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르트 엘로란타
1. 개요
에베르트 엘로란타는 1879년 핀란드의 사타쿤타 지역에서 태어난 핀란드의 정치인이다. 핀란드 사회민주당에서 활동하며 핀란드 의회 의원을 지냈으며, 1918년 핀란드 내전 당시 적색 핀란드의 정부 기구인 핀란드 인민 대표단의 일원으로서 농업 대표를 맡았다. 내전 패배 후 소련으로 망명하여 핀란드 공산당에 합류, 러시아 내전에 참전했으며, 이후 소련 시민권을 얻어 레닌그라드에서 목수로 일했다. 1936년 소련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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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프란스 에베르트 투오미넨 |
|---|---|
| 출생일 | 1879년 10월 10일 |
| 출생지 | 하랴발타, 핀란드 대공국 |
| 사망 | 1936년 (56–57세) |
| 사망 장소 | 소비에트 연방 |
| 국적 | 핀란드 |
| 직업 | 정치인 |
| 활동 기간 | 알 수 없음 |
| 알려진 업적 | 의회의원, 적위군 총사령관 |
| 소속 정당 | 핀란드 사회민주당 → 핀란드 공산당 |
|---|---|
| 핀란드 인민 대표단 직책 | 농무대표 |
| 임기 | 1918년 1월 - 1918년 4월 |
| 전임 | (신설) |
| 후임 | (폐지) |
| 핀란드 의회 의원 | 의회의원 |
| 임기2 | 1908년 8월 1일-1918년 9월 25일 |
| 배우자 | 알 수 없음 |
|---|---|
| 자녀 | 알 수 없음 |
| 서명 | 알 수 없음 |
|---|---|
| 관련 웹사이트 | 알 수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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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에서 러시아로 이민간 사람 -
닐스 로베르트 아브 우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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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무신론자 -
오토 빌레 쿠시넨
오토 빌레 쿠시넨은 핀란드 사회민주당 지도자 출신으로 핀란드 내전 후 소련으로 망명, 코민테른에서 활동하며 겨울 전쟁 당시 소련 괴뢰 정권인 핀란드 민주 공화국의 수장을 지낸 소련 정치인이자 공산주의 이론가이다. -
핀란드의 무신론자 -
리누스 토르발스
리누스 토르발스는 1969년 핀란드에서 태어난 컴퓨터 과학자이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이며, 오픈 소스 운영 체제인 리눅스 커널을 개발하여 핵심 개발자로 활동하고, Git 버전 관리 시스템 개발에도 참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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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유호 스톨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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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 파시부오리
마티 파시부오리는 핀란드의 정치인으로, 사회민주당 소속으로 의회의원을 연임하고 노동조합 운동에 참여했으며 사회민주당 당주석과 무역산업부원로, 사회장관을 역임했다.
2. 생애
에베르트 엘로란타는 사타쿤타 지역의 가난한 소작농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농장 노동, 건설 노동 등 다양한 일을 했다. 사회민주당에 가입하여 정치 활동을 시작했고, 핀란드 내전 때는 적색 핀란드의 주요 인물로 활동하며 짧은 기간 적위대 총사령관을 맡기도 했다. 내전 패배 후 소련으로 망명하여 핀란드 공산당에 합류, 러시아 내전에 참전했다. 이후 사서, 투사적 무신론자 동맹 연사 등으로 활동하다 1936년경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2.1. 초기 생애 (1879-1908)
프란스 에베르트 엘로란타는 사타쿤타 지역의 가난한 소작농 요한 에를란 에를란손(1852년 출생)과 에바 크리스티나 프란스도터(1854년 출생)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여러 곳에서 살다가 1894년 핀란드어권의 미얘매키 (핀란드 남서부) 지역에 정착했다. 엘로란타는 어릴 때부터 일을 시작했고, 단 1년만 학교에 다녔다. 그는 농장 노동자, 건설 노동자, 석공, 벌목꾼으로 일했다. 엘로란타는 카르잘라에 자신의 경작지를 소유했고, 그곳에서 지역 노동자 협회와 사회민주당에 가입했다.
2.2. 핀란드 내전과 적핀란드 (1918)
핀란드 내전이 1918년 1월 발발하자, 엘로란타는 사회민주당 서기였다. 그는 적색 핀란드의 정부 기구인 핀란드 인민 대표단 구성원으로 선출되어 "농업 대표"가 되었다. 3월 20일, 에로 하팔라이넨이 적위대 총사령관 직에서 해임되었고, 엘로란타, 아돌프 타이미, 에이노 라흐야가 그 자리를 대신하여 2주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적위대 총사령관 직책을 수행했다. 탐페레 전투에서 패배한 후, 적색 정부와 적위대 참모는 수도 헬싱키에서 핀란드 동부 도시 비보르크로 도주했다. 이후 삼두 체제는 독재 권한을 부여받은 쿨레르보 만네르로 교체되었다.
2.3. 소련 망명과 사망 (1918-1936?)
비보르크 전투 이후 대부분의 주요 적군들이 소련으로 도망갔고, 엘로란타는 망명한 핀란드 공산당에 합류했다. 그는 다른 많은 핀란드 적군들처럼 페트로그라드 적군 장교 학교에 입학하여 러시아 내전에 참전했다. 1921년부터 1922년까지 페트로자보츠크에서 사서로 일했다. 이후 투사적 무신론자 동맹의 연사로 전국을 여행했으며, 1930년대에는 레닌그라드에서 목수로 일했다. 1929년 소련 시민권을 취득했다. 공식적인 소련 자료에 따르면 1936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의 마지막 몇 년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아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는 1938년에 발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