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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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남휘(南暉, ? ~ 1454년)는 조선 초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시호는 소간(昭簡)이다.
가계
- 할아버지: 남재(南在) -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조선 개국공신, 영의정 역임
- 아버지: 남경문(南景文) - 병조의랑
- 외할아버지: 방순(方恂) - 참의
- 어머니: 온양 방씨
- 부인: 정선공주(貞善公主) - 조선 태종의 넷째 딸
생애남휘는 태종의 딸 정선공주와 결혼하여 의산군(宜山君)에 봉해졌다. 1418년(세종 즉위년) 동지총제(同知摠制)가 되었고, 1419년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지냈다. 이후 1425년 평양선위사(平壤宣慰使), 1433년 황주선위사(黃州宣慰使)를 역임했다. 또한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남휘는 정선공주와의 결혼 생활에서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 정선공주가 3년상을 치르는 동안 다른 여자들과 바람을 피웠고, 공주의 장례식에서 애도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아 양사(兩司)의 탄핵을 받기도 했다. 이로 인해 세종으로부터 근신 명령을 받았으나, 여전히 욕심을 부려 부당하게 수록(受祿)하여 이천(利川)에 부처(付處)되기도 했다. 1452년(문종 2)에는 사적으로 불상(佛像)을 제작하여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지만, 왕의 비호로 무사했다.
기타
- 남휘는 병조판서 남이의 조부이다.
- 일부 기록에 따르면 남휘는 금부도사를 지내기도 했다.
- 남휘의 묘는 경상남도 창녕에 정선공주와 함께 있다.
- 남휘는 숙종 때 생원·진사 양과에 합격하고 금부도사를 지낸 남휘(南徽)와는 동명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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