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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티 러블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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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패티 러블리스는 미국의 컨트리 음악 가수이다. 1957년 켄터키주 파이크빌에서 태어났으며, 1973년 밴드 드러머 테리 러블리스와 결혼하며 이름을 바꿨다. 1980년대 중반 내슈빌로 진출하여 MCA 레코드와 계약,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여러 히트곡을 발표하며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1992년 에픽 레코드로 이적한 후에도 "Blame It on Your Heart" 등의 히트곡을 내놓으며 1990년대 컨트리 음악계를 대표하는 여성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블루그래스 음악으로 장르를 확장했으며, 2023년 컨트리 뮤직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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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티 러블리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패티 러블리스
본명패트리샤 리 래미
출생일1957년 1월 4일
출생지미국 켄터키주 파이크빌
국적미국
직업가수
활동 시기1973년-현재
결혼 정보
배우자테리 러블리스 (1973년-1986년, 이혼)
에모리 고디 주니어 (1989년-)
음악 정보
장르네오트래디셔널 컨트리
블루그래스
악기보컬
레이블MCA 내슈빌
에픽 내슈빌
사구아로 로드
웹사이트공식 웹사이트
음반 목록패티 러블리스 음반 목록
수상 내역전체 목록
이미지
컨트리 음악 아티스트 패티 러블리스가 마이크에 대고 노래하는 모습
2007년 그랜드 올 오프리에서 공연하는 러블리스.
2004년 모습
2004년 모습

2. 초기 생애

패티 러블리스(Patty Loveless)는 1957년 1월 4일 켄터키주 파이크빌에서 나오미와 존 레이미 사이에서 패트리샤 리 레이미(Patricia Lee Ramey)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2][3] 그녀는 일곱 자녀 중 여섯째였다. 외가를 통해 컨트리 가수 로레타 린크리스털 게일의 사촌이 된다.[4]

켄터키주 파이크빌의 거리 풍경
패티 러블리스는 켄터키주 파이크빌에서 태어났다.
러블리스는 켄터키주 엘크혼 시티에서 자랐는데, 이곳에서 아버지는 탄광에서 일했다.[1][5] 아버지는 직업병으로 석탄폐를 앓았고, 가족은 아버지의 치료를 위해 켄터키주 루이빌로 이사해야 했다.[1] 존 레이미는 1979년에 이 병으로 사망했다.[60]

11살 때부터 형인 로저와 함께 기타를 치고 노래를 작곡하기 시작했고, 지역 행사에서 함께 공연했다. 두 사람은 윌번 브라더스에 의해 발견되었지만, 듀오는 그녀가 음악 경력을 쌓기에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계속 공연할 것을 격려했다.[1] 고등학교 졸업 후, 윌번 브라더스와 함께 투어 밴드의 보컬리스트로 순회 공연을 시작했다.[1][6] 1973년, 밴드의 드러머인 테리 러블리스와 결혼하여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으로 이사했고, 이때 그녀의 이름을 패티 러블리스로 바꾸었다.[7]

1970년대 후반, 러블리스는 미국 중서부의 여러 장소에서 록 커버곡을 연주하며 보냈다.[10][6] 1980년대 중반, 그녀는 컨트리 가수로서의 경력을 쌓기 위해 테네시주 내슈빌로 돌아왔다. 당시 러블리스는 드와이트 요컴, 더 저즈, 랜디 트래비스와 같은 가수들을 통해 1980년대 중반의 네오 전통 컨트리의 부상에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6][10] 내슈빌에서 그녀는 다른 가수들을 위해 데모 녹음을 하고, 1985년 아커프-로즈 뮤직과 작곡 계약을 체결했다.[1] 러블리스는 자신의 노래 다섯 곡을 데모 테이프에 녹음했는데, 그녀의 형 로저가 MCA 레코드의 내슈빌 부문으로 보냈다. 토니 브라운(당시 레이블의 아티스트 및 레퍼토리 사장직을 겸임하고 있던 음반 프로듀서)은 1985년 7월 러블리스가 레이블에 계약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10][6]

2. 1. 출생 및 가족 배경

패티 러블리스(Patty Loveless)는 1957년 1월 4일 켄터키주 파이크빌에서 나오미와 존 레이미 사이에서 패트리샤 리 레이미(Patricia Lee Ramey)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2][3] 그녀는 일곱 자녀 중 여섯째였다. 외가를 통해 컨트리 가수 로레타 린크리스털 게일의 사촌이 된다.[4] 러블리스는 켄터키주 엘크혼 시티에서 자랐는데, 이곳에서 아버지는 탄광에서 일했다.[1][5] 아버지는 직업병으로 석탄폐를 앓았고, 가족은 아버지의 치료를 위해 켄터키주 루이빌로 이사해야 했다.[1] 존 레이미는 1979년에 이 병으로 사망했다.[60]

11살 때부터 형인 로저와 함께 기타를 치고 노래를 작곡하기 시작했고, 지역 행사에서 함께 공연했다. 두 사람은 윌번 브라더스에 의해 발견되었지만, 듀오는 그녀가 음악 경력을 쌓기에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계속 공연할 것을 격려했다.[1] 고등학교 졸업 후, 윌번 브라더스와 함께 투어 밴드의 보컬리스트로 순회 공연을 시작했다.[1][6] 1973년, 밴드의 드러머인 테리 러블리스와 결혼하여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으로 이사했고, 이때 그녀의 이름을 패티 러블리스로 바꾸었다.[7]

2. 2. 음악 활동 시작

패티 러블리스(Patty Loveless)는 1957년 1월 4일 켄터키주 파이크빌에서 패트리샤 리 레이미(Patricia Lee Ramey)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2][3] 외가를 통해 컨트리 가수 로레타 린크리스털 게일의 사촌이 된다.[4] 그녀는 엘크혼 시티에서 자랐으며, 아버지 존 레이미는 탄광에서 일하다가 석탄폐에 걸려 가족은 루이빌로 이사했다.[1][5][60]

11살 때부터 형 로저와 함께 기타를 치고 노래를 작사하며 지역 행사에서 공연했다.[1] 이들은 윌번 브라더스에게 발탁되었고, 고등학교 졸업 후 윌번 브라더스 투어 밴드의 보컬리스트로 활동했다.[1][6] 1973년에는 밴드 드러머 테리 러블리스와 결혼하여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으로 이사했고, 이때 패티 러블리스로 이름을 바꿨다.[7]

1970년대 후반, 러블리스는 미국 중서부에서 록 커버곡을 연주했다.[10][6] 1980년대 중반, 네오 전통 컨트리의 부상에 영감을 받아 컨트리 가수 경력을 위해 테네시주 내슈빌로 돌아왔다.[6][10] 내슈빌에서 데모 녹음과 작곡 계약을 맺고,[1] 1985년 7월, MCA 레코드와 계약했다.[10][6]

2. 3. 결혼과 개명

패티 러블리스(Patty Loveless)는 1957년 1월 4일 패트리샤 리 레이미(Patricia Lee Ramey)라는 이름으로 켄터키주 파이크빌에서 태어났다.[2][3] 1973년, 밴드 드러머인 테리 러블리스와 결혼하여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으로 이사했고, 이때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결혼 이름의 변형인 패티 러블리스로 바꾸었다.[7]

3. 음악 경력

3. 1. 1985-1992: MCA 레코드 시절

러블리스는 에모리 고디 주니어(Emory Gordy Jr.)의 프로덕션 지원을 받아 MCA와 함께 음악 녹음을 시작했다.[1] 고디는 에밀루 해리스(Emmylou Harris)의 백킹 밴드인 핫 밴드의 멤버였다.[8] 1985년 말, MCA 내슈빌은 러블리스의 데뷔 싱글 "Lonely Days, Lonely Nights"를 발매했고,[2] 이어 "Wicked Ways", "I Did", "After All"이 발매되었다.[2] 이 싱글들은 모두 미국 빌보드 핫 컨트리 송 차트에서 40위권 밖에 머물렀다.[2] 하지만 "I Did"가 팬들에게 인기가 있음을 확인한 러블리스는 MCA 임원들을 설득하여 1986년에 데뷔 앨범 패티 러블리스를 발매했다.[1][9]

고디와 브라운이 프로듀싱을 맡은 이 앨범에는 가이 클라크(Guy Clark), 조엘 소니어(Jo-El Sonnier), 캐런 스테일리(Karen Staley)가 작곡한 곡들이 수록되었다.[10][11] 러블리스는 17세에 이별을 겪은 후 "I Did"를 작곡했으며,[12] 이 곡은 그녀가 직접 작곡한 유일한 싱글이다.[2] "After All"은 리바 맥엔타이어(Reba McEntire)가 녹음하기를 원했던 곡이었으나, 맥엔타이어가 녹음하지 않자 러블리스에게 돌아갔다.[10] 러블리스는 조지 존스(George Jones)와 함께 투어를 하며 앨범을 홍보했고, 콘서트에서 함께 "내 사랑의 팔에 안겨(Roll in My Sweet Baby's Arms)"를 불렀다.[13] 캐시박스는 "Lonely Days, Lonely Nights"를 "강렬한 목소리와 리드미컬한 표현을 보여주는 발을 구르게 하는 곡"이라고 평가했고,[14] "I Did"는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 같다"며 "클래식한 사운드"를 지녔다고 호평했다.[12] 한편, 이 기간 동안 그녀는 첫 남편과 이혼했다.[78]

