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시 아르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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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베이시 아르파드는 헝가리 출신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었다. 선수 시절에는 좌측 미드필더로 활동하며 헝가리 국가대표팀으로 7경기에 출전했고, 1924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했다. 은퇴 후에는 US 알레산드리아 칼초 1912,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AS 바리, 노바라 FC, 볼로냐 FC 1909 등에서 감독을 역임했으며, 인테르나치오날레와 볼로냐에서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이탈리아의 인종법으로 인해 이탈리아를 떠나 네덜란드의 FC 도르드레흐트를 마지막으로 지도했다. 첼시는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기리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베이시 아르파드를 추모하는 벽화를 공개했다.

베이시 아르파드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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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츠, 1920년경
전체 이름바이츠 아르파드
출생일1896년 4월 16일
출생지오스트리아-헝가리 솔트
사망일1944년 1월 31일
사망지독일 아우슈비츠-비어케나우
포지션왼쪽 윙어
선수 경력
클럽1922–1923: 퇴레크베시 SE
1923–1924: 마카비 브르노
1924–1925: 알레산드리아 (6경기 1골)
1925–1926: 인테르 밀란 (10경기 3골)
국가대표1922–1923: 헝가리 (6경기)
감독 경력
클럽1926–1928: 인테르 밀란
1929–1931: 인테르 밀란
1931–1932: 바리
1932–1934: 인테르 밀란
1934–1935: 노바라
1935–1938: 볼로냐
1938–1940: 도르드레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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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수 경력

베이시 아르파드는 헝가리의 퇴레크베시와 체코슬로바키아의 마카비 브르노, 이탈리아의 알레산드리아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좌측 미드필더로 뛰었다. 1924년 하계 올림픽에 헝가리 선수단 일원으로 참가했다. 1922년부터 1923년까지 헝가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7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중상을 당하면서 일찍이 축구화를 벗었다.

3. 감독 경력

1926년 현역에서 은퇴한 베이시는 알레산드리아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한 후 인테르나치오날레 감독으로 취임하여 1929-30 시즌 리그 우승을 이끌었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34세였다. 1926년부터 1928년까지, 1929년부터 1931년까지, 그리고 1932년부터 1934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주세페 메아차가 선수로 있던 인테르나치오날레를 지도했다.

그는 바리, 노바라, 볼로냐의 감독 또한 역임하였으며, 볼로냐에서는 1936년과 1937년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인종법이 입법되면서 배우자와 두 자녀와 함께 이탈리아를 강제로 떠나야 했다. 베이시가 마지막으로 지도한 구단은 네덜란드의 도르트레흐트였고, 1940년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인해 팀을 떠났다.

4. 후평

2020년 1월, 첼시스탬퍼드 브리지 서쪽 스탠드 외곽에 솔로몬 소자가 그린 벽화를 공개했다. 이 벽화는 로만 아브라모비치 첼시 구단주가 주도하는 '반유대주의를 말하지 마세요' 캠페인의 일환으로 제작되었다. 벽화에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사망한 율리안 히어시와 베이시 아르파드, 그리고 '아우슈비츠의 수문장'으로 불린 영국의 전쟁 포로 론 존스가 그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