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반야암 목조관음보살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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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 반야암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서울 서대문구 봉원사 산내 암자인 반야암에 봉안된 불상이다. 1722년에 제작되었으며, 높이 54.2cm의 목조관음보살좌상으로, 머리가 큰 신체 비례와 화려한 보관, 방형의 얼굴, 잔잔한 미소를 띤 입술 등이 특징이다. 불상 내부에서는 조성발원문, 주서다라니, 후령통, 묘법연화경 등이 발견되었으며, 조성발원문을 통해 1722년 천후산 문수사에서 제작되어 감로암 상단에 봉안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수조각승 진열을 비롯한 5명의 조각승이 제작에 참여했으며, 진열은 조선 후기 불교 조각 분야에서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이 불상은 조선 후기 불교 조각의 특징을 잘 보여주며, 조선 시대 불교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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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반야암 목조관음보살좌상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반야암 목조관음보살좌상 |
국가 | 대한민국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봉원사길 106 (봉원동) |
문화재 지정 정보 | |
유형 | 유형문화재 |
지정 번호 | 369 |
지정일 | 2015년 1월 15일 |
상세 정보 |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반야암 |
수량 | 1점 |
2. 상세
반야암은 서울 서대문구 봉원동에 위치한 봉원사의 산내 암자로, 새로 지어진 금당에는 항마촉지인 여래좌상을 본존으로 하여 목조보살좌상과 석조보살좌상이 좌우로 협시하는 삼존이 봉안되어 있다. 이 삼존상 가운데 제작 시기가 가장 이른 것으로 추정되는 향좌측의 목조보살좌상은 높이 54.2cm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1]
몸체에 비해 머리가 큰 신체 비례를 보여주는데, 머리에는 화문과 화염문으로 장식된 화려한 보관(후대에 보충된 것임)을 쓰고 있고, 머리 위에는 보계[寶髻,상투]가 표현되었으며, 머리카락이 양 어깨에 흘러내리는 모습이다. 방형에 가까운 얼굴은 양 뺨에 살이 많아 풍부한 양감을 보이고, 눈은 가늘게 떠서 반개하였으며, 코가 크고 오똑하며, 인중은 넓고 입에는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다.[1]
착의 방법은 가사를 두 벌 겹쳐서 입은 형식인데, 가슴에는 내의(內衣)가 수평으로 접혀 있다. 별재(別材)로 만들어 끼워 넣은 양 손은 큼직하며, 검지와 약지는 펴고 중지와 무명지를 구부려 중지를 엄지에 맞댄 상태로, 지금은 잃어버린 지물(持物)을 들고 있었던 듯하다. 다리를 덮은 치마[裙]의 자락은 꽃잎처럼 새겨져 있는데, 이는 18세기 불상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1]
보살상의 몸속에서는 복장물이 발견되었는데, 조성발원문을 비롯해서 주서다라니, 후령통, 묘법연화경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조성발원문을 보면, 보살상은 1722년에 천후산 문수사에서 조성하여 봉안했던 상으로, 이 보살상은 수조각승 진열이 이끈 진행, 옥총, 일영, 수성의 다섯 명이 제작한 것이다. 진열은 조선 후기의 조각승 가운데 비교적 여러 작품이 전해오는 인물로, 자료상 처음 확인되는 것은 1688년 상주 북장사 목조지장보살상과 시왕상 조성에서 수조각승 지현을 보좌하여 참가했다는 기록이며, 수조각승 성심(性諶)의 보조 조각승으로서 전북 흥양 백련사 목조가섭·아난존자와 십육나한상의 제작에도 참여하였다.[1]
현존 작품 가운데 수조각승으로서 진열의 활동이 처음 보이는 것은 1713년으로, 경기도 고양 노적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現 고양 상운사 봉안)부터인데, 이후 1718년에는 경남 양산 통도사 사천왕상을, 1719년에는 전남 남평 운흥사 목조지장보살상과 시왕상(現 목포 달성사 봉안)을 중수하였으며, 반야암 보살상을 제작한 같은 해인 1722년에는 부산 범어사 관음전 목조관음보살좌상을 제작하였다. 따라서 진열의 활동 지역은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에 넓게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반야암 보살상이 봉안되었던 천후산 문수사가 어느 곳에 위치한 사찰인지, 또 언제 반야암으로 옮겨졌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발원문의 내용에서 이 보살상이 관음보살이며 문수사 감로암의 상단에 모셔진 관음보살상임을 밝히고 있어, 삼존불 가운데 하나로 모셔졌던 협시보살상이 아닌 독존으로 봉안되었던 보살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1]