러블리스의 두 번째 MCA 앨범은 1988년에 발매된 내 마음에 창문이 있다면(If My Heart Had Windows)이다. 리드 싱글은 커티스 라이트(Curtis Wright)가 작곡한 "You Saved Me"였는데, 컨트리 차트 40위권 밖에 머물렀다.[2] 이어 그녀의 첫 톱 10 히트곡인 조지 존스(George Jones)의 1967년 싱글 내 마음에 창문이 있다면(If My Heart Had Windows)의 커버곡이 발매되었다.[1] 세 번째이자 마지막 싱글은 스티브 얼(Steve Earle)의 "조금 사랑에 빠져(A Little Bit in Love)" 커버였다. 1988년 중반, 러블리스의 버전은 빌보드 컨트리 차트에서 2위에 올랐다.[2] 올뮤직(AllMusic)의 톰 주렉(Thom Jurek)은 리뷰에서 특히 이 두 커버곡을 칭찬하며, 그녀의 "성실함, 소박한 진심, 그리고 완벽하게 멋진 목소리가 훌륭한 녹음과 차트 성공을 이어가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15]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의 잭 허스트(Jack Hurst)는 이 앨범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보였는데, 러블리스의 목소리를 칭찬하면서도 프로덕션은 더 컨트리 팝적인 성격이라고 비판했다.[16] 앨범 발매와 함께 러블리스는 1988년 그랜드 올 오프리(Grand Ole Opry)에 입성했다.[17] 1988년 내내 러블리스는 웸블리 아레나(Wembley Arena)에서 열린 연례 컨트리 음악 축제에 출연하면서 영국에서도 인지도를 높였다.[7]

1988년 말, 러블리스의 세 번째 앨범 흥겨운 술집 천사(Honky Tonk Angel)가 발매되었다.[1] 앨범 발매 직후 그녀와 고디는 결혼했다.[28] 리드 싱글은 행크 데비토(Hank DeVito)(Hank DeVito영어, 에밀루 해리스의 핫 밴드의 또 다른 멤버)가 공동 작곡한 "도시의 어두운 면(Blue Side of Town)"이었다.[9] 이 노래는 톱 5에 들었고, 론 저스티스(Lone Justice)의 "우릴 버리지 마세요(Don't Toss Us Away)" 커버곡도 마찬가지였다.[9][2] 그 후 그녀의 첫 1위 싱글인 "나무야, 사랑에 빠졌어(Timber, I'm Falling in Love)"가 나왔다. 브라운은 앨범을 위한 자료를 찾던 중 이 노래를 발견했다. 이 곡은 당시 컨트리 가수가 되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던 그리스계 미국인 작곡가 코스타스(Kostas)가 작곡했다.

야외에서 작곡가 코스타스
러블리스의 첫 1위 싱글은 작곡가 코스타스(Kostas)가 작곡한 "나무야, 사랑에 빠졌어(Timber, I'm Falling in Love)"였다.


"나무야, 사랑에 빠졌어(Timber, I'm Falling in Love)"의 성공으로 코스타스는 러블리스와 다른 컨트리 가수들을 위해 더 많은 노래를 작곡하게 되었다.[18] 코스타스가 작곡한 또 다른 노래인 "사랑의 외로운 면(The Lonely Side of Love)"은 1989년 말 컨트리 차트 톱 10에 들었다.[2] 1990년 초, 앨범의 마지막 싱글인 "쇠사슬(Chains)"이 컨트리 차트 1위를 차지하며 두 번째 1위를 기록했다.[2] MCA는 CMT를 통해 앨범을 홍보했는데, 여기에는 팬들이 빌리 밥스 텍사스(Billy Bob's Texas)(Billy Bob's Texas영어,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나이트클럽)에서 러블리스의 공연을 볼 수 있는 여행을 당첨될 수 있는 경품 추첨이 포함되었다. 또한 레이블은 사인된 포스터를 증정했고, 러블리스와 저스틴 부츠(Justin Boots)사와의 후원 계약을 체결했다.[19] 흥겨운 술집 천사(Honky Tonk Angel)는 나중에 미국 레코딩 산업 협회(Recording Industry Association of America)(RIAA)에 의해 100만 장 출하를 기념하여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20] 브라이언 맨스필드(Brian Mansfield)는 이 앨범을 "러블리스를 주요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하게 한 앨범"이라고 설명했다.[21] 캘거리 헤럴드(Calgary Herald)의 웬디 더들리(Wendy Dudley)는 러블리스의 "강력한 보컬"을 칭찬하며 패티 클라인(Patsy Cline)의 보컬과 비교했다.[22]

1990년 러블리스는 네 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온 다운 더 라인』(On Down the Line)을 발매했다.[1] 이 앨범의 타이틀곡이자 코스타스의 또 다른 작품인 타이틀곡(On Down the Line)은 상위 5위권에 진입했다.[2] 다음으로는 루신다 윌리엄스의 "더 나이트스 투 롱"(The Night's Too Long) 커버곡[23]이 발표되었는데, 20위에 올랐다.[2] 이 앨범에는 또한 마트라카 버그와 캐런 브룩스가 공동 작곡한 "아임 댓 카인드 오브 걸"(I'm That Kind of Girl)과 "블루 메모리스"(Blue Memories)가 수록되어 있으며, 두 곡 모두 1991년 초 차트에 진입했다.[2] 『온 다운 더 라인』은 500,000장의 판매고를 기념하는 골드 인증을 받았다.[20] 올뮤직(AllMusic)의 알렉스 헨더슨은 이 앨범에 대해 "예측 불가능하고 일관되게 영감을 준 『온 다운 더 라인』은 러블리스 최고의 앨범 중 하나로 남아 있다"고 평했다.[24] 허스트는 "러블리스의 세계적인 수준의 보컬 파워는 세 장의 앨범 동안 그녀의 영혼을 사로잡을 수 있는 소재를 찾고 있었던 것 같으며, 그녀는 이 앨범에서 그것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25]

러블리스는 1991년 MCA에서의 활동을 『업 어게인스트 마이 하트』(Up Against My Heart)로 마무리했다.[2] 이 앨범의 메인 싱글은 데보라 앨런이 공동 작곡하고 백킹 보컬로 참여한 상위 5위권 곡인 "허트 미 배드 (인 어 리얼 굿 웨이)" (Hurt Me Bad (In a Real Good Way))였다.[2][26] 돌리 파튼, 맥 매캐널리, 빈스 길도 몇몇 앨범 트랙에 참여했다.[26] 마지막 트랙은 라일 로벳의 "God Will" 커버였다.[27] 후속 싱글인 "젤러스 본"(Jealous Bone)과 "캔트 스톱 마이셀프 프롬 러빙 유"(Can't Stop Myself from Loving You)는 빌보드(Billboard)에서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2]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알라나 내쉬는 이 앨범에 "A+" 등급을 매기며 로레타 린에밀루 해리스에 비견될 만한 음악이라고 평가했다.[84] 『컨트리 뮤직: 백과사전』(Country Music: The Encyclopedia) 편집자들은 『업 어게인스트 마이 하트』의 상업적 실패를 와이노나 주드와 트리샤 이어우드와 같은 MCA 레이블의 다른 여성 가수들의 성공 증가 때문으로 돌렸다.[28] 1992년 러블리스는 MCA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매니저였던 자신의 형제 로저를 해고했다.[28]

3. 1. 1. 초기 싱글과 데뷔 앨범

러블리스는 에모리 고디 주니어(Emory Gordy Jr.)의 프로덕션 지원을 받아 MCA와 함께 음악 녹음을 시작했다.[1] 고디는 에밀루 해리스(Emmylou Harris)의 백킹 밴드인 핫 밴드의 멤버였다.[8] 1985년 말, MCA 내슈빌은 러블리스의 데뷔 싱글 "Lonely Days, Lonely Nights"를 발매했고,[2] 이어 "Wicked Ways", "I Did", "After All"이 발매되었다.[2] 이 싱글들은 모두 미국 빌보드 핫 컨트리 송 차트에서 40위권 밖에 머물렀다.[2] 하지만 "I Did"가 팬들에게 인기가 있음을 확인한 러블리스는 MCA 임원들을 설득하여 1986년에 데뷔 앨범 패티 러블리스를 발매했다.[1][9]

고디와 브라운이 프로듀싱을 맡은 이 앨범에는 가이 클라크(Guy Clark), 조엘 소니어(Jo-El Sonnier), 캐런 스테일리(Karen Staley)가 작곡한 곡들이 수록되었다.[10][11] 러블리스는 17세에 이별을 겪은 후 "I Did"를 작곡했으며,[12] 이 곡은 그녀가 직접 작곡한 유일한 싱글이다.[2] "After All"은 리바 맥엔타이어(Reba McEntire)가 녹음하기를 원했던 곡이었으나, 맥엔타이어가 녹음하지 않자 러블리스에게 돌아갔다.[10] 러블리스는 조지 존스(George Jones)와 함께 투어를 하며 앨범을 홍보했고, 콘서트에서 함께 "내 사랑의 팔에 안겨(Roll in My Sweet Baby's Arms)"를 불렀다.[13] 캐시박스는 "Lonely Days, Lonely Nights"를 "강렬한 목소리와 리드미컬한 표현을 보여주는 발을 구르게 하는 곡"이라고 평가했고,[14] "I Did"는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 같다"며 "클래식한 사운드"를 지녔다고 호평했다.[12] 한편, 이 기간 동안 그녀는 첫 남편과 이혼했다.[78]

1988년, 러블리스는 두 번째 앨범 내 마음에 창문이 있다면(If My Heart Had Windows)을 발매했다. 리드 싱글 "You Saved Me"는 컨트리 차트 40위권 밖에 머물렀지만,[2] 조지 존스(George Jones)의 1967년 싱글 "내 마음에 창문이 있다면(If My Heart Had Windows)" 커버곡은 톱 10에 진입했다.[1] 스티브 얼(Steve Earle)의 "조금 사랑에 빠져(A Little Bit in Love)" 커버곡은 1988년 중반 빌보드 컨트리 차트 2위에 올랐다.[2] 올뮤직(AllMusic)의 톰 주렉(Thom Jurek)은 이 두 커버곡에 대해 "성실함, 소박한 진심, 그리고 완벽하게 멋진 목소리"를 칭찬했다.[15]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은 러블리스의 목소리는 칭찬했지만, 프로덕션은 비판했다.[16] 앨범 발매와 함께 러블리스는 1988년 그랜드 올 오프리(Grand Ole Opry)에 입성했고,[17] 웸블리 아레나(Wembley Arena)에서 열린 컨트리 음악 축제에 출연하며 영국에서도 인지도를 높였다.[7]

