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창층군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후창층군은 한반도 지질 연구의 대상이 되는 지층군으로, 연구 역사에 따라 명칭과 층서가 변화해 왔다. 1942년 처음 기록된 이후, 여러 차례의 지질 조사를 통해 층서가 세분화되었으며, 현재는 아래층, 가운데층, 웃층으로 구분된다. 최근에는 동위원소 연대 측정과 같은 새로운 연구 방법을 통해 지질 시대와 퇴적 환경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북한 지역 지질 연구 지원을 통해 한반도 지체 구조 발달사 규명에 기여하고자 한다.
후창층군에 대한 지질학적 연구는 일제강점기인 1942년 1:20만 후창도폭 발간 당시, 현재의 후창층군 일부가 《결정편암계》로 처음 기록되면서 시작되었다.[3] 하지만 이때는 별도의 지층명이 부여되지 않았다. '후창층'이라는 명칭은 1960년에 처음 사용되었는데, 당시에는 현재의 후창층군 일부와 직현통 독산층의 일부까지 포함하여 상원계의 일부로 간주하였다.[4]
후창층군은 암석학적 특성에 따라 하부층(아래층), 중부층(가운데층), 상부층(웃층)으로 나뉜다. 이 세 분층을 모두 볼 수 있는 지역은 김형직군 금창리와 마산덕 지구이며, 이 층들은 서로 구조적으로 접촉하는 형태로 나타나 전체적인 두께는 정확히 알 수 없다.[5][6][7] 한편, 중강 지역에서는 후창층군 상부층(웃층)만이 구조 블록 형태로 일부 남아 있다. 각 층의 자세한 암상과 분포는 하위 문단에서 설명한다.
2. 연구 역사
이후 1:20만 및 1:5만 축척의 도폭조사가 진행되면서 후창층군의 층서와 범위에 대한 이해가 점차 발전하고 수정되었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에 걸친 1:5만 도폭조사 시기에는 후창층군을 여러 하위 단위로 세분화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4], 이후 일부 지층이 직현통 독산층으로 재분류되면서 현재와 같이 하부, 중부, 상부로 나누는 삼분 체계가 확립되었다.[4] 이러한 연구 과정을 통해 후창층군의 층서와 지질 시대에 대한 해석은 여러 차례 변화를 겪어왔다.
2. 1. 초기 연구 (일제강점기 ~ 1960년대)
현재의 후창층군 일부가 처음 기록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42년 발간된 1:20만 후창도폭에서이다.[3] 당시에는 죽전리 일대에 분포하는 현재의 후창층군을 시생대의 《결정편암계》라고만 불렀고, 특정 층명을 부여하지는 않았다.
'후창층'이라는 명칭이 처음 사용된 것은 1960년이다. 이때는 후창층군의 고회암층과 편암층, 그리고 현재 직현통 독산층에 해당하는 역암층까지 포함하여 《후창층》이라 부르고 상원계의 일부로 간주했다.[4] 당시 설정된 《후창층》의 층서는 아래에서 위로 다음과 같았다.
이후 1966년에 출판된 축척 1:20만 도폭 조사 결과인 《조선지질도폭》 I에서도 여전히 《후창층》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며, 암석 구성에 따라 아래층, 가운데층, 웃층으로 구분하였다.