조선 후기 불교 조각의 뛰어난 조형성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진보적인 불교 사상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민중의 구원을 염원하는 관음보살 신앙의 확산과 함께, 불상의 형태와 표현에서 보다 인간적이고 친근한 모습이 강조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특징은 당시 사회의 변화와 함께, 불교 미술이 민중의 삶과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제작 시기가 확실한 조선 후기 조각으로서 진열이라는 조각승의 이름도 확인할 수 있어 조선 시대 불교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작품이므로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1]
2. 1. 외형 및 특징
서울 반야암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높이 54.2cm로, 머리가 큰 신체 비례를 보인다.[1] 화문과 화염문으로 장식된 화려한 보관(후대에 보충됨)을 쓰고 있으며, 머리 위에는 보계(상투)가 표현되어 있고, 머리카락은 양 어깨로 흘러내리는 모습이다.[1] 방형에 가까운 얼굴은 양 뺨에 살이 많아 풍부한 양감을 준다.[1] 가늘게 뜬 눈, 크고 오똑한 코, 넓은 인중, 잔잔한 미소를 띤 입이 특징이다.[1]착의 방법은 가사를 두 벌 겹쳐 입은 형식이며, 가슴에는 내의가 수평으로 접혀 있다.[1] 별도로 제작되어 끼워 넣은 양 손은 큼직하며, 검지와 약지를 펴고 중지와 무명지를 구부려 중지를 엄지에 맞댄 모습으로, 지금은 잃어버린 지물(持物)을 들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1] 다리를 덮은 치마 자락은 꽃잎처럼 새겨져 있는데, 이는 18세기 불상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표현이다.[1]
2. 2. 복장물
불상 내부에서는 조성발원문, 주서다라니, 후령통, 묘법연화경 등이 발견되었다.[1] 조성발원문에 따르면, 이 불상은 1722년(강희 61년) 천후산 문수사에서 조성되어 감로암 상단에 봉안되었다.[1]발원문에는 시주자, 연화질, 화원 등의 명단과 함께 발원문, 작게(作偈)가 기록되어 있다.[1] 제작에는 수조각승 진열을 비롯하여 진행, 옥총, 일영, 수성 등 다섯 명의 조각승이 참여했다.[1] 진열은 1688년 상주 북장사 목조지장보살상과 시왕상 조성에 참여한 기록이 있으며, 1713년 경기도 고양 노적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現 고양 상운사 봉안)을 시작으로 수조각승으로서 활동했다.[1] 1718년에는 양산 통도사 사천왕상을, 1719년에는 전남 남평 운흥사 목조지장보살상과 시왕상(現 목포 달성사 봉안)을 중수했으며, 반야암 보살상을 제작한 같은 해인 1722년에는 부산 범어사 관음전 목조관음보살좌상을 제작하는 등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에서 활동했다.[1]
발원문의 내용에 따르면 이 보살상은 관음보살이며 문수사 감로암의 상단에 모셔진 관음보살상으로, 삼존불 가운데 하나로 모셔졌던 협시보살상이 아닌 독존으로 봉안되었던 보살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1]
2. 3. 조각승 진열
진열은 조선 후기 조각승으로, 1688년 상주 북장사 목조지장보살상과 시왕상 조성에 참여한 기록이 처음 확인된다.[1] 수조각승 성심(性諶)의 보조 조각승으로 백련사 목조가섭·아난존자와 십육나한상 제작에도 참여했다.[1] 1713년 경기도 고양 노적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현 고양 상운사 봉안)을 시작으로 수조각승으로서 활동했다.[1]1718년 양산 통도사 사천왕상,[1] 1719년 전남 남평 운흥사 목조지장보살상과 시왕상(현 목포 달성사 봉안) 중수,[1] 1722년 부산 범어사 관음전 목조관음보살좌상을 제작하는[1]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진열의 활동 지역은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에 걸쳐 있었다.