1988년 말, 세 번째 앨범 흥겨운 술집 천사(Honky Tonk Angel)가 발매되었고,[1] 앨범 발매 직후 고디와 결혼했다.[28] 행크 데비토(Hank DeVito)가 공동 작곡한 리드 싱글 "도시의 어두운 면(Blue Side of Town)"과[9] 론 저스티스(Lone Justice)의 "우릴 버리지 마세요(Don't Toss Us Away)" 커버곡은 톱 5에 진입했다.[9][2] 이후 코스타스(Kostas)가 작곡한 "나무야, 사랑에 빠졌어(Timber, I'm Falling in Love)"가 첫 1위를 차지했다.[18] 코스타스가 작곡한 또 다른 노래 "사랑의 외로운 면(The Lonely Side of Love)"은 1989년 말 톱 10에 올랐고,[2] 1990년 초, "쇠사슬(Chains)"이 두 번째 1위를 기록했다.[2] MCA는 CMT를 통해 앨범을 홍보하며 빌리 밥스 텍사스(Billy Bob's Texas) 공연 관람권, 사인 포스터, 저스틴 부츠(Justin Boots)사와의 후원 계약을 체결했다.[19] 흥겨운 술집 천사(Honky Tonk Angel)는 미국 레코딩 산업 협회(Recording Industry Association of America)(RIAA)로부터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20] 브라이언 맨스필드(Brian Mansfield)는 이 앨범을 "러블리스를 주요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하게 한 앨범"이라고 평가했다.[21] 캘거리 헤럴드(Calgary Herald)는 러블리스의 "강력한 보컬"을 패티 클라인(Patsy Cline)과 비교하며 칭찬했다.[22]

3. 1. 2. ''If My Heart Had Windows'' (1988)

러블리스의 두 번째 MCA 앨범은 1988년에 발매된 내 마음에 창문이 있다면(If My Heart Had Windows)이다. 리드 싱글은 커티스 라이트(Curtis Wright)가 작곡한 "You Saved Me"였는데, 컨트리 차트 40위권 밖에 머물렀다.[2] 이어 그녀의 첫 톱 10 히트곡인 조지 존스(George Jones)의 1967년 싱글 내 마음에 창문이 있다면(If My Heart Had Windows)의 커버곡이 발매되었다.[1] 세 번째이자 마지막 싱글은 스티브 얼(Steve Earle)의 "조금 사랑에 빠져(A Little Bit in Love)" 커버였다. 1988년 중반, 러블리스의 버전은 빌보드 컨트리 차트에서 2위에 올랐다.[2] 올뮤직(AllMusic)의 톰 주렉(Thom Jurek)은 리뷰에서 특히 이 두 커버곡을 칭찬하며, 그녀의 "성실함, 소박한 진심, 그리고 완벽하게 멋진 목소리가 훌륭한 녹음과 차트 성공을 이어가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15]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의 잭 허스트(Jack Hurst)는 이 앨범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보였는데, 러블리스의 목소리를 칭찬하면서도 프로덕션은 더 컨트리 팝적인 성격이라고 비판했다.[16] 앨범 발매와 함께 러블리스는 1988년 그랜드 올 오프리(Grand Ole Opry)에 입성했다.[17] 1988년 내내 러블리스는 웸블리 아레나(Wembley Arena)에서 열린 연례 컨트리 음악 축제에 출연하면서 영국에서도 인지도를 높였다.[7]

3. 1. 3. ''Honky Tonk Angel'' (1988)

1988년 말, 러블리스의 세 번째 앨범 흥겨운 술집 천사(Honky Tonk Angel)가 발매되었다.[1] 앨범 발매 직후 그녀와 고디는 결혼했다.[28] 리드 싱글은 행크 데비토(Hank DeVito)(Hank DeVito영어, 에밀루 해리스의 핫 밴드의 또 다른 멤버)가 공동 작곡한 "도시의 어두운 면(Blue Side of Town)"이었다.[9] 이 노래는 톱 5에 들었고, 론 저스티스(Lone Justice)의 "우릴 버리지 마세요(Don't Toss Us Away)" 커버곡도 마찬가지였다.[9][2] 그 후 그녀의 첫 1위 싱글인 "나무야, 사랑에 빠졌어(Timber, I'm Falling in Love)"가 나왔다. 브라운은 앨범을 위한 자료를 찾던 중 이 노래를 발견했다. 이 곡은 당시 컨트리 가수가 되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던 그리스계 미국인 작곡가 코스타스(Kostas)가 작곡했다.

"나무야, 사랑에 빠졌어(Timber, I'm Falling in Love)"의 성공으로 코스타스는 러블리스와 다른 컨트리 가수들을 위해 더 많은 노래를 작곡하게 되었다.[18] 코스타스가 작곡한 또 다른 노래인 "사랑의 외로운 면(The Lonely Side of Love)"은 1989년 말 컨트리 차트 톱 10에 들었다.[2] 1990년 초, 앨범의 마지막 싱글인 "쇠사슬(Chains)"이 컨트리 차트 1위를 차지하며 두 번째 1위를 기록했다.[2] MCA는 CMT를 통해 앨범을 홍보했는데, 여기에는 팬들이 빌리 밥스 텍사스(Billy Bob's Texas)(Billy Bob's Texas영어,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나이트클럽)에서 러블리스의 공연을 볼 수 있는 여행을 당첨될 수 있는 경품 추첨이 포함되었다. 또한 레이블은 사인된 포스터를 증정했고, 러블리스와 저스틴 부츠(Justin Boots)사와의 후원 계약을 체결했다.[19] 흥겨운 술집 천사(Honky Tonk Angel)는 나중에 미국 레코딩 산업 협회(Recording Industry Association of America)(RIAA)에 의해 100만 장 출하를 기념하여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20] 브라이언 맨스필드(Brian Mansfield)는 이 앨범을 "러블리스를 주요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하게 한 앨범"이라고 설명했다.[21] 캘거리 헤럴드(Calgary Herald)의 웬디 더들리(Wendy Dudley)는 러블리스의 "강력한 보컬"을 칭찬하며 패티 클라인(Patsy Cline)의 보컬과 비교했다.[22]

3. 1. 4. ''On Down the Line'' (1990)

1990년 러블리스는 네 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온 다운 더 라인』(On Down the Line)을 발매했다.[1] 이 앨범의 타이틀곡이자 코스타스의 또 다른 작품인 타이틀곡(On Down the Line)은 상위 5위권에 진입했다.[2] 다음으로는 루신다 윌리엄스의 "더 나이트스 투 롱"(The Night's Too Long) 커버곡[23]이 발표되었는데, 20위에 올랐다.[2] 이 앨범에는 또한 마트라카 버그와 캐런 브룩스가 공동 작곡한 "아임 댓 카인드 오브 걸"(I'm That Kind of Girl)과 "블루 메모리스"(Blue Memories)가 수록되어 있으며, 두 곡 모두 1991년 초 차트에 진입했다.[2] 『온 다운 더 라인』은 500,000장의 판매고를 기념하는 골드 인증을 받았다.[20] 올뮤직(AllMusic)의 알렉스 헨더슨은 이 앨범에 대해 "예측 불가능하고 일관되게 영감을 준 『온 다운 더 라인』은 러블리스 최고의 앨범 중 하나로 남아 있다"고 평했다.[24] 허스트는 "러블리스의 세계적인 수준의 보컬 파워는 세 장의 앨범 동안 그녀의 영혼을 사로잡을 수 있는 소재를 찾고 있었던 것 같으며, 그녀는 이 앨범에서 그것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25]

3. 1. 5. ''Up Against My Heart'' (1991)

러블리스는 1991년 MCA에서의 활동을 『업 어게인스트 마이 하트』(Up Against My Heart)로 마무리했다.[2] 이 앨범의 메인 싱글은 데보라 앨런이 공동 작곡하고 백킹 보컬로 참여한 상위 5위권 곡인 "허트 미 배드 (인 어 리얼 굿 웨이)" (Hurt Me Bad (In a Real Good Way))였다.[2][26] 돌리 파튼, 맥 매캐널리, 빈스 길도 몇몇 앨범 트랙에 참여했다.[26] 마지막 트랙은 라일 로벳의 "God Will" 커버였다.[27] 후속 싱글인 "젤러스 본"(Jealous Bone)과 "캔트 스톱 마이셀프 프롬 러빙 유"(Can't Stop Myself from Loving You)는 빌보드(Billboard)에서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2]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알라나 내쉬는 이 앨범에 "A+" 등급을 매기며 로레타 린에밀루 해리스에 비견될 만한 음악이라고 평가했다.[84] 『컨트리 뮤직: 백과사전』(Country Music: The Encyclopedia) 편집자들은 『업 어게인스트 마이 하트』의 상업적 실패를 와이노나 주드와 트리샤 이어우드와 같은 MCA 레이블의 다른 여성 가수들의 성공 증가 때문으로 돌렸다.[28] 1992년 러블리스는 MCA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매니저였던 자신의 형제 로저를 해고했다.[28]

3. 2. 1992-2005: 에픽 레코드 시절

1992년 말, 패티 러블리스MCA를 떠나 에픽 레코드(Epic Records)와 계약했다. 레이블을 옮기는 기간 동안 드와이트 요컴의 1992년 싱글 "Send a Message to My Heart" (If There Was a Way 수록)에 참여했다.[2] 녹음 전, 그녀는 성대 동맥류 진단을 받았는데,[7] 이는 수년간의 투어로 인한 성대 긴장 때문이었다.[28][30] 1992년 10월 동맥류는 수술로 제거되었고,[30] 한 달간의 휴식과 치료 후, 그녀는 에픽 레코드 데뷔 앨범 ''Only What I Feel''(1993)로 성공적인 복귀를 했다.[1][7][28][30] 이 앨범에서 고디는 프로듀서이자 베이스 기타리스트로, 빈스 길과 조 디피(Joe Diffie)는 백킹 보컬로, 배리 베켓(Barry Beckett)은 키보드, 폴 프랭클린은 스틸 기타, 내슈빌 스트링 머신(Nashville String Machine) 멤버들은 스트링 연주로 참여했다.[31]

가수 패티 러블리스의 헤드샷
90년대 중반의 러블리스.


