시아로 돌아가기 전 가족을 만나러 추미알라 마을에 들르는 것이 허락되었다. 이후 코마나 폰티카 외곽에서 순교하기 전 다코자라 마을로 이송되었다. 그는 이동 중에 순교자 유트로피우스, 클레오니쿠스와 연관되었으며, 많은 군중이 그를 따랐고 여러 기적을 행했다고 전해진다.순교 시기와 장소에 대해서는 여러 기록이 있다. 한 기록에 따르면, 코마나의 주교였던 바실리스쿠스는 312년경 니코메디아에서 막시미누스 다자 황제(재위 310년-313년)에 의해 참수되었다고 한다. 다른 기록, 특히 요한 크리소스토모스의 전기에서는 그가 막시미안 황제(재위 286년-305년)의 통치 아래 순교했다고 전한다. 또한 바실리스쿠스는 요한 크리소스토모스가 죽기 전에 그의 꿈에 나타나 죽음을 예고했다고도 한다.[1]
2. 2. 요한 크리소스토모스와의 관계
요한 크리소스토모스의 전기에 따르면, 코마나의 주교였던 바실리스쿠스는 막시미아누스 (재위 286년 ~ 305년) 황제의 통치 시기에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바실리스쿠스는 요한 크리소스토모스가 죽음을 맞이하기 전 그의 꿈에 나타나 임박한 죽음을 예고했다고 알려져 있다.[1]3. 기록
바실리스쿠스의 이야기는 순회 순교의 한 예로 여겨진다. 그는 폰토스의 아마시아에서 체포되었으나, 재판을 위해 아마시아로 돌아가기 전에 잠시 추미알라 마을에 들러 가족을 만나는 것이 허락되었다. 이후 다코자라 마을로 이송되었고, 최종적으로 코마나 외곽에서 순교하였다. 이 여정 동안 그는 순교자 에우트로피오스와 클레오니스와 연관되었으며, 군중이 그를 따르고 여러 기적을 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다른 기록에 따르면, 코마나의 주교였던 바실리스쿠스는 312년경 니코메디아에서 황제 막시미누스 다자(재위 310년–313년)에 의해 참수당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모스의 전기에는 코마나의 주교 바실리스쿠스가 막시미아누스(재위 286년–305년) 황제의 통치 아래 순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바실리스쿠스는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모스가 죽기 전 그의 꿈에 나타나 죽음을 예고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1]
이 외에도 람스게이트 수도사들의 ''성인록'', 로마 순교록, 성인 전기 작가 앨번 버틀러의 저술 등 다양한 문헌에서 바실리스쿠스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으며, 그의 생애와 순교에 대한 여러 관점을 제공한다.
3. 1. 람스게이트 수도사들의 기록
람스게이트 수도사들은 그들의 ''성인록''(Book of Saints, 1921)에서 바실리스쿠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바실리스쿠스는 소아시아 폰토스의 코마나 주교였다. 그는 로마 제국 황제 막시미누스 다자의 통치 아래에서 서기 312년경 니코메디아 근처에서 참수당했고, 그의 시신은 강에 버려졌다.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그를 7월 30일에 기념한다. 또한 이 기록에 따르면, 성 바실리스쿠스는 성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모스에게 나타나 다음 날 그의 지상에서의 사명이 끝날 것임을 알렸다고 한다.
3. 2. 로마 순교록
로마 순교록은 5월 22일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폰토스의 코마나에서, 황제 막시미아누스와 총독 아그리파 치하에서 성 바실리스쿠스는 뜨겁게 달군 못이 박힌 쇠 신발을 신는 고문을 당하고, 많은 다른 시련을 견뎌냈다. 마침내 참수되어 강에 던져졌지만, 그는 순교의 영광을 얻었다.
3. 3. 앨번 버틀러의 기록
성인 전기 작가 앨번 버틀러는 그의 저서 ''원시 교부, 순교자 및 기타 주요 성인들의 생애''에서 5월 22일자 기록을 통해 코마나의 주교이자 순교자인 성 바실리스쿠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바실리스쿠스는 312년 폭군 막시미누스 다자 치하 니코메디아에서 성 루치아와 함께 순교했다. 이후 교회에 평화가 찾아오자 그의 유해는 코마나로 옮겨져 안치되었다.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모스는 성 바실리스쿠스 교회의 사제관에서 선종했다. 버틀러는 또한 바실리스쿠스가 꿈을 통해 사제에게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모스를 위한 숙소를 마련하라고 지시했으며, 이후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모스에게 나타나 다음 날 함께할 것이라며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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