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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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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태평어람》은 송나라 태종의 명에 따라 977년부터 983년까지 이방, 서현 등 14명의 학자가 편찬한 백과사전이다. 총 1,000권 55부로 구성되었으며, 5,426개 항목에 1,690여 종의 서적에서 발췌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인용된 서적의 상당수가 유실되어 사료적 가치가 높으며, 고려와 일본에도 전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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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어람
개요
''太平御覽''
太平御覽
제목태평어람
원어 제목太平御覽
로마자 표기Tàipíng Yùlǎn
저자이방 등
편찬 시기977년 ~ 983년
시대송나라
종류백과사전
언어한문
권수1000권
항목 수55부 4777항목
자료 출처고대 서적 약 2579종 인용
내용천문, 지리, 인사, 물산, 예의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 수록
경서, 사서, 자서, 집부 등 폭넓은 분야의 서적 인용
중요성송대 문화의 중요한 자료
많은 고대 서적의 내용을 보존
후대 학자들에게 귀중한 참고 자료 제공
기타 명칭태평총류 (太平總類)
태평편류 (太平編類)
영문 제목Imperial Reader of the Taiping Era

2. 편찬 배경 및 구성

《태평어람》은 태종의 명으로 977년부터 983년까지 이방, 서현 등 14명의 학자가 편찬하였다. 원래 이름은 《태평총류》였으나, 태종이 매일 3권씩 열람하여 1년 만에 다 읽었다는 이유로 현재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책은 《주역》 계사전(繫辭傳)에 있는 천지(天地)의 수를 기초로 하여 총 55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는 다시 여러 항목으로 세분화되어 총 5,426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항목에는 여러 서적에서 발췌한 기사나 문장이 분류되어 배열되어 있다. 인용된 서적의 수는 서목에 따르면 1,690종이지만, 시나 등을 포함하면 2,000종 이상에 달한다. 다만, 북제의 『수문전어람』(실서)이나, 당나라의 『예문유취』, 『문사박요』(실서) 등에서 재인용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인용된 서적 대부분이 소실되었기 때문에, 《태평어람》은 자료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1]

2. 1. 구성

주역》 계사전(繫辭傳)에 있는 천지(天地)의 수를 기초로 하여 총 55부로 구성되어 있다. 55부에는 항목을 두어 5,426가지로 나누었고, 각 항목에는 각종 서적의 기록과 문장을 발췌하여 기록하였다. 인용된 서적은 머리말의 기록에 따르면 1,690종이라고 하나 중복된 서적이 다소 있으며, 시와 를 합하면 2,000종 이상이다.[1] 비록 원전에서 인용한 것보다는 선대의 유서인 북제의 《수문전어람》과 당나라의 《예문유취》·《문사박요》 등에서 인용한 것이 많으나,[1] 인용한 서적의 대부분이 유실되었으므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2. 1. 1. 목록

주역》 계사전(繫辭傳)에 있는 천지의 수를 기초로 하여 총 55부로 구성되어 있다. 55부에는 항목이 5,426가지로 나뉘어 있으며, 각 항목에는 각종 서적의 기록과 문장을 발췌하여 기록하였다. 괄호 안은 차지하는 권 수이다.

권 수권 수권 수
천(天)15봉건(封建)5진보(珍寶)12
시서(時序)20직관(職官)67포백(布帛)12
지(地)39병(兵)90자산(資産)16
황왕(皇王)41인사(人事)141백곡(百穀)6
편패(偏覇)18일민(逸民)10음식(飮食)25
황친(皇親)20종친(宗親)11화(火)4
주군(州郡)18예의(禮儀)41휴정(休征)2
거처(居處)25악(樂)22구징(咎徵)7
문(文)22신귀(神鬼)4
학(學)13요이(妖異)4
치도(治道)15수(獸)25
형법(刑法)18우족(羽族)15
석(釋) (불교)6인개(鱗介)15
도(道) (도교)21충치(蟲豸)8
의식(儀式)4목(木)10
복장(服章)15죽(竹)2
복용(服用)21과(果)12
방술(方術)18채여(菜茹)5
질병(疾病)6향(香)3
공예(工藝)12약(藥)10
기물(器物)12백훼(百卉)7
주(舟)4colspan="4" |
거(車)5colspan="4" |
봉사(奉使)3colspan="4" |
사이(四夷) (동이 1~5, 남만 6~12, 서융 13~19, 북적 20~22)22colspan="4" |


3. 내용

주역》 계사전(繫辭傳)에 있는 천지의 수를 기초로 하여 총 55부로 구성되어 있다.[1] 각 부는 다시 항목으로 나뉘어 총 5,426가지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항목에는 각종 서적의 기록과 문장을 발췌하여 기록하였다.[1]

괄호 안의 숫자는 차지하는 권(卷) 수이다.

권 수내용
천부(天)15
시서부(時序)20
지부(地)39
황왕부(皇王)41
편패부(偏覇)18
황친부(皇親)20
주군부(州郡)18
거처부(居處)25
봉건부(封建)5
직관부(職官)67
병부(兵)90
인사부(人事)141
일민부(逸民)10
종친부(宗親)11
예의부(禮儀)41
악부(樂)22
문부(文)22
학부(學)13
치도부(治道)15
형법부(刑法)18
석부(釋)6불교 관련
도부(道)21도교 관련
의식부(儀式)4
복장부(服章)15
복용부(服用)21
방술부(方術)18
질병부(疾病)6
공예부(工藝)12
기물부(器物)12
주부(舟)4
거부(車)5
봉사부(奉使)3
사이부(四夷)22동이(1~5), 남만(6~12), 서융(13~19), 북적(20~22)
진보부(珍寶)12
포백부(布帛)12
자산부(資産)16
백곡부(百穀)6
음식부(飮食)25
화부(火)4
휴정부(休征)2
구징부(咎徵)7
신귀부(神鬼)4
요이부(妖異)4
수부(獸)25
우족부(羽族)15
인개부(鱗介)15
충치부(蟲豸)8
목부(木)10
죽부(竹)2
과부(果)12
채여부(菜茹)5
향부(香)3
약부(藥)10
백훼부(百卉)7