에픽 레코드에서 발매한 첫 싱글은 할란 하워드(Harlan Howard)와 코스타스가 공동 작곡한 "Blame It on Your Heart"였다.[30] 1993년 중반, 이 노래는 빌보드(Billboard) 차트에서 러블리스의 세 번째 1위 싱글이 되었다.[2] 1993년, 조지 존스(George Jones)의 "I Don't Need Your Rockin' Chair"에 참여하여 컨트리 뮤직 어워드 올해의 보컬 이벤트 상을 수상했다.[98] ''Only What I Feel''은 1994년까지 "Nothin' but the Wheel", "You Will", "How Can I Help You Say Goodbye" 세 싱글을 더 발매했다. 뒤의 두 곡은 빌보드 컨트리 차트 톱 텐에 진입했다.[2] 팸 로즈(Pam Rose)와 메리 앤 케네디가 공동 작곡한 "You Will"은[2] 1991년 앤 머레이(Anne Murray)가 녹음했었다.[32] 배우 버튼 콜린스(Burton Collins)는 1988년 할머니 사망 후 "How Can I Help You Say Goodbye"의 콘셉트를 떠올렸지만, 캐런 테일러-굿(Karen Taylor-Good)을 만난 후에야 곡을 완성했다.[33] ''엔터테인먼트 위클리(Entertainment Weekly)''는 수술 후 러블리스의 보컬이 더 강해졌고, 노래들이 "남녀 간의 이해"를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34] 올뮤직(AllMusic) 또한 러블리스의 목소리가 MCA 시절보다 강해졌다고 평가했다.[35] 1995년 제37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How Can I Help You Say Goodbye"는 최우수 여성 컨트리 보컬상 후보에 올랐다.[100]

1994년, 두 번째 에픽 앨범 ''When Fallen Angels Fly''가 발매되었다.[1] 리드 싱글 "I Try to Think About Elvis"는 컨트리 차트 3위에 올랐다. "Here I Am", "You Don't Even Know Who I Am", "Halfway Down"도 톱 텐에 진입했다.[2] ''When Fallen Angels Fly''는 컨트리 뮤직 어워드 올해의 앨범 상을 수상했다.[98] (앨리슨 크라우스(Alison Krauss)의 ''Now That I've Found You: A Collection'' 실격 후).[36] 1995년과 1996년, 컨트리 뮤직 아카데미(Academy of Country Music) 최우수 여성 보컬리스트 상을 수상했다.[99] "You Don't Even Know Who I Am"은 컨트리 뮤직 아카데미 올해의 노래상과 그래미 최우수 여성 컨트리 보컬상 후보에 지명되었다.[99][100] ''When Fallen Angels Fly''는 1996년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20] ''엔터테인먼트 위클리(Entertainment Weekly)''는 러블리스가 다른 동시대 여성 컨트리 아티스트들보다 더 넓은 감정적 범위를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37] ''캐시박스(Cashbox)''는 "Here I Am"에 대해 "그녀는 몇 안 되는 사람들처럼 감정을 보컬을 통해 쏟아낸다"고 썼다.[38]

1996년, 에픽 레코드는 패티 러블리스의 여덟 번째 정규 앨범인 ''진실의 문제''(The Trouble with the Truth)를 발매했다.[1] 이 앨범의 첫 번째 싱글은 마트라카 버그와 공동 작곡한 "당신은 나쁘다고 느낄 수 있어"(You Can Feel Bad)였으며, 빌보드 컨트리 차트에서 러블리스의 네 번째 1위 싱글이 되었다.[2] 다음 싱글은 조지 존스가 1993년에 녹음했던 "하루에 천 번"(A Thousand Times a Day)이었고,[39] 차트 13위에 올랐다.[2] 그 뒤를 이어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1위 싱글인 "너무 오랫동안 외로웠어"(Lonely Too Long)가 발매되었다.[2] 이후 톱 10 히트곡 "그녀는 상처 입은 마음을 그렸어"(She Drew a Broken Heart)와 톱 20에 오른 타이틀곡이 발표되었다.[2] 러블리스는 이 프로젝트를 "바랐던 대로가 아니라 현실 그대로를 보는 것"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40]

''진실의 문제''는 미국 컨트리 음악 아카데미와 컨트리 뮤직 어소시에이션 모두에서 올해의 앨범 후보로 지명되었다.[99][98] 이 앨범은 그래미상 2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는데, 1997년 최우수 컨트리 앨범 부문과 이듬해 타이틀곡으로 최우수 여성 컨트리 보컬 퍼포먼스 부문이다.[100] 1998년까지 이 앨범은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20] 이 앨범에는 리처드 톰슨의 "눈물 자국 편지"(Tear Stained Letter) 커버곡도 수록되어 있다. ''빌보드''의 한 리뷰는 이 커버곡이 앨범의 주제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지만, 다른 곡들에 대해서는 "동시에 현대적이고 전통적인 사운드를 구현한다"고 평가했다.[41] 같은 잡지는 "너무 오랫동안 외로웠어"에 대한 리뷰에서 러블리스의 목소리가 "잘 쓰여진 이 곡에 다양한 감정을 표출한다"고 밝혔다.[42] 컨트리 스탠다드 타임(Country Standard Time)의 제프리 B. 렘즈(Jeffrey B. Remz)는 "러블리스는 모든 곡의 감정적 핵심에 접근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칭찬했다.[43]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는 컨트리 음악 가수 빈스 길
러블리스는 여러 차례 빈스 길과 협업했습니다.


1997년 후반, 패티 러블리스조지 존스와 함께 부른 "당신은 날 그리워하는 것 같지 않아"(You Don't Seem to Miss Me)로 컨트리 차트 톱 20에 진입했다.[2] 이 곡은 그녀의 아홉 번째 앨범인 ''외로운 긴 여정''(Long Stretch of Lonesome)의 첫 번째 싱글이었다.[1] "다시 당신을 갖고 싶어"(To Have You Back Again)와 "사랑에 취해"(High on Love)(코스타스와 공동 작곡한 또 다른 곡)도 이 앨범에서 톱 20에 진입했지만, "와인처럼 물처럼"(Like Water into Wine)은 1987년 이후 처음으로 컨트리 톱 40에 들지 못한 그녀의 솔로 싱글이 되었다.[2] "당신은 날 그리워하는 것 같지 않아"는 1998년 컨트리 뮤직 어소시에이션에서 올해의 보컬 이벤트 상을 수상했으며,[98] 제40회 그래미상에서 최우수 컨트리 협업 보컬 부문에 후보로 지명되었다.[100] 이 앨범에는 코스타스, 킴 리치, 짐 로덜데일, 그리고 니티 그리티 더트 밴드 멤버 제프 하나 등이 공동 작곡자로 참여했다.[87] ''신시내티 포스트''(The Cincinnati Post)의 캐롤 L. 필립스(Carole L. Phillips)는 이 앨범에 A등급을 매기며, "사랑에 취해"에서 블루그래스와 록 음악의 영향을 언급했고, 다른 곡들에서는 그녀의 보컬을 로레타 린과 로이 오비슨에 비유했다.[85] 컨트리 스탠다드 타임의 제프리 B. 렘즈는 특히 "다시 당신을 갖고 싶어", "당신은 날 그리워하는 것 같지 않아", 그리고 타이틀곡에서 그녀의 보컬을 칭찬했다.[87] ''외로운 긴 여정''은 1998년 골드 인증을 받았다.[20] 또한 1998년, 그녀는 여러 아티스트가 참여한 협업 프로젝트인 "세임 올드 트레인"(Same Old Train)에 참여했다. 이 곡은 1998년 트리뷰트 앨범 ''전통에 대한 헌정''(A Tribute to Tradition)에 수록되었고, 그 해 핫 컨트리 송 차트에 진입했으며, 그래미 최우수 컨트리 협업 보컬상을 수상하여 러블리스에게 첫 그래미상을 안겨주었다.[100][44]

그녀의 다음 에픽 레코드 발매작은 1999년에 발매된 ''클래식''(Classics)이라는 편집 앨범이었다. 이 앨범에는 이전 에픽 앨범의 싱글 9곡과 새로운 곡 3곡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두 곡—"충분히 얻을 수 없어"(Can't Get Enough)와 빈스 길과 함께 부른 "나의 여자/나의 남자"(My Kind of Woman/My Kind of Man)—이 싱글로 발매되었다.[45][2] 러블리스와 길은 이 곡 이전에 여러 차례 함께 작업했는데, 특히 그녀는 그의 싱글 "내가 당신의 이름을 부를 때",[46] "골드로 가득찬 주머니",[47] 그리고 "그 높은 산에서 쉬어라"(Go Rest High on That Mountain)에서 백킹 보컬을 맡았다.[48] "나의 여자/나의 남자"는 두 아티스트 모두에게 컨트리 뮤직 어소시에이션의 올해의 보컬 이벤트 상을 안겨주었다.[98] 컨트리 스탠다드 타임의 제프리 B. 렘즈는 이전에 발매된 싱글들의 일관성을 칭찬했지만, "충분히 얻을 수 없어"는 비교적 저조하다고 평가했다.[49] ''클래식''은 2002년 골드 인증을 받았다.[20] 러블리스는 폐렴에 걸리고 고디가 급성 췌장염으로 응급 수술을 받아야 해서 1999년 말에 잠시 녹음 활동을 중단했다.[50][51] 이 휴식 기간의 예외적인 경우로 1999년 후반, 그녀는 팀 맥그로의 1위 싱글 "제발 날 기억해줘"(Please Remember Me)에서 백킹 보컬을 맡았다.[52]

