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움미디우스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마르쿠스 움미디우스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는 로마 제국 시대의 인물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누이 안니아 코르니피키아 파우스티나의 아들이자 유력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그는 146년 보궐 집정관이었으며, 어머니의 사망 후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았다. 이후 철학자 그나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의 아들을 입양했으며, 콤모두스 황제의 누이 루킬라와 함께 콤모두스 암살을 모의했으나 실패하여 처형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38년 출생 - 후한 질제
후한 질제는 어린 나이에 즉위했으나 외척 양기의 권력 남용을 비판하다 독살당하여 후한 왕조 쇠퇴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 권력 견제 실패 사례로 현대 정치에서도 교훈을 주는 후한의 제10대 황제이다. - 182년 사망 - 루킬라
로마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외손녀이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누나인 루킬라는 루키우스 베루스와 결혼하여 황후가 되었으나, 사후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와 재혼, 콤모두스 암살 모의에 가담했다가 처형당했으며, 그녀의 삶은 영화에서 재조명되었다. - 182년 사망 - 조절 (한풍)
후한 시대 환관 조절은 순제 때 벼슬을 시작하여 영제 옹립에 기여했지만 권력 남용과 부패로 환관 정치의 폐단을 심화시켰다.
마르쿠스 움미디우스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 |
---|
2. 생애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딸 안니아 코르니피키아 파우스티나와 로마 원로원 의원 사이에서 태어났다.[5] 그는 로마의 유력 귀족 가문 출신으로, 가이우스 움미디우스 두르미우스 콰드라투스의 직계 후손이었다.[5] 어머니를 통해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와 인척 관계를 맺었다.
152년에서 158년 사이에 어머니가 사망하면서,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는 여동생과 함께 어머니의 재산을 상속받아 부유해졌다.[6] 이후 마르키아라는 해방 노예 출신 그리스 여인을 정부(情婦)로 두었는데, 마르키아는 훗날 황제 콤모두스의 정부가 되었다. 집정관을 지낸 후에는 그나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의 장남을 입양하기도 했다.
180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사망하고 콰드라투스의 외가 친척인 콤모두스가 황제가 되었다. 콤모두스의 누이 루킬라는 황제의 누이로서의 지위에 만족하지 못하고 콤모두스를 암살할 계획을 세웠는데, 182년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도 이 음모에 가담했다가 발각되어 처형되었다.[5]
2. 1. 가계 및 출생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딸 안니아 코르니피키아 파우스티나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로마 원로원 의원의 아들로 태어났다.[5] 로널드 사임은 그를 146년 보좌 집정관을 역임한 가이우스 움미디우스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 베루스와 동일 인물로 보았다. 그는 로마의 유력 귀족 가문 출신으로, 가이우스 움미디우스 두르미우스 콰드라투스의 직계 후손이었다.[5] 어머니를 통해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와 인척 관계를 맺었으며, 그의 여동생은 움미디아 코르니피키아 파우스티나였다.어머니가 152년에서 158년 사이에 사망하자,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와 그의 여동생 움미디아 코르니피키아 파우스티나는 어머니의 재산을 나누어 상속받아 매우 부유해졌다.[6]
2. 2. 재산 상속과 마르키아
152년에서 158년 사이에 어머니가 사망하면서,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는 여동생 움미디아 코르니피키아 파우스티나와 함께 어머니의 재산을 나누어 상속받아 매우 부유해졌다.[6] 그는 해방 노예 출신의 그리스 여인 마르키아를 정부(情婦)로 두었는데, 마르키아는 훗날 황제 콤모두스의 정부가 되었다.2. 3. 양자 입양
집정관을 지낸 후, 콰드라투스는 그나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의 장남을 입양했다. 입양된 아들의 이름은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움미디우스 콰드라투스'로 개명되었다.[5] 이 입양에 대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2. 4. 콤모두스 암살 음모와 처형
182년,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는 그의 양아들을 비롯해 루킬라(콤모두스의 누이), 루킬라의 딸 플라우티아, 조카 퀸티아누스, 코르니피키아 파우스티나 등과 함께 콤모두스 암살을 계획했다.[5] 이들은 콤모두스를 암살하고 루킬라와 그녀의 남편인 집정관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퀸티아누스를 새로운 황제로 세우려 했다. 콰드라투스와 그의 누이, 양아들의 암살 모의 가담은 콤모두스와의 왕조 분쟁, 또는 콰드라투스와 루킬라 간의 연인 관계 때문으로 추정된다.퀸티아누스는 콤모두스를 찌르기 위해 단검을 숨기고 기다리다 콤모두스에게 달려들며 "원로원이 너에게 보내는 단검이다!"라고 외쳤으나, 이 때문에 암살은 실패했다. 호위병들이 퀸티아누스를 제압했고, 곧 공모자들의 정체가 드러났다. 콤모두스는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와 그의 양아들, 퀸티아누스의 처형을 명했다.[5] 콤모두스는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의 재산을 몰수했을 것으로 보인다. 루킬라와 그녀의 딸, 그리고 코르니피키아 파우스티나는 카프리섬으로 유배되었다가, 같은 해 콤모두스가 보낸 백부장에 의해 처형되었다.[5]
3. 암살 음모의 배경과 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조카이자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와 인척 관계였던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다. 152년에서 158년 사이에 어머니가 사망하면서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와 그의 누이 움미디아 코르니피키아 파우스티나는 어머니의 재산을 상속받아 매우 부유해졌다.[6] 그는 마르키아라는 해방 노예 출신의 그리스 여성을 정부로 두었는데, 마르키아는 훗날 콤모두스 황제의 정부가 되었다.
