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매학정
1. 개요
매학정은 고산 황기로의 유적으로, 1533년 처음 지어졌다. 황기로의 할아버지 황필의 휴양지였으나, 황기로가 정자를 다시 짓고 서재로 사용했다. 임진왜란과 1862년 화재로 소실된 후 재건되었으며, 1970년 전면 보수되었다. 황기로는 이곳에서 서예를 즐겼으며, 초서를 잘 써 초성이라 불렸다.
| 이름 | 매학정일원 |
|---|---|
| 한자 표기 | 梅鶴亭一圓 |
| 국가 | 대한민국 |
| 위치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강정4길 63-6 (예강리) |
| 지정 번호 | 기념물 16호 |
| 지정일 | 1974년 12월 10일 |
| 면적 | 3,332m2 |
| 유형 | 기념물 |
|---|
| 시대 | 알 수 없음 |
|---|---|
| 소유 | 알 수 없음 |
| 참고 | 알 수 없음 |
| 전승지 | 알 수 없음 |
| 전승자 | 알 수 없음 |
| 문화재청 ID | 23,00160000,37 |
| 웹사이트 | 알 수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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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매학정은 초성(草聖)이라 불리는 고산 황기로의 유적이다. 황기로는 이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서예를 즐겼으며,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길을 버리고 은둔하면서 학문에 정진했다. 특히 초서를 잘 써서 초성이라 불릴 정도의 명필가였다.
중종 28년(1533)에 처음 지어진 이곳은 본래 황기로의 할아버지인 상정공 황필의 휴양지였으나, 할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정자를 다시 짓고 매학정이라 하여 서재로 사용하였다. 이후 그의 사위인 옥산 이우에게 소유권이 넘어갔으며, 임진왜란(1592) 때와 철종 13년(1862) 두 차례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다시 재건되었고, 1970년에 전면 보수되었다.
2.1. 건립과 소유권 변천
매학정은 초성이라 불리는 고산 황기로의 유적이다. 황기로는 이곳에서 자연을 벗삼아 서예를 즐겼으며, 진사시험에 합격했으나 벼슬길을 버리고 은둔하면서 학문에 임했다고 한다. 특히 초서를 잘 써서 초성(草聖)이라 불릴 정도의 명필가였다.
중종 28년(1533)에 처음 지어진 이곳은 본래 황기로의 할아버지인 상정공 황필의 휴양지였으나, 할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정자를 다시 짓고 매학정이라 하여 서재로 사용하였다. 뒤에 그의 사위인 옥산 이우의 소유가 되었다가, 임진왜란(1592) 때와 철종 13년(1862)에 두 차례 화재로 타 버린 것을 다시 지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1970년 전면 보수하였다.
2.2. 두 차례의 화재와 재건
매학정은 초성(草聖)이라 불리는 고산 황기로의 유적이다. 황기로는 이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서예를 즐겼으며,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길을 버리고 은둔하면서 학문에 정진했다. 특히 초서를 잘 써서 초성이라 불릴 정도의 명필가였다.
매학정은 중종 28년(1533)에 처음 지어졌는데, 본래 황기로의 할아버지인 상정공 황필의 휴양지였다. 황기로는 할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정자를 다시 짓고 매학정이라 이름 붙여 서재로 사용하였다. 이후 매학정은 그의 사위인 옥산 이우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임진왜란(1592) 때와 철종 13년(1862) 두 차례에 걸쳐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다시 재건되었으며, 1970년에 전면 보수되었다.
3. 황기로와 매학정
매학정은 초성이라 불리는 고산 황기로의 유적이다. 황기로는 진사 시험에 합격했으나 벼슬을 하지 않고 학문에 힘썼으며, 특히 초서를 잘 써서 초성(草聖)이라 불릴 정도의 명필가였다.
매학정은 본래 황기로의 할아버지인 상정공 황필의 휴양지였으나, 중종 28년(1533)에 할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정자를 다시 짓고 매학정이라 하여 서재로 사용하였다. 이후 그의 사위인 옥산 이우의 소유가 되었다가, 임진왜란(1592) 때와 철종 13년(1862)에 두 차례 화재로 타 버린 것을 다시 지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으며, 1970년에 전면 보수하였다.
3.1. 초성 황기로
초성이라 불리는 고산 황기로는 매학정에서 자연을 벗삼아 서예를 즐겼으며,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길을 버리고 은둔하면서 학문에 힘썼다. 특히 초서를 잘 써서 '초성'(草聖)이라 불릴 정도의 명필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