2000년, 러블리스는 스튜디오 앨범인 스트롱 하트(Strong Heart)로 돌아왔다.[1] 앨범 녹음에 대해 그녀는 젊은 성인들에게 어필하는 노래를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스티브 얼은 "You're So Cool"이라는 곡에 하모니카 파트를 연주했다.[51] 이 앨범은 "그런 기분이야 (That's the Kind of Mood I'm In)"와 "내 마음속의 마지막 것"(The Last Thing on My Mind)이라는 두 곡의 컨트리 차트 20위권 싱글을 탄생시켰다.[2] 이러한 차트 진입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는데, 올뮤직의 스티브 휴이는 이 앨범의 실패를 이전 앨범들보다 더 컨트리 팝 사운드에 기인한 것으로 돌렸다.[1] 알라나 내쉬는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리뷰에서 비슷한 의견을 공유했지만, 바이올린 연주가 포함된 "My Heart Will Never Pass This Way Again"이라는 곡을 칭찬했다.[53] 컨트리 스탠다드 타임의 평론가 엘리 메싱거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더 엇갈린 반응을 보였는데, ''긴 외로운 길''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여러 트랙에 지미 홀과 트래비스 트릿이 참여한 것을 언급했다.[54]

러블리스는 2001년과 2002년에 블루그래스 앨범 두 장을 발표했다. 첫 번째 앨범은 2001년에 발매된 ''마운틴 소울''(Mountain Soul)로, 오리지널 곡과 커버 곡으로 구성되었다. 러블리스는 1992년 랄프 스탠리를 만난 이후 어쿠스틱 블루그래스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에픽 레코드 임원들은 그녀가 콘서트에서 블루그래스 노래를 부를 때마다 팬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고 이 프로젝트를 승인했다.[55] 오 브라더, 어디 있나? 사운드트랙과 니켈 크릭의 작품처럼 블루그래스 음악의 영향을 받은 앨범들이 당시에 성공한 것도 영향을 주었다.[55] 이 앨범에는 얼 스크럭스와 리키 스캐그스가 게스트 보컬로 참여했고, 포터 와고너, 돌리 파튼, 다렐 스콧이 불렀던 노래들의 커버 버전이 수록되었다.[57] 1992년 마티나 맥브라이드의 싱글이었던 고디의 "Cheap Whiskey"도 커버했다.[57] 트래비스 트릿과의 듀엣곡 "Out of Control Raging Fire"는 2001년 말 싱글과 뮤직비디오로 공개되었다.[56] 컨트리 스탠다드 타임은 "그녀 경력에서 가장 감정이 넘치고 단호하게 강력한 앨범"이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57] ''마운틴 소울''은 최우수 블루그래스 앨범 부문 후보에 올랐다.[100] "The Boys Are Back in Town"과 "너는 할란을 살아서 떠나지 못할 거야"는 2002년 국제 블루그래스 음악상 올해의 노래 부문 후보에 올랐다.[58]

2002년에는 크리스마스 블루그래스 앨범 ''블루그래스 & 화이트 스노우: 어 마운틴 크리스마스''(Bluegrass & White Snow: A Mountain Christmas)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대부분 "고요한 밤"이나 "구유에 누우신 아기" 같은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노래 커버로 구성되었다. 존 랜달은 "세상의 기쁨" 연주에, 레베카 린 하워드는 "작은 북 치는 아이"에 참여했다. 고디는 타이틀곡과 다른 두 곡의 오리지널 곡을 썼다.[59]

컨트리 음악 가수 로드니 크로웰, 의자에 앉아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고 있음
러블리스는 2003년 로드니 크로웰의 "러빙 올 나이트"를 커버하여 발매했다.


러블리스의 다음 앨범은 2003년 ''온 유어 웨이 홈''이었다.[1] 러블리스는 나중에 그녀와 에모리 고디가 ''마운틴 소울''의 "전통적인" 블루그래스 느낌을 드럼과 일렉트릭 기타와 같은 더 현대적인 악기와 섞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첫 번째 싱글로 로드니 크로웰의 "러빙 올 나이트"를 커버하기로 선택했다.[60] 이 곡은 러블리스의 마지막 20위권 히트곡이 되었고, 타이틀곡과 "I Wanna Believe"는 그녀의 마지막 차트 진입곡이었다.[2] 이 앨범의 공동 작곡가에는 마티 스튜어트, 버디 밀러, 마트라카 버그가 포함되었다. AP통신의 스티븐 와인은 러블리스의 "토속적인 트왕"을 칭찬했지만, 마지막 트랙인 "The Grandpa That I Know"를 가사적으로 가장 강력하다고 생각했다.[61] 올뮤직의 작가 톰 주렉도 "The Grandpa That I Know"와 러블리스의 전반적인 보컬 톤, 그리고 제작에 도브로와 바이올린이 포함된 것을 칭찬했다.[62] 이 앨범으로 러블리스는 미국 컨트리 음악 아카데미와 컨트리 뮤직 어워드 모두에서 올해의 여성 보컬리스트 후보로 지명되었고,[99][98] 타이틀곡은 최우수 여성 컨트리 보컬 성과 부문 그래미상 후보로 지명되었다.[100] 2004년 러블리스는 앨런 잭슨의 싱글 "월요일 아침 교회"에 백킹 보컬로 참여했다.[63] 두 사람은 그해 컨트리 뮤직 어워드 시상식에서 함께 이 노래를 공연했다.[64]

2005년, 패티 러블리스는 ''Dreamin' My Dreams''를 발매했는데, 이 앨범은 에픽 레코드가 내슈빌 지사를 폐쇄하기 전 그녀의 마지막 에픽 앨범이었다.[65] 이 프로젝트는 에모리 고디 주니어와 저스틴 니뱅크가 공동 제작했다. 참여 음악가로는 리 로이 파넬, 존 랜달, 에밀루 해리스가 있다.[65]

이 앨범에는 네 곡의 커버곡이 수록되어 있다. 웨일런 제닝스의 "당신과 함께 꿈을 꾸며", 리처드 톰슨의 "Keep Your Distance", 스티브 얼의 "My Old Friend the Blues", 그리고 드와이트 요아캄과의 듀엣으로 델러니 브램릿의 "끝없는 사랑의 노래" 커버곡이다. "Keep Your Distance"는 이 앨범의 유일한 싱글이었다.[66]

''컨트리 스탠더드 타임''의 브라이언 왈허트는 이 앨범에 대해 러블리스와 고디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상의 기쁨과 고통을 표현하는 노래를 찾는 재주가 있다"고 평했다. 그는 특히 "On the Verge of Tears"에서 러블리스의 보컬 전달 방식을 칭찬했다.[67] ''뉴스 앤드 옵저버''의 잭 번하르트는 이 앨범을 그녀의 가장 강력한 앨범으로 꼽으며 노래의 "이야기 전달 매력"을 언급했고, 러블리스의 보컬을 팻시 클라인의 보컬과 비교하며 호평했다.[66]

같은 해, 빈스 길은 그의 컴필레이션 앨범 ''디스 데이스''의 "Out of My Mind" 트랙에서 러블리스를 듀엣 파트너로 참여시켰다.[68]

3. 2. 1. 성대 수술과 복귀

1992년 말, 패티 러블리스MCA를 떠나 에픽 레코드(Epic Records)와 계약했다. 레이블을 옮기는 기간 동안 드와이트 요컴의 1992년 싱글 "Send a Message to My Heart" (If There Was a Way 수록)에 참여했다.[2] 녹음 전, 그녀는 성대 동맥류 진단을 받았는데,[7] 이는 수년간의 투어로 인한 성대 긴장 때문이었다.[28][30] 1992년 10월 동맥류는 수술로 제거되었고,[30] 한 달간의 휴식과 치료 후, 그녀는 에픽 레코드 데뷔 앨범 ''Only What I Feel''(1993)로 성공적인 복귀를 했다.[1][7][28][30] 이 앨범에서 고디(Gordy)는 프로듀서이자 베이스 기타리스트로, 빈스 길과 조 디피(Joe Diffie)는 백킹 보컬로, 배리 베켓(Barry Beckett)은 키보드, 폴 프랭클린은 스틸 기타, 내슈빌 스트링 머신(Nashville String Machine) 멤버들은 스트링 연주로 참여했다.[31]

에픽 레코드에서 발매한 첫 싱글은 할란 하워드(Harlan Howard)와 코스타스(Kostas)가 공동 작곡한 "Blame It on Your Heart"였다.[30] 1993년 중반, 이 노래는 빌보드(Billboard) 차트에서 러블리스의 세 번째 1위 싱글이 되었다.[2] 1993년, 조지 존스(George Jones)의 "I Don't Need Your Rockin' Chair"에 참여하여 컨트리 뮤직 어워드(Country Music Association) 올해의 보컬 이벤트 상을 수상했다.[98] ''Only What I Feel''은 1994년까지 "Nothin' but the Wheel", "You Will", "How Can I Help You Say Goodbye" 세 싱글을 더 발매했다. 뒤의 두 곡은 빌보드 컨트리 차트 톱 텐에 진입했다.[2] 팸 로즈(Pam Rose)와 메리 앤 케네디가 공동 작곡한 "You Will"은[2] 1991년 앤 머레이(Anne Murray)가 녹음했었다.[32] 배우 버튼 콜린스(Burton Collins)는 1988년 할머니 사망 후 "How Can I Help You Say Goodbye"의 콘셉트를 떠올렸지만, 캐런 테일러-굿(Karen Taylor-Good)을 만난 후에야 곡을 완성했다.[33] ''엔터테인먼트 위클리(Entertainment Weekly)''는 수술 후 러블리스의 보컬이 더 강해졌고, 노래들이 "남녀 간의 이해"를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34] 올뮤직(AllMusic) 또한 러블리스의 목소리가 MCA 시절보다 강해졌다고 평가했다.[35] 1995년 제37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How Can I Help You Say Goodbye"는 최우수 여성 컨트리 보컬상 후보에 올랐다.[100]