180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사망하고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의 외가 친척인 콤모두스가 황제 자리에 올랐다. 콤모두스의 누이 루킬라는 황제의 친족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력과 지위에 대한 욕심 때문에 콤모두스와 그의 아내를 질투했으며, 콤모두스의 변덕스러운 행동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콤모두스 암살 음모의 배경이 되었다.
3. 1. 루킬라의 질투와 권력욕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180년에 사망하자, 콰드라투스의 외가 친척인 콤모두스가 그 뒤를 이어 황제로 즉위했다. 콤모두스의 누이 루킬라는 로마에서 평범한 시민으로 사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동생과 그의 아내를 질투하게 되었다.[5] 또한, 그녀는 콤모두스의 변덕스러운 행동을 매우 걱정하였다.3. 2.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의 역할
182년,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는 그의 양아들, 루킬라, 코르니피키아 파우스티나 등과 함께 콤모두스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5] 이들의 암살 동기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콤모두스와의 왕조 간 분쟁이나 콰드라투스와 루킬라 간의 연인 관계 때문으로 추정된다.[5]루킬라는 로마에서 조용히 지내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황제인 남동생 콤모두스와 그의 아내를 질투했다. 또한 콤모두스의 변덕스러운 행동을 걱정하였다.[5]
암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퀸티아누스는 콤모두스를 찌르려다 "원로원이 너에게 보내는 단검이다"라고 외치는 바람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5] 콤모두스는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와 그의 양아들, 퀸티아누스 등의 처형을 명했다.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의 재산은 몰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5] 루킬라와 코르니피키아 파우스티나는 카프리섬으로 추방된 후 처형되었다.[5]
4. 평가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친척이자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와 인척 관계에 있던 유력한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5] 그는 어머니에게서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았으며, 훗날 콤모두스 황제의 정부가 되는 마르키아를 정부로 두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아들을 입양하여 가문을 이으려던 중, 182년 콤모두스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가 발각되어 처형당하는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이 사건으로 그의 재산은 몰수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의 친척들 또한 추방된 뒤 살해되었다.
4. 1. 역사적 기록의 부족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조카이자 146년 보궐 집정관을 역임한 것으로 추정되는 마르쿠스 움미디우스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매우 부족하다. 그의 삶과 행적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로널드 사이엄과 같은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파편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기록 부족으로 인해 그의 삶과 행적을 온전히 파악하기는 어렵다.[2]4. 2. 비극적 최후
182년,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는 그의 양아들, 루킬라, 코르니피키아 파우스티나 등과 함께 콤모두스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5] 이들은 콤모두스를 암살하고 루킬라와 재혼한 남편인 집정관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퀸티아누스를 황제로 세우려 했다.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와 콤모두스의 누이 루킬라의 개입은 콤모두스와의 왕가 간 분쟁, 또는 콰드라투스와 루킬라 사이의 연인 관계 때문으로 추정된다.암살 시도는 퀸티아누스가 "원로원이 너에게 보내는 단검이 여기 있다"라고 외치며 콤모두스를 찌르려는 순간, 호위병들에게 제압당하면서 실패했다. 공모자들은 곧 체포되었고, 콤모두스는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 그의 양아들, 퀸티아누스 등의 처형을 명령했다.[6] 콤모두스는 콰드라투스 안니아누스의 재산을 몰수했을 가능성이 있다. 루킬라와 그녀의 딸, 그리고 코르니피키아 파우스티나는 카프리섬으로 추방되었고, 같은 해에 콤모두스가 보낸 백부장에 의해 암살되었다.
참조
[1]
논문
The Ummidii
https://www.jstor.or[...]
1968
[2]
논문
The Ummidii
[3]
서적
Divites et praepotentes. Reichtum und soziale Stellung in der Literatur der Prinzipatszeit
Steiner, Stuttgart
1993
[4]
논문
The Ummidii
https://www.jstor.or[...]
1968
[5]
논문
The Ummidii
[6]
서적
Divites et praepotentes. Reichtum und soziale Stellung in der Literatur der Prinzipatszeit
Steiner, Stuttgart
1993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