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스몬도 곤차가
1. 개요
시지스몬도 곤차가는 만토바의 페데리코 1세의 아들로, 형제 프란체스코 2세 곤자가의 군대를 지휘하다가 성직자가 되었다. 그는 교황청 원장을 거쳐 1505년 추기경으로 임명되었으며, 1511년부터 1521년까지 만토바의 교황청 행정관을 역임했다. 1511년과 1512년에는 볼로냐의 교황 사절, 안코나 변경백령과 만토바의 사절을 지냈으며, 1513년, 1521-22년, 1523년 교황 선거에 참여했다. 1524년 아베르사 주교의 행정관으로 경력을 마쳤으며, 프란체스코 곤자가와 조반니 빈첸초 곤자가의 증조부이다.
| 직함 | 추기경 |
|---|---|
| 존칭 | 각하 |
| 이름 | 시지스몬도 곤차가 |
| 로마자 표기 | Sigismondo Gonzaga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출생 | 1469년 |
|---|---|
| 출생지 | 만토바 |
| 사망 | 1525년 10월 3일 |
| 사망지 | 만토바 |
| 국적 | 이탈리아 |
| 종교 | 로마 가톨릭교회 |
| 소속 교회 | 로마 가톨릭교회 |
|---|---|
| 기타 직책 | 교황청 공증인 교황 특사 아베르사 교구 관리자 |
| 서품 | 알 수 없음 |
| 주교 서임 | 알 수 없음 |
| 추기경 서임일 | 1505년 12월 1일 |
| 추기경 서임자 | 교황 율리오 2세 |
-
1525년 사망 -
토마스 뮌처
토마스 뮌처는 독일의 급진적인 종교 개혁가이자 1525년 독일 농민 전쟁의 주요 지도자로, 종말론적이고 혁명적인 사회 변혁을 주장하며 농민들을 규합했으나 프랑켄하우젠 전투에서 패배 후 처형되었고, 그의 사상은 초기 공산주의 사상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
1525년 사망 -
무산군 (왕족)
무산군은 조선 성종의 서자이자 숙원 김씨 소생의 12남으로, 연산군 시절 안동 춘양으로 피신했으며 문필과 문장에 능했고 군부인 평산 신씨와의 사이에서 6남 2녀를 두었다. -
1469년 출생 -
마누엘 1세 (포르투갈)
마누엘 1세는 1495년부터 1521년까지 포르투갈을 통치한 왕으로, 중앙 집권화와 해상 무역로 개척을 통해 포르투갈의 번영을 이끌었으며, 마누엘 양식을 발전시키고 유대인 정책을 펼쳤다. -
1469년 출생 -
토마스 카예탄
토마스 카예탄은 이탈리아 출신의 도미니코회 수도사이자 신학자, 철학자, 추기경으로,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 연구에 매진하여 토마스주의 학파의 주요 인물로 활동했으며, 교황권 옹호와 종교 개혁 시기 마르틴 루터 가르침 조사 등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고, 철학, 신학 외에 경제 분야에서도 유비 개념 옹호와 무역의 도덕성에 대한 고찰로 알려져 있다. -
이탈리아의 추기경 -
에르콜레 콘살비
에르콜레 콘살비는 이탈리아 출신의 추기경이자 국무성성 장관으로, 나폴레옹과의 정교 협약 체결 및 빈 회의 참여를 통해 교황령 영토 회복에 기여했으며, 내정 개혁을 추진하다 실각하고 사망했다. -
이탈리아의 추기경 -
쥘 마자랭
쥘 마자랭은 이탈리아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30년 전쟁 종식과 프랑스-스페인 전쟁 승리에 기여하고 프롱드의 난을 진압하여 루이 14세의 절대왕정 기반을 다진 추기경이자 정치가이다.
2. 생애
시지스몬도 곤차가는 만토바의 페데리코 1세의 아들이자, 프란체스코 2세의 동생이다. 성직자가 되기 전에는 형의 군대를 지휘했으며, 이후 교황청 원장을 지냈다. 1505년 교황 율리우스 2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임명되었고, 1511년부터 1521년까지 만토바의 교황청 행정관을 역임한 후 조카 에르콜레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1511년과 1512년에는 볼로냐의 교황 사절, 안코나 변경백령과 만토바의 사절을 역임했다. 1513년 교황 선거, 1521-22년 교황 선거, 1523년 교황 선거 등 여러 교황 선거에 참여했으며, 1524년 아베르사 주교 행정관을 끝으로 생을 마쳤다. 그는 프란체스코 곤자가 (1561)와 조반니 빈첸초 곤자가 (1578)의 증조부였다.
2.1. 초기 생애
만토바의 페데리코 1세의 아들인 시지스몬도는 성직자의 길을 걷기 전, 그의 형인 프란체스코 2세의 군대를 지휘하기도 했다. 이후 교황청 원장이 되었다.
2.2. 추기경 임명과 교황청 활동
교황 율리우스 2세는 1505년 12월 1일 추기경 회의에서 시지스몬도를 추기경으로 임명했다. 그는 1511년부터 1521년까지 만토바의 교황청 행정관으로 임명되었으며, 이후 그의 조카 에르콜레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었다. 그는 분열적인 추기경들에게 많은 동정을 받았지만 율리우스 2세에게는 충성을 다했다.
1511년과 1512년에 그는 볼로냐의 교황 사절이 되었고, 안코나 변경백령과 만토바의 사절이 되었다. 그는 1513년 교황 선거, 1521-22년 교황 선거, 1523년 교황 선거에 참여하여 각각 교황 레오 10세, 교황 하드리아노 6세, 교황 클레멘스 7세를 선출했다. 그는 1524년 초 아베르사 주교의 행정관으로 경력을 마쳤다.
2.3. 교황 선거 참여
시지스몬도는 여러 차례 교황 선거(콘클라베)에 참여했다. 1513년 교황 선거에서는 교황 레오 10세 선출에, 1521-22년 교황 선거에서는 교황 하드리아노 6세 선출에, 1523년 교황 선거에서는 교황 클레멘스 7세 선출에 참여했다.
2.4. 말년
시지스몬도는 1524년 초 아베르사 주교의 행정관을 역임하며 생을 마감했다. 그는 프란체스코 곤자가 (1561)와 조반니 빈첸초 곤자가 (1578)의 증조부였다. 그의 가문 출신 다른 추기경으로는 프란체스코 곤자가 (1461), 피로 곤자가 (1527), 스키피오네 곤자가 (1587), 페르디난도 곤자가 (1607), 빈첸초 곤자가 (1615)가 있다.
3. 가계
Sigismondo Gonzaga이탈리아어는 곤차가 가문 출신의 추기경이었다. 그의 가문에서는 프란체스코 곤차가 (1461년), 피로 곤자가 (1527년), 스키피오네 곤차가 (1587년), 페르디난도 곤차가 (1607년), 빈첸초 곤차가 (1615년) 등 여러 추기경이 배출되었다. 그는 프란체스코 곤차가 (1561년)와 조반니 빈첸초 곤자가 (1578년)의 증조부였다.
4. 평가
시지스몬도 곤차가는 16세기 초 교황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1513년 교황 선거에서 교황 레오 10세를 선출했고, 1521-22년 교황 선거에서 교황 하드리아노 6세를 선출했으며, 1523년 교황 선거에서 교황 클레멘스 7세를 선출하는 등 여러 교황 선거에 참여하여 영향력을 행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