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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원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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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풍수원성당은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신자들이 피난하여 정착한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앙촌이다. 1888년 프랑스 르메르 신부가 부임하면서 정식으로 교회가 설립되었으며, 1905년에 착공하여 1907년에 준공된 벽돌 연와조 성당이 현재까지 남아있다. 1982년 강원도 지방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었고, 매년 성체대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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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원성당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풍수원성당
풍수원성당
명칭횡성풍수원천주교회
한자 명칭橫城豊水院天主敎會
위치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 서원면 경강로유현1길 30 (유현리)
상세 정보
종류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지정 번호69
지정일1982년 11월 3일
시대조선시대
수량1동
웹사이트풍수원성당 공식 웹사이트
문화재청 ID21,00690000,32

2. 역사적 배경

풍수원성당은 1801년 신유박해 이후 1866년 병인박해1871년 신미양요를 거치며 천주교 신자들이 피난처를 찾아 모여 살던 곳에서 시작된 신앙촌이었다. 1888년 프랑스인 르메르 신부가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하면서 본당이 설립되었고, 1896년 2대 주임신부인 정규하 신부가 1907년 현재의 고딕 양식 성당을 완공하였다.

2. 1. 초기 신앙촌 형성 (1801년 ~ 1888년)

1801년 신유박해 이후 1802년 혹은 1803년경기도 용인에서 신태보(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40여 명의 신자들이 8일 동안 피난처를 찾아 헤매다가 정착한 곳이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앙촌인 풍수원이다. 이곳에서 80여 년 동안 신자들은 성직자 없이 신앙생활을 영위해오다가 1888년 불란서 성직자 르메르 이 신부를 맞이하여 정식으로 교회가 설립되었다.

1866년(고종 3년) 병인박해1871년(고종 8년) 신미양요 때 신자들이 피난처를 찾아 헤매던 중, 산림이 울창하여 관헌들의 눈을 피하기에 알맞은 산간벽지인 풍수원으로 사방에서 연락하여 모여들었다. 이들은 한 촌락을 이루어 일부는 화전으로, 일부는 토기점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20년간을 지냈다. 1888년 6월 20일 조선교구장 민 대주교가 본당을 설립하고 초대 주임신부로 불란서 르메르(Le Merre) 이 신부가 부임하였다. 당시 신자 수는 약 2,000명이었고 초가집 20여 간을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르메르 신부는 춘천, 화천, 양구, 홍천, 원주, 양평 등 12개 군을 관할하였다.

2. 2. 성당 설립과 발전 (1888년 ~ 1907년)

1888년 프랑스 성직자 르메르 신부가 풍수원성당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춘천, 화천, 양구, 홍천, 원주, 양평 등 12개 군을 관할하였다. 당시 신자 수는 약 2,000명이었고 초가집 20여 칸을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1896년 2대 주임으로 정규하(아우구스띠노) 신부가 부임하여 중국인 기술자 진베드로와 함께 현재의 성당(벽돌 연와조 120평)을 1905년에 착공, 1907년에 준공하였다. 1909년 낙성식을 가졌다. 신자들은 벽돌을 굽고 아름드리나무를 해오는 등 자재를 현지에서 조달하였다.

풍수원 천주교회는 한국인 신부가 지은 강원도 최초의 성당이며, 한국에서 4번째로 건립된 유서 깊은 절충식 고딕 건축물이다.

2. 3. 현재 성당 건축 (1907년 ~ 현재)

1896년 2대 주임으로 정규하 신부가 부임하여 중국인 기술자 진베드로와 함께 현재의 성당(벽돌 연와조 120평)을 1905년에 착공, 1907년에 준공하여 1909년 낙성식을 가졌다.

신자들은 벽돌을 굽고 아름드리 나무를 해오는 등 자재를 현지에서 조달했다. 1907년 신자들의 손으로 직접 지어진 본 성당은 9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건재하다. 건축 양식은 고딕식으로, 앞면에는 돌출한 종탑부가 있고 출입구는 무지개 모양으로 개방되어 있다. 지붕은 두꺼운 동판을 깔았고, 내부에는 기둥들이 줄을 지어 있는데, 벽돌 기둥처럼 보이게끔 줄눈을 그려 넣었다.

풍수원 천주교회는 한국인 신부가 지은 강원도 최초의 성당이며, 한국에서 4번째로 건립된 유서 깊은 절충식 고딕 건축물이다. 1920년 이래 계속되고 있는 성체현양대회 때면 전국에서 1,500여 명의 신도들이 이 교회로 찾아온다. 강원도 전체와 경기도 일대의 성당은 풍수원 성당에서 분당된 것이다. 본 성당은 1982년 강원도에 의해 지방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었다.

3. 건축 양식

고딕식 건축 양식으로, 앞면에는 돌출한 종탑부가 있고 출입구는 무지개 모양으로 개방되어 있다. 지붕은 두꺼운 동판으로 덮여 있으며, 내부에는 기둥들이 줄지어 있는데 벽돌 기둥처럼 보이도록 줄눈을 그려 넣었다.

풍수원 천주교회는 한국인 신부가 지은 강원도 최초의 성당이자, 한국에서 네 번째로 건립된 절충식 고딕 건축물이다.

4. 성체현양대회

1920년부터 해마다 성체현양대회가 열리고 있으며, 이때 전국에서 1,500여 명의 신도들이 풍수원성당을 찾는다.

5. 문화재 지정

풍수원 천주교회는 한국인 신부가 지은 강원도 최초의 성당이며, 한국에서 4번째로 건립된 유서 깊은 절충식 고딕 건축물이다. 1907년 신자들의 손으로 직접 지어진 본 성당은 9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건재하며, 1920년 이래 계속되고 있는 성체현양대회 때면 전국에서 1,500여 명이 넘는 신도들이 이 교회로 찾아온다.

본당 옆에 위치한 구 사제관은 원형이 비교적 잘 유지된 벽돌조 건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163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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