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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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맹희도(孟希道)는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신창(新昌), 호는 동포(東浦)입니다. 1337년에 태어나 정확한 사망년도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1423년으로 추정됩니다.
생애 및 활동:
- 1365년(공민왕 14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 한성좌윤(漢城左尹), 전교부령(典校副令), 전교령(典校令), 수문전제학(修文殿提學) 등을 역임했습니다.
- 고려 공양왕 때 효행으로 정려(旌閭)를 받았습니다.
-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관직을 버리고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온양 오봉산)에 은거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습니다.
- 두문동 72현 중 한 명으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개를 지켰습니다.
가족 관계:
- 할아버지: 맹의(孟儀) (예부전서 역임)
- 아버지: 맹유(孟裕) (이부상서, 순창 군수 역임, 두문동 72현 중 한 명)
- 부인: 홍양 조씨
- 장남: 맹사성(孟思誠) (고려 말 조선 초 재상)
- 며느리: 동주 최씨(東州崔氏) (최영 장군의 손녀)
- 차남: 맹사겸(孟思謙)
일화:
-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묘 옆에 여막을 짓고 3년간 시묘살이를 했습니다. 이때 흰 새가 날아와 머물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 제자였던 강제로(姜齊老)가 맹희도의 기생첩과 간통하여 쫓겨난 후, 원한을 품고 학장의 가짜 형상을 만들어 머리를 자르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후:
- 1634년(인조 12년)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에 건립된 정퇴서원(靜退書院)에 제향되었습니다.
- 영조 때에는 영조가 온양온천에 행차하던 중 맹희도의 묘에 치제토록 하고, 어제사액 '충효세업청백가성(忠孝世業淸百家聲)'을 내렸습니다.
- 현재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에는 효자 맹희도 정려(旌閭)가 있습니다.
- 아산시 법곡동에는 맹희도의 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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