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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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윤적(魚允迪, 1868년 8월 25일 ~ 1935년 2월 3일)은 일제강점기의 관료이자 기업가이며, 국문학자입니다. 자는 치덕(穉德), 호는 혜재(惠齋)입니다.
어윤적은 1894년 탁지아문 주사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여 일본 유학 후 번역관으로 주요 외교 문서를 번역하고 통역했습니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1907년에는 학부 편집국장이 되어 국문연구소 개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국문연구소 위원으로서 훈민정음 제자 원리를 연구하고, 초성을 종성으로도 써야 한다는 주시경의 주장에 동의하는 등 국문학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1910년 국권 강탈 이후에는 중추원 부참의, 조선사편찬위원회 위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강사 등을 역임했습니다. 또한 친일 단체인 대동사문회(大東斯文會) 회장을 맡아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1927년에는 경기도참여관을 지냈습니다.
어윤적은 역사학에도 관심을 가져 《동사연표(東史年表)》, 《조선승무유현연표(朝鮮陞廡儒賢年表)》 등의 저술을 남겼습니다.
어윤적은 국문 연구와 더불어 맞춤법 제정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1911년 회의에서 "나는 옥편대로 이것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텬이라고 써도 경성지방 사람들은 이것을 천이라고 발음하고 평안도 사람들은 텬이라고 바르게 발음할 것입니다. 만약 이것을 천이라고 쓸 때는 평안도 사람들은 天인지 千인지 분별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고래로 텬이라고 쓰도록 정해졌던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언어의 표기와 발음의 통일성을 강조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현대 맞춤법의 중요한 원리에 대한 설명과 일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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