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미즈 히데히코
1. 개요
시미즈 히데히코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 및 지도자이다. 선수 시절에는 닛산 자동차 축구부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1972년 전국 고등학교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을 경험했다. 1989년부터 닛산 자동차(요코하마 F. 마리노스)의 코치와 감독을 역임했으며, 아비스파 후쿠오카, 교토 상가 FC, 베갈타 센다이 등 여러 팀의 감독을 맡았다. 특히 베갈타 센다이를 J1 리그로 승격시키는 데 기여했다. 은퇴 후에는 축구 해설가로 활동하며, NPO 법인 "H.S 스포츠 클럽" 대표를 맡아 주니어 세대 지도에도 힘쓰고 있다.
| 이름 | 시미즈 히데히코 |
|---|---|
| 원어 이름 | 清水 秀彦 |
| 로마자 표기 | Shimizu Hidehiko |
| 출생일 | 1954년 11월 4일 |
| 출생지 | 도쿄도 |
| 신장 | 177cm |
| 포지션 | 미드필더 |
| 유소년 클럽 | 사이타마 우라와 고등학교 (1970–1972) 호세이 대학 (1973–1976) |
|---|---|
| 프로 클럽 | 닛산 자동차 (1977–1988) |
| 통산 출장 | 144 |
| 통산 득점 | 21 |
| 국가대표 | (기록 없음) |
|---|
| 지도자 | 요코하마 마리노스 (1991–1994) 아비스파 후쿠오카 (1996) 교토 퍼플 상가 (1998–1999) 베갈타 센다이 (1999–2003) |
|---|
| 소속팀 | 닛산 자동차 |
|---|---|
| 준우승 | 일본 사커 리그 (1983, 1984) JSL컵 (1983, 1985, 1986) |
| 우승 | 천황배 (1983, 1985) |
-
요코하마 F. 마리노스의 축구 감독 -
해리 큐얼
해리 큐얼은 호주 국적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호주 국가대표팀에서 58경기 17골을 기록하고 OFC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리즈 유나이티드, 리버풀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요코하마 F. 마리노스 감독을 역임했다. -
요코하마 F. 마리노스의 축구 감독 -
오스발도 아르딜레스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인 오스발도 아르딜레스는 선수 시절 미드필더로 1978년 FIFA 월드컵 우승에 기여했고, 토트넘 홋스퍼 FC에서 활약하며 사랑받았으며, 은퇴 후에는 여러 클럽과 J리그 팀들을 지도했다. -
교토 상가 FC의 축구 감독 -
핌 베어벡
핌 베어벡은 네덜란드 출신 축구인으로 선수와 지도자로 활동했으며, 2002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로 2002년 FIFA 월드컵 4강 진출에 기여하고 2006년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으로 2007년 AFC 아시안컵 3위를 이끌었으며, 오스트레일리아, 모로코, 오만 대표팀 감독을 역임하다가 2019년 사망했다. -
교토 상가 FC의 축구 감독 -
와다 마사히로
와다 마사히로는 일본의 축구 선수 출신 지도자로, 감바 오사카와 빗셀 고베 등에서 선수로 활동하고 빗셀 고베, 촌부리 FC, 교토 상가 FC 등에서 감독을 역임했으며, 2024년부터 츠에겐 가나자와의 GM으로 활동하고 있다. -
아비스파 후쿠오카의 축구 감독 -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피에르 리트바르스키는 1960년생 독일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1. FC 쾰른에서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보내며 뛰어난 드리블과 프리킥 능력으로 1980년대 분데스리가 최고의 인기 선수 중 한 명이었고, 서독 국가대표로서 1990년 FIFA 월드컵 우승, 1982년 월드컵 도움왕 등 굵직한 족적을 남겼으며, 은퇴 후에는 여러 클럽에서 감독 및 코치로 활동하며 J리그 승격 및 A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발롱도르 7위(1982), 독일 올해의 골(1985) 수상 등 다수의 개인 수상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
아비스파 후쿠오카의 축구 감독 -
일리야 페트코비치
일리야 페트코비치는 유고슬라비아와 세르비아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OFK 베오그라드에서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보내고 유고슬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으로도 활약했으며, 지도자로서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축구 국가대표팀을 2006년 FIFA 월드컵에 진출시켰고 여러 국가의 클럽팀 감독을 역임하다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2. 선수 경력
시미즈 히데히코는 닛산 자동차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은퇴 후에는 감독과 해설자로 활동했다.
