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태극도 (종교)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태극도는 조철제가 창도한 종교로, 1945년 해방 이후 부산에서 시작되어 1948년 공식적으로 선포되었다. 조철제는 1909년 강증산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무극대도를 창도했으며, 일제의 종교 해산령으로 해산된 후 태극도를 창설했다. 태극도는 1958년 조철제 사망 전까지 수십만 명의 신도를 거느렸으며, 이후 교단 내 분란과 박한경의 대순진리회 창립으로 분열을 겪었다. 현재는 부산 감천동에 남아 있으며, 시학공부와 시법공부를 중심으로 수행한다. 태극도는 증산계 신종교의 분열과 종통 계승 문제, 친일 행적 등의 비판을 받기도 한다.

2. 역사

조철제는 1895년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출생하여, 1909년 만주 망명 중 강증산으로부터 계시를 받고 '정산'이라는 호를 받았다. 이때 본인이 강증산의 삼계공사의 뒤를 이을 진주임을 깨닫게 된다. 이후 구세재민 공부를 하던 중 1917년 강증산으로부터 다시 계시를 받고 득도하였다.

1919년, 조철제는 강증산의 유족을 만나 벽 속에 감춰져 있던 천서(주문과 현무경)를 찾고, 보천교에 보관되어 있던 천보인 둔궤를 모셔왔다.

조철제는 삼천(천명, 천서, 천보)을 모두 구비한 뒤, 1921년 무극대도를 창도하였고, 1925년에는 무극도장을 건립하고 교세를 확장하였다. 1936년 일제에 의해 무극도가 해산되자, 조철제는 10년의 시간을 보낸 후 1945년 광복 이후 태극도를 창도하여 1948년에 공식적으로 선포하였다. 1958년 조철제가 사망한 이후, 교단은 분열되었고, 일부는 박한경을 따라 대순진리회를 설립하였으나, 부산의 태극도는 조철제의 유언에 따라 감천동에 남아 태극도라는 명칭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태극도 본부인 대강전은 전국에 있는 도인들의 자발적인 공부 참여로 활기가 넘치고 있으며, 도인들이 바르게 수도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다. 태극도 본부가 있는 부산 감천동은 최근 감천문화마을로 이름이 바뀌면서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있다.

2. 1. 무극대도 창도와 발전

조철제는 강증산의 명에 따라 '삼천'(천명(天命), 천서(天書), 천보(天寶))을 구비하고 1921년 '무극대도'를 창도하였다. 1925년에는 전라북도 태인면(현, 정읍시 태인면)에 무극도장을 건립하고 신조, 강령, 요체, 도규 등을 정비하였다. 무극도는 급격히 성장하여 전성기에는 신도 수가 10만 명이 넘었으나, 1936년 일제의 종교해산령으로 해산되었다.

무극도의 신조, 강령, 요체는 다음과 같다.

신조음양합덕(陰陽合德)ㆍ신인조화(神人調化)ㆍ해원상생(解寃相生)ㆍ도통진경(道通眞境)
사강령안심(安心)ㆍ안신(安身)ㆍ경천(敬天)ㆍ수도(修道)
삼요체성(誠)ㆍ경(敬)ㆍ신(信)


2. 2. 태극도와 대순진리회

조철제는 1936년 일제의 종교해산령에 의해 무극도가 해산된 후, 10년 간의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1945년 광복 이후 부산에서 태극도를 창도하였고 1948년 공식적으로 선포하였다. 태극도는 도세가 확장되어 1958년 조철제 사망 전까지 수십만 명에 이르렀다. 1957년 4월 부산 사하구 감천동에 후천 오만년 유일무이한 진리의 성전이라고 하는 대강전을 건립하고, 11월에 태극도의 핵심 공부법방인 시학공부와 시법공부를 개시하였다.

1958년 조철제 사망 이후 교단 내 분란이 발생하였고, 1968년 당시 도전이었던 박한경이 도전직을 물러난다는 배퇴성명서를 남기고 태극도를 떠나 잠적하였다. 1969년 박한경은 서울 중곡동에서 대순진리회를 설립하였다.

부산의 태극도는 조철제의 유언에 따라 대강전을 떠나지 않고 감천동에 남아 태극도라는 명칭을 유지하고 있다. 태극도 도인들은 조철제가 50년 동안 고행을 겪으며 만든 진법공부 법방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며, 1996년 종통계승자라고 따르던 박한경 사망 이후 진법을 찾아 태극도로 복귀한 도인들도 있다.

3. 주요 교리

태극도는 무극대도와 함께 음양합덕, 신인조화, 해원상생, 도통진경을 신조로 삼고, 안심, 안신, 경천, 수도를 사강령으로 하며, 성, 경, 신을 삼요체로 삼는다.

3. 1. 시학공부와 시법공부

시학時學|시학중국어공부와 시법侍法|시법중국어공부는 1957년 조철제가 태극도의 대강전을 건립한 후 개시한 핵심 공부법이다. 이는 태극도의 핵심 수행법으로 여겨진다.

4. 비판

강일순 사후 증산계 신종교는 여러 종파로 분열되며 난맥상을 보였다. 특히 보천교, 무극대도, 태극도, 대순진리회 등은 종통 계승 문제와 교리 해석 차이로 갈등을 겪었다. 일부 종파는 민족 종교를 표방하면서도 일제강점기에 친일 행적을 보였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5.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

태극도는 한국 근현대사의 격동기 속에서 민중들에게 희망과 위안을 제공하며 성장하였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항일 운동에 참여하는 등 민족 종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분열과 갈등, 일부 종파의 사회적 물의 야기 등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5. 1. 감천문화마을

부산 감천동에 있는 태극도 본부가 위치한 마을은 원래 '태극도 마을'로 불렸으나, 최근 '감천문화마을'로 이름이 바뀌면서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