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흥천사 조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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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흥천사 조왕도는 1938년에 제작된 불화로, 부엌을 관장하는 조왕신을 묘사한다. 19세기 이후 민간 신앙과 불교가 습합하는 과정에서 조왕신이 산신과 함께 토속신으로 등장하였으며, 이 조왕도는 제왕의 모습으로 묘사된 조왕과 공양모, 역사를 묘사하고 있다. 보응문성이 그렸으며, 20세기 불화로서 희소성과 함께 근현대 불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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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흥천사 조왕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 조왕도 정보 | |
| 이름 | 흥천사 조왕도 |
| 한자 표기 | 興天寺 竈王圖 |
| 국가 | 서울특별시 |
| 유형 | 유형문화재 |
| 지정 번호 | 70 |
| 지정일 | 2018년 2월 8일 |
| 주소 | 서울특별시 성북구 흥천사길 29 |
| 시대 | 1938년 |
| 소유자 | 대한불교조계종 흥천사 |
| 수량 | 1점 |
2. 조왕신의 기원과 의미
2. 1. 한국 민간 신앙에서의 조왕신
2. 2. 불교와의 습합
3. 흥천사 조왕도
흥천사 조왕도는 한국에서 조왕신이 산신과 함께 대표적인 토속신으로 19세기 이후 등장하면서, 민간신앙과 불교가 습합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신앙 형태를 보여준다.[1] 불의 발명은 인류 문명의 중요한 혁명적 사건 중 하나였으며, 불을 다루는 부엌은 신성시되어 조왕신을 모시는 장소가 되었다.[1] 조선 후기 불교가 대중화되면서, 신중신앙과 결합하여 산신, 조왕신 등이 신중도에 등장하거나 독립된 탱화로 제작되어 부엌에 봉안되었다.[1]
흥천사 조왕도에서 조왕은 원유관과 곤룡포를 입은 제왕의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다.[1] 왼손에는 오색 목편이 꽂힌 통을 잡고, 오른손은 의자 팔걸이를 잡고 있다.[1] 얼굴은 둥글고 수염이 긴 노인의 인자한 인상이지만, 굳게 다문 입, 건장한 신체에서 강인함이 느껴진다.[1] 이마와 입가, 눈 밑 등에 주름과 음영을 표현하여 사실적인 입체감을 나타냈다.[1]
조왕의 왼쪽에는 공양모가 음식이 담긴 그릇을 바치고 있고, 오른쪽에는 땔나무를 담당하는 역사가 도끼를 메고 서 있다.[1] 역사는 검지를 세워 무엇인가를 가리키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1] 이들 뒤로는 바다와 수평선, 해와 달이 보이는 배경이 묘사되어 있다.[1] 해와 달은 곡물 생장과 식생활에 필요하여 조왕신에 그려지는 도상 특징 중 하나이다.[1]
흥천사 조왕도는 이음매 없는 정방형 면 바탕에 그려졌으며, 일부 손상된 부분이 있으나 전반적으로 양호한 상태이다.[1] 조왕과 역사상의 얼굴 표현은 섬세하고 사실적이며, 특히 역사상은 초상화를 보는 듯하다.[1] 상의는 청색으로 칠하고 주름을 따라 바림 효과를 주어 입체감을 강조했다.[1] 조왕을 제외한 복식과 하늘, 바다 등은 중간색을 사용하고 바림 효과를 주어 입체감을 표현하려는 노력이 보인다.[1] 커튼은 황갈색 바탕에 도안적인 초화문을 표현하여 전통 불화에서 볼 수 없던 현대적인 문양을 보여준다.[1]
조왕도는 19세기 이후에 주로 제작되었으나 전해지는 작품이 많지 않다.[1] 이 조왕도를 제작한 보응문성(普應文性)은 금호약효(錦湖若效)의 제자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까지 왕성하게 활동한 근대기의 대표적인 불화승이다.[1] 20세기 불화로 연대가 오래되지 않았으나 필력과 표현력이 우수하고, 전통 불화 기법에 현대적인 기법을 응용하여 시대상을 반영한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는 자료적 가치가 있다.[1] 특히 제작 연도가 확실한 조왕도가 드물다는 점에서 보존 가치가 높다.[1]
