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셀저
1. 개요
에드워드 셀저는 워너 브라더스에서 경력을 시작하여 애니메이션 제작부 설립을 담당했으며, 후에 스튜디오 책임자로서 루니 툰 시리즈를 제작했다. 그는 척 존스와의 갈등, 프리즈 프렐렝과의 의견 충돌을 겪었지만, "트위티 파이"와 "향수 때문에"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타즈메이니아 데블 캐릭터 제작을 허용하고, 여성 아티스트를 적극적으로 영입하는 등 성 평등한 제작 환경을 조성했다. 1958년 은퇴 후, 1970년 사망했으며, 그가 제작한 수상작 애니메이션의 아카데미상 트로피는 제작진에게 나누어졌다.
| 이름 | 에드워드 셀저 |
|---|---|
| 원어 이름 | Edward Selzer |
| 다른 이름 | Eddie Selzer Isidore Selzer |
| 출생일 | 1893년 1월 12일 |
| 출생지 | 할렘, 뉴욕 |
| 사망일 | 1970년 2월 22일 |
| 사망지 |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
| 국적 | 미국 |
| 배우자 | 로라 셀저 |
| 자녀 | 필리스 셀저 로버트 셀저 |
| 직업 | 영화 제작자 영화 홍보 담당 |
| 고용주 | 워너 브라더스 픽처스 (1930–1944) 워너 브라더스 카툰스 (1944–1958) |
| 활동 기간 | 1914–1958 |
| 활동 분야 | 영화 제작 홍보 |
|---|
| 배우자와의 관계 | 1927년부터 1970년까지 결혼 생활을 유지했으며, 배우자도 같이 사망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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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영화 프로듀서 -
라나 우드
라나 우드는 미국의 배우이자 작가이며, 1956년 영화 《수색자》로 데뷔하여 1971년 영화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에서 본드걸로 출연했고, 자서전을 집필했다. -
미국의 영화 프로듀서 -
스티븐 므누신
스티븐 므누신은 골드만삭스 파트너, 헤지펀드 운영, 영화 제작 등 다양한 경력을 쌓은 미국 금융인이자, 트럼프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역임하며 감세 정책을 추진했지만, 원웨스트 은행 인수 과정에서의 논란과 정부 항공기 부적절 사용 논란 등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
1893년 출생 -
정인보
정인보는 일제강점기 및 한국전쟁 시기에 활동한 사학자, 시조 작가, 교육자로, 민족주의 역사관과 ‘얼’ 사상을 형성하고, 연세대학교 강사, 동아일보 논설위원, 국학대학교 학장, 감찰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조선사 연구』 등의 저서를 남겼으나 한국전쟁 중 납북되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
1893년 출생 -
장택상
장택상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임시정부 활동, 수도경찰청장, 초대 외무부 장관, 국무총리,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이승만 지지 후 야당 정치인으로 반독재 투쟁을 전개했다. -
독일계 미국인 -
리처드 닉슨
리처드 닉슨은 제37대 미국 대통령으로, 외교 정책, 워터게이트 사건, 그리고 사임이라는 상반된 유산을 남겼다. -
독일계 미국인 -
앤드루 존슨
가난한 환경에서 독학으로 정치 경력을 쌓아 대통령이 된 앤드루 존슨은 남북전쟁 이후 온건한 재건 정책으로 의회와 갈등을 겪고 탄핵 소추를 받았으나 부결되었으며, 이후 상원의원으로 활동한 논쟁적인 인물이다.
2. 워너 브라더스에서의 경력
잭 L. 워너는 1944년 레온 슐레징거에게서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를 인수받은 후 에드워드 셀저를 스튜디오 책임자로 임명했다. 셀저의 첫 작품은 "골디락스와 재즈 곰들"이었다.
척 존스는 자서전에서 셀저를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간섭하는 인물로 묘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훗날 셀저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였다고 회고하며, 둘은 상호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고 밝혔다.