1994년, 두 번째 에픽 앨범 ''When Fallen Angels Fly''가 발매되었다.[1] 리드 싱글 "I Try to Think About Elvis"는 컨트리 차트 3위에 올랐다. "Here I Am", "You Don't Even Know Who I Am", "Halfway Down"도 톱 텐에 진입했다.[2] ''When Fallen Angels Fly''는 컨트리 뮤직 어워드(Country Music Association) 올해의 앨범 상을 수상했다.[98] (앨리슨 크라우스(Alison Krauss)의 ''Now That I've Found You: A Collection'' 실격 후).[36] 1995년과 1996년, 컨트리 뮤직 아카데미(Academy of Country Music) 최우수 여성 보컬리스트 상을 수상했다.[99] "You Don't Even Know Who I Am"은 컨트리 뮤직 아카데미 올해의 노래상과 그래미 최우수 여성 컨트리 보컬상 후보에 지명되었다.[99][100] ''When Fallen Angels Fly''는 1996년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20] ''엔터테인먼트 위클리(Entertainment Weekly)''는 러블리스가 다른 동시대 여성 컨트리 아티스트들보다 더 넓은 감정적 범위를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37] ''캐시박스(Cashbox)''는 "Here I Am"에 대해 "그녀는 몇 안 되는 사람들처럼 감정을 보컬을 통해 쏟아낸다"고 썼다.[38]

3. 2. 2. ''Only What I Feel'' (1993)

1992년 말, 패티 러블리스MCA를 떠나 에픽 레코드(Epic Records)와 계약했다. 레이블을 옮기는 기간 동안 드와이트 요컴의 1992년 싱글 "Send a Message to My Heart" (If There Was a Way 수록)에 참여했다.[2] 녹음 전, 성대 동맥류 진단을 받았는데,[7] 이는 수년간의 투어로 인한 성대 긴장 때문이었다.[28][30] 1992년 10월 동맥류 제거 수술을 받았고,[30] 한 달 동안 목소리 휴식과 치료를 해야 했다.[28][30] 회복 후, 에픽 레코드 데뷔 앨범 ''Only What I Feel'' (1993)로 성공적인 복귀를 했다.[1][7] 이 앨범에서 고디는 프로듀서이자 베이스 기타리스트로 참여했다. 빈스 길과 조 디피(Joe Diffie)가 백킹 보컬, 배리 베켓(Barry Beckett), 폴 프랭클린, 내슈빌 스트링 머신(Nashville String Machine) 멤버들이 스트링 연주로 참여했다.[31]

에픽 레코드에서 발매한 첫 싱글은 코스타스(Kostas)와 할란 하워드(Harlan Howard)가 공동 작곡한 "Blame It on Your Heart"였다.[30] 1993년 중반, 이 노래는 빌보드 차트에서 러블리스의 세 번째 1위 싱글이 되었다.[2] 1993년 조지 존스(George Jones)의 "I Don't Need Your Rockin' Chair"에 참여, 컨트리 뮤직 어워드 올해의 보컬 이벤트 상을 수상했다.[98]

''Only What I Feel''은 1994년까지 "Nothin' but the Wheel", "You Will", "How Can I Help You Say Goodbye" 세 싱글을 더 발매했다. 후자의 두 곡은 빌보드 컨트리 차트 톱 텐에 진입했다.[2] "You Will"은 팸 로즈(Pam Rose)와 메리 앤 케네디 (케네디 로즈(Kennedy Rose) 멤버)가 공동 작곡,[2] 1991년 앤 머레이(Anne Murray)가 녹음했었다.[32] "How Can I Help You Say Goodbye"는 배우 버튼 콜린스(Burton Collins)가 1988년 할머니 사망 후 콘셉트를 떠올렸지만, 캐런 테일러-굿(Karen Taylor-Good)을 만난 후 훨씬 나중에야 완성했다.[33] ''엔터테인먼트 위클리(Entertainment Weekly)''는 수술 후 러블리스의 보컬이 더 강해졌고, 노래들이 "남녀 간의 이해"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34] 올뮤직(AllMusic)은 러블리스의 목소리가 MCA 시절보다 강해졌다고 평가, "Nothin' but the Wheel"에서의 가창력을 강조했다.[35] 1995년 제37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How Can I Help You Say Goodbye"는 최우수 여성 컨트리 보컬상 후보에 지명, 첫 그래미 어워드 후보 지명이었다.[100]

3. 2. 3. ''When Fallen Angels Fly'' (1994)



그녀의 두 번째 에픽 앨범은 1994년에 발매된 ''When Fallen Angels Fly''였다.[1] 리드 싱글 "I Try to Think About Elvis"는 같은 해 컨트리 차트에서 3위에 올랐다. 또한 톱 텐에 진입한 싱글로는 "Here I Am", "You Don't Even Know Who I Am", 그리고 "Halfway Down"이 있다.[2] ''When Fallen Angels Fly''는 이후 컨트리 뮤직 어워드(Country Music Association)에서 올해의 앨범 상을 수상했다.[98] 이 앨범은 원래 이 부문 후보로 고려되지 않았으나, 컨트리 뮤직 어워드는 앨리슨 크라우스(Alison Krauss)의 ''Now That I've Found You: A Collection''을 실격 처리한 후 이 앨범을 추가했다.[36] 그녀는 1995년과 1996년 모두 컨트리 뮤직 아카데미(Academy of Country Music)에서 최우수 여성 보컬리스트 상을 수상했다.[99] "You Don't Even Know Who I Am"은 컨트리 뮤직 아카데미에서 올해의 노래상과 그래미 최우수 여성 컨트리 보컬상에 후보로 지명되었다.[99][100] ''When Fallen Angels Fly''는 1996년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20] ''엔터테인먼트 위클리(Entertainment Weekly)''의 밥 캐넌(Bob Cannon)은 러블리스가 이 앨범에서 다른 동시대 여성 컨트리 아티스트들보다 더 넓은 감정적 범위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하며, "Halfway Down"과 "You Don't Even Know Who I Am"에서의 그녀의 보컬을 대조적으로 언급했다.[37] 리처드 맥베이(Richard McVey)는 ''캐시박스(Cashbox)'' 매거진에서 "Here I Am"에 대해 "그녀는 몇 안 되는 사람들처럼 감정을 보컬을 통해 쏟아낸다"고 썼다.[38]

3. 2. 4. ''The Trouble with the Truth'' (1996)

1996년, 에픽 레코드(Epic)는 패티 러블리스의 여덟 번째 정규 앨범인 ''진실의 문제''(The Trouble with the Truth)를 발매했다.[1] 이 앨범의 첫 번째 싱글은 마트라카 버그(Matraca Berg)와 공동 작곡한 "당신은 나쁘다고 느낄 수 있어"(You Can Feel Bad)였으며, 빌보드(Billboard) 컨트리 차트에서 러블리스의 네 번째 1위 싱글이 되었다.[2] 다음 싱글은 조지 존스가 1993년에 녹음했던 "하루에 천 번"(A Thousand Times a Day)이었고,[39] 차트 13위에 올랐다.[2] 그 뒤를 이어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1위 싱글인 "너무 오랫동안 외로웠어"(Lonely Too Long)가 발매되었다.[2] 이후 톱 10 히트곡 "그녀는 상처 입은 마음을 그렸어"(She Drew a Broken Heart)와 톱 20에 오른 타이틀곡이 발표되었다.[2] 러블리스는 이 프로젝트를 "바랐던 대로가 아니라 현실 그대로를 보는 것"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40]

''진실의 문제''는 미국 컨트리 음악 아카데미(Academy of Country Music)와 컨트리 뮤직 어소시에이션(Country Music Association) 모두에서 올해의 앨범 후보로 지명되었다.[99][98] 이 앨범은 그래미상 2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는데, 1997년 최우수 컨트리 앨범 부문과 이듬해 타이틀곡으로 최우수 여성 컨트리 보컬 퍼포먼스 부문이다.[100] 1998년까지 이 앨범은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20] 이 앨범에는 리처드 톰슨의 "눈물 자국 편지"(Tear Stained Letter) 커버곡도 수록되어 있다. ''빌보드''의 한 리뷰는 이 커버곡이 앨범의 주제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지만, 다른 곡들에 대해서는 "동시에 현대적이고 전통적인 사운드를 구현한다"고 평가했다.[41] 같은 잡지는 "너무 오랫동안 외로웠어"에 대한 리뷰에서 러블리스의 목소리가 "잘 쓰여진 이 곡에 다양한 감정을 표출한다"고 밝혔다.[42] 컨트리 스탠다드 타임(Country Standard Time)의 제프리 B. 렘즈(Jeffrey B. Remz)는 "러블리스는 모든 곡의 감정적 핵심에 접근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칭찬했다.[43]

3. 2. 5. ''Long Stretch of Lonesome'' (1997)



1997년 후반, 패티 러블리스조지 존스와 함께 부른 "당신은 날 그리워하는 것 같지 않아"(You Don't Seem to Miss Me)로 컨트리 차트 톱 20에 진입했다.[2] 이 곡은 그녀의 아홉 번째 앨범인 ''외로운 긴 여정''(Long Stretch of Lonesome)의 첫 번째 싱글이었다.[1] "다시 당신을 갖고 싶어"(To Have You Back Again)와 "사랑에 취해"(High on Love)(코스타스와 공동 작곡한 또 다른 곡)도 이 앨범에서 톱 20에 진입했지만, "와인처럼 물처럼"(Like Water into Wine)은 1987년 이후 처음으로 컨트리 톱 40에 들지 못한 그녀의 솔로 싱글이 되었다.[2] "당신은 날 그리워하는 것 같지 않아"는 1998년 컨트리 뮤직 어소시에이션에서 올해의 보컬 이벤트 상을 수상했으며,[98] 제40회 그래미상에서 최우수 컨트리 협업 보컬 부문에 후보로 지명되었다.[100] 이 앨범에는 코스타스, 킴 리치, 짐 로덜데일, 그리고 니티 그리티 더트 밴드 멤버 제프 하나 등이 공동 작곡자로 참여했다.[87] ''신시내티 포스트''(The Cincinnati Post)의 캐롤 L. 필립스(Carole L. Phillips)는 이 앨범에 A등급을 매기며, "사랑에 취해"에서 블루그래스와 록 음악의 영향을 언급했고, 다른 곡들에서는 그녀의 보컬을 로레타 린과 로이 오비슨에 비유했다.[85] 컨트리 스탠다드 타임(Country Standard Time)의 제프리 B. 렘즈(Jeffrey B. Remz)는 특히 "다시 당신을 갖고 싶어", "당신은 날 그리워하는 것 같지 않아", 그리고 타이틀곡에서 그녀의 보컬을 칭찬했다.[87] ''외로운 긴 여정''은 1998년 골드 인증을 받았다.[20] 또한 1998년, 그녀는 여러 아티스트가 참여한 협업 프로젝트인 "세임 올드 트레인"(Same Old Train)에 참여했다. 이 곡은 1998년 트리뷰트 앨범 ''전통에 대한 헌정''(A Tribute to Tradition)에 수록되었고, 그 해 핫 컨트리 송 차트에 진입했으며, 그래미 최우수 컨트리 협업 보컬상을 수상하여 러블리스에게 첫 그래미상을 안겨주었다.[100][44]

