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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후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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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후율사는 충청북도 보은군 수한면 차정리에 있는 사당으로, 조선 중기 문신이자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중봉 조헌(1544∼1592) 선생과 그와 함께 순절한 21위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1976년 12월 21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1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후율사의 역사


  • 1832년(순조 32년): 송흠요 등 28인의 발의로 옥천, 회인, 청주 등지의 선비들의 협조를 얻어 처음 건립되었습니다.
  • 1868년(고종 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습니다.
  • 1894년(고종 34년): 유림들에 의해 옛터에 단을 모으고 연 1회 제사를 지냈습니다.
  • 1927년: 다시 건립되었습니다.
  • 1959년: 사당을 중수했습니다.
  • 1978년: 사당, 삼문, 비각을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후율사의 구조

  • 사당: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통칸 구조에 우물마루를 깔고 연등천장으로 마감했습니다. 3단의 장대석 기단 위에 네모주초를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으며, 5량가의 도리집 형식입니다.
  • 교서비각: 사당 좌측 뒤편에 위치하며, 1839년(헌종 5년)에 세워진 교서비가 있습니다. 교서비에는 선조의 잘못을 뉘우치는 내용, 조헌에게 충청도의 동정을 보고하라는 지시, 명나라 군대의 원조 정황, 충성을 독려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습니다.

후율사의 의미후율사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 활동과 국왕의 시선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며, 교서비는 국왕 문서를 직접 보여줌으로써 후율사의 위상을 높이려는 의도를 담고 있어 조선 후기 사회상을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받습니다.
기타 정보

  • 2022년 10월 11일, 후율사에서 추계제향이 봉행되었습니다. 초헌관은 최재형 보은군수, 아헌관은 최부림 의장, 종헌관은 노일선 씨가 맡았습니다.
  • 후율사라는 이름은 조헌 선생이 율곡 이이의 후학임을 자처하여 지은 호인 '후율'에서 유래했습니다.
  • 후율사가 위치한 수리티재 아래는 조헌 선생이 이끄는 의병이 처음 왜적과 만나 석전(돌싸움)으로 승리한 곳이라고 전해집니다.


보은 후율사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보은 후율사
보은 후율사
국가대한민국
위치충청북도 보은군 수한면 차정리 30-4번지
일반 정보
유형기념물
지정 번호15
지정일1976년 12월 21일
시대일제강점기
수량1동/2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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