2.2. 닛산 자동차 (요코하마 F. 마리노스)
清水 秀彦일본어는 1977년 닛산 자동차 축구부에 입단했다. 1983년 센터 포워드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하여 활약했다. 냉정한 판단력과 높은 전술 안목을 바탕으로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공수 밸런스를 맞추고 팀의 약진에 기여했다. 1985년부터 코치 겸임. 1988년 현역 은퇴.
| 日本일본어 | 리그전 | JSL컵 | 천황배 | 기간 통산 | |||||||
|---|---|---|---|---|---|---|---|---|---|---|---|
| 1977 | JSL 2부 | ||||||||||
| 1978 | 9 | ||||||||||
| 1979 | JSL 1부 | 18 | 5 | 2 | 1 | ||||||
| 1980 | 18 | 2 | 1 | ||||||||
| 1981 | JSL 2부 | 4 | 2 | 1 | |||||||
| 1982 | JSL 1부 | 18 | 4 | ||||||||
| 1983 | 18 | 3 | 4 | 0 | 5 | 1 | |||||
| 1984 | 18 | ||||||||||
| 1985 | 22 | 2 | |||||||||
| 1986-87 | 22 | 1 | |||||||||
| 1987-88 | 10 | 0 | 1 | 0 | |||||||
| 1988-89 | 23 | 0 | 0 | 0 | 0 | ||||||
| 총 통산 | |||||||||||
3. 지도자 경력
시미즈 히데히코는 선수 은퇴 후 여러 클럽에서 지도자 경력을 쌓았다.
해임 후에도 미야기현 내에서 축구 교실을 운영하거나, 센다이컵 국제 유스 축구 대회에서 도호쿠 선발팀 감독을 맡는 등 센다이, 미야기, 도호쿠 지역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04년부터는 후지 TV 해설자로 복귀했다. 해설 외에도 NPO 법인 "H.S 스포츠 클럽" 대표를 맡아 자신의 축구 이론을 바탕으로 주니어 세대 지도에 힘쓰고 있다.
3.1.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은퇴 후 시미즈는 1989년부터 닛산 자동차(이후 요코하마 마리노스)의 헤드 코치로 활동했다. 1991년 감독으로 승진하여 1994년까지 팀을 이끌었다. 감독 시절 천황배 2연패(1991, 1992)를 달성했다.
3.4. 베갈타 센다이
1999년 8월 J2 리그 클럽 베갈타 센다이 감독으로 취임했다. "당신과 J1"을 팀 슬로건으로 내걸고 J1 리그를 목표로 팀을 만들어갔다. 2001년 FW 마르코스 파울루 소우자 리베이로와 MF 이와모토 테루오를 영입, 전 축구 일본 대표 선수와 기존 전력의 융합을 꾀해 승점을 쌓아 센다이를 도호쿠 최초의 J1으로 승격시켰다.
2002년 개막 5연승을 거두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고, 영입한 FW 야마시타 요시키가 J1 득점 랭킹 2위로 일본 대표 후보에 선출되는 등 좋은 소식이 있었지만, 시즌 후반에는 부진하여 연간 13위에 그쳤다. 2003년 초반 호조를 보였으나 곧 부진에 빠졌고, 개막부터 좋지 않은 성적이 이어졌다. 구단은 시미즈 감독 체제를 유지하며 시즌을 끝까지 치르겠다고 발표했지만, 시즌 후반 9월 성적 부진을 이유로 해임되었다.
시미즈 히데히코는 베갈타 센다이의 J1 승격과 인기 기반을 다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일반적으로 감독이 시즌 도중 해임되는 경우에도 계약 기간 내 급여가 지급되지만, 시미즈는 센다이 감독에서 해임되었을 때 팀 방침에 대한 불만으로 급여 수령을 거부했다.
4. 은퇴 이후
1995년과 1997년 후지 TV 축구 해설자로 활동했다. 특히 1998 FIFA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이란전에서 오카노 마사유키의 골든 골 당시 "やったー!!"라고 절규한 장면은 현재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2004년부터 후지 TV 해설자로 복귀하여 『감동 팩토리·스포르토! WEEKEND SPECIAL』의 레귤러 해설자를 맡았다. NPO 법인 "H.S 스포츠 클럽" 대표를 맡아 주니어 세대 지도에 힘쓰고 있으며, 미야기현 내에서 축구 스쿨을 주재하고 센다이컵 국제 유스 축구 대회에서 도호쿠 선발팀 감독을 맡는 등 지역 사회와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