3. 2. 6. ''Classics'' (1999)

그녀의 다음 에픽 레코드 발매작은 1999년에 발매된 ''클래식''(Classics)이라는 편집 앨범이었다. 이 앨범에는 이전 에픽 앨범의 싱글 9곡과 새로운 곡 3곡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두 곡—"충분히 얻을 수 없어"(Can't Get Enough)와 빈스 길과 함께 부른 "나의 여자/나의 남자"(My Kind of Woman/My Kind of Man)—이 싱글로 발매되었다.[45][2] 러블리스와 길은 이 곡 이전에 여러 차례 함께 작업했는데, 특히 그녀는 그의 싱글 "내가 당신의 이름을 부를 때",[46] "골드로 가득찬 주머니",[47] 그리고 "그 높은 산에서 쉬어라"(Go Rest High on That Mountain)에서 백킹 보컬을 맡았다.[48] "나의 여자/나의 남자"는 두 아티스트 모두에게 컨트리 뮤직 어소시에이션의 올해의 보컬 이벤트 상을 안겨주었다.[98] 컨트리 스탠다드 타임(Country Standard Time)의 제프리 B. 렘즈(Jeffrey B. Remz)는 이전에 발매된 싱글들의 일관성을 칭찬했지만, "충분히 얻을 수 없어"는 비교적 저조하다고 평가했다.[49] ''클래식''은 2002년 골드 인증을 받았다.[20] 러블리스는 폐렴에 걸리고 고디(Gordy)가 급성 췌장염으로 응급 수술을 받아야 해서 1999년 말에 잠시 녹음 활동을 중단했다.[50][51] 이 휴식 기간의 예외적인 경우로 1999년 후반, 그녀는 팀 맥그로의 1위 싱글 "제발 날 기억해줘"(Please Remember Me)에서 백킹 보컬을 맡았다.[52]

3. 2. 7. ''Strong Heart'' (2000)

2000년, 러블리스는 스튜디오 앨범인 스트롱 하트(Strong Heart)로 돌아왔다.[1] 앨범 녹음에 대해 그녀는 젊은 성인들에게 어필하는 노래를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스티브 얼은 "You're So Cool"이라는 곡에 하모니카 파트를 연주했다.[51] 이 앨범은 "그런 기분이야 (That's the Kind of Mood I'm In)"와 "내 마음속의 마지막 것"(The Last Thing on My Mind)이라는 두 곡의 컨트리 차트 20위권 싱글을 탄생시켰다.[2] 이러한 차트 진입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는데, 올뮤직(AllMusic)의 스티브 휴이는 이 앨범의 실패를 이전 앨범들보다 더 컨트리 팝 사운드에 기인한 것으로 돌렸다.[1] 알라나 내쉬는 ''엔터테인먼트 위클리(Entertainment Weekly)''의 리뷰에서 비슷한 의견을 공유했지만, 바이올린 연주가 포함된 "My Heart Will Never Pass This Way Again"이라는 곡을 칭찬했다.[53] 컨트리 스탠더드 타임(Country Standard Time)의 평론가 엘리 메싱거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더 엇갈린 반응을 보였는데, ''긴 외로운 길''(Long Stretch of Lonesome)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여러 트랙에 지미 홀(Jimmy Hall)과 트래비스 트릿(Travis Tritt)이 참여한 것을 언급했다.[54]

3. 2. 8. 블루그래스 앨범: ''Mountain Soul'' (2001), ''Bluegrass & White Snow'' (2002)

러블리스는 2001년과 2002년에 블루그래스 앨범 두 장을 발표했다. 첫 번째 앨범은 2001년에 발매된 ''마운틴 소울''(Mountain Soul)로, 오리지널 곡과 커버 곡으로 구성되었다. 러블리스는 1992년 랄프 스탠리를 만난 이후 어쿠스틱 블루그래스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에픽 레코드 임원들은 그녀가 콘서트에서 블루그래스 노래를 부를 때마다 팬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고 이 프로젝트를 승인했다.[55] 오 브라더, 어디 있나? 사운드트랙과 니켈 크릭의 작품처럼 블루그래스 음악의 영향을 받은 앨범들이 당시에 성공한 것도 영향을 주었다.[55] 이 앨범에는 얼 스크럭스와 리키 스캐그스가 게스트 보컬로 참여했고, 포터 와고너, 돌리 파튼, 다렐 스콧이 불렀던 노래들의 커버 버전이 수록되었다.[57] 1992년 마티나 맥브라이드의 싱글이었던 고디의 "Cheap Whiskey"도 커버했다.[57] 트래비스 트릿과의 듀엣곡 "Out of Control Raging Fire"는 2001년 말 싱글과 뮤직비디오로 공개되었다.[56] 컨트리 스탠더드 타임은 "그녀 경력에서 가장 감정이 넘치고 단호하게 강력한 앨범"이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57] ''마운틴 소울''은 최우수 블루그래스 앨범 부문 후보에 올랐다.[100] "The Boys Are Back in Town"과 "너는 할란을 살아서 떠나지 못할 거야"는 2002년 국제 블루그래스 음악상 올해의 노래 부문 후보에 올랐다.[58]

2002년에는 크리스마스 블루그래스 앨범 ''블루그래스 & 화이트 스노우: 어 마운틴 크리스마스''(Bluegrass & White Snow: A Mountain Christmas)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대부분 "고요한 밤"이나 "구유에 누우신 아기" 같은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노래 커버로 구성되었다. 존 랜달은 "세상의 기쁨" 연주에, 레베카 린 하워드는 "작은 북 치는 아이"에 참여했다. 고디는 타이틀곡과 다른 두 곡의 오리지널 곡을 썼다.[59]

3. 2. 9. ''On Your Way Home'' (2003)



러블리스의 다음 앨범은 2003년 ''온 유어 웨이 홈''이었다.[1] 러블리스는 나중에 그녀와 에모리 고디가 ''마운틴 소울''의 "전통적인" 블루그래스 느낌을 드럼과 일렉트릭 기타와 같은 더 현대적인 악기와 섞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첫 번째 싱글로 로드니 크로웰의 "러빙 올 나이트"를 커버하기로 선택했다.[60] 이 곡은 러블리스의 마지막 20위권 히트곡이 되었고, 타이틀곡과 "I Wanna Believe"는 그녀의 마지막 차트 진입곡이었다.[2] 이 앨범의 공동 작곡가에는 마티 스튜어트, 버디 밀러, 마트라카 버그가 포함되었다. AP통신의 스티븐 와인은 러블리스의 "토속적인 트왕"을 칭찬했지만, 마지막 트랙인 "The Grandpa That I Know"를 가사적으로 가장 강력하다고 생각했다.[61] 올뮤직의 작가 톰 주렉도 "The Grandpa That I Know"와 러블리스의 전반적인 보컬 톤, 그리고 제작에 도브로와 바이올린이 포함된 것을 칭찬했다.[62] 이 앨범으로 러블리스는 미국 컨트리 음악 아카데미와 컨트리 뮤직 어워드 모두에서 올해의 여성 보컬리스트 후보로 지명되었고,[99][98] 타이틀곡은 최우수 여성 컨트리 보컬 성과 부문 그래미상 후보로 지명되었다.[100] 2004년 러블리스는 앨런 잭슨의 싱글 "월요일 아침 교회"에 백킹 보컬로 참여했다.[63] 두 사람은 그해 컨트리 뮤직 어워드 시상식에서 함께 이 노래를 공연했다.[64]

3. 2. 10. ''Dreamin' My Dreams'' (2005)

2005년, 패티 러블리스는 ''Dreamin' My Dreams''를 발매했는데, 이 앨범은 에픽 레코드가 내슈빌 지사를 폐쇄하기 전 그녀의 마지막 에픽 앨범이었다.[65] 이 프로젝트는 에모리 고디 주니어와 저스틴 니뱅크가 공동 제작했다. 참여 음악가로는 리 로이 파넬, 존 랜달, 에밀루 해리스가 있다.[65]

이 앨범에는 네 곡의 커버곡이 수록되어 있다. 웨일런 제닝스의 "당신과 함께 꿈을 꾸며", 리처드 톰슨의 "Keep Your Distance", 스티브 얼의 "My Old Friend the Blues", 그리고 드와이트 요아캄과의 듀엣으로 델러니 브램릿의 "끝없는 사랑의 노래" 커버곡이다. "Keep Your Distance"는 이 앨범의 유일한 싱글이었다.[66]

''컨트리 스탠더드 타임''의 브라이언 왈허트는 이 앨범에 대해 러블리스와 고디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상의 기쁨과 고통을 표현하는 노래를 찾는 재주가 있다"고 평했다. 그는 특히 "On the Verge of Tears"에서 러블리스의 보컬 전달 방식을 칭찬했다.[67] ''뉴스 앤드 옵저버''의 잭 번하르트는 이 앨범을 그녀의 가장 강력한 앨범으로 꼽으며 노래의 "이야기 전달 매력"을 언급했고, 러블리스의 보컬을 팻시 클라인의 보컬과 비교하며 호평했다.[66]

같은 해, 빈스 길은 그의 컴필레이션 앨범 ''디스 데이스''의 "Out of My Mind" 트랙에서 러블리스를 듀엣 파트너로 참여시켰다.[68]

3. 3. 2008-현재: 블루그래스 음악 활동 및 은퇴

2006년, 밥 시거(Bob Seger)의 앨범 ''페이스 더 프로미스(Face the Promise)''에 수록된 "더 앤서스 인 더 퀘스천(The Answer's in the Question)"에서 듀엣으로 참여했다.[69] 오디오 엔지니어(audio engineer)인 데이비드 N. 콜(David N. Cole)의 추천으로 성사되었으며, 시거는 처음에 러블리스의 승낙을 확신하지 못했지만 서로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합의했다.[69] 이후 에픽 레코드사의 내슈빌 지사 폐쇄, 어머니와 시어머니의 사망, 형제 로저의 뇌졸중 등의 이유로 녹음 활동을 중단했다.[70]

컨트리 음악 가수 패티 러블리스 사인
2004년 러블리스.


