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사와라 나가마사
1. 개요
오가사와라 나가마사는 다나구라번 2대 번주 오가사와라 나가타카의 여섯째 아들로, 형들의 요절로 세자가 되어 가독을 이었다. 다나구라에서 가라쓰로 이봉되었으나, 다나구라 시대의 빚과 이봉 비용으로 재정난을 겪었다. 재정 재건을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고, 28세에 사망했다. 장남 나가유키가 어렸기에 사카이 타다노리의 여섯째 아들인 나가야스를 양자로 삼았다.
| 씨명 | 오가사와라 씨 |
|---|---|
| 이름 | 오가사와라 나가마사 |
| 시대 | 에도 시대 후기 |
| 출생 | 간세이 8년 11월 3일 (1796년12월 1일) |
| 사망 | 분세이 6년 9월 29일 (1823년11월 1일) |
| 어릴 적 이름 | 아쓰사부로, 쓰하치로 |
| 다른 이름 | 나가마사 |
| 시호 | 없음 |
| 계명 | 레이겐인 |
| 묘소 | 도쿄도분쿄구혼코마고메의 류코지 |
| 관위 | 종5위 하・주덴노카미 |
| 막부 | 에도 막부 |
| 주군 | 도쿠가와 이에나리 |
| 번 | 무쓰다나구라 번 번주, 히젠가라쓰 번 번주 |
| 씨족 | 오가사와라 씨 |
| 아버지 | 오가사와라 나가타카 |
| 형제자매 | 센쇼마루, 나가하루, 기하치로, 가쿠노신, 아쓰사부로, 나가마사, 나가쓰네, 호조 우지타카 정실, 오가사와라 나가야스 정실 |
| 배우자 | 미즈노 다다미쓰의 딸 렌、마쓰쿠라 씨 |
| 자녀 | 나가유키, 모리 다다노리 계실 양자: 나가야스 |
| 전임자: 오가사와라 나가타카 후임자: 이노우에 마사모토 직책: 다나구라 번 번주 (오가사와라 가문) 대수: 3 임기: 1812년 ~ 1817년 | |
| 전임자: 미즈노 다다쿠니 후임자: 오가사와라 나가야스 직책: 가라쓰 번 번주 (오가사와라 가문) 대수: 1 임기: 1817년 ~ 182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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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3년 사망 -
데이비드 리카도
데이비드 리카도는 19세기 초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정치인으로, 비교우위론, 지대론, 노동가치설에 기반한 이윤 이론을 제시하여 현대 경제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자유무역을 옹호했다. -
1823년 사망 -
에드먼드 카트라이트
에드먼드 카트라이트는 영국의 성직자이자 발명가로서, 동력 직기를 발명하여 산업 혁명에 기여했으며, 양털 빗는 기계, 로프 제조기, 알코올 기관 등 다양한 기계를 발명했고, 시인으로도 활동했다. -
가라쓰번주 -
데라자와 히로타카
데라자와 히로타카는 임진왜란에 참여하고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공을 세워 아마쿠사 제도를 영지로 받았으며 가라쓰 번의 다이묘가 되었으나, 사후 아마쿠사에서 난이 발발하여 가문이 단절되었다. -
가라쓰번주 -
미즈노 다다쿠니
미즈노 다다쿠니는 1794년에 태어나 1851년에 사망한 인물로, 가라쓰 번 번주를 거쳐 막부의 중신으로 덴포 개혁을 추진했으나 실패하여 실각하고 유배 생활 중 사망했다. -
다나구라번주 -
마쓰다이라 다케치카
마쓰다이라 다케치카는 히타치국 후츄번주의 아들로 태어나 다테바야시번을 계승한 후 다나구라번으로 이봉되었으며, 로쥬 수좌로서 도쿠가와 요시무네, 이에시게, 이에하루 3대 쇼군을 섬기며 타누마 오키쓰구와 협력 관계를 맺고 유력한 귀족 가문들과 혼인 관계를 맺은 에도 시대의 다이묘이다. -
다나구라번주 -
다치바나 무네시게
다치바나 무네시게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 다이묘로, 다치바나 도세쓰의 양자가 되어 다치바나 가문을 이었으며, 임진왜란, 세키가하라 전투 등에 참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신임을 얻어 옛 영지에 복귀하는 등 문무를 겸비한 명장으로 평가받았다.
2. 생애
오가사와라 나가타카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나, 형들이 모두 요절했기 때문에 세자가 되었다. 분카 9년(1812년) 아버지의 은거로 가독을 이었고, 분카 14년(1817년) 다나구라 번에서 가라쓰 번으로 이봉되었다. 그러나 다나구라 시대의 막대한 빚과 이봉 비용으로 번 재정이 궁핍해져 영민에게 헌금을 요구하고, "어국익 방향소"를 설치하는 등 재정 재건을 꾀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가라쓰 도자기에 흰 무늬의 구름 학을 만들게 한 것도 나가마사이다.
분세이 6년(1823년) 9월 29일, 2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장남 나가유키가 어려서 양자인 나가야스(사카이 타다노리의 여섯째 아들)가 뒤를 이었다.
2.1. 가독 상속과 이봉
오가사와라 나가타카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들이 모두 요절했기 때문에 세자가 되었고, 분카 9년(1812년) 아버지의 은거로 가독을 이었다. 분카 14년(1817년)에 다나구라 번에서 가라쓰 번으로 이봉되었지만, 다나구라 시대의 막대한 빚 때문에 번 재정이 궁핍해진 데다 이봉에 따른 비용도 충당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보충하기 위해 영민에게 헌금을 요구하거나, "어국익 방향소"를 설치하는 등 재정 재건을 꾀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또한, 가라쓰 도자기에 흰 무늬의 구름 학을 만들게 한 것도 나가마사이다.
2.2. 재정난과 재정 재건 노력
오가사와라 나가타카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들이 모두 요절했기 때문에 세자가 되었고, 분카 9년(1812년) 아버지의 은거로 가독을 이었다. 분카 14년(1817년)에 다나구라 번에서 가라쓰 번으로 이봉되었지만, 다나구라 시대의 막대한 빚 때문에 번 재정이 궁핍해진 데다 이봉에 따른 비용도 충당하지 못했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영민에게 헌금을 요구하거나, "어국익 방향소"를 설치하는 등 재정 재건을 꾀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가라쓰 도자기에 흰 무늬의 구름 학을 만들게 한 것도 나가마사이다.
3. 가계
오가사와라 나가마사는 오가사와라 나가타카의 아들이며, 정실은 미즈노 타다미츠의 딸 렌이다. 측실은 마츠쿠라 씨이다. 장남 오가사와라 나가유키는 측실 마츠쿠라 씨에게서 태어났다. 모리 타다노리의 계실이며, 사카이 타다노리의 여섯째 아들 오가사와라 나가야스를 양자로 삼았다.
3.1. 부모
* 아버지: 오가사와라 나가타카
3.2. 정실
* 미즈노 타다미츠의 딸 렌
3.4. 자녀
| | 이름 || 비고 | ||
|---|---|---|
| 아버지 | 오가사와라 나가타카 | |
| 정실 | 렌 | 미즈노 타다미츠의 딸 |
| 측실 | 마츠쿠라 씨 | |
| 장남 | 오가사와라 나가유키 | 생모는 마츠쿠라 씨 (측실) |
| 모리 타다노리 | 계실 | |
| 양자 | 오가사와라 나가야스 | 사카이 타다노리의 여섯째 아들 |
3.5. 양자
오가사와라 나가야스 - 사카이 다다노리의 여섯째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