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이운
1. 개요
권이운은 1970년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였다. 1972년 하계 올림픽 진출 실패 후 팀 개선을 위해 선발되었으며, 1972년 AFC 아시안컵 준우승 멤버였다. 1974년 아시안 게임 대표팀으로 이라크와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했으나, 이란과의 경기에서 득점을 허용하며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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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이름 | 권이운 |
|---|---|
| 한글 이름 | 권이운 |
| 한자 이름 | 權彝運 |
| 로마자 표기 | Gwon Iun |
| 출생일 | 1950년 12월 26일 |
| 출생지 | 군산시, 전라북도, 대한민국 |
| 키 | 1.73m |
| 포지션 | 골키퍼 |
| 유소년 클럽 | 동북고등학교 축구부 |
|---|---|
| 1966–1968 | 양지 |
| 1970–1975 | 육군 (군 복무) |
| 1976–1979 | 기업은행 |
| 1972–1976 | 대한민국 |
|---|---|
| 국가대표 출전 횟수 | 22 |
| AFC 아시안컵 | 은메달 (1972년 태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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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은행 축구단의 축구 선수 -
김진국 (축구인)
김진국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선수 시절 국가대표로 AFC 아시안컵에 참가하고 서독 2부 리그에서 활약했으며, 은퇴 후 국민은행 축구단 코치 및 감독, 국가대표팀 기술위원장을 역임하며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했다. -
중소기업은행 축구단의 축구 선수 -
정재권
정재권은 K리그 20-20 클럽에 가입하고 부산 대우 로얄즈의 우승에 기여한 대한민국 축구 선수 출신 지도자로, 국가대표와 올림픽에 참가했으며 은퇴 후 동의대학교 코치, 동래중학교 감독을 거쳐 한양대학교 감독을 맡고 있다. -
1972년 AFC 아시안컵 선수 명단 -
이세연 (축구인)
이세연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며, 프로 선수 경력과 국가대표 경력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
1972년 AFC 아시안컵 선수 명단 -
김진국 (축구인)
김진국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선수 시절 국가대표로 AFC 아시안컵에 참가하고 서독 2부 리그에서 활약했으며, 은퇴 후 국민은행 축구단 코치 및 감독, 국가대표팀 기술위원장을 역임하며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했다. -
육군 축구단의 축구 선수 -
박성화
박성화는 K리그 우승과 MVP 수상, 국가대표로 활약한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이자, 프로팀과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하며 AFC 챔피언스리그 2연패 등의 성과를 냈으나 논란도 있었던 인물이다. -
육군 축구단의 축구 선수 -
김용식 (축구인)
김용식은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 대한민국 축구 선수, 지도자, 행정가로 활동하며 일본 국가대표로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했고,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 겸 감독으로 런던 올림픽에 출전했으며, 1954년 FIFA 월드컵에서는 감독으로서 대한민국의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고, 은퇴 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했다.
3. 국가대표 경력
1970년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골키퍼 기량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자주 받았지만, 권이운은 김황호, 김희천과 함께 이러한 비판에서 예외로 여겨졌다. 1972년 하계 올림픽 진출에 실패한 후, 권이운은 팀 개선을 위해 새롭게 선발된 세 명의 골키퍼 중 한 명이었다. 그는 1972년 AFC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대표팀의 일원이었다.
권이운은 1974년 아시안 게임 대한민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이라크와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두고, 이란과의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이란과의 경기에서 권이운은 여러 차례 실점 위기를 맞았고, 결국 두 골을 허용하며 패배했다.
3.1. 1972년 AFC 아시안컵
1970년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골키퍼 기량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자주 받았지만, 권이운은 김황호, 김희천(축구인)과 함께 이러한 비판에서 예외로 여겨졌다. 1972년 AFC 아시안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준우승을 차지하였고, 권이운은 1972년 하계 올림픽 진출 실패 후 팀 개선을 위해 새롭게 선발된 세 명의 골키퍼 중 한 명이었다.
3.2. 1974년 아시안 게임
1970년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골키퍼 기량 부족으로 비판받았지만, 권이운은 김황호, 김희천과 함께 예외로 여겨졌다. 1972년 하계 올림픽 진출 실패 후, 권이운은 팀 개선을 위해 새로 선발된 세 명의 골키퍼 중 한 명이었다. 그는 1972년 AFC 아시안컵 준우승팀의 일원이었다. 권이운은 1974년 아시안 게임 대한민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2라운드에 진출했다.
3.2.1. 이란전 논란
1974년 아시안 게임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일원이었던 권이운은 2라운드 진출 후 9월 9일 이라크와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하고, 9월 11일 이란과의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이란 선수들은 공격적으로 경기에 임했고, 전반 38분경 권이운이 공을 막지 못했으나 수비수가 마지막 순간에 공을 걷어냈다. 후반전에 대한민국 팀은 다소 활발한 모습을 보이며 득점을 노렸지만, 이란은 계속해서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후반 6분에 가푸르 자하니가 득점 기회를 만들었으며, 74분에는 골람호세인 마즐루미가 권이운이 공을 제때 막지 못한 틈을 타 첫 골을 넣었다. 마즐루미는 86분에 골대 오른쪽에서 다시 한 번 득점하며 한국 수비진을 무력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