2008년 사구아로 로드 레코드(Saguaro Road Records)에서 ''슬립리스 나이츠(Sleepless Nights)''를 발매했다.[71] 이 앨범은 1996년에 사망한 여동생 도티와 로저에게 헌정하는 커버 앨범으로, 에벌리 브라더스(The Everly Brothers), 조지 존스, 포터 웨이건너, 웹 피어스(Webb Pierce)의 곡들을 커버했다.[70] 하거스 "피그" 로빈스(Hargus "Pig" Robbins), 앨 퍼킨스(Al Perkins), 해리 스틴슨(Harry Stinson) 등이 참여했다.[70] 첫 싱글은 존스의 "와이 베이비 와이(Why Baby Why)" 커버였다.[70] 제51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컨트리 앨범 부문에 후보로 지명되었다.[100] 조지 스트레이트(George Strait)의 2008년 앨범 ''트루바두르(Troubadour)''에 수록된 "하우스 오브 캐시(House of Cash)"에서 듀엣 보컬을 맡았고,[74] 이 곡은 최우수 컨트리 협업 보컬 부문에 후보로 지명되었다.[100]

2009년, ''마운틴 소울 II(Mountain Soul II)''를 발매했다. 이 앨범은 ''마운틴 소울''의 후속작으로, 어쿠스틱과 블루그래스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 빈스 길, 델 맥커리(Del McCoury), 에밀루 해리스가 보컬에 참여했고, 에밀루 해리스는 자신의 곡 "다이아몬드 인 마이 크라운(Diamond in My Crown)"을 커버했다. 아카펠라(a cappella)로 부른 "아브라함의 자녀들(Children of Abraham)"과 같은 전통적인 기독교 곡들도 포함되었다.[75] 첫 싱글은 할런 하워드의 "버스티드(Busted)" 커버였다.[76]

2009년 공연 활동에서 대부분 은퇴했지만, 다른 아티스트들의 앨범에 산발적으로 참여했다. 미란다 램버트(Miranda Lambert)의 2010년 앨범 ''포 더 레코드(Four the Record)''에 수록된 "디어 다이아몬드(Dear Diamond)" 트랙에 보컬을 제공했다.[77] 같은 해, 나스카(NASCAR)의 만성 폐쇄성 폐 질환 인식 개선 프로그램에 다니카 패트릭(Danica Patrick), 케이틀린 제너(Caitlyn Jenner), 마이클 스트라한(Michael Strahan)과 함께 참여했다.[78] 앤젤리나 프레슬리(Angaleena Presley),[79] 엘리자베스 쿡(Elizabeth Cook),[80] 트리샤 이어우드(Trisha Yearwood), 칼리 피어스(Carly Pearce)의 앨범에도 참여했다.[81]

2022년 10월, 켄터키주 홍수 피해자들을 위한 자선 콘서트 켄터키 라이징(Kentucky Rising)에 크리스 스태플턴(Chris Stapleton), 드와이트 요컴, 리키 스캐그스(Ricky Skaggs), 타일러 차일더스(Tyler Childers) 등과 함께 참여했다.[82] 한 달 후, 러블리스와 스태플턴은 제56회 컨트리 뮤직 어워드에서 "유윌 네버 리브 할런 얼라이브(You'll Never Leave Harlan Alive)"를 함께 공연했다.[83]

4. 음악 스타일

패티 러블리스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강렬하면서도 취약한 목소리로 로레타 린, 키티 웰스와 비교되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28] 헌키통크와 컨트리 록의 조화, 애절하고 감성적인 발라드 스타일로 스타덤에 올랐으며, 90년대 초 에픽으로 이적하면서 진정한 아티스트로 거듭났다는 평가를 받았다.[1] 그녀는 자신의 보컬 톤을 블루그래스 음악으로 유명한 켄터키 지역에서의 성장 배경 때문이라고 말했다.[7]

러블리스의 목소리는 "거칠고 상처받은 목소리"로 묘사되기도 한다.[84] 신전통주의자 에밀루 해리스처럼, 톡톡 튀는 컨트리 록 비트나 자신이 사랑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아는 여성으로 묘사하는 진보적인 가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84] 또한, 록의 강렬한 감정적 긴장감을 허스키한 테너와 융합한다는 평도 있었다.[85] 워싱턴 포스트의 제프리 하임스는 러블리스 노래 가사에서 "상실"과 "가슴 아픔"이라는 반복되는 주제를 언급했다.[50]

러블리스는 노래 가사에 "현실성"이 있는 노래를 찾는다고 말했다.[96] 남자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관계에 대한 노래를 녹음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이러한 이유로 "유 돈트 이븐 노우 후 아이 엠"을 처음에 거절했지만, 노래의 두 번째 구절을 통해 수용하였다.[96] 러블리스는 노래를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에, 종종 남편인 고디의 도움을 받아 노래를 선정하고 편곡했다.[50]

5. 유산 및 영향

패티 러블리스는 1990년대 왕성한 활동으로 후대 컨트리 음악에 영향을 미친 인물로 여러 출판물에서 언급된다. 2017년, Taste of Country는 그녀를 컨트리 음악계에서 29번째로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선정하며, '''마운틴 소울''' 앨범의 비평적 성공을 언급했다. 같은 기사에서 로런 루카스는 '''진실의 문제'''가 그녀에게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88] 칼리 피어스 또한 러블리스를 자신의 커리어에 영향을 준 인물로 언급했다. 두 사람은 피어스의 2021년 앨범 '''29: Written in Stone'''에 수록된 "Dear Miss Loretta"라는 노래를 함께 작업했다.[89][90]

사라 에반스는 2020년 앨범 '''Copy That'''의 후속 앨범을 더 전통적인 컨트리 사운드로 만들고 싶다면서 러블리스를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언급하며, 자신의 다음 앨범을 러블리스의 음악처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91] 컨트리 유니버스의 케빈 존 코인은 이전에 에반스의 1998년 싱글 "No Place That Far" 리뷰에서 에반스의 목소리를 러블리스의 목소리와 비교한 바 있다.[92]

2023년, '''롤링 스톤'''은 역대 최고 가수 200인 목록에서 러블리스를 177위에 선정했다.[93] 2023년 4월, 컨트리 뮤직 협회는 러블리스와 동료 가수 타냐 터커, 작곡가 밥 맥딜을 2023년도 컨트리 뮤직 명예의 전당 헌액자 3인으로 발표했다. 그녀는 2023년 11월 22일 메달 수여식에서 친구 빈스 길에 의해 정식으로 헌액되었다.[94]

6. 사생활

러블리스는 1973년 윌번 브라더스(Wilburn Brothers)의 드러머였던 테리 러블리스(Terry Lovelace)와 결혼하여 성을 러블리스(Loveless)로 바꾸었다. 이는 포르노 배우 린다 러블리스(Linda Lovelace)와 혼동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7] 1986년 테리 러블리스와 이혼했다.[78][7] 1989년 2월, 에모리 고디 주니어(Emory Gordy Jr.)와 두 번째 결혼을 했다.[28] 고디는 러블리스 앨범 대부분에서 베이시스트이자 프로듀서로 활동했다.[28] 그는 에밀루 해리스(Emmylou Harris)의 투어 밴드인 핫 밴드(Hot Band)에서 베이스를 연주했으며, 벨러미 브라더스(the Bellamy Brothers), 얼 토머스 콘리(Earl Thomas Conley), 앨라배마 등의 앨범을 프로듀싱하기도 했다.[8] 러블리스는 1995년 인터뷰에서 그들의 관계가 『When Fallen Angels Fly』의 타이틀곡에 영감을 주었다고 말했다.[96] 러블리스의 형제 로저(Roger)는 그녀의 초기 경력에서 여러 중요한 역할을 맡았는데, 2022년 6월 7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97]

에모리 고디 주니어가 더블베이스를 연주하는 모습
러블리스는 1989년부터 에모리 고디 주니어(Emory Gordy Jr.)와 결혼했다.

7. 음반 목록

패티 러블리스는 다음과 같은 음반을 발매했다.


  • '''패티 러블리스''' (1987)
  • '''내 마음에 창문이 있다면''' (1988)
  • '''촌뜨기 천사''' (1988)
  • '''온 다운 더 라인''' (1990)
  • '''내 마음에 닿아''' (1991)
  • '''내가 느끼는 것만''' (1993)
  • '''타락한 천사들이 날아갈 때''' (1994)
  • '''진실의 문제''' (1996)
  • '''긴 외로운 시간''' (1997)
  • '''강한 마음''' (2000)
  • '''마운틴 소울''' (2001)
  • '''블루그래스와 흰 눈: 산의 크리스마스''' (2002)
  • '''집으로 가는 길에''' (2003)
  • '''내 꿈을 꾸며''' (2005)
  • '''잠 못 이루는 밤''' (2008)
  • '''마운틴 소울 II''' (2009)

8. 수상 및 후보 목록

패티 러블리스는 컨트리 뮤직 어워드 5개, 아카데미 오브 컨트리 뮤직 어워드 2개, 그리고 그래미상 2개를 수상했다.[98][99][10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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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서적 The Virgin Encyclopedia of Country Music Virgin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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