셀저는 "루니 툰" 시리즈 프로듀서라는 직책을 자랑스러워했지만, 창작 과정에서 직원들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프리즈 프렐렝은 셀저와의 의견 충돌로 사임 직전까지 갔으나, 셀저의 사과로 갈등을 해결하고, "트위티 파이"로 워너 브라더스 최초의 애니메이션 단편 영화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1948년 3월 20일 제2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셜리 템플에게서 "트위티 파이"의 단편 영화(만화) 부문 상을 받으면서 셀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I am very happy to receive this award. But I receive it for the entire Warner Bros. cartoon studio. It may interest you to know that 85 percent of our staff had a direct hand in the making of "Tweetie Pie." However, the man to whom I should take off my hat, who should be up here receiving this instead of me, is the director of this picture, [[프리즈 프렐렝]], who is sitting out in the audience. I cannot give him too much credit. Thank you.영어
셀저는 "향수 때문에"라는 페페 르 퓨 만화로 1949년 애니메이션 단편 영화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로버트 맥킴슨의 타즈메이니아 데블 캐릭터 제작을 금지했으나, 관객들의 인기에 힘입어 다시 허용했다.
프리즈 프렐렝은 "낙타는 재미없다"는 셀저의 명령에 반발하여 "사하라 헤어"를 감독했다. 척 존스와 마이클 말테세는 셀저의 "투우에는 재미있는 것이 없다"는 선언에 대한 대응으로 "벅스를 위한 폭력"을 제작했다.
셀저는 여성 아티스트를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창작 과정에 참여시키는 등, 당시로서는 드물게 성 평등한 제작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했다.
2.1. 초기 경력
1930년, 루이스 워너는 셀저를 설득하여 워너 브라더스에 합류하여 로버트 리플리의 "믿거나 말거나!(Believe it or Not!)" 시리즈 작업과 애니메이션 제작부 설립을 맡도록 했다. 대공황으로 인해 그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또한 "믿거나 말거나!"와 함께 리플리와 세계 일주 여행을 했다. 1933년 말, 그는 워너의 홍보 이사로 임명되었고, 1937년부터 1944년까지 예고편 및 제목 부서의 책임자를 역임했다.
2.2. 워너 브라더스 카툰
1944년, 레온 슐레징거에게서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를 인수받은 후, 잭 L. 워너는 에드워드 셀저를 스튜디오 책임자로 임명했다. 셀저의 첫 작품은 "골디락스와 재즈 곰들"이었다.
척 존스의 자서전에는 셀저가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간섭하는 인물로 묘사되기도 했다. 하지만 척 존스는 훗날 셀저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였다고 회고하며, 둘은 상호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셀저는 "루니 툰" 시리즈 프로듀서라는 직책을 자랑스러워했지만, 창작 과정에서 직원들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프리즈 프렐렝은 셀저와의 의견 충돌로 사임 직전까지 갔으나, 셀저의 사과로 갈등을 해결하고, "트위티 파이"로 워너 브라더스 최초의 애니메이션 단편 영화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1948년 3월 20일 제2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셜리 템플로부터 "트위티 파이"의 단편 영화(만화) 부문 상을 받으면서 셀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I am very happy to receive this award. But I receive it for the entire Warner Bros. cartoon studio. It may interest you to know that 85 percent of our staff had a direct hand in the making of "Tweetie Pie." However, the man to whom I should take off my hat, who should be up here receiving this instead of me, is the director of this picture, [[프리즈 프렐렝]], who is sitting out in the audience. I cannot give him too much credit. Thank you.영어
셀저는 "향수 때문에"라는 페페 르 퓨 만화로 1949년 애니메이션 단편 영화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로버트 맥킴슨의 타즈메이니아 데블 캐릭터 제작을 금지했으나, 관객들의 인기에 힘입어 다시 허용했다.
"낙타는 재미없다"는 셀저의 명령에 반발하여, 프리즈 프렐렝은 "사하라 헤어"를 감독했다. 척 존스와 마이클 말테세는 셀저의 "투우에는 재미있는 것이 없다"는 선언에 대한 대응으로 "벅스를 위한 폭력"을 제작했다.
셀저는 여성 아티스트를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창작 과정에 참여시키는 등, 당시로서는 드물게 성 평등한 제작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했다. 이는 6.25 전쟁 이후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던 한국 사회 분위기와도 일맥상통한다.
1958년 은퇴 후, 존 버튼이 워너 브라더스 카툰의 책임자가 되었다.
3. 주요 작품
원 프로기 이브닝
4. 수상
| 수상 연도 | 시상식 | 수상 부문 |
|---|---|---|
| 1948년 | 제20회 아카데미 시상식 |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상 |
| 1950년 | 제22회 아카데미 시상식 |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상 |
| 1956년 | 제28회 아카데미 시상식 |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