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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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허사는 후한 말의 인물로, 양려에게 학문을 배우고 조조를 섬기다 여포에게 가 연주를 장악하는 데 기여했다. 여포가 조조에게 공격받자 원술에게 구원을 요청했으나 실패했고, 이후 유표에게 의탁했다. 유표, 유비와 함께 진등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유비에게 그릇이 작다는 비판을 받았다. 삼국지연의에서도 왕해와 함께 원술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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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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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보 | |
이름 | 허사 |
한자 표기 | 許汜 |
로마자 표기 | Heo Sa |
시대 | 후한 |
출생지 | 형주양양군 |
직책 | 종사중랑 |
섬긴 군주 | 조조, 여포, 유표 |
2. 생애
허사(許汜)는 후한 말기의 인물로, 양려(楊慮)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조조 휘하에서 종사중랑(從事中郞)을 지냈으나, 여포를 섬기기도 하고, 유표에게 의탁하기도 하였다.[1]
여포가 멸망한 후, 형주의 유표에게 몸을 의탁하였다. 어느 날 유표, 유비와 함께 천하의 인물들에 대하여 논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이때 허사는 진등을 "횡포한 인간"이라고 비난하였다. 유비가 그 뜻을 묻자, "진등은 손님을 대하는 태도를 갖추지 않았으며, 자신은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재웠다"라고 답했다.
이에 유비는 "그대는 선비로써 명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곳을 구하기만 할 뿐 제대로 된 진언 하나 하지 않는다. 나 같았으면 침대가 아니라 100자 높이의 누각에서 잠을 청하고, 당신은 바닥이 아니라 맨땅에 재웠을 것이다"라고 비판했고, 유표는 크게 웃었다.[1]
2. 1. 초기 활동
양려(楊慮)에게서 학문을 배웠으며, 이후 조조(曹操)의 밑에서 종사중랑(從事中郞)을 지냈다.[1]흥평(興平) 원년(194년), 조조가 도겸(陶謙)을 치기 위해 서주(徐州)로 진격하자 장막, 장초, 진궁(陳宮), 왕해(王楷) 등과 함께 여포(呂布)의 밑으로 가 조조에게 반기를 들었으며, 연주(兗州) 대부분을 장악하였다.
건안(建安) 3년(198년) 겨울, 여포가 조조의 공격을 받아 하비(下邳)에서 농성하자 허사는 왕해와 함께 원술(袁術)에게 원군을 요청하러 갔다. 원술은 거절하고자 하였는데, 허사와 왕해는 여포가 토벌되면 다음은 원술의 차례일 것이라고 항변하는 한편 여포의 딸을 보내준다는 조건을 붙이자 원술은 원군을 보내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여포는 실제로는 원술의 지원을 받지 못했으며, 조조의 포위를 뚫지 못하였다.
2. 2. 여포와의 동행
흥평 원년(194년), 조조가 도겸을 치기 위해 서주로 진격하자 장막, 장초, 진궁, 왕해 등과 함께 여포의 밑으로 가 조조에게 반기를 들었으며, 연주 대부분을 장악하였다.[1]건안 3년(198년) 겨울, 여포가 조조의 공격을 받아 하비(下邳)에서 농성하자 허사는 왕해와 함께 원술에게 원군을 요청하러 갔다. 원술은 거절하고자 하였는데, 허사와 왕해는 여포가 토벌되면 다음은 원술의 차례일 것이라고 항변하는 한편 여포의 딸을 보내준다는 조건을 붙이자 원술은 원군을 보내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여포는 실제로는 원술의 지원을 받지 못했으며, 조조의 포위를 뚫지 못하였다.
2. 3. 유표 휘하에서의 일화
흥평 원년(194년), 조조가 도겸을 치기 위해 서주로 진격하자 장막, 장초, 진궁, 왕해 등과 함께 여포의 밑으로 가 조조에게 반기를 들었으며, 연주 대부분을 장악하였다.[1]건안 3년(198년) 겨울, 여포가 조조의 공격을 받아 하비에서 농성하자 허사는 왕해와 함께 원술에게 원군을 요청하러 갔다. 원술은 거절하고자 하였는데, 허사와 왕해는 여포가 토벌되면 다음은 원술의 차례일 것이라고 항변하는 한편 여포의 딸을 보내준다는 조건을 붙이자 원술은 원군을 보내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여포는 실제로는 원술의 지원을 받지 못했으며, 조조의 포위를 뚫지 못하였다.[1]
여포가 멸망한 후, 허사는 형주의 유표에게 몸을 의탁하였다. 어느날 유표 · 유비와 함께 천하의 인물들에 대하여 논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는데, 그때 허사는 한때 여포의 부하였던 진등에 대하여 '''"횡포한 인간"'''이라고 비난하였다. 유비가 그 뜻을 묻자, 허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1]
내가 하는 말을 듣지 않을뿐더러, 자신은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재웠소.|내가 하는 말을 듣지 않을뿐더러, 자신은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재웠소.중국어
그러자 유비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허사의 그릇이 작음을 비판하였고, 유표는 크게 웃었다.[1]
그대는 선비로써 명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곳을 구하기만 할 뿐 제대로 된 진언 하나 하지를 않소. 나 같았으면 침대가 아니라 100자 높이의 누각에서 잠을 청하고, 당신은 바닥이 아니라 맨땅에 재웠을 것이오.|그대는 선비로써 명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곳을 구하기만 할 뿐 제대로 된 진언 하나 하지를 않소. 나 같았으면 침대가 아니라 100자 높이의 누각에서 잠을 청하고, 당신은 바닥이 아니라 맨땅에 재웠을 것이오.중국어
3.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도 왕개와 함께 조조 군의 포위를 뚫고 원술에게 구원을 요청하며, 경위와 결말도 거의 역사적 사실을 따른다. 다만, 유비와의 대화는 채용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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