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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포로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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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부산포로수용소는 6.25 전쟁 당시 부산 지역에 설치되었던 포로 수용 시설입니다.
설립 배경 및 변천:


  • 최초 설립: 1950년 7월 8일 대전형무소에 '대전 포로 수용소'가 설치된 것이 최초입니다.
  • 부산 지역 설치: 전쟁 발발 직후, 1950년 7월 24일 부산 거제리(현재 부산시청 부근)에 '주한 미8군 제1포로수용소(Camp EUSAK No1)'가 설치되었습니다. 초기 수용 인원은 250명으로 24인용 천막을 사용했습니다.
  • 미군의 주도: 부산 지역 포로 수용소 설치는 국군보다 미군이 먼저 주도했습니다. 미군은 전투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포로 수용소를 설치하고자 했고, 그 적합한 장소로 부산을 선택했습니다.
  • 영도 이전 및 확장: 1950년 8월 1일, 부산 영도에 있는 해동중학교에 포로 수용소 본소가 설치되었고, 대구에 있던 수용소는 포로 집결소로 운영되었습니다. 이후 포로 수가 급증함에 따라 거제리 포로수용소는 제2~6포로수용소까지 증설되었습니다.
  • 기타 지역 수용소: 1950년 9월에는 인천 임시포로수용소, 10월 2일에는 서울 마포형무소에 포로수집소가 설치되었으나, 이들 임시 시설에 수용된 포로들은 모두 부산 포로수용소로 집결되었습니다.
  • 포로 수 증가: 1950년 10월 말까지 한국군과 유엔군에 의해 붙잡힌 포로의 수는 117,000여 명에 달했습니다.
  • 관리 주체: 미군 제8군사령부에서는 제2군수사령부를 창설하여 포로 관리 인력과 장비를 보충하고 병참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한국군은 1950년 10월 25일 제31, 32, 33포로경비대를 창설하여 이를 지원했습니다.
  • 거제도 포로수용소: 1951년 2월에는 거제도에 대규모 포로수용소가 건설되었습니다.

기타 정보:

  • 부산포로수용소는 유엔군사령부 관할하에 미 제8군사령부가 운영하였습니다.
  • 포로들은 위생 소독을 위해 DDT 소독을 받기도 했습니다.
  • M46 패튼 전차가 부산 포로 수용소 방어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는 1952년에 포로들의 폭동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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