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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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양산숙(梁山璹, 1561년 ~ 1593년)은 조선시대의 의병장이자 문신입니다.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회원(會元), 시호는 충민(忠愍)입니다.
생애 및 가계:
- 기묘명현 양팽손의 손자이며, 대사성 양응정의 아들입니다.
- 1561년(명종 16년) 나주(羅州) 박산리(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에서 태어났습니다.
-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천문, 지리, 병학에도 능통했습니다.
- 아버지의 유훈에 따라 과거를 통한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일본의 침략에 대비해 의병을 준비했습니다.
활동:
- 1589년(선조 22년) 조헌, 김광운 등과 함께 당시 집정자들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양산룡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 김천일을 맹주로 추대하여 병사와 군량을 모으고 격문을 돌려 의병을 촉구했습니다.
- 의주의 행재소로 가서 선조에게 호남, 영남의 소식과 의병의 활동 상황을 보고하고 공조좌랑(工曹佐郞)에 제수되었습니다.
- 1593년(선조 26년) 왜군이 영남으로 퇴각하자 김천일 등과 함께 진주성에 들어갔으나, 진주성이 함락되자 김천일 등과 함께 남강에 투신하여 순절하였습니다.
사후:
- 경상남도 진주시의 창렬사(彰烈祠)와 전라남도 나주시의 정렬사(旌烈祠)에 배향되었습니다.
-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었습니다.
- 1631년(인조 9년) 좌승지(左承旨)로 추증되었고 정려를 받았습니다.
- 묘소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는 '양송천묘역'(광주광역시 기념물)에 있습니다.
- 정유재란 때 죽은 양씨 일가를 기린 양씨삼강문(梁氏三綱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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