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사이부
1. 개요
알리 사이부는 니제르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1987년부터 1993년까지 니제르의 대통령을 역임했다. 자르마족 출신으로, 프랑스군에서 복무한 후 니제르 육군에 입대하여 1974년 쿠데타에 참여, 군 참모총장으로 임명되었다. 쿤체 정권에서 2인자로 활동하다가, 쿤체 사망 후 최고 군사 평의회에 의해 대통령으로 지명되었다. 1989년 새 헌법을 승인하고 사회발전국민운동(MNSD)을 창당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민주화 요구에 직면하여 1993년 마하만 우스만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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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제르의 군인 -
압두라하마네 치아니
압두라하마네 치아니는 2023년 니제르 쿠데타를 주도하여 조국수호국가위원회 의장이 된 니제르 군인으로, 대통령 경호대 사령관을 역임했으며 쿠데타 이후 친러시아 행보를 보이고 있다. -
틸라베리주 출신 -
세이니 쿤체
니제르의 군인 출신 정치인인 세이니 쿤체는 군 복무를 거쳐 군부 핵심 인물로 성장, 1974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경제 회복 정책을 추진했으나 1987년 사망했다. -
틸라베리주 출신 -
압두라하마네 치아니
압두라하마네 치아니는 2023년 니제르 쿠데타를 주도하여 조국수호국가위원회 의장이 된 니제르 군인으로, 대통령 경호대 사령관을 역임했으며 쿠데타 이후 친러시아 행보를 보이고 있다. -
니제르의 대통령 -
하마니 디오리
니제르의 초대 대통령 하마니 디오리는 니제르 진보당을 유일 합법 정당으로 만들고 프랑스와의 긴밀한 관계를 추구했으나, 정치 부패와 기근 대처 실패로 1974년 쿠데타로 축출되었다. -
니제르의 대통령 -
마하만 우스만
마하만 우스만은 니제르의 대통령으로, 1993년 당선되었으나 쿠데타로 축출되었고, 이후 국회의장과 서아프리카 기구 의장을 역임했으며, 2020-2021년 선거에서 결선 투표까지 진출했다.
2. 초기 생애 및 군 경력
알리 사이부는 자르마족의 일원으로, 오울람 아롱디스망에 있는 딩가지반다 마을에서 태어났다. 비록 쿤체의 고향 마을 출신이지만, 사이부는 그의 사촌이 아니다. 그는 일찍부터 군 경력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54년부터 세네갈의 생루이 예비 학교를 다녔으며, 이후 세네갈 제1티라유르연대에 합류했다. 1960년 카메룬에서 전투에 참전했고, 프랑스 제5해외국간연대 소속으로 복무하던 중 부상을 입었다.
1960년 니제르가 독립하면서 사이부는 1961년 8월 중사 계급으로 새로 창설된 니제르 육군으로 전근되었다. 이후 장교 학교를 졸업하고 1969년에 응귀그미 부대 지휘관이 되었다. 1973년 아가데즈에 있는 새로운 부대로 옮긴 후 대위로 진급했다. 사이부는 1974년 4월 쿠데타에서 쿤체와 운명을 같이 했고, 아가데즈에서 니아메로 군대를 이끌고 왔다. 그 공로로 소령으로 진급했고, 농촌 경제 환경부 장관으로 임명되었으며, 1974년 11월 20일에는 참모총장이 되었다.
그러나 쿤체는 사이부를 의심했다. 1975년 6월, 쿤체는 사이부를 내각에서 해임하고 군 지휘권 포기를 요구했다. 사이부는 군에서 완전히 은퇴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대응했고, 이는 쿤체의 의심을 누그러뜨린 것으로 보인다. 사이부는 1987년 11월 10일 쿤체가 사망할 때까지 충성을 다했다.
3. 쿤체 정권의 2인자 (1974년 ~ 1987년)
자르마족 출신인 알리 사이부는 오울람 아롱디스망의 딩가지반다 마을에서 태어났다. 세이네 쿤체와 같은 마을 출신이지만, 사이부는 쿤체의 사촌은 아니다. 그는 일찍부터 군인의 길을 걸었다. 1954년부터 세네갈 생루이에 있는 예비 학교를 다녔고, 이후 세네갈 제1티라유르연대에 합류했다. 1960년 카메룬에서 전투에 참전했고, 프랑스 제5해외국간연대 소속으로 복무하던 중 부상을 입었다.
1960년 니제르가 독립하면서 사이부는 1961년 8월 중사 계급으로 새로 창설된 니제르 육군으로 전근했다. 장교 학교를 졸업한 후 1969년에 응귀그미 부대 지휘관이 되었다. 1973년 아가데즈의 새로운 부대로 이동한 후 대위로 진급했다. 1974년 4월, 사이부는 쿠데타에 가담하여 쿤체를 지원했고, 아가데즈에서 니아메로 군대를 이끌었다. 그 공로로 소령으로 진급했으며, 농촌 경제 환경부 장관으로 임명되었고, 1974년 11월 20일에는 참모총장이 되었다.
그러나 쿤체는 사이부를 의심했다. 1975년 6월, 쿤체는 사이부를 내각에서 해임하고 군 지휘권을 포기하도록 요구했다. 사이부는 이에 맞서 군에서 완전히 은퇴하겠다고 요구했고, 이는 쿤체의 의심을 누그러뜨리는 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사이부는 1987년 11월 10일 쿤체가 사망할 때까지 그에게 충성을 다했다.
4. 민주화 이행과 퇴임 (1990년 ~ 1993년)
1990년 초, 학생들의 불안과 치친타바라덴에 대한 투아레그인의 습격으로 인해 1991년 전국 회의가 열려 일당 통치가 해체되었고, 이 과정에서 사이부는 대체로 비효율적인 모습을 보였다. 1991년 3월 MNSD 당대회에서 사이부는 군대의 지원에 힘입어 당 지도자 지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해 후반 국민회의는 사이부의 대통령 선거 출마를 금지했고, 1991년 11월 또 다른 MNSD 회의에서 마마두 탄자에게 당 대표 자리를 넘겨주었다. 1993년 3월 마하만 우스만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사이부는 4월 16일 우스만에게 대통령직을 넘겨주었는데, 이는 현직 대통령이 평화적으로 야당에 권력을 이양한 첫 사례였다.
5. 퇴임 이후
1990년 초, 학생들의 불안과 치친타바라덴에 대한 투아레그인 습격으로 1991년 전국 회의가 열려 일당 통치가 해체되었으나, 사이부는 대체로 비효율적이었다. 1991년 3월 MNSD 당대회에서 사이부는 군대의 지원에 힘입어 당 지도자 지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해 후반 국민회의에서 사이부의 대통령 선거 출마를 금지했고, 1991년 11월 MNSD 회의에서 마마두 탄자가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1993년 3월 마하만 우스만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사이부는 4월 16일 대통령직을 우스만에게 이양했는데, 이는 현직 대통령이 평화적으로 야당에 권력을 넘긴 첫 사례였다. 알리 사이부는 2011년 10월 31일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