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읍성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고창읍성은 전라북도 고창군에 위치한 읍성으로, 왜침을 막기 위해 조선 단종 원년(1453)에 축성되었다고도 하고, 숙종 때 완성되었다고도 한다. 둘레 1,684m, 높이 4~6m, 면적 165,858m² 규모로, 동서북문, 옹성, 치성, 해자 등 방어 시설을 갖추고 있다. 성내에는 동헌, 객사 등 22동의 관아 건물이 있었으나 1976년부터 복원 사업을 진행하여 현재 14동이 복원되었고, 8동을 추가로 복원할 계획이다. 정문인 공북루를 비롯하여 등양루, 진서루 등 3개의 성문이 있으며, 6개의 치가 복원되어 있다. 답성놀이 등의 문화 관광 자원으로 활용되며,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고창읍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지도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2010년 봄
기본 정보
유형사적
이름고창읍성
로마자 표기Gochang Eupseong
번호145
주소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126
시대조선
소유국유·사유
관리고창군
지정1965년 4월 1일
문화재청
문화재청 ID13,01450000,35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453년 완공된 건축물 - 카 포스카리
    카 포스카리는 15세기 도제 프란체스코 포스카리가 재건축한 베네치아의 역사적인 건축물로, 현재는 베네치아 대학교 본부 건물로 사용되며 고딕 양식의 궁전과 여러 캠퍼스를 갖추고 있고, 복원 및 개조 작업과 프레스코화 전시를 통해 예술적 가치를 더하며 환경 보호에도 기여하고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의 사적 - 익산 토성
    익산 토성은 오금산 정상에 흙과 돌로 쌓은 산성으로,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에 축조되었으며 백제, 통일신라, 고려 시대 유물이 발견되었다.
  • 전북특별자치도의 사적 - 익산 쌍릉
    익산 쌍릉은 백제 무왕의 능으로 추정되는 익산시 왕궁면 소재의 백제 후기 왕릉으로, 대왕릉에서 발견된 유골 분석 결과가 무왕의 기록과 일부 일치하나, 무왕릉 확정 여부 및 소왕릉 주인공에 대한 추가 연구와 익산 천도설 관련 논쟁이 남아있다.
  • 전북특별자치도의 성 - 익산 토성
    익산 토성은 오금산 정상에 흙과 돌로 쌓은 산성으로,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에 축조되었으며 백제, 통일신라, 고려 시대 유물이 발견되었다.
  • 전북특별자치도의 성 - 익산 왕궁리 유적
    익산 왕궁리 유적은 백제 무왕의 천도 설화가 전해지는 전라북도 익산의 유적으로, 백제 후기부터 통일신라 후기까지 형성되었으며 왕궁리 오층석탑과 기와 가마 등이 발굴되어 백제역사유적지구로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2. 역사

고창읍성은 자연석으로 쌓은 성곽이다. 둘레는 1,684m, 높이는 4~6m, 면적은 1684m2이다. 동서북문과 옹성 3개소, 치성 6개소, 성밖의 해자 등 전략적 요충 시설을 갖추고 있다. 성 안에는 동헌, 객사 등 22동의 관아 건물과 2개의 연못, 4개의 샘이 있었으나, 전쟁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손상되었다.

2.1. 축성 배경 및 시기

조선 단종 원년(1453)에 왜침을 막기 위하여 축성했다고도 하고, 숙종 때 완성되었다고도 하나 확실하지 않다. 백제 때 고창 지역을 모량부리로 불렀던 것에서 모양성이라고도 불린다. 이 성은 나주진관의 입암산성과 연계되어 호남 지역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서 국난 극복을 위한 국방 관련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2.2. 명칭 유래

조선 단종 원년(1453)에 왜침을 막기 위하여 축성했다고도 하고, 숙종 때 완성되었다고도 하나 확실하지 않다. 백제 때 고창 지역을 모량부리로 불렀던 것에서 모양성이라고도 불린다.

2.3. 역사적 역할

조선 단종 원년(1453)에 왜침을 막기 위하여 축성했다고도 하고, 숙종 때 완성되었다고도 하나 확실하지 않다. 백제 때 고창 지역을 모량부리로 불렀던 것에서 유래하여 모양성이라고도 불린다. 이 성은 나주진관의 입암산성과 연계되어 호남 지역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서 국난 극복을 위한 국방 관련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2.4. 복원 사업

조선 단종 원년(1453)에 왜침을 막기 위하여 축성했다고도 하고, 숙종 때 완성되었다고도 하나 확실하지 않다. 1976년부터 성내의 손괴된 건물을 복원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22동 중 동헌, 객사, 풍화루, 공북루, 진서루, 등양루, 성황사, 관청, 작청, 내아, 향청, 서청, 장청, 옥을 포함한 14동이 복원되었고, 앞으로 8동의 관아 건물을 추가로 복원할 계획이다.

3. 구조

현재 고창읍성에는 6개의 치가 복원되어 있다. 《읍지지(邑誌之圖)》에는 현재와 같이 6개의 치가 표시되어 있지만, 《지적원도(地籍原圖)》에는 4개의 치만 확인되어, 치는 19세기 이후 복원된 것으로 추정된다.

3.1. 문루

고창읍성에는 정문인 공북루, 등양루, 진서루 등 3개소의 성문이 있다. 성문 앞에는 적으로부터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옹성을 둘러쌓고 그 위에 여장을 쌓아 성 안에서 밖을 살필 수 있는 현안과 총을 쏠 수 있는 총안을 만들어 놓았다. 북쪽과 동쪽의 경우 2개의 고지도에 모두 문루가 표기되어 있으나, 서문은 1872년 지적원도에는 표기되지 않고 읍지지도에는 고서문이라 표기되어 있으나 문루는 표현되지 않았다. 이를 통해 이전에는 서문이 있었으나 18세기에는 사라진 것으로 추측된다.

3.1.1. 공북루

고창읍성의 정문으로 북문이다.

낮은 기단 위에 전면에는 자연석 주춧돌을 사용하고 배면은 화강석 돌기둥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워 만든 2층 문루이다.

공북루 전후 사적기와 상량문에는 인조 24년(1646년) 12월에 공북루를 처음 건립하고 그 후 3회에 걸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3.1.2. 등양루

고창읍성의 동문은 등양루이다.

3.1.3. 진서루

고창읍성의 서문이다.

3.2. 치

현재 고창읍성에는 6개의 치가 복원되어 있다. 읍지지(邑誌之圖)에는 현재와 같이 6개의 치가 표시되어 있지만, 지적원도(地籍原圖)에는 4개의 치만 확인되어, 치는 19세기 이후 복원된 것으로 추정된다.

4. 문화 관광

(참조할 원본 소스가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이전 출력을 수정할 수 없습니다. 원본 소스 제공 후 다시 요청해주세요.)

5. 갤러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