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루시마 미치하루
1. 개요
구루시마 미치하루는 일본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이다. 1612년 아버지 구루시마 나가치카의 사망으로 가독을 상속받았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하사받은 하시바 성에서 구루시마 성으로 개칭했다. 오사카 성과 에도 성 축성에 참여하여 도쿠가와 막부에 충성을 보였으며, 무라카미 가문을 멀리하고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는 번정 개혁을 단행했다. 오사카에 창고 겸 사무소를 설립하여 재정 수입을 늘려 재정난을 해결하는 데 힘썼다. 부모는 구루시마 나가치카와 겐코인이며, 정실은 사쿠마 야스마사의 딸이다. 장남은 구루시마 미치키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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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 | 에도 시대 전기 |
|---|---|
| 출생 | 게이초 12년 (1607년) |
| 사망 | 조오 4년 음력 2월 11일 (1655년 3월 18일) |
| 개명 | 구루시마 미치하루 (来島通春) 구루시마 미치하루 (久留島通春) |
| 계명 | 안상원 (安祥院) |
| 관위 | 종오위 하 에치고노카미 단바노카미 |
| 씨족 | 구루시마 씨(来島氏) |
| 번 | 분고 모리 번 |
| 주군 | 도쿠가와 히데타다 이에미쓰 이에쓰나 |
|---|---|
| 막부 | 에도 막부 |
| 번 | 분고모리 번 번주 |
| 아버지 | 구루시마 나가치카 |
|---|---|
| 어머니 | 후쿠시마 마사노리 양녀 겐쿄인 |
| 형제 | 구루시마 미치하루 츠다 모실 호시아이 도모마키 실 |
| 배우자 | 사쿠마 야스마사 딸 |
| 자녀 | 미치키요 미치사다 미치히로 미치카타 니가미 타네하루 타마이 미치노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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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번주 (분고국) -
구루시마 나가치카
구루시마 나가치카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까지 활약한 무장으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에 속해 영지를 잃었지만 후쿠시마 마사노리의 도움으로 분고국에 영지를 받았으며, 야스치카로 개명 후 31세에 사망했다. -
모리번주 (분고국) -
쿠루시마 미치키요
쿠루시마 미치키요는 에도 시대 이요 오시마 번의 다이묘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번주가 되어 가신단 재편, 재정 개혁, 농업 진흥 등 번정을 펼치며 가문 강화와 번의 발전에 기여했다. -
구루시마씨 -
무라카미 수군
무라카미 수군은 세토 내해에서 활동한 일본 해상 세력으로, 인노시마, 구루시마, 노지마의 세 가문이 주축을 이루며 남북조시대부터 제해권을 장악하고 해상 경호와 통행세 징수 등으로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해적 정지령 이후 쇠퇴하였다. -
구루시마씨 -
도쿠이 미치유키
무라카미 수군 출신인 도쿠이 미치유키는 센고쿠 시대부터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 걸쳐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섬긴 무장으로, 임진왜란 중 사망했다는 설이 있지만 정확한 사망 시기는 불분명하다. -
1607년 출생 -
야규 미쓰요시
야규 미쓰요시는 도쿠가와 쇼군을 섬긴 야규 무네노리의 아들이자 신음류 검술의 대가로, 쇼군의 검술 사범을 지냈으며 해임 후 12년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츠키노쇼"를 저술했고 복직 후 감찰관으로 활동하다 고향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그의 삶과 검술은 대중문화에서 다양하게 재해석되었다. -
1607년 출생 -
이치히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딸 이치히메는 다테 마사무네의 아들 다테 다다무네와 약혼했으나 요절하여 혼인하지 못했다.
2. 생애
1612년(게이초 시대) 아버지 구루시마 나가치카가 사망하자 가독을 상속받았다. 1616년(겐나 2년) 성을 '구루시마'로 개칭했는데, 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하사받은 하시바 성(羽柴姓)에서 본래의 성으로 돌아간 것을 의미한다. 오사카 성과 에도 성 축성에 참여하여 도쿠가와 막부에 대한 충성을 보여주었다. 아버지 대부터 가신이었던 무라카미 가문 등을 멀리하고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여 번정 개혁을 단행하였다. 오사카에 창고 겸 사무소를 설립하여 재정 수입을 늘리고, 잦은 축성으로 인한 재정난을 해결하는 데 힘썼다.
承応일본어 4년(1655년) 2월 11일에 4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장남인 구루시마 미치키요가 뒤를 이었다. 법호는 안쇼인이다.
2.1. 가독 상속과 초기 번정
1612년(게이초 시대) 아버지 구루시마 나가치카가 사망하자 가독을 상속받았다. 1616년(겐나 2년) 성을 '구루시마'로 개칭했는데, 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하사받은 하시바 성(羽柴姓)에서 본래의 성으로 돌아간 것을 의미한다. 오사카 성과 에도 성 축성에 참여하여 도쿠가와 막부에 대한 충성을 보여주었다. 아버지 대부터 가신이었던 무라카미 가문 등을 멀리하고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여 번정 개혁을 단행하였다. 특히 오사카에 창고 겸 사무소를 설립하여 재정 수입을 늘리고, 잦은 축성으로 인한 재정난을 해결하는 데 힘썼다.
2.2. 사망
承応일본어 4년(1655년) 2월 11일에 4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장남인 구루시마 미치키요가 뒤를 이었다. 법호는 안쇼인이다.
3. 가계
* 정실: 사쿠마 야스마사의 딸
* 자녀
구루시마 미치키요 (장남)
구루시마 미치사다
구루시마 미치히로
구루시마 미치카타
후타가미 타네하루
타마이 미치노리
3.2. 처
사쿠마 야스마사의 딸
3.3. 자녀
| 이름 | 비고 |
|---|---|
| 구루시마 미치키요 | 장남, 생모는 정실 |
| 구루시마 미치사다 | |
| 구루시마 미치히로 | |
| 구루시마 미치카타 | |
| 후타가미 다네하루 | |
| 타마이 미치노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