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탐라)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본문
성주(星主)는 신라시대부터 고려를 거쳐 조선 초까지 제주도(탐라)의 대표적인 토호에게 주어진 작위(爵號)입니다. 탐라를 다스리던 영주를 일컫는 칭호로, 제주 고씨(高氏)가 이 작위를 독점했습니다.
성주의 기원 및 역사:
- 신라 시대: 탐라국(耽羅國)의 고후(高厚), 고청(高淸) 형제가 신라에 조공하자, 신라 왕이 고후에게 성주(星主), 고청에게 왕자(王子) 작호를 주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 고려 시대: 938년(태조 21년), 탐라국주 고자견(高自堅)이 태자 고말로(高末老)를 보내 고려에 입조하자, 고려 태조는 고말로에게 성주왕자 관작을 제수했습니다. 이때부터 '성주'라는 명칭이 탐라국을 상징하게 되었고, 고려 중기까지 성주가 정무를 관장했습니다.
- 고려 후기: 1153년(의종 7년), 탐라국이 지방 행정 제도상의 현(縣)으로 격하되면서, 성주는 정무에 대한 권한을 잃고 상징적인 존재로만 남았습니다.
- 조선 시대: 1402년(태종 2년), 성주 고봉례(高鳳禮)와 왕자 문충세(文忠世)가 성주, 왕자의 칭호가 분수에 넘친다며 개칭을 요청하여, 성주는 좌도지관(左都知管), 왕자는 우도지관(右都知管)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로써 탐라국의 성주 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성주의 역할과 의미:
- 탐라국의 통치자: 성주는 탐라국의 국왕 또는 임금에 해당하는 칭호였습니다.
- 이원적 통치 체제: 성주와 왕자가 함께 다스리는 이원적인 왕제(王制)를 가진 나라였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 지배층의 상징: 성주는 탐라의 지배층을 대표하는 칭호였으며, 제주 고씨가 세습했습니다.
성주청(星主廳):성주청은 탐라국의 성주가 머무르던 관저였습니다. 현재 성주청 터에는 제주 우체국이 있으며, 성주청 터를 알리는 비석이 있습니다.
성주 (탐라) | |
---|---|
탐라성주 정보 | |
관할 | 탐라 |
제정 | 983년 |
군주 | 고려 국왕 |
지위 | 폐지 |
폐지일 | 1402년 |
초대 성주 | 고말로 |
마지막 성주 | 고봉례 |
가문 소재지 | 미상 |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