3. 역사적 의의
반야암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제작 시기(1722년)와 조각승(진열)이 명확하게 밝혀진 조선 후기 불상으로, 조선시대 불교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1] 불상 양식, 복장물, 조성발원문 등을 통해 당시 불교 신앙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1]
1722년에 제작된 이 불상은 수조각승 진열이 진행, 옥총, 일영, 수성과 함께 제작하였다.[1] 진열은 1688년 상주 북장사 목조지장보살상과 시왕상 조성에 참여한 기록이 있으며,[1] 1713년 경기도 고양 노적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現 고양 상운사 봉안)을 시작으로 수조각승으로서 활동하였다.[1] 이후 1718년 양산 통도사 사천왕상, 1719년 전남 남평 운흥사 목조지장보살상과 시왕상(現 목포 달성사 봉안)을 중수하였다.[1] 1722년에는 부산 범어사 관음전 목조관음보살좌상을 제작하는 등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에서 활동하였다.[1]
원래 천후산 문수사에 봉안되었던 이 보살상은 조성발원문을 통해 관음보살이며 문수사 감로암의 상단에 모셔진 독존 보살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1]
조성발원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1]
{{인용문|願文
康熙六十一年壬寅二月日天后山文殊寺甘露
庵上壇造成觀音菩薩一座安於宝座
:: 施主列目
: 造像供養布施体金大施主 道明 比丘
:: 黃金大施主 崔莫大 靈駕
:: 面金大施主 金斗才 兩主 金尙玄 兩主
:: 烏金大施主 戒日 比丘
:: 供養大施主 金斗發 兩主
::: 緣化秩
:: 證明 行淨 比丘
:: 持殿 雷炯 比丘
:: 畫員 進悅 比丘
::: 眞行 比丘
::: 玉聰 比丘
::: 一英 比丘
::: 守性 比丘
:: 供養主 處明 比丘
::: 坦玉 比丘
:: 來往 惠明 比丘
::: 惠哲 比丘
:: 別座 智元 比丘
:: 化士 道明 比丘
::: 楚行 比丘
:: 三綱 位淸 比丘
::: 惠聰 比丘
:: 大禪師 守卞 比丘
::: 智行 比丘
: 願文作偈曰
我今造像觀音菩薩智慧莊嚴功德聚檀越
善人今○○願證蓮○淨法身彌陀畵像一
菩薩若有見聞遍十方願此同緣亦如是點
眼無時作佛事亦願三途若輪息悉今除
熱偈淸凉皆發無上菩提心永觀愛河
登彼岸}}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 및 관리될 가치가 있다.[1]
4. 봉안 사찰 및 연혁
반야암은 서울 서대문구 봉원동에 있는 봉원사의 산내 암자이다. 새로 지은 금당에는 항마촉지인 여래좌상을 본존으로 하여 목조보살좌상과 석조보살좌상이 좌우로 협시하는 삼존이 봉안되어 있다. 이 삼존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향좌측의 목조보살좌상은 높이 54.2cm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보살상 몸속에서는 조성발원문을 비롯해서 주서다라니, 후령통, 묘법연화경 등이 복장물로 발견되었다. 조성발원문에 따르면, 보살상은 1722년(강희 61년 임인)에 천후산 문수사에 봉안되었던 상으로, 수조각승 진열과 진행, 옥총, 일영, 수성 등 다섯 명이 제작하였다. 진열은 1688년 상주 북장사 목조지장보살상과 시왕상 조성에 수조각승 지현을 보좌하여 참가하였고, 수조각승 성심(性諶)의 보조 조각승으로서 전북 흥양 백련사 목조가섭·아난존자와 십육나한상의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1713년 경기도 고양 노적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現 고양 상운사 봉안)을 시작으로, 1718년 양산 통도사 사천왕상, 1719년 전남 남평 운흥사 목조지장보살상과 시왕상(現 목포 달성사 봉안)을 중수하였다. 같은 해인 1722년에는 부산 범어사 관음전 목조관음보살좌상을 제작하여 활동 지역이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에 넓게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반야암 보살상이 봉안되었던 천후산 문수사의 위치나 반야암으로 옮겨진 시기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발원문의 내용에서 이 보살상이 관음보살이며 문수사 감로암의 상단에 모셔진 관음보살상임을 밝히고 있어, 삼존불 가운데 하나로 모셔졌던 협시보살상이 아닌 독존으로 봉안되었던 보살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발원문은 다음과 같다:
{{인용문|願文
康熙六十一年壬寅二月日天后山文殊寺甘露
庵上壇造成觀音菩薩一座安於宝座
:: 施主列目
: 造像供養布施体金大施主 道明 比丘
:: 黃金大施主 崔莫大 靈駕
:: 面金大施主 金斗才 兩主 金尙玄 兩主
:: 烏金大施主 戒日 比丘
:: 供養大施主 金斗發 兩主
::: 緣化秩
:: 證明 行淨 比丘
:: 持殿 雷炯 比丘
:: 畫員 進悅 比丘
::: 眞行 比丘
::: 玉聰 比丘
::: 一英 比丘
::: 守性 比丘
:: 供養主 處明 比丘
::: 坦玉 比丘
:: 來往 惠明 比丘
::: 惠哲 比丘
:: 別座 智元 比丘
:: 化士 道明 比丘
::: 楚行 比丘
:: 三綱 位淸 比丘
::: 惠聰 比丘
:: 大禪師 守卞 比丘
::: 智行 比丘
: 願文作偈曰
我今造像觀音菩薩智慧莊嚴功德聚檀越
善人今○○願證蓮○淨法身彌陀畵像一
菩薩若有見聞遍十方願此同緣亦如是點
眼無時作佛事亦願三途若輪息悉今除
熱偈淸凉皆發無上菩提心永觀愛河
登彼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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