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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 (19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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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金榮郁, 1923년 5월 29일 ~ 2005년 12월 1일)은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현 김해시 진영읍) 출신으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운동을 벌인 사회 활동가이다.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해정(海亭)이다.
생애1923년 음력 5월 29일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진영리에서 태어났다. 김해 진영대창국민학교(현 진영대창초등학교)와 부산제일공립상업학교(현 부경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 사학과 2학년에 재학 중 일본 요코스카로 징용되었다.

아버지 김정태는 1919년 진영 장터 만세 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였으나, 해방 후 지역 내 우익 인사와의 사사로운 갈등으로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했다가 6.25 전쟁 발발 직후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살해되었다.

김영욱은 4.19 혁명 직후부터 아버지의 죽음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노력을 본격화했다. 1960년 5월 31일 김영봉, 방영조 등과 함께 당시 경상남도 김해군 진영읍 진영극장에서 유족 7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6.25 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희생자 '김해·창원(금창)지구장의위원회'를 결성하여 위원장을 맡았다. 같은 해 6월 중순께 김해·창원 일원에서 유골 251구를 발굴해 김해시 진영읍 소재 포교당에 안치하고, 6월 25일 포교당 앞에서 유족과 시민 등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합동 위령제를 거행하였다.

1960년 8월 28일 부산상공회의소에서 개최된 경남 지구 각 시·군 유족회 대표 70여 명이 모인 경남유족회 결성 대회에 김해·창원유족회 대표로 참석해 이사로 선임되었으며, 같은 해 10월 20일 서울특별시 종로구에서 열린 6.25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진상규명전국유족회 결성 대회에서 총무 간사가 되었다.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유족회 활동은 이적 행위로 간주되어 1961년 6월 22일 「특수 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혁명재판에 회부,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2년 7개월간 투옥되었다.

2004년 광주에서 열린 5.18 관련 국제학술토론회 발표자로 준비하던 중 '무각사' 계단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해 투병 생활을 하다 2005년 12월 1일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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