2. 2. 1:5만 지질조사 (1960년대 후반 ~ 1970년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에 걸쳐 전국적으로 축척 1:5만 도폭조사와 일부 지역에 대한 세부 지질조사가 진행되면서 후창층군의 세부적인 층서가 확립되었다. 이 시기 대부분의 조사자들은 현재 후창층군의 상부층만을 《후창층군》으로 정의하고, 그 아래 지층들을 아래에서부터 위로 《건하리층》, 《중덕리층》, 《복바위층》, 《세바위층》 등으로 나누거나[4], 《중덕리층》과 《장성리층》으로 나누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 1:5만 장흥리도폭 조사 과정에서 변화가 생겼다. 당시 금창리지구 후창층군의 제4층(중강지구의 《세바위층》에 해당)으로 여겨졌던 압쇄된 역질규암 및 장석질규암과, 이전 후창도폭 조사 당시 랑림층군과 련화산암군 위에 경사부정합으로 놓인다고 보았던 백색규암 및 장석질규암을 직현통 독산층으로 다시 분류하였다. 이러한 재분류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와 같이 후창층군을 하부, 중부, 상부의 세 부분으로 나누는 체계가 확립되었다.[4]
2. 3. 최근 연구 동향
동위원소 연대 측정과 같은 현대적인 연구 방법을 통해 후창층군의 형성 시기와 환경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중강지구 하장동 일대 후창층군 상부에 해당하는 백운모편암에서 백운모를 이용한 K-Ar 법 분석 결과, 약 12억 9400만 년 전이라는 절대 연대가 보고된 바 있다.[11] 이러한 연구는 후창층군이 형성된 지질 시대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3. 층서
3. 1. 하부층
후창층군 아래층은 김형직군 금창리의 소금창골짜기 바닥과 마산덕 부근의 압록강 기슭 절벽 에 1km2 남짓한 면적으로 분포한다. 이 아래층은 배사 핵부에 놓이며 가운데층과는 구조적으로 접촉하고 있어 정확한 두께는 알 수 없다. 김형직군 지역에 드러난 후창층군 아래층은 혼성암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금창리에서 확인된 아래층의 부분 단면은 아래에서 위로 다음과 같다[5].
암석 종류 | 두께 |
---|---|
흑운모-백운모질 편암에 살색-우백질 화강암이 세층상으로 주입된 층상주입교대 혼성암 | 40m |
주입물이 많은 층상~음영상 혼성암 | 65m |
층상주입교대 혼성암 | 3m |
주입물이 많은 층상음영혼성암 | 25m |
층상주입교대혼성암 | 4m |
주입물과 기질물의 양이 거의 같은 층상혼성암 | 60m |
주입물이 우세한 층상음영혼성암 | 15m |
주입물과 기질물의 양이 거의 같은 층상혼성암 | 10m |
주입물이 우세한 층상음영혼성암 | 120m |
3. 2. 중부층
후창층군 가운데층은 아래층과 마찬가지로 김형직군 금창리의 소금창골짜기와 마산덕의 압록강 기슭에 좁게 분포한다.[6] 이 층은 다른 층과 구조적으로 접촉하고 있어 전체 두께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주로 탄산염암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며, 북대천통과 대비된다. 다만, 성진통에 대비되는 아래층이나 남대천통에 대비되는 웃층과 달리, 가운데층은 얇거나 아예 발달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6]소금창골짜기 어귀에 드러난 가운데층의 단면은 아래에서 위로 다음과 같다.[6]
암석 종류 | 두께 |
---|---|
암회색, 회백색의 층상석회암 | 40m |
백색 석회질고회암 | 39m |
사문석화된 회청색 결정질 석회암 | 29m |
약하게 사문석화된 백색 석회질 고회암 (1m~2m 두께의 석회암층 포함) | 61m |
석회질 견운모녹니석편암 | 1.5m |
백색 석회질 고회암 | 70m |
회색-회록색 석회암 | 60m |
백색-암회색 고회암 | 20m |
담회색-백색 석회암 | 30m |
암회색 고회암 | 35m |
견운모 녹니석 편암 | 5m |
암회색-회백색 결정질 고회암 | 95m |
3. 3. 상부층
후창층군 상부층은 김형직군 금창리와 중강군 중강읍 일대에서 관찰된다. 금창지구에서는 후창층군 중부층 및 상원층과 구조적으로 접촉하며 나타난다. 이 층은 주로 편암으로 구성되어 있다.[7] 압록강 기슭의 마산덕 부근에서 관찰된 상부층의 부분 단면은 아래에서 위로 다음과 같다.[7]순서 | 암석 종류 | 두께 (m) | 비고 |
