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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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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선춘령(先春嶺)은 고려 예종 때 윤관이 동북 9성을 쌓을 당시 북쪽 경계에 있던 지명입니다. 여러 사료에서 선춘령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위치: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함주에서 공험진(公險鎭)까지 9성을 쌓고, 공험진의 선춘령에 비석으로 경계를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험진은 동북 9성 중 하나입니다. 《고려사》에는 "공험진(公嶮鎭)은 예종 3년(1108)에 성(城)을 쌓아 진(鎭)을 설치"했으며, "선춘령(先春嶺) 동남쪽·백두산(白頭山) 동북쪽에 있다고도 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 역사적 사건: 1107년(예종 2) 12월에서 1109년(예종 4) 7월 사이에 윤관이 별무반을 이끌고 동북쪽 변경 지역을 개척하면서 선춘령에 비(碑)를 세워 경계로 삼았습니다. 이를 고려정계비(高麗定界碑)라고도 합니다.
  • 추가 정보: 《동국여지승람》 회령도호부 편에는 "선춘령은 두만강 북쪽 7백리에 있다. 윤관이 토지를 확장하여 여기까지 와서 공험진에 성을 쌓고, 드디어 영위에 성을 쌓고 '고려의 국경'이라고 새기고 비석의 4면에 모두 글씨가 있었는데 모두 오랑캐가 지워버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종합하면, 선춘령은 고려 시대 윤관이 동북방 국경을 개척하면서 세운 중요한 경계 지점으로, 현재 정확한 위치는 여러 설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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