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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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수산제(守山堤)는 삼한시대에 벼농사를 위해 축조된 관개용 저수지로, 김제 벽골제, 제천 의림지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저수지 중 하나였습니다.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에 위치했으며, 현재는 저수지 터와 수문 등이 남아있습니다.
역사:
- 삼한시대: 벼농사를 위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확한 축조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벼농사와 관련된 지명이 많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서력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 고려시대: 고려 말 김방경이 제방을 쌓고 관개하여 일본 정벌을 위한 군량미를 비축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 조선시대: 『세종실록』 지리지에 제방이 무너졌지만 고쳐 쌓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어 15세기 중엽에는 저수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467년(세조 13)에 체찰사 조석문이 제방을 다시 수축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점필재집』) 임진왜란 이후에는 황폐하여 이용하지 못했습니다.
-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수리 시설을 하면서 저수지는 논으로 변했고, 1928년까지 남아있던 황토 흙으로 된 제방도 없어졌습니다.
- 현대: 1986년 수문이 발견되었고, 1990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2019년에는 '수산제 역사공원'이 조성되어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었습니다.
구조 및 특징:
- 수산제는 치수(治水)와 관개(灌漑)를 겸한 독특한 형태의 수리 시설이었습니다.
- 제방은 낙동강 지류인 용진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쌓았으며, 수문은 배수를 위해 강바닥의 암반을 뚫어 만들었습니다.
- 발굴된 수문은 폭 1.5m, 높이 1.8m 가량이며, 나무로 만든 갑문은 소멸되어 정확한 구조는 알 수 없습니다.
현재:
- 수산제 터는 논으로 바뀌었지만, 수문 유구(遺構)가 일부 남아있습니다.
- 수산제 수문은 1990년 12월 20일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 2019년 완공된 수산제 역사공원에는 다양한 식물과 농업 체험 공간, 역사 홍보관 등이 있어 방문객들에게 휴식과 역사 교육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참고:
- 수산제와 관련된 지명으로 '댓섬\[竹島]', '자라목\[鼇山]' 등이 남아있습니다.
- 밀양시는 수산제 복원 사업을 추진하여 2019년 수산제 역사공원을 완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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