---|---|---|---|
1 | 견운모편암 | 20m | 직현통 독산층과 구조 접촉 |
2 | 회백색 규질편암 | 5m | |
3 | 근청석견운모편암 | 9m | |
4 | 규선석녹니석견운모편암 | 8m | |
5 | 흑운모질 견운모석영편암 | 7m | |
6 | 규선석녹니석견운모편암 | 48m | 1.8m 두께의 분암맥 포함 |
7 | 녹니석견운모편암 | 22m | |
8 | 운모질 석회암과 녹니석편암 호층 구간 | 3.5m | |
9 | 녹니석견운모편암 | 19m | 섬록분암맥 관입 |
10 | 염주상 석영 알갱이 포함 흑운모질견운모석영편암 | 50m | |
11 | 노두 없음 | 42m | |
12 | 회백색, 암회색 석회암 | 13m | |
13 | 흑운모질 견운모석영편암 | 6m |
한편, 중강지구에서는 후창층군의 상부층만 구조블록 형태로 분포한다. 이 지역의 상부층은 과거 연구에 따라 다양하게 세분되었다. 1967년의 1:1만 지질조사에서는 중덕리층-장성리층으로, 1974년의 1:1만 지질조사에서는 건하리층-중덕리층-복바위층-세바위층으로 나누었다. 1971년의 1:5만 축척 도폭에서는 1~4층으로 구분했다. 과거 연구자들은 이들 층서를 서로 대비시키려 했으나, 장성리 부근의 제2층이 실제로는 상원계와 접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현재는 다음과 같이 층서를 수정하여 사용한다.[8]
1967년 (1:1만) | 1974년 (1:1만) | 1971년 (1:5만) | 현재 수정 층서 |
---|---|---|---|
장성리층 상부 | 세바위층 | 제4층 | 제3층 |
장성리층 하부 | 복바위층 | 제3층 | 제2층 |
중덕리층 상부 | 중덕리층 | 제2층 | 제1층 |
중덕리층 하부 | 건하리층 | 제1층 | 제1층 |
수정된 층서에 따른 중강지구 후창층군 상부층의 각 층은 다음과 같다.[8]
- 제1층: 중강읍, 중덕리, 건하리 일대에 분포하며, 압록강에 일부 잠겨 하한은 불명확하다. 두께는 500m에서 1100m 사이이며, 주로 백운모편암, 견운모편암, 규질편암으로 구성되고 규암이나 석회암 등이 얇게 끼어 있다.
- 제2층: 중강군 중덕리 복바위, 오산덕, 건하리의 건하천 유역, 장성리 일대에 분포한다. 복바위와 오선덕 지구에서는 중강통과 구조 접촉한다. 두께는 650m에서 1400m 사이이며, 주로 회색-회록색의 녹니석편암과 규질편암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 제3층: 중강군 중상리 세바위 부근, 건하리 중지봉 남서쪽 비탈, 장성리 일대에 분포한다. 주로 사암상 규암, 장석질 규암, 규질편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4. 암석학적 특성
김형직군 일대의 후창층군 암석은 편마암류, 각섬암류, 각섬편암류, 석회암과 고회암류, 그리고 편암류로 구성된다. 각 층별로 암석학적 특징이 다르게 나타난다.
- 하부층(아래층): 주로 편마암류, 각섬암류, 각섬편암류 및 이들의 혼성암화물로 이루어져 있다. 자세한 암석 구성과 특징은 하위 섹션에서 다룬다.
- 중부층(가운데층): 석회암, 고회암, 고회질석회암 등 탄산염암이 주를 이룬다. 이 층의 탄산염암은 북대천통의 것보다 마그네슘(Mg) 함량이 낮아, 얕은 바다 환경에서의 퇴적을 시사한다[9].
- 상부층(웃층): 근청석견운모편암, 흑운모질견운모석영편암, 규선석흑운모녹니석편암 등이 나타나며, 특히 규선석흑운모녹니석편암에서는 규선석으로 된 안구상 석리가 관찰된다.
중강지구의 후창층군은 백운모견운모편암, 견운모녹니석편암, 규암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김형직군 지구의 후창층군 상부층보다 더 위쪽 층준에 해당하는 것으로 대비된다.
후창층군의 퇴적 환경에 대해서는, 중부층의 탄산염암에서 상부층의 쇄설성 퇴적암 변성물로 변화하는 양상이 퇴적 분지의 해퇴 시기를 나타낸다는 견해가 있다. 변성 정도는 하부층이 각섬암상, 상부층이 녹색편암상 또는 녹렴석-각섬암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10].
4. 1. 하부층 암석
부광물: 설석, 인회석, 금속광물 등편리 발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