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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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오시복(吳始復, 1637~1716)은 조선 후기의 문신입니다.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중초(仲初), 호는 휴곡(休谷)입니다.
주요 생애 및 활동:
- 1662년(현종 3년) 증광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 수찬, 정언, 지평, 교리, 이조정랑, 강릉부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했습니다.
-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 때 파직되었다가,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복직하여 이조참판, 한성부판윤, 호조판서 등을 지냈습니다.
- 1690년(숙종 16) 이조판서 겸 수어사를 역임하고, 다시 호조판서가 되었습니다.
- 1694년(숙종 20) 갑술옥사 때 하옥, 유배되었다가 1697년(숙종 23) 풀려났습니다.
- 1701년(숙종 27) 희빈 장씨 사건에 연루되어 제주도로 유배되었습니다.
- 1712년(숙종 38) 함평, 강진 등지로 이배되었다가 1713년(숙종 39) 영해부(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추가 정보:
- 남인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이었습니다.
- 제주도 유배 시절 제주목사 이형상과 교류하며 탐라순력도 제작에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5] 2021-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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