화기에 따르면, 흥천사 조왕도는 쇼와 13년(1938년) 음력 윤 7월 29일에 흥천사 적조암에 봉안되었으며, 동운명룡(東雲明龍)이 증명, 법허원성(法虛圓惺)이 송주, 보응당 문성(普應堂 文性)이 화사, 광호(廣昊)가 공사를 맡았다.[1] 시주자로는 송씨, 임각, 김강혜, 보명심, 박씨, 문씨, 권녕일, 백씨, 권오백, 정병찬 등이 참여했다.[1] 삼강은 주지 김창원, 사무 전청운, 화기 조창준, 화주 정운성이 담당했다.[1]
3. 1. 도상의 특징
3. 1. 1. 해와 달의 상징성
요약(summary)과 원본소스(source)에 내용이 없으므로, 출력할 내용이 없습니다.3. 2. 제작 기법 및 화풍
3. 3. 화가 보응문성
4. 흥천사 조왕도의 가치와 의의
조왕신은 한국에서 산신과 함께 대표적인 토속신으로 19세기 이후에 등장한다.[1] 불의 발명은 인간 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혁명적 사건 중 하나이며, 인류는 오래전부터 불을 신성시하였다. 부엌은 불을 다루는 장소이므로 불의 신인 조왕신을 부엌에 봉안하여 숭배하였다.[1] 조선 후기 불교 신앙이 대중화되면서 민간신앙과의 습합 양상이 두드러졌는데, 특히 신중 신앙과 결합하여 산신, 조왕신 등의 토속신들이 19세기 신중도에 등장하기도 하고, 독립된 탱화로 제작되어 부엌에 봉안되기도 한다.[1]
흥천사 조왕도는 폭이 넓은 정방형의 면 바탕에 그려졌으며, 1938년에 제작되었다.[1] 화면이 조금 찢긴 곳이 있고 두광 등의 녹색 안료가 탈락되었으며 촛농이 묻어 있으나 전반적으로 양호한 편이다.[1] 뒷면에는 배접한 종이가 떨어져 있어 보수처리가 필요하다.[1]
조왕은 화면 가득히 장중한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데, 원유관과 곤룡포를 갖춘 제왕의 모습이다.[1] 얼굴은 둥글고 수염이 길게 난 노인으로 인자한 인상이지만 굳게 다문 입, 의자 팔걸이를 부여잡은 손과 건장한 신체에서는 강인함이 드러난다.[1] 이마와 입가, 눈 밑 등에 주름과 음영을 표현하여 사실적인 입체감을 표현하였다.[1]
조왕의 왼쪽에는 공양모가, 오른쪽에는 땔나무를 마련해 오는 것이 임무인 역사가 도끼를 어깨에 메고 서 있다.[1] 역사상은 초상화를 보는 듯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1] 상의는 청색인데 채색을 일정하게 한 것이 아니라 옅게 칠하고, 주름을 따라 바림 효과를 강조하여 입체감을 표현하였다.[1]
인물 뒤 커튼 밖으로는 일렁이는 물결무늬가 가득한 바다와 수평선 좌우로 큼직한 해와 달이 떠있는 모습이 보인다.[1] 하늘에는 뭉게구름을 옅게 표현하였다.[1] 해와 달은 곡물 생장과 식생활에 필요하여 조왕신에 그려지는 도상 특징 중 하나이다.[1]
조왕을 제외한 복식과 하늘과 바다 등 자연 표현은 원색이 아닌 몇 가지의 색을 조채하여 중간색을 사용하였고, 채색 후 일부분에 물감을 빼내듯이 옅게 처리하여 바림 효과를 주어 입체감을 표현하고자 하였다.[1] 커튼도 황갈색 바탕에 도안적인 초화문을 표현하였는데, 전통 불화에서 볼 수 없던 현대적인 문양이다.[1]
조왕도는 대부분 19세기 이후에 제작되었으나 전해지는 작품이 많지 않다.[1] 흥천사 조왕도는 20세기 불화로 연대가 오래되지는 않았으나 필력과 표현력이 우수하며, 전통 불화의 기법에 현대적인 기법을 응용하여 제작하는 등 시대상을 반영한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는 불화로써 근현대 불화의 화풍을 이어주는 자료적 가치가 있다.[1] 특히 제작 연도가 확실한 조왕도가 드물다는 점에서도 보존 가치가 있다.[1] 이 조왕도를 제작한 보응문성(普應文性)은 금호약효(錦湖若效)의 제자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까지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그리고 서울에 이르기까지 왕성하게 활동한 근대기의 대표적인 불화승이다.[1]
4. 1. 근현대 불화 연구 자료
4. 2. 희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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