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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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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 김영호(金泳鎬, 일본식 이름: 金山原道)는 일제강점기의 승려로, 1933년부터 1945년까지 12년간 경상북도 고운사의 주지를 네 번 연임했습니다. 1936년에는 조선불교중앙교무원 신임 이사로 선출되기도 했습니다.

김영호는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 기간 동안 전시체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행적이 있습니다. 주요 행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 시국 행사 개최: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직후 고운사에서 국위선양 무운장구 기원 법요식이라는 시국 행사를 두 차례 개최했습니다. 1940년에는 중일전쟁 3주년 기념식을 고운사에서 거행했습니다.
  • 국방헌금 헌납: 경북 지역 유지들이 추진하는 애국기 '경북호' 헌납을 위해 경북 본·말사가 1,500원을 모금할 때 참가하여 고운사 몫의 325원을 헌납했습니다. 1938년 4월 1일까지 고운사는 총 600원의 국방헌금을 냈습니다. 1944년에는 불교계가 헌납할 해군기 1대를 마련하기 위한 모집금으로 1,850원을 총본산에 납부했습니다.
  • 물자 헌납: 1942년에 사찰 소유의 종 등을 국방 자재로 헌납했습니다.
  • 신사 참배: 경북불교협회 정기총회 때 회의 참석자 전원과 함께 대구신사를 참배했습니다.


1945년 광복 시점까지 고운사 주지였으나,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종교 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

한편, 배우 김영호가 욱하는 성격을 고치기 위해 스님이 되려고 했던 적이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있습니다.[7, 9] 하지만, 여기서 언급된 김영호는 동명이인으로, 일제강점기 승려 김영호와는 다른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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