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무라 메구무
1. 개요
다무라 메구무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이다. 요코하마 국립대학 교육학부 부속 가마쿠라 초등학교 출신으로, 쇼난 중학교와 와세다 대학을 거쳐 일본 유지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1951년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어 그 해 아시안 게임에 출전, 3경기에 출전했다. 은퇴 후에는 소년 축구 코치를 맡았으며, 1951년 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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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 -
오카다 요시오
오카다 요시오는 광학 클럽과 로코 클럽에서 활동하고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7경기 출전하여 아시안 게임과 FIFA 월드컵 예선에 참가했으며 와세다대학 여자 축구부 감독을 역임한 일본의 전 축구 선수이다. -
1951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 -
가토 노부유키
가토 노부유키는 고베 제일중학교, 고베 제일고등학교, 도쿄제국대학 축구부를 거쳐 다나베미쓰비시제약 축구부에서 활약하며 전일본실업단축구선수권대회와 일본 국가대표팀으로도 활동한 일본의 전 축구 선수이다. -
1951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오카다 요시오
오카다 요시오는 광학 클럽과 로코 클럽에서 활동하고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7경기 출전하여 아시안 게임과 FIFA 월드컵 예선에 참가했으며 와세다대학 여자 축구부 감독을 역임한 일본의 전 축구 선수이다. -
1951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가토 노부유키
가토 노부유키는 고베 제일중학교, 고베 제일고등학교, 도쿄제국대학 축구부를 거쳐 다나베미쓰비시제약 축구부에서 활약하며 전일본실업단축구선수권대회와 일본 국가대표팀으로도 활동한 일본의 전 축구 선수이다. -
와세다 대학 동문 -
최남선
최남선은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역사학자이며,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현대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3·1 운동 독립선언서 기초, 친일 행적, 단군 연구, 《단군론》, 《불함문화론》 저술 등의 활동을 했다. -
와세다 대학 동문 -
김성수 (언론인)
김성수는 인촌이라는 호를 사용한 언론인이자 기업인, 정치인으로, 경성방직 설립, 동아일보 창간, 보성전문학교 인수 및 발전에 기여했으며 제2대 부통령을 역임했으나 친일 논란이 있다.
2. 선수 경력
다무라 메구무는 부속 가마쿠라 초등학교 출신으로, 구제 쇼난 중학교 시절부터 축구를 시작했다. 제1 와세다 고등학원을 거쳐 와세다 대학에 입학, 아식 축구부 소속으로 대학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졸업 후 일본 유지에 입사했다. 1951년 2월 11일 전관서전에서 일본 대표로 첫 출전했으며, 1951년 아시안 게임 대표로도 선발되어 3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2.2. 국가대표팀 경력
1951년 3월, 다무라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 대표팀의 첫 경기인 1951년 아시안 게임 축구에 출전했다. 이 대회에서 3월 7일, 그는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데뷔했다. 1951년에 일본 대표팀에서 3경기를 뛰었으며, 1951년 아시안 게임에 모두 출전했다.
3. 은퇴 후
현역 은퇴 후에는 회사 업무에 전념하는 한편, 지역인 가마쿠라에서 소년 축구 코치를 맡았다. 1986년 10월 8일, 국립 암 연구 센터에서 암으로 사망했다.
4. 사망
현역 은퇴 후에는 회사 업무에 전념하는 한편, 지역인 가마쿠라시에서 소년 축구 코치를 맡았다. 1986년 10월 8일, 국립 암 연구 센터에서 암으로 사망했다。
5. 통계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 ||
|---|---|---|
| 연도 | 출전 | 골 |
| 1951 | 3 | 0 |
| | 3 || 0 |
5.1. 국가대표팀 통계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 ||
|---|---|---|
| 연도 | 출장 | 득점 |
| 1951 | 3 | 0 |
| | 3 || 0 |
다무라는 1951년 3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 대표팀의 첫 경기인 1951년 아시안 게임에 출전했다. 1951년 3월 7일, 이란을 상대로 데뷔했다. 다무라는 1951년에 일본 대표팀에서 3경기를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