4. 한반도 전래

《태평어람》은 고려조선에 전래되어 학문과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송나라는 국내 정보 유출을 우려하여 《태평어람》을 포함한 문헌 자료의 해외 반출을 금지했다. 그러나 고려는 송나라를 본받기 위해 《태평어람》 제공을 거듭 요청했지만, 그때마다 거절당했다. 북송 휘종의 등극 축하에 파견된 고려 관료의 노력으로 하사가 성사되어, 1101년(고려 숙종 6년) 염원하던 《태평어람》 1,000책을 입수할 수 있었다.[5]

4. 1. 고려 시대

고려 문종은 북송에서 《태평어람》을 구하고자 했으나 얻지 못했다. 숙종 6년(1101년) 왕하(王嘏)·오연총 등이 북송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올 때 북송 휘종에게서 《태평어람》 1,000권을 하사받았다.[10] 숙종은 임의·백가신 등이 휘종에게서 받아온 의서 《신의보구방》(神醫普救方)과 《태평어람》을 얻게 된 것을 사신의 능력 덕분이라 칭찬하며, 사신과 수행원 모두의 관작을 올려주었다.[10] 명종 22년(1192년) 남송 상인이 《태평어람》을 바치자 백금 60근을 하사하고, 학사 최선(崔詵)에게 교정하도록 하였다.[11]

4. 2. 조선 시대

성종과 광해군은 민간 또는 중국으로 가는 사신 편으로 《태평어람》을 구하도록 하였다.[10]

5. 일본 전래 및 판본

일본에는 지승 3년(1179년) 2월, 평청성이 송나라 배가 가져온 송나라 판본 260책을 즉시 구매하면서 처음 전래되었다.[6][7][8][9] 이후 복본이 제작되었고, 12월 16일, 손자인 동궁(2세, 후의 안토쿠 천황)에게 원본이 최고급 수입품인 당물(唐物)로 헌상되었다. 그 중 3책은 짙은 소방 안감의 부선릉 무늬의 아름다운 직물에 은색 소나무 가지와 보옥으로 장식된 매우 호화로운 것이었다고 한다.[6][7][8][9]

1244년 엔니는 송나라 정부의 승인을 받아 백과사전 103권을 가져왔으며, 이후 일본 승려들 사이에서 유통하기 위해 10권이 추가로 반입되었다. 이 103권은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2][3]

5. 1. 주요 판본

일본에 전해진 경원 5년(1199년) 촉각본(蜀刻本) 잔본 945권이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다른 계통의 송본(宋本)으로 보충한 《사부총간삼편》(상하이: 상무인서관, 1935년)에 수록된 경송본(景宋本)과 그 중쇄본(중화서국, 1960년)이 있다.[6]

중국에서는 북송 간본과 남송 간본이 모두 일찍이 소실되었으나, 일본에는 남송 간본이 몇 점 전해지고 있다.[6]

소장처내용
세이카도 문고남송 중기경 절중 간본의 잔본 3세트. 모두 동일 판본으로 2개는 구장, 1개는 메이지 40년(1907년) 구입한 륙심원 장서에 포함되어 있었다.
궁내청 서릉부가나자와 문고 전래본. 세이카도 문고와 동일 판본.
도후쿠지세이카도 문고와 동일 판본의 잔본 및 남송 경원 5년(1199년) 촉(사천성)에서 인쇄된 완질본. 국보로 지정되어있다.[2][3] 2024년 문화청과 요미우리 신문의 지원금으로 보존 및 복원이 진행될 예정이다.[4]



상하이 상무인서관은 쇼와 10년(민국 25년/1935년) 위의 일본 잔본을 합쳐서 복원하고 사부총간 제3편에 수록했다.

그 외, 명나라 만력 2년(1574년)에 상숙·주당(장쑤성 무석 부근)에서 동활자본 1000권을 간행했다.

또한 일본에서는 안세이 원년(1854년)부터 분큐 2년(1862년)에 전구문지, 희촌직관이 목활자본을 간행했다.

참조

[1] 간행물 China Knowledge http://www.chinaknow[...] 2010
[2] 웹사이트 Tofuku-ji Exhibit Items List https://tofukuji2023[...] 2023-03-09
[3] 간행물 The History and Cultural Heritage of Chinese Calligraphy, Printing and Library Work K. G. Saur 2010-03-26
[4] 웹사이트 Passing down Japan's artistic treasures: TSUMUGU's repair grant for fiscal 2024 https://tsumugu.yomi[...] 2024-02-06
[5] 학술지 通典の諸版本について https://koara.lib.ke[...] 慶應義塾大学附属研究所斯道文庫 1977
[6] 서적 図説中国印刷史
[7] 서적 唐物の文化史 : 舶来品からみた日本 https://id.ndl.go.jp[...] 岩波書店
[8] 고문헌 「山槐記」治承3年2月13日 https://dl.ndl.go.jp[...] 국립국회도서관디지털컬렉션
[9] 고문헌 「山槐記」治承3年12月16日 https://dl.ndl.go.jp[...] 국립국회도서관디지털컬렉션
[10] 역사서 《고려사》 권11 세가11 숙종 6년(1101년) 6월 병신조
[11] 역사서 《고려사》 권20 세가20 명종 22년(1192년) 8월 계해(23일)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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